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그나 카르타(라틴어: Magna Carta, Magna Carta Libertatum, 영어: the Great Charter of Freedoms):1215년 영국 귀족들이 국왕 존(John)의 잘못된 정치에 분노하여, 왕의 권한을 제한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왕에게 강요하여 받은 법률 문서. 17세기에 이르러 국왕의 전제(專制)로부터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거로 받아들여, 권리 청원(權利請願), 권리 장전(權利章典)과 더불어 영국 입헌제의 기초가 되었다.
그 이후로 국왕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세금을 거둘수 있었다.
마그나 카르타는 이후, 프랑스의 대혁명 미국의 독립전쟁에 영향을 주었다.
미국 독립전쟁의 원인이 세금 때문인 것을 생각하면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2 장미의 전쟁: 1455~1485년에 걸쳐 영국의 랭커스터 가와 요크 가 사이에서 벌어졌던 왕위 쟁탈전.
랭커스터 가 문장은 붉은 장미, 요크 가 문장은 흰 장미였기 때문에 왕위를 놓고 두 가문이 벌인 전쟁을 장미 전쟁이라 한다.
헨리 6세의 파당적 권력과 정신 이상으로 인해 요크 동맹에서 섭정을 내세웠으나 헨리 6세가 건강을 회복하는 바람에 요크 가에서는 무기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붉은 장미의 랭카스터가가 승리했고, 이후 불은 장미와 흰장미는 메이저 리그의 엠블렘이 되었다.
장미의 전쟁으로 튜더 왕조 출범하였다.
3 찰스 1세의 處刑: 王權神授說 신봉자였던 찰스 1세는 잉글랜드, 스코들랜드, 아일랜드의 통합 국왕이었다.
찰스 1세는 스페인과의 전쟁을 위해 세금을 무리하게 거두었다.
1628년 의회는 찰스 1세에게 〈권리청원〉을 제출했다. 의회의 허락 없이는 제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국민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수 없고, 국민은 법적인 근거 없이 체포될 수 없다는 내용으로, 〈마그나 카르타〉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찰스 1세의 왕권신수설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탕진한 국고를 메우느라 의회의 협조가 필요했던 찰스 1세는 일단 〈권리청원〉을 승인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은 것은 아니었다. 왕은 이듬해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다시 거추장스러운 의회를 해산했다. 그 후로 찰스 1세는 11년간 혼자 힘으로 그럭저럭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끝내 의회와 결판을 내야 할 상황이 터지고 말았다.
화근은 찰스 1세가 장로교를 믿는 스코틀랜드에 성공회를 강요한 것이었다. 스코틀랜드는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국고가 바닥난 상태여서 전쟁에 투입할 돈이 없었다. 찰스 1세는 다시 의회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11년 만에 열린 의회는 찰스 1세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되었다. 의원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의회의 승인 없이 왕의 마음대로 의회를 해산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왕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왕을 둘러싸고 있던 측근들은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3사건 이후 크롬웰이 이끄는 청교도 혁명이 벌어져 미국의 탄생의 원인이 되었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청교도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을 받았다.
결국, 마그나 카르타가 원인이 되어, 국왕의 실권이 없는 영국의 입헌주의 미국의 독립 프랑스 대혁명이 誕生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