“농지에 구멍이 숭숭 … 직불제만 바뀌면 뭐 하나”
공익직불제 시행 1년, 무엇이 문제인가
2020년 공익직불제 시행으로 농업직불제는 일대 전환을 맞았다. 농가 소득안정 목적이 두드러졌던 기존의 직불제와 달리, 공익직불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 공익적 역할에 주목해 농민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시행 2년차, 아직까지 직불제 패러다임의 변화는 체감되지 않고 있으며 간과하기엔 너무나 많은 구멍과 사각이 드러나고 있다. 그 대부분이 제도 도입 이전부터 다분히 예상했던 바라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농정> 7월 좌담회에선 현장 농민들의 입으로 그들이 실제 체감하는 공익직불제의 문제점을 들어보기로 했다.
[참석자]
전용중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경기도연맹 사무처장(경기 여주)
고성효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부의장(제주 서귀포)
유정화 합천군농민회 부회장(경남 합천)
강석헌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 사무처장(강원 홍천)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전남 화순)
사회 심증식 편집국장, 정리 권순창 기자
공익직불제를 시행한 지 1년이 됐다. 현장에서 느끼는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우선 본인들의 사례를 들어보고 싶다.
전용중 제도가 바뀌었다고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직불금을 직접 받던 땅은 직접 받고 지주가 가져가던 땅은 여전히 지주가 받는다. 관행적으로 이어오던 편법이 오히려 ‘안착’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수령액이 조금 늘긴 했다. 밭 직불금을 논 수준으로 맞춘 거나 소농직불금을 만든 건 잘한 것 같다.
고성효 기존 제주의 직불금은 밭작물·조건불리 직불금이 다수였다. 지난해부터 공익직불금으로 바뀌면서 그 대상을 밭직불이든 조건불리든 기존에 직불금을 받았던 농지로 한정해버려 이게 제주에선 아주 큰 맹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가 10ha 정도 농사를 짓는데 이 제한 때문에 직불금 130만원을 받고 있다. 처음 조건불리직불금을 도입했을 때 기준으로 1,300만원 정도였으니 직불금이 10분의1이 된 것이다.
유정화 합천은 농사를 크게 짓는 전업농 지역이다. 땅을 임대하는 고령 은퇴농들이 예전엔 임차인한테서 나락 얼마 정도를 받고 임대를 줬는데 공익직불제로 바뀌고선 직불금을 다 가져간다. 2~3마지기 정도 소규모 임대인들이 하나 둘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앞으론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나 같은 임차농들의 지장이 많아질 것 같다.
강석헌 신규 농사꾼이 직불금 받기 어렵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나는 홍천에서 농사지은 지 4년째고 지난해 5월 경영체를 취득해 처음으로 임대차계약서를 쓰고 농사짓기 시작했다. 지난해 공익직불금을 신청하려고 보니 2017~2019년 사이 직불금을 1회 이상 수령한 농지에만 지급이 된다더라. 내가 임차한 땅은 묘하게 그 기간에만 직불금을 신청하지 않은 땅이었다. 이 땅은 영영 직불금이 안 나오는 땅이다. 심지어 공익직불제 시행 전에 땅값을 바짝 올려놔서 임차료마저 비싸게 내고 있다.
오순이 친환경 농가에서 큰 문제가 발생한다. 종전엔 직불제 따로 인증제 따로라서 임대차계약서 없이도 친환경인증을 받아 한살림 등에 납품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직불제 대상이 아니면 친환경인증 신청도 못하게 됐다. 친환경인증 자체를 포기하려는 농가가 생기고, 나도 10년 동안 해온 친환경인증 농지를 포기해야 했다. 꼭 직불제 대상이 아니더라도 경영체등록을 하면 친환경인증을 받을 수 있지만, 경영체등록을 위한 증빙에 현실적으로 이런저런 어려움을 안고 있는 농가들이 있다.
개인적인 문제 외에, 주변의 사례들은 어떤가.
