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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8:10-13>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10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지금은 밤에도 전기불이 너무 환해서 별을 잘 볼 수 없지요. 반면 여전히 밤이 어두운 나라나 우리 나라에도 밤이 어두운 시골 같은 곳에서는 별이 많이 잘 보이고, 별이 잘 보이면 특히 별똥별이 떨어지는 광경도 수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사도요한은 작은 별똥별이 아니라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광경을 세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에 나타나는 재앙으로 비유하고 있는 거죠.
지구가 의존하고 있는 하늘의 저 태양도 영원한 게 아닙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몇십억년쯤 지나면 태양도 서서히 식어가면서 결국은 폭발해 버릴 거라고 하더군요. 그 때가 되면 본문의 표현처럼 횃불같이 타는 별이 되어서 어디론까 떨어져 버리겠지요.
이렇게 큰 별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여주지만 이 큰 별이 강들과 물샘으로 떨어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다음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매 많은 사람이 죽더라.’ 이 땅의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과 같이 쓴 물이 되었다는 거죠. 심각한 물의 오염을 말해주는 겁니다.
물은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요. 밥은 안먹어도 몇십일을 버티지만 물을 마시지 않으면 단 사나흘도 버티지 못합니다. 그런데 물이 오염되었다는 것은 이 세상은 더 이상 편안하고 안심하면서 살 수 있는 곳이 되지 못한다는 거죠.
우리 나라의 수질 오염도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속초도 산좋고 물좋다고 자랑하지요. 속초의 수돗물은 저 산 좋은 설악산에서 내려오는 물입니다. 그래서 여러 성도님들 중에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실까요? 저 역시 그대로 못마시고 정수기를 통해서 마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정수기의 물은 정수기 필터에서 많은 중요한 성분까지 걸러버려서 죽은 물이라고까지 말하더군요. 하지만 살아있어도 오염된 물보다는 오염되지 않는 죽은 물이 더 낫기 때문에 그냥 마실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렇게 세상의 물들이 계속 오염되어가고 있지요. 지금도 일본 후쿠시마에서는 방사능 오염수다, 아니다 방사능 처리수다 하면서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 논쟁도 벌입니다만 방사능 처리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 그 물을 안심하고 마시지는 않을 겁니다.
세상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경제가 아무리 풍요로워지더라도 여전히 오염된 물이 흘러간다면 세상은 좋아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종말을 향한 재앙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겁니다. 물의 오염은 단지 물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물이 스스로 오염될까요? 결국 인간의 죄악된 욕심이 오염시키지 않습니까?
12절 말씀을 봅니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리라.’ 태양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만큼 어두워졌다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지구는 일년에 한바퀴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그냥 돌기만 하는 게 아니라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돕니다. 지구가 아래로 움직여서 햇빛이 우리나라가 위치한 지구 북반구에 더 많이 비추게 되면 지금처럼 여름이 되는 것이고, 반대로 지구가 위로 움직여서 햇빛이 남반구에 더 비추게 되면 우리나라는 겨울이 되는 거죠. 태양이 그대로 있고 지구가 약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여름과 겨울의 큰 차이를 보이는데 아예 태양이 삼분의 일이나 빛을 잃어버린다면 과연 이 지구에 생명체가 살아남을까요? 이런 현실을 상상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보면 지금 이 세상에도 이 세상은 더 이상 살 수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 최악의 빈곤 속에서 굶고 사는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서 계속 살고 싶을까요? 여전히 멈추지 않은 전쟁의 포화 속에 떨고 있는 팔레스틴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까요? 온갖 폭력에 시달리고, 멸시와 조롱과 손가락질 속에 사는 사람은 과연 살 맛이 날까요? 물리적인 태양과 달과 별은 아직 그대로 일지 모르지만 사람들 마음의 태양과 별은 삼분지 일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빛과 따뜻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지금까지의 재앙의 현실도 비참한데 이제 넷째 나팔까지만 울렸고, 아직도 세 개의 나팔소리가 더 남았다는 겁니다. 결국 이 땅에 사는 자들에게는 그냥 화가 아니라 화, 화, 화 이렇게 세 번이나 강조하면서 언급할 정도로 계속 재앙의 화는 더해 갈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본문은 우리에게 공포에 젖어 떨라고 말하는 걸까요? 아직 나팔 재앙이 더 남았고, 게다가 16장에 가면 일곱 대접 재앙이 이어지면서 더 심각해집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이 16장으로 끝납니까? 22장까지 이어집니다. 이 재앙이 역사의 끝이 아니라는 거죠. 재앙 뒤에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의 역사가 있습니다. 현실은 재앙 같은 현실이어도 이 역사는 승리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는 거죠. 사도요한 당시에 극심한 박해에 시달리는 성도들에게나 오늘 여기에서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에게나 우리의 역사는 최후의 완전한 승리의 역사를 완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