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이다!! :경부고속철도 천성간 구간 공사강행에 앞서 생각할 점들
지난 15일 부산고등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김종대)가 조정권고안을 내고 나서는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17일 저녁 KBS부산의 생방송 쟁점 토론에 나갔다 온 뒤로부턴 속앓이가 심해졌습니다. 만들어진 틀 안에 그저 빨려들어가는 느낌. 거대한 개발지상주의 앞에 생명을 이야기한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엄청난 벽과 허망함을 느낍니다. 생명 앞에 죄스러움, 무력함이 가슴을 누릅니다. 그러나 미래세대와 자연존중의 전통사상 그리고 마지막 남은 재판관의 법적 양심에 실날같은 믿음을 걸고 쓰린 가슴을 희망의 손길로 쓰다듬고 있습니다.
김종대 재판장님,
법원이 내놓은 조정권고안에 대해 지율스님과 환경단체는 반대입장을 보였지요. 분쟁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중간적 조정권고를 내놓은 줄 압니다. 그러나 중간적 조정성립 즉시 공사 재개를 허용하도록 한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이 소의 이익인데 이를 조정안에서 허용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6개월간 공사진척도 엄청날 것은 물론이고, 공사가 추진중인데 환경영향평가 감정 결과로 이를 막기란 지금보다 더 어려울 것이며 사실상 불가능할 것은 자명한 일 아닙니까? 만약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면 그 손실을 어떻게 할 것이며, 누가 책임 질 것입니까. 이러한 경우 환경영향평가 감정이란 사후 약방문 아닌가요?이는 신청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정안의 성격을 넘어서 '조정안이란 허울을 쓴 사법부의 폭력'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요? 13.5킬로미터의 원효터널 공사에 대해서 6개월간의 감정기간을 갖기로 하겠다고 했지요. 터널공사 자체의 안전성, 터널공사가 지하수에 미치는 영향, 무제치늪 화엄늪 등 천성산 고산습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고 했습니다. 법원이 신청인 피신청인 추천 감정인가운데 법원이 동수로 선정하겠다고 했구요. 국민의 혈세를 사용해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보고서를 만들어낸 피신청인측에 비해 이를 막아내려고 하는 신청인측은 소위 전문가를 찾는 일이나 감정비용을 대는 것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하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법원은 적어도 피신청인측이 예산을 부담해 신청인측에 환경영향평가가 엉터리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정권고안에는 또한 신청인이 피신청인이 시행하는 공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와 단식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조정안치고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사를 신청인이 물리적으로 방해를 하면 법적으로 책임을 물으면 되지, 단식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니요? 단식을 하고 안 하는 것은 개인의 의사일뿐 이를 조정안으로 강제할 사항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정권고안은 감정결과에 따라 이 사건을 합의하여 해결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감정결과를 고려해 법원이 종국적 조정을 하기로 한다고 돼 있는데 감정결과에 따라 어떻게 신청인 피신청이 합의해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려면 적어도 구체적으로 법원이 천성산에서 도롱뇽의 서식 확인 등 환경영향평가서에 잘못된 내용이 나오면 환경영향평가의 잘못을 하자로 공사를 중지키로 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지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고 감정결과에 따라 합의해 해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더욱이 재판부는 공단이 터널공사를 중단하기로 잠정 합의한 상태에서, 터널공사와 관련된 감정이나 환경부가 제시한 전문가검토절차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등 재판부의 권위를 무시해온데 대해 판결에 반영해 책임을 묻기보다는 오히려 조정권고안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실상 공사재개의 길을 열어준 것은 자기모순에 빠지는 일 아닌가요? 정말 대형국책사업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을까요? 국책사업의 중단이 나라경제에 큰 부담을 초래한다는 주장에만 귀를 기울이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엄청난 국고의 낭비와 자연 파괴에 대해선 도대체 누가 책임 질 것입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고속철사업의 경제 효과와 천성산의 환경적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경제란 무엇입니까? 