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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of Now/ By Eckhart Tolle
THE STATE OF PRESENCE
지금 여기에 깨어 있다는 것
It's Not What You Think It Is
현존이란 무엇인가
You keep talking about the state of presence as the key.
I think I understand it intellectually,
but I don't know if I have ever truly experienced it.
I wonder - is it what I think it is,
or is it something entirely different?
당신은 현존하는 상태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머리로는 이해한 것 같지만,
내가 정말 그것을 체험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것일까요?
It's not what you think it is!
You can't think about presence, and the mind can't understand it. Understanding presence is being present.
현존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존에 대해 생각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 너머이며, 마음이 상상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현존을 이해한다는 것은 현존하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Try a little experiment. Close your eyes and say to yourself:
"I wonder what my next thought is going to be."
Then become very alert and wait for the next thought.
작은 실험을 해 보겠습니다.
눈을 감고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다음에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런 후 주의력을 집중하고 다음에 올 생각을 기다리십시오.
Be like a cat watching a mouse hole.
What thought is going to come out of the mouse hole?
Try it now.
Well?
쥐구멍을 지켜보는 고양이처럼,
그곳에서 어떤 생각이 나오는지 지켜보십시오.
지금 해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I had to wait for quite a long time before a thought came in.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ly. As long as you are in a state of intense presence,
you are free of thought.
You are still, yet highly alert.
바로 그렇습니다.
강한 현존 상태에 있는 한 우리는 생각에서 벗어나 있게 됩니다.
당신은 고요한 상태에서 예민하게 깨어 있었습니다.
The instant your conscious attention sinks below a certain level, thought rushes in. The mental noise returns;
the stillness is lost. You are back in time.
그러다가 당신의 의식적인 주의력이
어떤 수준 밑으로 내려가는 순간,
생각이 밀려든 것입니다.
잡념이 돌아오고 고요함이 사라진 것입니다.
당신은 다시 시간 속으로 돌아 왔습니다.
To test their degree of presence, some Zen masters have been known to creep up on their students from behind and suddenly hit them with a stick. Quite a shock! If the student had been fully present and in a state of alertness, if he had "kept his loin girded and his lamp burning," which is one of the analogies that Jesus uses for presence, he would have noticed the master coming up from behind and stopped him or stepped aside.
But if he were hit, that would mean he was immersed in thought, which is to say absent, unconscious.
현존의 정도를 시험하기 위해 어떤 선사들은 제자들의 뒤로 살금 살금 다가가서 갑자기 몽둥이로 내려치는 방법을 씁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만일 그 제자가 예수의 비유에서 처럼 깨어있는 상태에서 '준비를 하고 램프 불을 켜고'있었다면 , 스승이 뒤에서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고 몽둥이를 막거나 옆으로 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의 몽둥이에 얻어맞았다면, 그것은 그가 생각에 빠져서 방심한 채 무의식 상태로 있었다는 의미 입니다.
To stay present in everyday life, it helps to be deeply rooted within yourself, otherwise, the mind, which has incredible
momentum, will drag you along like a wild river.
일상생활 속에 현존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 속에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타성을 지닌 마음의 급류에 휩쓸리게 됩니다.
What do you mean by "rooted within yourself"?
''자기 자신 속에 뿌리를 내린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 인가요?
It means to inhabit your body fully.
To always have some of your attention in the inner energy field of your body. To feel the body from within, so to speak.
Body awareness keeps you present.
It anchors you in the Now (see Chapter 6).
그 말은 우리 자신의 몸에 충분히 거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항상 의식의 일부를 몸 안의 에너지장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안으로부터 몸을 느끼는 것입니다.
몸을 의식하면 현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지금'에 붙들어 둘 수 잇게 되는 것이죠.
The Esoteric Meaning Of "Waiting"
기다림의 숨은 의미
In a sense, the state of presence could be compared to waiting.
Jesus used the analogy of waiting in some of his parables.
This is not the usual bored or restless kind of waiting that is a denial of the present and that I spoke about already.
