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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이상기후가 농작물 흉작을 가져오고 국제 식품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는 이제 새롭지 않다. 하지만 한 번 오르고 마는 게 아닌데다 흉작 농산물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 그때마다 뉴스가 된다.
식품 원료인 농작물의 흉작은 지구촌 저소득 국가와 가난한 사람들을 굶주림으로 내몬다. 원인인 이상기후는 멈추기는커녕 심화되고 있다.
앞으로 농산물 대란이 더 자주, 더 크게 발생할 것이란 경고가 나오고 있다.
▲카카오 원두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인도에서 일어난 ‘토마토 대란’ = 지난여름 인도에서는 ‘토마토 대란’이 빚어졌다. 평소 1kg당 30~40루피(약 465~620원) 정도에 거래되던 토마토 가격이 1kg당 200루피(약 3100원)까지 오른 것이다.
토마토는 인도인들의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식재료다. 가격이 오르고 품귀 현상이 빚어지자 맥도널드는 인도 북부 및 동부 지역의 자사 매장에서 햄버거를 비롯한 메뉴에 토마토를 제외했다. 저자에서는 토마토 가격을 흥정하다 싸움이 일어나기 일쑤여서 가게 주인이 경비원을 고용하기도 했고, 토마토가 실린 트럭을 납치하거나 훔치는 일도 일어났다.
인도는 세계 토마토 생산 2위 국가다. 그런데 토마토가 한창 익어갈 시기인 5~6월 토마토 주산지에는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나타나 흉작으로 이어졌다.
●올리브유 흉작에 가격 급등 = 이런 사태가 유럽에서도 일어날 판이다. 전 세계 올리브유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남유럽의 작황이 2년 연속 부진한 것으로 나오면서 올리브유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 최근 유럽지역의 올리브 수확이 시작된 가운데 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올리브유 생산이 지난해 40% 급감한 데 이어 올해는 미미한 수준 정도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국제 올리브유 가격은 이미 지난해 6월 말 메트릭 t당 4030달러에서 올해 9월 말 9364달러로 2배 넘게 상승,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한 상태다.
여기에는 스페인을 비롯해 이탈리아·그리스·포르투갈 등 유럽 올리브 주산지들의 흉작이 영향을 끼쳤다. 스페인 국립기상청(AEMET)에 따르면 스페인의 올여름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1.3도가 높아 사상 3번째로 더웠다.
지난해에는 호주와 남미 지역의 작황이 양호해 가격 급등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호주와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올리브유를 공급받아온 한 미국 내 도매상은 지난 7월 공급업체로부터 가격을 30% 넘게 올리겠다는 통지를 받았다면서 “모두가 이에 편승해 즉각 가격을 인상했다”고 전했다.
●카카오 국제가격 44년 만에 최고 = 초콜릿의 핵심 원료인 카카오도 이상 기후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공급부족 현상이 발생하면서 44년 만에 가격이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블룸버그통신과 미 CNBC 방송 등에 따르면 12월 인도분 카카오 가격은 뉴욕선물거래소에서 전날보다 2.5% 상승한 3786달러(약 509만 원)까지 치솟아 1979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카카오는 올해 들어서만 40% 이상 급등했으며, 이는 현재 미국에서 거래되는 주요 원자재 상품 가운데 가장 크게 상승한 것이다.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도 코코아 선물(3월분) 가격은 10월 19일 톤당 3169파운드로 마감했다. 아프리카산 카카오 원두를 주로 다루는 런던ICE에서 1920년 코코아 선물 거래가 시작된 이래 최고치로 지난해 연말과 비교하면 가격이 60% 넘게 뛰었다.