전용중 유정화 부회장께서 말씀하셨듯 땅을 조금씩 가진 지주들이 자기가 소농직불금을 받으려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지주들도 땅을 쪼개 가며 편법적으로 직불금을 타는 사례가 많이 있다. 또 상속받은 농지의 경우 지주가 농사지을 능력이 안되면 직불금 신청을 아예 안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땅은 아예 직불제에서 제외되는 거다. 공익직불제 이전부터 쭉 있었던 문제들이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오순이 상황은 다 비슷하다. 정부가 직불제를 개편하면서 제일 크게 내세운 게 부당수령 근절인데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농지 문제가 그대로 방치돼 있기 때문이다. 지주 양도소득세 면제 조건 등의 사유로 직불제를 못 타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어떤 지주는 직불금을 가져가는 대신 임차료라도 깎아주지만, 농민수당도 받지 않느냐는 둥 핑계대면서 어영부영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할 수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감내해야 하는 실정이다.
강석헌 농지 자격조건(2017~2019년 직불금 1회 이상 수령한 농지)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자격조건(2016~2019년 직불금 1회 이상 수령한 사람)도 있다. 아는 형님은 그 기간에 아이들 때문에 잠시 도시에 나가 있느라 직불금 신청을 한 번도 못 했고, 그 때문에 공익직불제를 신청하지 못하게 됐다. 이름은 공익형이라고 붙여 놨는데 정작 필요한 사람 중에 직불금을 못 받는 사람이 더 많다. 공익직불제의 본 취지와 맞지 않다고 본다.
유정화 말씀대로, 귀농인이나 신규농업인 중 직불금을 못 받는 분이 대다수다. 귀농인들은 보통 50대부터 농지원부를 만들고 귀농을 준비하는데 그 연배 도시인 중에 연봉 3,700만원 못 받는 사람이 어디 있나. 농외소득 3,700만원 이상이면 공익직불제 대상 자체가 안 되고 가족구성원 중 2,000만원 이상만 벌어도 안 된다. 합천 지역에 그렇게 직불금을 못 받는 귀농인들이 많다. 60세 이후 연금만 받아도 직불금을 받기가 힘든 실정이다.
고성효 가장 문제가 되는 건 2017~ 2019년 직불금을 받지 않은 농지를 제외시킨 부분이다. ‘10만원도 안 되는 조건불리직불금, 에이 안 받고 말지’ 하는 생각으로 그동안 직불금을 신청하지 않은 농가가 비일비재하다. 직불제가 개편되면서 오히려 대상에서 제외돼버린 것이다. 이는 제주·강원처럼 밭농업을 주로 하는 지역에서 많이 나타나는 문제다. 이 제한조건이 존속되면 앞으로도 상당수 농민들이 직불금을 못 받을 여지가 크므로 속히 개정해야 한다.
오순이 그 제한규정은 처음에 법안이 통과된 이후 논의 과정에서 농식품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공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개정안이 전혀 올라오지 않고 있고 최근 회의석상에서도 이 문제보다 앞으로 만들 선택형직불금에 대한 논의만 이뤄지고 있다.
강석헌 그 규정 때문에 직불금을 못 받은 농민들이 비료 때처럼 소송이라도 걸어서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하고 있다. 강원도에 등록된 농업경영체가 10만인데 이 중 3만 정도가 지난해 공익직불금을 못 받았다. 통계만 봐도 전체 농가에 골고루 지급되지 못하는 현실이 드러난다.
유정화 임대차계약서의 문제도 있다. 상속된 땅 중 등기이전을 안한 경우가 많다. 기존엔 임대차계약서가 없어도 경작 사실을 인정받고 직불금을 신청할 수 있었다. 지금은 임대차계약서가 있어야 하는데 사망한 지주의 명의로 계약서를 못 쓰니 자손들의 동의를 다 받아야 한다. 그런 필지가 전체의 10%는 된다. 그 분들 대부분이 공익직불금을 못 받았다.
농지 쪼개기 등 편법·부당수령 문제는 어떤가.
