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춘추
다시, 기본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51호(2024.02.15)
하임숙
영문91-95
채널A 기획전략본부장
본지 논설위원
수험생을 둔 대부분 가정에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갔을 것이다. 대학가에는 곧 새내기들이 들어찰 것이다.
학부모로서 태풍을 온몸으로 겪고 보니 ‘기 본’을 재규정하는 시대라는 점을 실감했다.
문과인 아이가 사립대학 두 곳을 붙었는데 하나가 자율전공학부, 또 다른 하나가 AI학과였다. 문리대를 나온 아버지는 ‘학문의 기 본’을 강조하며 자율전공학부에서 문과 또는 상공 계열 전공을 권유했지만 아이의 선택은 단호했다. 자율전공학부라 하더라도 정보디스플레이를 선택하거나 AI학과를 다니겠다 는 것이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본교를 포함한 소위 ‘SKY대학’ 인문계 중도 탈락생 수는 2021년 456명에서 2022년 688명으로 50%나 늘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과를 학교 이름만 보고 선 택한 학생이 늘어난 결과로 볼 수 있다. 2023 학년도 서울대 인문₩사회 계열 정시 최초 합 격자 중 44.4%가 이과생이었다. ‘기초 학문’ 이 징검다리일 뿐 더 이상 기초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의대 열풍’은 그 흐름의 정점이다. 2023학 년도 수능에 지원한 N수생의 숫자가 전체 지 원자 대비 35.3%로 1996학년도 이후 28년 만 에 최고치였다. 직장인, 군 입대자들까지 의 사가 되기 위해 N수 대열에 합류한다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럼 의사가 왜 되고 싶은 것일까. 당연히 국가가 인정한 자격증을 가진 자로서 샐러리 맨보다 직업의 안정성이 높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안타까운 건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차지하는 지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히포크라 테스 선서’로 통칭되는 제네바 선언문을 기본 윤리로 여겼다. ‘이제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선언문 말이다.
최근 의대 열풍의 이면에는 자녀들의 커리어 플랜을 짜면서 ‘일주일에 3, 4일 피부 진료를 하는 의원에 근무하면서 비싼 월급을 받 고, 나머지 날에는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직업군’으로 의사를 규정하는 헬리콥터 맘들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자녀를 의대반에 집어넣고, 의대에 보내선 인턴만 거치고 전공의 과정은 빠지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당연히 모두 다는 아닐 것이고, 개인의 행복이라는 관점으로 보자면 영 틀린 일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진 시대. 기본을 어떻게 재규정하고 발전시킬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