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채훈 MBC 해직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등.
눈물은 짜다. 바닷물과 염분 농도가 같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바닷물을 배출하는 것과 같다. 4월 16일, 벌써 2년이 지났다. 눈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렀지만 9명은 깊은 바닷물에 잠긴 채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왔고, 인간의 몸은 지구 표면과 똑같이 65%가 물로 돼 있다. 인간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인간이 어머니 가이아Gaia의 자식임을 입증한다. 인공지능의 연산능력이 인간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하지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여 눈물을 흘리는 능력은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특성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눈물도 있다. 대통령이라 불리는 분이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쥐어짠 게 그해 5월 19일이었다. 이렇게 계산된 눈물이라면 인공지능도 얼마든지 흘릴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정교한 인공지능이라면 상황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5월 19일이 아니라 한 달 쯤 앞선 시점에서 눈물을 흘리도록 프로그래밍 됐을 것이다. 대통령이라 불리는 분은 인공지능 치고는 무척 조악하다 할 수밖에 없으니, 이 불행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 됐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하프 반주에 실린 파곳fagotto, 더블 리드의 목관 악기. 바순이라고도 함의 구슬픈 선율로 시작한다. “외로이 그대 뺨에 흐르는 눈물, 어둠속에 남 몰래 흐르네. 아! 나에게 뭔가 말하는 듯하네, 할 말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사랑의 묘약>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 사랑한다는 걸 확인하는 반전(反轉)의 순간에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나온다. 이 눈물이 있기에 인간의 따스함을 느끼게 하고 감동을 주는 오페라다.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Una Furtiva Lagrima Alagna를 검색하세요. https://youtu.be/_OhzmoTpM64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
이 노래는 애수에 차 있지만, 줄거리를 보면 슬픈 노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스페인 시골 바스크, 순박한 농부 네모리노는 콧대 높은 지주의 딸 아디나를 사랑한다. 그가 망설이며 애만 태우는 사이, 호탕한 군인 벨코레가 먼저 그녀에게 꽃을 바쳐 청혼한다. 네모리노는 돌팔이 약장수에게 ‘사랑의 묘약’을 사서 단숨에 마셔 버린다. 싸구려 포도주에 불과한 이 약을 마신 네모리노는 마을의 모든 처녀들이 자기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술 취한 채 춤추고 노래한다. 네모리노의 한심한 모습을 본 아디나는 그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벨코레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네모리노는 약효가 떨어진 ‘사랑의 묘약’을 더 사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판단, 군대에 지원한다. 아디나는 네모리노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했다는 걸 마침내 깨닫게 된다. 그녀는 이미 약혼한 벨코레 대신 네모리노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며 홀로 눈물을 흘린다. 아디나의 눈물을 훔쳐본 네모리노는 가슴이 벅차올라 이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부른다.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이 구슬픈 아리아는 사랑을 이룬 크나큰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 셈이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우매한 인간이 벌이는 오해와 소동으로 가득하다. 냉철한 인공지능이라면 상대방의 마음을 이렇게 오해하지 않을 것이며, 싸구려 포도주를 ‘사랑의 묘약’으로 착각할 리도 없을 것이다. 계산하지 않는 순박한 마음이 인간의 특징이며,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이 순박한 마음을 나누며 사랑을 이루는 것이다. 서로 사랑한다는 걸 확인하는 극적인 반전反轉의 순간에 바로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놓여 있다. 이 오페라는 눈물이 있기에 인간의 따스함을 느끼게 하고, 그래서 감동을 준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불가역적’으로 인간의 생존조건을 바꿔 놓을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닮아가는 큰 흐름은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기계를 닮아가서야 되겠는가. 인공지능이 두려운 게 아니다. 민주주의와 인간의 온기가 사라진 상태에서 도래할 인공지능의 세상이 두려운 것이다.
다시 4월이다. 이 산하는 눈물로 가득하지만, 아니, 눈물로 가득하기 때문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 요지부동의 선거판을 보면 영혼 없는 사이보그를 상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뭐라도 하자”고 외치는 동료가 있지 않은가. “누군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한 우리는 희망 없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노래한 시인도 있지 않은가.
※-- 가사을 첨부합니다 --
"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 negli occhi suoi spunto
One lonely tear steals down thy cheek,
Secretly here in the dark.
외로이 그대 빰에 흐르는 눈물,
어둠속에 남몰래 흐르네.
Quelle festose giovani invidiar sembro
Ah! but to me it seems to speak
It has much to tell...
아! 나에게만 무언가 말하는 듯 하네
할말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Che piu` cercando io vo?
Why then do you have to leave?
왜 그때 그대는 떠나지 않았나?
Che piu` cercando io vo?
Why then do I have to grieve?
왜 그때 난 그렇게 슬퍼했던가?
M'ama, si m'ama, lo vedo, lo vedo!
One lonely tear on thy cheek
Seems to say Don’t fly away...
외로이 그대 빰에 흐르는 눈물
떠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네
Un solo istante il palpiti del suo bel cor sentir
One lonely tear steals down thy cheek
Here as I kiss thee farewell,
외로이 그대 빰에 흐르는 눈물,
여기 나의 작별키스로 그대에게 남았네
i miei sospir confondere per poco a suoi sospir
Ah! but to me it seems to speak
It has much to tell...
아! 나에게만 무언가 말하는 듯 하네
할말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i palpiti, i palpiti sentir
O stay, my love, O stay my love, O stay!
아! 가지마오 내 사랑 가지마오 내사랑, 가지마오!
confondere i miei co' suoi sospir
Don’t fly away, O love, don’t fly away!
떠나가지마오, 그대 떠나가지 마오!
Cielo, si puo` morir di piu` non chiedo non chiedo
첫댓글 사랑은 가끔 넘 멍청하기도 하죠
그래도 사랑합니다 마야님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