오순이 면적직불금 지급에 30ha라는 상한 조건이 있는데 지역엔 10만ha 이상 가진 대농들도 많다. 지금은 법에 쪼개기를 방지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는데, 부인·자식·부모에게 법 개정 이전에 이미 쪼개 놓은 경우가 많다. 소농직불금은 이들을 통합해서 보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지만 면적직불금은 맹점이 있어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
고성효 10만ha의 대농은 제주로선 먼 나라 얘기다. 육지에선 직불금으로 1억원 가까이 받는 농가도 있단 말을 들으면서 공익직불제로 바뀌어도 소외되는 지역은 계속 소외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쪼개기는 대농뿐 아니라 소농들에게도 존재한다. 300평 이상 소유자가 ‘요만큼만 내가 하고 나머진 당신이 쓰라’ 하는 식이다. 농업의 공익성을 담보하고자 만든 공익직불제임에도 이런저런 빈틈이 너무 많이 생겼다.
전용중 과거 농민수당을 한창 토론할 때 소농직불금과 농민수당에 교집합이 있어서 직불금을 전체 농민에게 지급하는 방안이 논의됐는데 더이상 발전시키지 못했다. 지금은 면적 중심 직불제가 한계에 봉착한 게 아닌가 싶다.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면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공익직불제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편법·불법 문제가 여실하다. 각종 대상자격 제한 요건도 까다롭고 양도소득세를 비롯한 농지 임대차 문제도 그대로다. 공익직불제, 대안을 얘기해 본다면.
강석헌 ‘2017~2019년 직불금 수령’ 농지 기준의 경우 농식품부가 예산을 핑계로 대는데, 예산에 맞춰 제도를 만들면 안되는 거다. 제도는 취지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예산부족 말고는 고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농민들의 피해가 많다면 빨리 제도를 수정하고 피해 보상도 진행해야 한다. 또한 결국 직불금 문제의 발생 이유는 농지 전수조사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공익직불은 원래 취지에 맞게 수정하고, 부당수령은 전수조사와 규제를 통해 걸러내는, 둘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오순이 소농의 기준으로 300평이 적당한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00평은 대부분 은퇴하거나 농업이 본업이 아닌 사람들이다. 정작 농업에 목 매다는 20~30마지기 중소농들은 직불제에서 많이 소외됐다. 중소농을 살리는 직불제를 하려면 중소농을 중심에 둬야 한다. 면적직불금은 역진적 단가로 설계하긴 했지만 면적 상한을 낮추지 못해 결국 대농이 더 많은 직불금을 가져가고 있다. 빈부격차가 직불제로 더 커진 것이다. 면적을 줄이고 단가를 늘리면서 직불금으로 일정부분 소득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앞으론 소농·면적직불금만이 아니라 선택적 직불제로 농업이 다양한 공익적 기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유정화 농지 전수조사는 필히 해야 한다. 누가 농민인지 구별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농지원부와 경영체등록이 너무 차이난다. 공익직불제는 소농도 적게, 대농도 적게 주고 중간 농민이 많이 받게 마름모형으로 설계해야 하는데 대농이 더 많이 받는 건 정말 잘못됐다. 면적뿐 아니라 여러 직불제를 만들어 다각적 방면으로 농민들에게 혜택이 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도 오순위 위원장의 생각에 공감한다.
고성효 소농의 개념은 농촌을 유지하고 활력 넘치게 하는 사람이다. 면적 기준으로 생각해선 안되며 농촌사회와 얼마나 유대관계를 맺고 살아가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마을단위 또는 적정한 규모로 농지관리위원회를 둬서 각 필지를 검증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과거에는 존재했던 시스템이다. 이장 등 3~5인으로 구성한 농지관리위원회를 통해 직불금 부당수령 등을 차단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전용중 직불제도 농민수당, 기본소득처럼 남녀노소 개념으로 전환하면 문제가 완화될 것이다. 한편으론 부당수령이 적발될 경우 부당수령한 자에겐 벌칙이 있는데 신고자 보상이 없는 것이 문제다. 임차인이 신고하면 일정한 농지를 장기임대해 주거나, 이웃이 신고하면 벌금의 20%를 포상금으로 준다거나 하는 혜택이 필요하다. 아무런 장치가 없으면 새 제도가 생겨 봤자 편법은 더욱 밑으로 숨어 성행할 뿐이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