경제의 목적은 국민의 자산을 증대시키는 것이지요. 그런데 국민의 자산을 증가시키기 위해 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이 파괴되고 재해가 빈발하게 된다면 장기적으로 국민의 자산에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것 아닌가요? 이것은 경제가 아니라 불경제가 될 것입니다. 경제의 목적은 인간 그리고 자연을 포함해 모든 생명이 쾌적하게 살아가는데 있지 않을까요? 인간은 다른 생명을 살려가면서 스스로도 살아가는 '공생'의 사고에서 경제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점에서 볼 때 국책사업인 경부고속철도는 비용과 효과면에서 꼼꼼히 살펴보자면 '비용과다'에 '효과반감'의 사업이라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경부고속철 사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입니다. 보통 국가사업은 타당성 검토작업에서 출발해 기술조사 및 기본설계, 실시설계를 거쳐 착공으로 넘어가는데 기본설계 단계에서는 지질 지형에 대한 조사와 노선선정 작업을 병행하면서 기술적 타당성을 살피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이를 기초로 다시 세부적인 공법이나 공사물량 등을 정하는 작업이 실시설계이지요. 일본과 프랑스가 기본설계에만 7∼10년이 걸렸는데 경부고속철의 기본설계는 89년 7월부터 91년 2월까지 고작 1년 8개월만에 이뤄졌습니다. 게다가 기본설계에 참여한 교통개발연구원, 유신설계공단 등 용역업체들이 관계 규정에 따라 2백24억을 용역비로 요구했으나 12억원으로 뚝 잘렸지요. 용역 결과가 원천적으로 부실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러면서 대구-부산 구간은 당초 경제성이 높아 직통으로 잡혔던 대구-밀양-부산 노선이 경주를 둘러 가는 것으로 슬그머니 바뀌었지요.
그런데 고속철에는 너무도 많은 돈을 부어넣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 개통한 서울 부산간 고속철의 편도요금은 4만5천원입니다. 그런데 이 가격은 경제성이 있는 정상가격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완전 '덤핑가격'이지요. 1997년 6월 14일자 한국일보에 따르면 1993년 6월 1차 계획수정으로 10조7천억원이던 고속철 사업비가 2차 계획수정으로 17조6천억원으로 늘어날 경우 '고속철은 빚더미철'이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서울∼부산간 운행시간을 1시간40∼50분대에 주파한다고 하더라도 고속철의 요금을 항공요금의 1.5배로 올리지 않으면 매년 1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분석이었지요. 경부고속철의 '사업타당성 및 기술조사'사업에 참여했던 미국 루이스 버저사의 레이먼드 맥도널드 책임연구원은 1998년 4월 국회증언에서 당시 97년 2차 수정계획대로 고속철이 건설된다 해도 개통 초기 연간 수익은 약 3조원인데 비해 운영 정비비 2조원과 이자 원금 상환 2조5천억원 등 약 4조5천억원의 연간비용에도 못 미쳐 결국 매년 1조5천억원의 적자를 내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적자를 메우려면 4인 가족 기준 가구당 7만원씩의 추가부담을 지거나 서울∼부산간 편도요금이 적어도 40만원대로 책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속철 개통이후 10월말 현재까지의 하루 평균 고속철 승객은 7만여명으로 철도청의 당초 목표치 15만여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도청은 3월말 발표한 자료에서 올해 말까지 하루 탑승객 15만명에 수송수입 45억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즉 올해는 5천9백억원 정도의 적자를 내지만 2007년부터 흑자전환, 2016년부터는 부채 상환을 시작해 2025년까지 2003년말 현재 10조7천억원의 고속철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요. 그러나 고속철의 승차율은 경부선이 66%, 호남선이 37% 수준으로 양대 고속철의 평균이 58% 정도이다. 고속철의 절반이 빈좌석으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맥도널드 연구원의 예측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 아닌 지 매우 불안합니다. 조선일보 2004년 8월 10일자 기사의 제목이 '고속철은 세금먹는 하마'라고 합니다. 올해만 5천7백억원 적자구요. 