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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프랑스에서 우리나라의 개고기 문화를보고 그러는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내면엔 우리가 모르는 문화적인 무언가가 있겠지요
프랑스 인들이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모르고 얘기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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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문화라....
우리나라가 개 먹는게 바로 식인 문화나 마찬가지라고 프랑스에선가 그랬다지요.
그런 소리 들어야 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있어그런지.
이런 식의 음식문화아님 식인 문화를 머라 하기 조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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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것으로 유명한 중국에서는 온갖 기상천외한 음식이 넘친다고 합니다.
대만에서는 바퀴벌레가 어른 손가락크기만큼 크다고 합니다.
날씨도 덥고하니 바퀴벌레가 기승을 부렸겠지요..
그래서 어떤사람이 제안을 했는데..바퀴벌레를 식용화 하는게 어떠냐는 거였습니다.
텔레비젼에도 나왔다고 하는데
우선 바퀴벌레를 잡아 씻은다음, 철사에 꿰어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살짝뿌려서 굽는다고 합니다.
맛이 어떠냐는 질문에...답...흔하오!(매우좋다)...
바퀴벌레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중국에서는 사람고기까지 먹었다고 합니다.
수호지에 나오는 흑선풍 이규를 비롯한 여러 호걸(?)들이 사람고기를 먹는장면을 읽어 보셨겠지요.
은나라 마지막황제 주왕은 폭군으로 유명한데 조금이라도 거역하는 사람은 산채로 숯불에 굽거나
장을 만들어서 나누어 먹였다고 합니다.
창이라는 신하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자 그를 감옥에 가두고
그의 아들 백읍고를 잡아다가 삶아가지고 장을 만들어서 아버지인 창에게까지 한사발 권했다고 합니다.
"듣기로는 이 녀석이 성인이라는데,설마 자기아들의 고기는 못먹겠지?"
창은 이미 눈치를 챘지만 모르는척 그 국을 다 마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석방된후에는 주왕을 타도하는데 앞장섰고 그의 아들 발에 와서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공자의 제자중에 자로라고 있는데 위나라의 내란에 연루되어 죽게된다음
포로 뜨이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공자는 집안에 있는 모든 포를 버리고 평생 먹지않았다고 합니다.
기근때는 더 심했겠지요...
중국 명나라때 기근이 들어서 많은사람들이 굶어죽고 있었는데,
사천지방에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젊은과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집역시 굶주림에 고생하고 있었겠죠.
하루는 며느리가 부엌에서 있었는데..방에서 시아버지의 말이 들렸다고 합니다.
"이제 먹을거라곤 아무것도 없소. 하는수없지..며느리라도 잡아먹는수밖에...혼자 사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꼬..."
이말을 들은 며느리는 기겁을 하고 친정집으로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친정아버지는 대노해서
"말도 안되는소리..누구딸인데 제놈들이..감히..."
그러고는 자기가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물론 기근때라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중국에서는 기근때가 아니라 평소에도
인육을 상육(想肉)이라고 불리며 즐겨먹었다고 합니다.
당나라때 측천무후의 신하였던 내준신은 훗날 모반에 걸려서 죽게되었는데
사람들이 달려들어 뜯어먹어서 삽시간에 뼈만남았다고 합니다.
춘추오패로 유명한 제나라의 환공은 미식가로 유명한데, 하루는 주방장 이아에게
"뭐 좀 맛있는게 없을까" 하고 물어봤습니다.
"물론 있는데..바로 사람고기입니다."
환공은 사람고기라는 말에 주저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눈치를 챈 이아가 자신의 아들을 요리해서 바쳤다고 합니다.
환공이 먹어보니 과연 별미중의 별미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아를 중용했죠.
원나라 도종의가 지은 <철경록>이나 송나라 장작이 지은 <계륵편>에는
상육의 요리법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되어있고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에는 인체의 각부위별로 약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육의 가장 전성기는 당나라때라고 하는데 상육을 판매하는 상점이 전국마다 있었다고 합니다.
명나라때에는 사천사람의 상육이 남자는 한근에 7전, 여자는 8전이었다고 하니
여자고기를 더 높게 쳐주었던거 같습니다.
근대 중국 군벌의 아버지였던 증국번의 일기에 의하면 1860년대 강소지방의 상육은
한근에 60전이었는데 태평천국의 난 때는 가격의 인플레가 심해서 130전까지 폭등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