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변호사님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은 무엇이든가요?” 1월30일부터 2월7일까지 이태리 로마와 피렌체를
여행하던 중 일행 한 분이 저에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 다빈치, 라파엘로, 카라바조 등 수많은 작가의
작품 중 가장 감동적인 작품 하나를 대라니 이것보다 고통스러운 질문은 없을 것입니다. 머리에 수많은 작품이
스쳐지나 갔습니다. 선뜻 대답을 못하고 주저하자 그분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는 수많은 작품 중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앞에 있던 미켈란젤로의 4개의 미완성 노예상이 제일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이번 여행을 인솔한 김상근 교수님의 설명이 기억 났습니다. “여러분 이곳 아카데미아 박물관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원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안쪽에 5.5미터의 다비드상이 영구 전시 되어 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4점의 미완성 노예상이 있습니다. 1505년 미켈란젤로가 30세가 되던 해 당시 교황이던 율리우스
2세가 미켈란젤로를 로마로 부릅니다. 자신의 묘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그 묘에 50명의 인물상을
조각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조각에 쓸 대리석을 구하러 피렌체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해안도시 카라라로 갔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부푼 꿈을 안고 50개의 대리석을 구해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작업을 하던 중 돌연 교황 율리우스
2세로부터 작업 중단 지시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6점의 미완성 노예상이 남게 되었고 아카데미아 박물관에 그중
4개의 작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미완성 작품을 보면 미켈란젤로가 추구하였던 플라톤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플라톤 철학은 현상 뒤에는 본질인 이데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현상인 대리석 덩어리 속에는 본질인
작품 이데아가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데아를 찾아가는 과정 즉, 조각을 하는 과정은 현상 즉, 대리석 덩어리에서
비본질적인 것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비본질적인 것을 제거해 나가면 결국 이데아인 작품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김교수님의 설명을 회상하고는 그 분에게 되물었습니다. “현상에서 비본질적인 것을 제거하면 본질적인 것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 말인가요.” “예, 저는 그 미완성 작품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제 삶은 너무 비본질적인
것에 집착하였건 것 같습니다. 사소한 일에 마음 흔들리고 짜증 내고 화를 내었던 것 같습니다. 본질적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말입니다. 오늘 아침 직원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화를 내고 바로
답장을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본질적인 일인가? 답은 아니다 였습니다.
저는 참고 답장을 쓰지 않았습니다. 삶의 본질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자아를 찾아 이번 여행을 나섰다는 그 분은 해답에 근접해 가고 있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어떤 작품으로부터 커다란 감동을 받게 될까?”
로마에서 시작한 이번 여행은 피렌체를 갔다가 다시 로마로 와서 끝이 났습니다. 로마로 돌아와서 일행들이 들린 곳은
보르게세 미술관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섬뜻한 작품을 만났습니다.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입니다.
김상근 교수님의 설명은 이러하였습니다. “카라바조는 미술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밀라노에서
내려와 로마에서 길거리 화가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후원자를 만나 화가로 성장합니다. 미켈란젤로보다 96년 늦게
태어난 그는 평생 미켈란젤로를 넘어서려고 했습니다. 그는 전통을 벗어나 거리에서 소재를 취해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로마 최고의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천재성 못지 않게 난폭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6년동안 총 15번 입건 됩니다. 여러차례 감옥에도 갔습니다. 그때마다 후원자들이 도와 주어 풀려나게 됩니다.
그러다가 1606년 급기야 살인죄까지 저지르고 도피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에게 현상금이 붙습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그가 가는 곳마다 후원자들이 그의 재능을 높이 사서 그림 주문하기도 하였습니다.
1610년 카라바조는 오랜 도피생활에 지친 나머지 자신의 후원자인 보르게세 추기경에게 사면을 요청합니다.
그 댓가로 보르게세 추기경은 작품 3개를 주문하였고 카라바조는 그립니다. 그중 하나가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사면 받기 전에 객지에서 병사하고 맙니다. 그의 나이 38세 때입니다.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에서 다윗은 카라바조의 젊은 날의 자화상이고 골리앗은 그림을 그릴 당시의
카라바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젊은 날의 카라바조가 방탕한 세월을 지낸 훗날의 자신 목을 잘라 들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고 전율을 느꼈습니다. 카라바조에 제 자신이 투영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겠다던 기상으로 법대를 들어가던 그 젊은 날의 조근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세파에
찌들고 욕망과 허영에 부풀어 오른 중년의 조근호만 남아있는 것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카라바조처럼
저의 목을 베어들고 싶었습니다. 그 목을 들고 이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나는 다윗이 되고자 하였으나 결국 내가
그토록 경멸하던 골리앗이 되고 말았구나.”
그러나 어쩌면 카라바조는 이 그림을 통해 자신이 재탄생 되기를 바랬을 지도 모릅니다. 추악한 자신을 죽이는
겸허함을 통해 새롭게 재출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비록 신이 그 출발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저는 이번 여행을 마치며 카라바조처럼 저를 죽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교만, 욕망의 조근호를 죽이고 겸손,
절제의 조근호를 재탄생 시키고 싶었습니다.
16명이 함께한 르네상스 학습여행에서 각자 작품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었을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노예상에서 삶의 본질을 찾은 분도 있고 저처럼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을 보고 욕망
덩어리 자신을 죽이고 재탄생 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여행은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주는가 봅니다. 여러분, 삶이 흔들리면 어디론가 떠나보세요. 또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5.2.9 조근호 드림
추신 : 여행일정이 너무 빡빡해 지난 주 월요편지를 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