고속철 건설부채는 2010년 2단계 구간, 즉 천성산 금정산 구간까지 완공되면 총 1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09년 단년 흑자, 2015년 누년 흑자, 2031년 부채상황 완료로 계획한 흑자 전환일정은 전면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졌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1989년 당시 고속철 건설 총비용 5조8천억원이 20조원이상 늘어나면서 당초 약 2조원(총비용의 35%)이라고 설명됐던 국민부담액이 10배로 늘어나는 셈이 됐습니다. 2005년에 철도청이 공사로 전환되면 원년의 부채가 6조원대인데 2010년 부채 14조원, 2015년 24조원, 2020년 36조원으로 빚이 천문학적수치로 늘어나 감당을 할 수 없게 되며 철도공사 자산 12조를 고려하더라도 출범후 3-4년, 길면 6년 전후에 철도공사는 사실상 파산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후속보도의 내용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우리 국민들이 수십조나 되는 철도청의 빚을 고스란히 안고 가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도 4만5천원이 비싸서 서민들이 쉽게 고속철을 타지 못하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속철은 서민에게 부담만 될 뿐 서민이 그 효용을 누릴 수 없는 '적자철'이자 '반서민철'인 것입니다. '돈먹는 하마'가 되는 고속철사업으로 인해 제2의 IMF가 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잘못 끼워진 단추를 다시 풀고 제대로 바루는 일이 원래 고속철사업의 목적에 비추어 맞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건교부나 공단측은 고속철은 부산 신항 개항 등과 관련한 물류 때문에 시급히 개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만 빨리가면 뭐합니까. 고속철의 발상은 경부고속도로 체증으로 국가의 중추인 고속도로가 제구실 잃었다는데서 출발했습니다. 문제는 서울-천안-대전 구간의 고속도로 체증이지요. 이는 수도권 구간의 고속도로 건설로 해결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속철이 우리나라 여객수송이나 화물수송에 절대적이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고속도로 교통량의 60%를 화물차가 차지하고 있는데 고속철이 이를 해소한다는 것 자체가 탁상공론아닐까요? 경부고속철은 경부고속도로의 체증을 해소해 쾌적한 여객교통과 물류수송의 혁신을 기하겠다던 당초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습니다. 고속철사업의 실효성 자체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지요. 삼성경제연구소 전영옥 연구원은 '고속철도 개통의 영향과 시사점'(2004. 3)이란 보고서에서 고속철 개통이후에도 자가용 승용차 중심의 현재의 국민여행패턴은 크게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2002년 한국관광공사 국민여행실태조사에 따르면 숙박을 전제로 한 관광여행을 할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승용차 59.2%, 고속버스 11.8%, 전세버스 9.1%, 열차 7.0%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당일 관광여행을 할 경우 승용차가 64.7%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고속버스 13.6%, 전세버스 8.1%순 이었으며 열차 이용은 1.5%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 연구원은 이러한 여행패턴이 고속철이 생겼다고 해도 크게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승용차의 경우 비록 주말에 도로 교통체증이 심하다고 해도 고속철도에 비해 교통비가 절반 수준이면 되고 목적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주말 특정시간대에 예약이 어려운 철도에 비해 훨씬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지요. 또한 고속철이 강조하는 물류수송 차원에서도 고속철은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2002년 화물운송 분담률을 보면 도로가 76.0%로 가장 높고 해운 18.0%, 철도 5.9%, 항공 0.1%순 입니다. 그런데 철도의 화물운송 분담률은 1996년 8.6%에서 오히려 매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유인 즉 제조업체들이 철도를 이용할 경우 역과 역사이의 이동은 편리할 지 모르지만 상하역하는데 추가비용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므로 '문전수송'이 가능한 도로망을 선호한다는 사실입니다. 부산∼수도권간 철도 운송운임이 28만원으로 도로운임(35만원)보다 싸지만 생산지와 철도역간 셔틀비용을 추가할 경우 전체적인 철도운임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철도운송이 줄어든 이유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1990년 철도청 자료를 보면 2011년까지 경부선 열차 여객은 연평균 4.3%, 화물은 3.8%씩 계속 증가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철도 화물이나 여객의 증가는 미미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고속철의 필요성을 역설하다보니 승객이나 화물분담율 등의 예측치를 지나치게 높게 잡은 것 자체가 문제아닐까요? 지난 4월에 개통된 호남고속철 김제역이 있는 김제시에 2000년 말부터 김제공항 건설사업이 추진돼 부지매입 완료단계에 있고, 고속철 나주역과 목포역의 중간지점으로 이들 역과 불과 20분 거리에 있는 무안군에 2006년 완공을 목표로 무안공항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철도와 공항 항만을 함께 계획 건설 관리하는 건교부 관료들이 이렇게 황당한 일을 추진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물론 말이 없습니다. 