코트디부아르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시즌 코트디부아르 항구에 도착한 카카오 물량이 지난해에 비해 16%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애널리스트들은 카카오 원두 공급부족 현상이 3년 연속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가격 상승은 전 세계 카카오의 75%를 생산하는 코트디부아르, 가나, 카메룬, 나이지리아 등 서아프리카에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 예년에 비해 훨씬 건조하고 더운 이상 날씨를 몰고 와 작황에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 데 따른 것이다. 엘니뇨의 영향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미 카카오를 원료로 한 캔디류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르면 캔디류 가격이 지난해 동월보다 7.5% 상승했다. 초콜릿 제조업체 허쉬의 스티브 보스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4월 “특히 카카오와 설탕이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올해보다 내년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사탕수수와 오렌지도 흉작 걱정 = 사탕수수와 오렌지 등도 흉작을 걱정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인도의 설탕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서부와 남부 산지의 사탕수수 재배 지역의 올해 강우량은 과거 평균을 50% 밑돌고 있다. 인도 정부가 사탕수수 수확 부족과 국내 물가를 이유로 설탕 수출 할당 물량을 더 축소할 가능성이 있어 가격에 대한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오렌지의 경우 주요 생산지인 미국 플로리다주가 태풍·허리케인 등의 피해를 입어 타격이 컸다. 보도에 따르면 플로리다주의 2022~2023년 오렌지 생산량은 1934·35년 이후 약 88년 만에 낮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역시 비슷한 수준의 흉작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오렌지주스 선물가격은 10월 중 사상 최고를 경신한 상태다.
●세계 4대 곡창지대의 엘니뇨 =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는 가뭄, 홍수, 폭염 등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빈발하고 있다. 농작물 흉작을 가져오는 이런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엘니뇨가 꼽힌다.
엘니뇨는 페루와 칠레 연안에서 일어나는 해수 온난화 현상인데, 이 지역 수온은 이미 5개월째 엘니뇨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11월쯤 엘니뇨가 발생했음을 공식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10월 14일 미 해양대기청(NOAA) 산하 기후예측센터는 “올해 엘니뇨는 2024년 1월에서 3월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95% 이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수온이 평년보다 1.5도 이상 높은 ‘강한’ 엘니뇨로 발달할 가능성도 71%로 높게 점쳤다.
엘니뇨 시기 동태평양 부근 미국 남부와 중남미지역으론 평소보다 비가 많아지고, 동남아에서 중국 남부, 인도에 이르기까지 서태평양 부근에선 고온건조가 나타난다.
특히 엘니뇨 영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겨울철엔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평년보다 기온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나마 영향이 덜한 여름철에도 중남미와 인도, 동남아 지역으론 가뭄과 고온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엘니뇨의 직접 영향을 받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와 미국 남부 지역 등은 세계 4대 곡창지대이기도 하다.
●동시다발적 흉작 발생 가능성 경고 = 이런 가운데 세계 곡창지대에서 흉작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와 독일 인간-환경시스템 통합연구소(IRI THESys) 등 국제연구팀은 세계의 주요 곡창지대에서 동시다발적 흉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10월 초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제트기류가 불안정해져 폭염과 홍수 등 다양한 기상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기상이상은 농산물 작황에도 영향을 준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진들은 1960년에서 2014년 사이의 기후관측 및 기후모델 데이터를 조사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2045년에서 2099년까지의 해당 데이터를 예측했다.
우선 연구진들은 세계 주요 곡창지대 위를 흐르는 제트기류가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큰 파도 모양으로 흐르는 제트기류의 강한 구불거림 현상은 북미, 동유럽, 동아시아의 주요 곡창지대에 큰 영향을 미쳐 수확량을 최대 7%까지 감소시킨다.
또 연구진은 이 현상이 과거 동시다발적인 농작물 흉작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에 따르면 2010년에 제트기류가 급격히 변동해 러시아 일부 지역에서 폭염이 발생했고, 파키스탄의 홍수를 야기했다. 당시 기후변화로 인한 제트기류 불안정성이 농작물 수확량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것이다.
●한해 5억 명 먹을 식량 사라져 =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1991∼2021년 30년간 재난으로 인한 농작물과 가축 손실액을 3조8000억 달러(약 5134조 원)로 추산했다. FAO 설명에 따르면 연평균 약 1230억 달러(약 166조 원)로 연간 최대 5억 명을 먹일 수 있는 양이다.
여기서 ‘재난’이란 폭염, 홍수, 가뭄, 폭우, 산불, 곤충해, 질병, 전쟁 등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재난을 모두 포함한다. 이 가운데 질병과 전쟁을 제외하면 모두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 FAO는 1970년대 연간 약 100건이었던 재난이 최근 20년 동안 연간 400건으로 증가했다며 그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꼽았다.
피에로 콘포르티 FAO 통계부 부국장은 “세계적으로 재난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며 "식량 생산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 변화로 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있지만 대비책을 세우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무역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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