어떤 의미에서 현존 상태는 기다림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예수는 몇 가지 우화로 기다림을 비유했습니다.
그것은 현존 상태를 부정하고 늘 지루해 하고 초조해하는 기다림이 아닙니다.
It is not a waiting in which your attention is focused on some point in the future and the present is perceived as an undesirable obstacle that prevents you from having what you want.
There is a qualitatively different kind of waiting,
one that requires your total alertness.
Something could happen at any moment,
and if you are not absolutely awake, absolutely still,
you will miss it.
This is the kind of waiting Jesus talks about.
그것은 우리의 완전한 의식을 필요로 하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기다림 입니다.
언제 일어날 지 모르는 일에 대비해서 절대적으로 고요한 상태에 있는 기다림 입니다.
In that state, all your attention is in the Now.
There is none left for daydreaming,
thinking, remembering, anticipating.
There is no tension in it, no fear, just alert presence.
You are present with your whole Being,
with every cell of your body.
In that state, the "you' that has a past and a future,
the personality if you like, is hardly there anymore.
그런 상태에서는 모든 신경이 '지금' 에 집중 됩니다.
백일몽, 사고, 기억, 기대를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그 속에는 긴장감과 두려움도 없으며 단지 활발한 현존만이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로 몸 구석구석까지 현존하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어떤 인격을 가진 '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And yet nothing of value is lost.
You are still essentially yourself.
In fact, you are more fully yourself than you ever were before,
or rather it is only now that you are truly yourself.
그렇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 입니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 완전하게 자기 자신이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이 되는 것은 오로지 '지금' 뿐 입니다.
"Be like a servant waiting for the return of the master," says Jesus. The servant does not know at what hour the master is going to come.
So he stays awake, alert, poised,
still, lest he miss the master's arrival.
In another parable, Jesus speaks of the five careless (unconscious) women who do not have enough oil (consciousness) to keep
their lamps burning (stay present) and so miss the bridegroom (the Now) and don't get to the wedding feast (enlightenment).
These five stand in contrast to the five wise women who have enough oil (stay conscious).
Even the men who wrote the Gospels did not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se parables, so the first misinterpretations and distortions crept in as they were written down.
With subsequent erroneous interpretations, the real meaning was completely lost. These are parables not about the end of the world but about the end of psychological time.
They point to the transcendence of the egoic mind and the
possibility of living in an entirely new state of consciousness.
Beauty Arises In The Stillness Of Your Presence
아름다움은 현존의 고요함 속에서 생겨난다.
What you have just described is something that I occasionally experience for brief moments when I am alone and surrounded by nature.
나는 당신이 방금 묘사한 것을 가끔씩 혼자 있을 때나 자연에 둘러 쌓여 있을 때 순간적으로 경험하곤 합니다.
Yes. Zen masters use the word satori to describe a flash of insight, a moment of no-mind and total presence.
Although satori is not a lasting transformation,
be grateful when it comes, for it gives you a taste of enlightenment.
그렇습니다. 선사들은 그러한 통찰의 순간을 '삼매'라고 합니다.
그것은 완전히 현존하는 무심의 순간 입니다.
삼매는 영속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반가운 일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달음을 맛보게 됩니다.
You may, indeed, have experienced it many times without knowing what. it is and realizing its importance.
Presence is needed to become aware of the beauty,
the majesty, the sacredness of nature.
Have you ever gazed up into the infinity of space on a clear night,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 하면서도 여러번 경험 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웅장함, 신성함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현존이 필요합니다.
맑게 개인 밤하늘의 공간을 응시하면서, 그 완전한 평온함과
불가해한 광활함에 위압당해 본적이 있습니까?
Yes, but only as seen from the limited perspective of the manifested universe. In the Bible, God declares: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and I am the living One."
그렇습니다, 물질화된 세상의 제한된 시각으로 보자면
그렇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선언 합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나는 살아있는 유일자이다"
In the timeless realm where God dwells,
which is also your home, the beginning and the end, the Alpha and the Omega, are one, and the essence of everything that ever has been and ever will be is eternally present in an unmanifested state of oneness and perfection - totally beyond anything the human mind can ever imagine or comprehend.