언론조차도 지역이기에 발목잡혀 문제점을 크게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고속철의 효용은 무엇일까요? 경부고속철사업은 당초 계획했던 개통시기에 비해 10년이나 지체됐고 '반쪽 개통'으로 인해 서울∼부산간 소요시간도 당초 1시간 40분대에서 1시간이나 더 늘어났습니다. 국책사업인 경부고속철사업은 1992년 6월 착공당시 약 5조8천억원의 사업비로 1999년에 서울-부산간을 시속 300킬로미터로 1시간 40분대에 달리는 '꿈의 열차'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지요. 그러나 지금 고속철은 마치 '펜티엄Ⅴ' 시대의 '486 컴퓨터'처럼 '고물철'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중국 등지에선 시속 500킬로미터의 자기부상열차가 건설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당초 계획과는 완전히 변질된 그런 고속철이 억지로 건설되고 있는 것이지요. 고속철은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고 맙니다. '국민의 철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고속철의 운임은 기존의 무궁화호 운임의 2배나 됩니다. 문제는 새마을 무궁화가 줄어들어 울며 겨자먹기로 고속철을 타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구조에 있습니다. 고속철 정차역이 없는 구미, 김천, 울산, 마산, 창원과 같은 중소도시는 기존 새마을 무궁화호의 감축운행으로 너무도 불편한 도시가 돼 버렸습니다. 이들 도시에서는 최근 주말이면 새마을 무궁화호 표 구하는데 '귀성전쟁'을 치를 정도라고 합니다. 새마을 무궁화호에 예전과 같은 값을 주고 시간도 늦고 불편한 철도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고속철'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서울-부산을 고속철을 타고 1시간 50분에 가는 것 보다 4-5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절반값인 무궁화를 타고 가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속철이 생기고 나서 이런 열차들을 모두 없애버린다면 거꾸로 서민들에게 바가지 요금을 씌우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천성간 금정산 구간이 완전개통된다면 그때 고속철 요금은 철도청의 누적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천장부지로 올라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닙니까? 그러면 서민들은 고속철을 울며겨자먹기로 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발전일까요? 발전이라는 것은 소비자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값에 따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하지요. 지금의 고속철 이용자는 항공을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값싸고 편리한 교통수단일지는 몰라도 없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비싼 교통수단입니다. 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이 완성돼 완전개통된다면 그때는 고속철 운임이 내리겠습니까?
고속철은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줄여 국토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건교부와 공단은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중앙집권적인 구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고속철은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고속철 개통이후 대구 부산지역의 경우 오히려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가고, 물건을 구입하러가고 해서 전체적인 지역의 재화가 서울로 집중되고 있고 벌써 언론에는 지역사람들이 서울에 올라와서 쇼핑을 하는 '역쇼핑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고속철은 수도권이 지역의 고혈을 빨아먹는 '고속빨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1964년에 개통된 일본 신칸센의 사례를 보면 당시 철도 중심의 교통체계에다 고속도로가 많이 건설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토균형발전에 상당한 도움을 줬지만 우리 나라는 고속철의 효과를 기대하기엔 고속도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경부축을 제외한 동서축의 철도연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문제이지요. 가뜩이나 30년 이상 경부축에 인구나 GNP의 60-70%가 몰려있는데 고속철로 인해 수도권의 비대화가 가속화된다는 사실입니다. 지역균형 차원에서 서울-부산간은 조금 편한지 몰라서 부산 광주, 강릉 부산 등 전체 도로교통망 연결 안돼 있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개선해야 합니까?
