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스님의 깨침과 깨침의 경계는 이렇다
자, 조계종(曹溪宗)ㆍ선종(禪宗)ㆍ한국불교, 선불교가 천 년을 내려오지요.
소위 정맥을 이었다고 하는 보조국사 지눌, 그리고 태고 보우국사,
그리고 이쪽으로 와서 서산, 이분들과도 학문으로나 깨달음으로나
견줄만한 대도인을 지금 선종(-조계종)에서는 누구로 보느냐 하면
경허(鏡虛, 1846~1912)로 봅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분은 집에서 한문을 9년 동안 했고,
또 승려가 되어 동양사상 동양철학을 많이 공부했습니다.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다 섭렵했다고 합니다.
물론 유가 도가 병가 상가…등 제자백가의 사상을 두루 섭렵하고
대장경 공부를 마쳤습니다.
너무 총명하고 똑똑하기 때문에 스물세 살에 동학사 강사로 취임했어요.
그러면 알겠지요?
강의를 어찌나 잘하던지 학인(學人-경전 공부를 하는 스님)들이
그분의 강의를 들으러 1,000명이 운집한다 그거요.
그 정도로 알아주는 스님이었습니다.
그분이 하루는 옛날 스승(-은사스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퇴속한 은사스님이 보고 싶어요.
속환해서 이제 결혼해가지고 어디에 산다고 하는 그 은사스님을 수소문해서
찾아가는 길이라. 찾아가는 길인데, 장대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날은 저뭅니다.
그때가 지금부터 한 100년 전 정도 됩니까? 그렇지요.
그러니 무슨 교통이 편리합니까? 걸어서 가는 것이지요.
저녁 무렵에 어느 마을로 들어갔다 그래요.
어느 마을을 찾아 들어가 헛간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한 몇 시간 흘렀을까, 여기저기서 곡성(哭聲)이 들리더라 그거요.
사람이 죽으면 곡(哭)하지요? 곡성이 들리더라 그거예요.
그래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주인한테 물어보니까 주인이 하는 말이
‘아!~ 스님, 여기에는 지금 콜레라(호열자)가 들어왔습니다.
무서운 전염병이 들어왔습니다.
아마 우리 마을 사람들 약 ⅓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를 오셨소?’라고 합니다.
때가 한밤중인 데다가 비는 억수같이 내려서 갈 수도 없고 어쩝니까.
이 경허스님이 정말로 공부를 많이 하고 대강백으로 이름을 날린 출중한 학승인데도
그 주인의 말을 듣고 불안해서 몸이 덜덜 떨리는데 주체할 수가 없어요.
나 재수 없이 걸렸다 그거지. 콜레라는 공기로 전염되지요.
‘나 걸려버리면 큰일 나는데…’, 이거 큰일 났다는 거예요.
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는데 이거 살 수 없더라 그거요.
‘하!~ 내가 이때까지 무엇을 공부했을까?’
‘내가 중이 되어가지고 뭘 공부했을까?’
‘속인들과 똑같지 않은가?’
‘콜레라 전염병 돌림병이 도는 마을에 들어와서 죽음에 대해서
부처님 제자답게 초연하지 못하고 내 이거 무슨 꼴이란 말이냐?’
불안하고 초조해하면서 하룻밤을 뜬 눈으로 꼬박 새우고 날이 밝자
이른 새벽에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왔단 말이어요.
아마 도망 나와서 병에 안 걸렸거든요.
그래서 은사스님 찾아가는 길을 포기하고 자기 절로 다시 와버렸어요.
와가지고 학인들을 전부 해산시켰어요.
그리고 6개월간 용맹정진했습니다.
‘자,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냐?’
‘사후세계는 있는 것이냐?’
‘선종에서 이야기하는 화두타파하면 영~원히 대자유인이 되는 것이냐?’
‘그것이 해탈하는 것이냐?’
그러나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 ‘그러면 좋다. 용맹정진한다.’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했던 거예요.
하루 한 끼 먹고 무섭게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이렇게 무섭게 화두참구하면 됩니다.
그래서 어느 날 확~ 깨쳤단 말이에요.
그런데 화두타파는 꼭 어떤 경계를 당해서 타파합니다.
가령 경전을 읽다가 한다든지, 누가 경전 읽는 그 의미심장한 소리가
계기가 되어가지고 깨친다든지, 바깥사람들이 싸우는 소리에 깨친 사람도 있고,
냇가를 걸어가는데 물에 비친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 깨친 사람이 있는 등
많은 계기가 있습니다.
이 경허스님은 바깥에서 이런 말소리에 깨쳤어요. 들어보세요.
어떤 사람이 ‘여보게! 게으른 사람은 죽어서 소가 된다고 하데.
게으른 사람은 죽어서 소가 된다고 하데.’
그러니까 그 대답한 사람이 거사인데 공부한 사람이어요. 한 소식했어요.
선지(禪旨)가 있는 사람이라.
그 거사가 이미 깨친 사람이라 그 말이어요.
그 사람 답이 ‘이 사람아! 걱정 말게. 나는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될 걸세.’
콧구멍 없는 소. 아! 정진하고 있는데 콧구멍 없는 소라? 그 소리에 깨친 거예요.
여러분 이상하지요? 그러면 이제 큰스님이 점검한단 말이에요.
공부를 잘했느냐? 진짜로 깨쳤느냐? 점검합니다. 그 기준이 있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됩니다.
▸첫 번째, 깨달을 때 경계가 뒤집혀야 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내가 이렇게 앉아 있잖아요?
마이크도 있고 여러분도 있고 벽도 있고 전부 있잖아요?
이것이 뒤집혀가지고 공(空)이 되어버려요. 무(無)가 되어버린다고요.
아무 것도 없다고요. 내 몸뚱이도 없다고요.
▸두 번째, 아무 것도 없는데 세상이 허공같이 완전히 텅 비어 버렸는데
오직 밝은 빛만이 내리쬐는 거예요.
밝~은 빛만이. 이렇게 되어야 됩니다.
▸세 번째, 기분이 대단히 편안하고 안온하고 법열(法悅)이 와요. 법열이 들어와요.
하!~ 마음이 그렇게도 그렇게도 편안해요.
마음이 정말 안정이 되고 지극히 평온하게 되어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너무 너무도 기쁘니까 궁둥이 춤이 나오는 거예요.
궁둥이 춤이요.
그런데 그 경계가 생전 처음 경험하는 경계거든요.
지금까지 그런 경계를 경험하지 못했거든요.
너무 너무도 밝다든지, 너무 너무도 텅 비었다든지, 나도 없어져 버렸다든지,
너도 없고 세상만사가 없어져버린 이 경계-이 경계는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에,
너무도 희한하기 때문에 이 체험에 대한 기억은 없어지지 않아요.
그런데 조금이라도 분별하는 마음이 들어오면 그 경계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아!~ 내가 깨쳤구나. 이것을 깨친 것이라고 하는구나!’ 해서
누구도 하지 못한 말이 나온단 말이어요. 게송이 나온단 말이어요.
그래서 그 게송을 큰스님이 딱 보면 ‘아! 이 사람 견성했다.’ 하는 것을 알아요.
이 견성구가 있어요.
오라고 해서 물어보면 맞아요.
이렇게 해서 인가해주는 거예요.
출처:2013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