시간을 초월한 신이 거주하는 왕국이자 우리의 집이기도 한 그곳에서는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가 하나입니다. 만물의 본질은 일찌기 인간의 마음으로는 결코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온전하고 완벽한 상태로 물질화 되지 않은 채 존재해 왔으며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In our world of seemingly separate forms, however, timeless perfection is an inconceivable concept.
Here even consciousness, which is the light emanating from
the eternal Source, seems to be subject to a process of development, but this is due to our limited perception.
It is not so in absolute terms.
Nevertheless, let me continue to speak for a moment about the evolution of consciousness in this world.
서로가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우리에게 시간을 초월한 완전함이란 불가해한 개념입니다.
영원한 근원으로부터 발산되는 의식이 하나의 발전과정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모두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잠시 이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진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Everything that exists has Being, has God-essence, has some degree of consciousness. Even a stone has rudimentary consciousness;
otherwise, it would not be, and its atoms and molecules would disperse.
만물은 '존재'를 ,신의 본질을,어느 정도의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돌멩이 조차도 미미한 정도나마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으며, 원자와 분자로 흩어질 것입니다.
Everything is alive. The sun, the earth, plants, animals, humans - all are expressions of consciousness in varying
degrees, consciousness manifesting as form.
The world arises when consciousness takes on shapes and forms, thought forms and material forms.
모든 것은 살아 있습니다.
태양 지구 행성 동물 인간 등 다양한 만물은
다양한 의식의 표현이요.
모습을 갖고 물질화된 의식의 표현 입니다.
Look at the millions of life forms on this planet alone. In the sea, on land, in the air - and then each life form is replicated
millions of times.
To what end?
이 지구상의 수 많은 생명체를 보십시오.
바다 속에서, 땅위에서, 대기중에서,
생명체가 오랜 세월 동안 되풀이 해서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목적이 뭘까요?
Is someone or something playing a game, a game with form?
This is what the ancient seers of India asked themselves.
They saw the world as lila, a kind of divine game
that God is playing.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형태를 갖고 게임을 하는것 아닐까요?
고대 인도의 선지자들은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살이란 신이 벌이는 신성한 게임같은 것(릴라lila)이라고 보았습니다.
The individual life forms are obviously not very important in this game.
그 게임에서 개별적인 생명체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게 분명합니다.
[천지는 사람(만물)을 마치 짚으로 만든 인형처럼 내팽개쳐 둔다-노자 도덕경]
In the sea, most life forms don't survive for more than a few minutes after being born.
The human form turns to dust pretty quickly too, and when it is gone it is as if it had never been. Is that tragic or cruel?
바다 속에서는 대부분의 생명체가 태어난지 몇분도 되지 않아서
죽고 맙니다.
인간의 형태역시 꽤 빠른 속도로 먼지로 변하며 언제 존재 했느냐는 듯이 사라 집니다.
이것이 비극적 이거나 잔인한 것일까요?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 먹으니 호랑이 뱃속이 부르고 사슴은 행복하다)
Only if you create a separate identity for each form, if you forget that its consciousness is God-essence expressing itself in form. But you don't truly know that until you realize your own God-essence as pure consciousness.
Awestruck by the absolute stillness and inconceivable vastness of' it?
우리가 스스로 분리된 개체라고 느끼는 한 그것은 진실입니다.
저마다의 의식이란 신의 본질이 형상속에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는 것임을 잊고 지내는 한,
인생은 분명 비극 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당신 자신안에 있는 순수의식으로서의 신의 본질을 깨닫기 전에는 진정으로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Have you listened, truly listened, to the sound of a mountain stream in the forest?
Or to the song of a blackbird at dusk on a quiet summer evening?
To become aware of such things, the mind needs to be still.
숲 속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진정으로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본적이 있습니까?
고요한 여름 저녁 해질 무렵에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것들을 의식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지해야 합니다.
You have to put down for a moment your personal baggage
of problems, of past and future, as well as all your knowledge; otherwise, you will see but not see, hear but not hear.