왜 고속철이 경부고속도로와 똑같은 구간을 다녀야 합니까? 대구-부산만 봐도 철도 이용률이 3% 밖에 안 되는 경주를 둘러가기 위해 이용률 80%의 서울-부산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경부고속철 노선은 당초 서울-부산간 최단거리인 밀양 경우 노선이 유력시됐지요. 그러나 철도청 기술진과 용역회사들은 낙동강변의 산악지대로 긴터널을 많이 뚫어야 하기에 난 공사라는 이유로 밀양경유 노선보다 4분 정도 시간이 더 걸리지만 경주노선을 채택했다는 것이지요. 지난 92년의 언론보도내용을 보면 고속철의 경제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2001년까지 서울 부산 대구 등 6대 도시의 지하철 547킬로미터를 건설하는데 드는 추정투자규모가 12조 7천억인데 고속철이 단일프로젝트로 6조라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었습니다. 수혜인구가 지하철의 경우 연간 20억명인데 고속철은 연간 5천만명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고속철에 부은 돈이라면 92년부터 2001년까지 전국 6대 도시의 지하철 전구간 547킬로를 건설할 수 있는 돈이었고 아니면 경부고속도로, 기존의 경부선를 4개나 깔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고속철 사업은 계획 당시부터 타당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겨우 400여 킬로 밖에 되지 않는 서울-부산간에 고속전철은 무슨 고속전철이냐". 1991년도 5월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언론을 통해 정부에 내뱉은 쓴 소리입니다. 경제성은 물론 국내기술을 무시하고 떼제베(TGV)니 신칸센이니 하는 외국 기술에 의존하려던 정부의 교통정책에 재벌 회장조차 반기를 들었던 것지요. 물론 지금의 기술로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의 고속철사업에 접근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국책사업 고속철은 추진과정에서 부실과 부패 그리고 불안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습니다. 한창공사를 하다 상리터널과 같은 일부 터널 주변엔 폐광이 무더기로 발견돼 노선이 우왕좌왕하고 지역민원 때문에 역사 위치가 지상 지하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등 졸속 추진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설계가 끝나기도 전에 떼제베 고속철 차량 일부가 국내에 들어오기도 했고 이에 따라 다시 설계가 변경되는 일도 있었지요. 이러한 고속철은 공사과정에서 이미 '부실철'임이 드러났습니다. 1997년 4월 공사감리 전문업체인 미국의 WJE사가 서울∼대전 구간에 대해 안전진단을 한 결과 '총체적 부실공사'라는 결론을 내렸지요. 전체 진단대상 1천12개소 중 70%인 715곳 가량이 문제가 있고 교량 37개중 13.5%인 5개 교량은 사실상 전면 재시공을 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나중에는 이같은 WJE사의 부실시공 조사보고서조차도 '이해당사자들'의 압력에 의해 실제보다 축소돼 발표됐다는 증언이 김한종 한국고속철도공단 전 이사장의 입에서 나와 충격을 주기도 했지요. 고속철 공사는 보강공사가 더 힘들다고 하는데 과연 이러한 부실공사는 바로잡아졌을까요? 97년 4월 18일자 중앙일보를 보면 고속철도 부실시공회사에 민형사책임 묻기로 했는데 그 뒤 제대로 책임진 사람이 있다는 후속 뉴스를 보지 못했습니다. 당시 건교부는 안전진단 결과 재시공 및 보수 필요성이 드러날 경우 시공회사 상대 손해배상 청구키로 하고, 고속철도공단의 관리소홀 등 과실이 드러날 경우 공단 관계자에 대해 징계 등 행정적 책임을 묻고, 부실공사 및 이에 따른 공기지연 등에 책임있는 시공업체에 대해 건설업법 위반 등 혐의로 사직당국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말이지요. 이처럼 수십 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설계변경, 눈덩이처럼 커진 사업비, 오락가락한 세부노선 변경 등을 거치면서 고속철은 부실공사 문제와 외환위기로 1998년 한때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논의가 심각하게 제기됐으나 정부는 '한번 시작된 국책사업을 멈출 수 없다'는 논리로 사업을 강행해온 것아닙니까? 