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국제 자유도시화를 추진중인 제주도에 지대조세제를 도입하는 운동을 조금씩 추진중입니다. 저는 이 운동의 주체가 제주 지역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고, 제주 출신 형제들과 더불어 '제주의 (총체적)복음화와 지대조세제'를 주제로 연구중입니다. 오늘도 그 모임을 하고 왔습니다.
제주인들의 한을 이해하기 위해 제주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역사상 유배지가 되었던 제주, 잘못된 조세 정책(세폐)과 천주교의 잘못된 선교정책(교폐)으로 일어난 '이재수의 난'(1901)과 4.3항쟁(1948-1954)에 대한 자료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4.3에서 서북청년단(서청)의 잔혹한 살상, 강간, 범죄 행위와 그 서청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라는 점, 그리고 미국과 이승만 정부의 배경이 기독교라는 점에 대해 하나님과 제주인 앞에 기독교회가 회개와 반성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50여만 제주인 중 기독교인 비율은 0.5%밖에 안됩니다. 여기에는 무속과 유교, 불교의 영향과 더불어, 4.3시 기독교 배경을 가지고 있던 '육지 것들'(제주인이 당시 외부에서 들어온 서청과 경찰을 부를 때 사용)에 대한 반감이 내재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현재 대부분의 교회는 제주에서 '육지 것들'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재작년 서울 모교회의 제주선교회에 속한 약 1,000명의 청년들이 벌인 제주선교에 대한 보고서 중 '제주오라교회'를 중심으로 사역한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제주도의 특성에 대해 목사님이나 함께 동역 했던 집사님을 통해 들었는데 그분들은 자기네들은 섬사람, 육지것들이라고 나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육지에서 온(?) 우리들에게 관심은 있지만 마음문은 열지 않습니다. ... 4.3사건에 대해 조금 알고 가셨음 좋겠습니다. 그쪽 오라동이 가장 피해가 심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와중에 빛과 같은 기독교인과 교회도 있었습니다. 이도종 목사는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난리 속에서도 위험한 산행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결국 한라산에 입산한 산사람들에게 기독교 목사이며, 미국의 스파이라는 죄명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위의 선교보고서에 의하면 '의귀교회'는 그 주변지역이 무속신앙이 극심한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15%의 기독교인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4.3이후에 교회에서 오갈데 없고 교육을 받을수 없는 마을사람들을 돌보아 주었기 때문에 복음이 쉽게 자리 잡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마을주변 대부분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교회의 지역사회에 대한 많은 참여와 도움으로, 교회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신용을 높이고 있고, 실제로 전도 다니면서 교회에 대해 긍정적인 분들을 많이 만날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제주교회와 한국교회는 우익의 편에, 가해자의 편에 서고 말았습니다. 깨어 있는 소수의 제주 출신 기독 청년들이 만들고 있는 한 기도소식지에는 다음과 같이 당시 제주 교회의 책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그때 제주의 교회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정말 슬프게도 제주의 교회는(물론 전부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극우적인 성향을 가졌습니다. 산사람들을 폭도라고 단정을 지어 적대시하였습니다. ... 어떤 목사님은 미국과 친분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주의 교회가 어쩌면 미국과 당시 정부에 변호의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어떤 변호를 통해서 제주 4.3을 이처럼 크게 만드는 것을 막아보려는 노력을 하였다면 좋았을 것을, 제주의 교회는 그것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그 당시의 옹호하는 모든 사람들은 죽임을 면치 못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아무리 극우적이고, 미국과 친분이 있었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 불행한 것은 제주 교회가 자신들과 친한 사람이나, 친척들을 구하는데 조금의 노력은 있었지만 그 이상의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작년 가을에 월간조선이 제주 4,3을 여전히 폭동으로, 당시 제주인을 폭도로 규정한 것에 대해 제민일보를 비롯한 지역신문과 시민단체가 항의하는 문서를 읽으면서, 비록 4.3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아직도 4,3의 진실 규명과 제주인의 명예회복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4.3당시 제주인의 70%를 빨갱이로, 제주도를 제2의 모스크바로 지칭했던 그 잘못을 아직도 거두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희생자는 한라산에 입산한 분들과 그 가족들만은 아니었습니다. 저와 함께 모임을 하는 형제의 외할아버지는 산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산사람들과 그 가족의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이 죽고 죽임의 악순환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생각할 때 해방직후 북한에서 공산주의자들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적대 살상이 그 근원이 되어, 월남한 서청과 경찰의 제주인 학살, 그리고 입산한 산사람들의 우익의 제주인 보복살상이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4.3은 이데올로기 대립과 남북 분단으로 인해 발생했고, 그 와중에 수많은 제주인들이 살상당하였습니다. 이제 그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빨갱이로 손가락질 당해 온 제주인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과 더불어, 이데올로기 대립과 남북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한국의 대안체제로서 지대조세제를 제주에 실시하는 것은 4.3의 한을 통일로 승화시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광주 5.18의 정신을 평화와 통일과 창조의 정신으로 승화시키자는 플랜카드를 얼마 전 광주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제주4.3의 한을 풀고 그 의미를 오늘의 역사에 승화시키는 길은 먼저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을 하는 것이고, 그와 더불어, 지대조세제를 제주에 실시하여, 통일한국의 기초를 제주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데올로기 대립과 분단의 고통이 빚은 4.3의 한을 통일의 대안인 제주 지대조세제 실시로 승화시키면 좋겠습니다.
제주교회와 한국교회가, 먼저 기독교의 배경을 가진 미국과 이승만정부와 서청이 자행한 4.3당시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과 제주인 앞에 회개하고, 다음으로 제주도에 지대조세제를 실현하는 운동을 펼침으로써, 제주도의 총체적 복음화를 기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