Your total presence is required.
잠시 개인적인 고민거리를 털어 버리고 과거와 미래,
그리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합니다.
바로 완전한 현존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Beyond the beauty of the external forms, there is more here: something that cannot be named, something ineffable, some deep, inner, holy essence.
외부적인 형상의 아름다움 너머에는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 깊은 내면의 성스러운 본질이 있습니다.
Whenever and wherever there is beauty,
this inner essence shines through somehow.
It only reveals itself to you when you are present.
Could it be that this nameless essence and your presence
are one and the same?
아름다움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러한 내면의 본질이 언뜻 언뜻 비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존하고 있을 때에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불가해한 본질과 당신의 현존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 아닐까요?
Would it be there without your presence?
Go deeply into it.
Find out for yourself.
당신이 없어도 그것이 거기에 있을까요?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십시오.
거기서 당신 자신을 찾아 보십시오.
When you experienced those moments of presence,
you likely didn't realize that you were briefly in a state of no-mind. This is because the gap between that state and the
influx of thought was too narrow.
우리는 그러한 현존의 순간을 경험하면서도 자신이 잠깐 무심의
상태속에 있었다는 것을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 상태와 생각의 유입 사이에 간극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Your satori may only have lasted for a few seconds
before the mind came in, but it was there;
otherwise, you would not have experienced the beauty.
삼매는 마음이 들어오기 전에 단 몇 초 동안 지속되었을 뿐이지만 여하튼 거기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Mind can neither recognize nor create beauty.
마음은 아름다움을 인지하지도 창조할 수도 없습니다.
Only for a few seconds, while you were completely present,
was that beauty or that sacredness there.
Because of the narrowness of that gap and a lack of
vigilance and alertness on your part, you were probably unable to see the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the perception, the thought-less awareness of beauty, and the naming and interpreting of it as thought:
잠시에 불과 했지만 당신이 완전히 현존하고 있는 동안,
그 아름다움과 신성함은 거기 있었습니다.
그 틈새가 너무 짧고 당신이 충분히 각성하고 경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무심과 그것을 생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마음과의 기본적인 차이점을 알지 못했을 뿐 입니다.
The time gap was so small that it seemed to be a single process. The truth is, however, that the moment thought came in, all you had was a memory of it.
그 시간의 틈새가 너무 짧아서 하나의 과정으로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순간 생각이 들어와서 당신에게는 기억으로 밖에 남지 않은 것입니다.
The wider the time gap between perception and thought,
the more depth there is to you as a human being,
which is to say the more conscious you are.
지각과 생각의 틈새가 넓어 질수록 깨어 있는 상태를
더욱 깊이 지속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Many people are so imprisoned in their minds
that the beauty of nature does not really exist for them.
마음속에 갇혀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They might say, "What a pretty flower," but that's just a
mechanical mental labeling. Because they are not still, not present, they don't truly see the flower, don't feel its essence, its holiness - just as they don't know themselves, don't feel their own essence, their own holiness.
그들은 '꽃이 정말 예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단지 자동적인 정의에 불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고요하지 않고 현존하지도 않으므로 꽃을 보고도 그 본질과 신성함을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을 모르고 있으며 그들 자신의 본질과 신성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Because we live in such a mind-dominated culture,
most modern art, architecture, music,
and literature are devoid of beauty,
of inner essence, with very few exceptions.
우리는 마음이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대의 미술 건축 음악 문학 등에서 아름다움과 내면의 본질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 입니다.
그러한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잠시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창조성과 아름다움이 생겨나는 내면의 장소와
만나지 못합니다.
The reason is that the people who create those things cannot - even for a moment - free themselves from their mind.
So they are never in touch with that place within
where true creativity and beauty arise.
The mind left to itself creates monstrosities,
and not only in art galleries. Look at our urban landscapes and industrial wastelands.
No civilization has ever produced so much ugliness.
그들의 마음이 제멋대로 괴물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화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의 풍경을 돌아보십시오, 일찍이 어떤 문명도 이렇게 흉악한 몰골을 드러낸 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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