여기서 부실철인 고속철은 필연적으로 '부패철'이 될 수밖에 없다. 부패철이 부실철을 낳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노태우 정권 당시 정치논리에 의해 착공된 국책사업 경부고속철의 당시 총 5조8천억원 사업비 중 토목공사비는 현대 삼성 대우 등 재벌업체가 구간별로 나눠 가졌습니다. 1989년 1천억원 규모의 해군잠수함기지 건설사업자로 선정된 대우그룹이 노씨에게 제공한 것으로 밝혀진 비자금이 1백억원이었지요. 국책사업 공사비의 10%가 정치자금이었던 셈입니다. 교통개발연구원이 낸 7건의 타당성보고서가 전문가들에게조차 공개되지 않는 등 철저한 '비공개 원칙'아래 추진된 경부고속철사업은 이런 점에서 의혹이 사라지지 않고 있고 있습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고속철사업을 '7대 의혹사건'의 하나로 규정했지요. 당시 민주당은 고속철보다 시급한 것은 고속도로 및 도시 교통난 해소라고 강조했구요. 고속도로는 투자한 지 1년이면 효과가 나타나고 경부선 복복선공사도 고속철 사업비의 10내지 20분의 1만이면 건설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또한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 4대 도시의 지하철 조기완공에 투자를 집중한 뒤 5년 뒤쯤에 고속철을 '바퀴식'이 아닌 '자기부상식' 등을 고려해 착공해도 되지 않느냐고 덧붙였지요. 지금 생각해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 이러한 민주당이 나중에 여당이 된 뒤에 어찌해서 경부고속철사업을 왜 그대로 두었을까 그것이 정말 궁금합니다.
고속철은 '불안철'이기도 합니다. 1998년 6월 독일의 고속철 ICE가 하노버 근처에서 방진차륜이 깨지면서 탈선해 101명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일본 신칸센도 1999년 6월 후쿠오카터널 내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져 차량지붕이 12미터 가량 찢어지는 등 고속철 사고와 관련된 외신기사도 찾아보면 적지 않습니다. 경부고속철의 신선구간 가운데 교량이 39%, 터널이 35%입니다. 전체로 보면 60%이상이 터널 교량 구간인 고속철에 만에 하나 생각해도 끔찍한 대구지하철참사와 같은 사건 사고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난 3월 철로에 원격조정장치를 했던 스페인열차테러처럼 항공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안이 허술한 고속철이 테러대상에 쉽게 노출될 우려가 크지요. 실제로 지난 6월 3일 부산역에선 다이너마이트 포장지에 쌓인 나무토막 하나로 인해 고속철도가 서지않았습니까? 앞으로 이와 유사한 가짜 폭발물 소동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겁니다. 정부가 '고속철' 엑스레이 도입을 검토했다 실효성이 없어 포기했지만 고속철의 테러 방지대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KBS부산 쟁점토론에서 테러의 위협에 대해 강조를 하다보니 제가 좀 오버한 면이 있었다 싶은데 중요한 것은 고속철이 테러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점과 특히 장대터널로 인해 위험성이 더 크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고속철은 '반환경철'입니다. 전체 구간의 60% 이상이 터널 교량인 경부고속철은 국토를 결단내고 있습니다. 1992년 1월 한국건설연구원이 환경처에 제출한 경부고속철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는 소음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안∼대전간 60킬로 시험구간 예상선로와 50미터 이내 26개 마을을 샘플로 선정해 조사한 결과 이들 마을의 소음도는 방음벽을 설치하더라도 약 81데시벨 수준이었습니다. 81데시벨이라면 서울시내서 가장 소음이 심한 동대문 사거리 수준을 넘는 것입니다. 경부고속철 운행시 고속철에선 항공기 소음을 능가하는 최고 102데시벨의 소음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요. 일본 신칸센의 경우 1974년 3백95명의 나고야 시민들이 당시 일본국철(JR)을 상대로 소음피해 소송을 내 12년 뒤에 4억8천만엔(우리돈 약 24억원)의 보상금을 받고 화해한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이때 일본국철은 정작 보상금보다 3배나 비싼 방음벽을 설치하는 등 비싼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프랑스 테제베도 1993년 북부선 건설계획에서 방음벽 설치 등 방음시설을 하는데 총건설비의 1%인 1억5천만 프랑(우리돈 약 1백95억원)을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배준호 교수에 따르면 한국고속철은 긴 터널이 편안하고 안전한 운행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연구와 대비가 소홀했으며 그 결과 터널레일 하부에 흡음판은커녕 콘크리트 슬래브 구조로 깔아 소음을 증폭시켰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2010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경부고속철 2단계 부산∼대구 구간 가운데 부산 경남권 전체 구간은 75킬로입니다. 이 가운데 56%인 약 44킬로가 터널 구간이지요. 그중 금정산 관통터널이 약 18킬로미터, 천성산이 약 16킬로미터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대규모 장대터널에 대한 중요 환경요소가 전연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KBS부산 천성산 구간 쟁점토론에서 천성산 구간 관통에 대해 경제냐 환경이냐 식의 단순 인터넷 응답 결과 90%대 10%로 경제가 강하게 나왔다고 방송국은 소개했습니다. 방송시간 하루 전에 이미 97%가 경제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을 방송 30분전에 취합해놓고 그것을 마치 방송중에 취합한 것처럼 보도한데 대해 지율스님께서 문제가 있다고 방송국측에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난해 부산, 경남권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단체의 여론조사는 69%가 고속철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속철 관통구간인 천성산 구간은 생태계보전법 등 10여 개의 현행법과 10여종의 천연기념물과 30종의 보호동식물이 살고 있어 보전이 필요하며, 지하수 유출, 단층대 등으로 터널안전이 문제되고, 환경영향평가법상의 법률적 하자와 문화재보전법, 전통사찰보전법, 자연환경보전법 등 수많은 하자가 있음을 재판부가 인정하면서도 지난 3월 1심에서 이를 기각한 것은 환경단체의 불만을 싸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후보가 경부고속철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워 역대 대통령이 추진해온 국책사업 고속철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2002년 불교계에게 '경부고속철 대구-부산 노선 백지화' 공약을 한 것은 이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취임후 노대통령이 '백지화 공약'을 지키지 않자 내원사 산감인 지율스님이 노 대통령의 공약준수를 요구하며 38일, 45일간 두차례에 걸쳐 단식을 한 것도 이 구간의 생태계 파괴 우려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닐까요?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금정산 관통문제는 2003년 5월 '대안노선 및 기존노선재검토위원회'까지 구성됐으나 두달 남짓한 조사기간으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기엔 무리였습니다. 이때 지율스님을 배제하지 않고 진지하게 재검토가 돼 6개월-1년간의 환경영향평가를 했었더라면 천성산 구간 공사문제는 벌써 해결됐을 것입니다. 사실 지율스님에 따르면 공단과 지율스님과의 대립은 2001년 11월로 거슬어 올라갑니다. 11월 4일 천성간 법수계곡 구간 밀반늪 아래 산사태가 났고 이에 지질 지하수가 문제라고 지율스님이 공단측에 지적한 것입니다. 이에 공단은 2002년 12월 지하수, 생태계, 발파, 소음진동, 지질 등 5개분야에 대해 공동조사를 하자고 했구요. 2003년 1월 지율스님이 합의하기 위해 공단측을 만났는데 공단측은 지하수와 지질분야를 제외하자고 했답니다. 이에 지율스님은 합의를 하지 않고 국토순례에 나선 것이구요. 그해 4월 대덕연구단지의 이병대 박사 등 4명의 전문가에 공단측이 용역을 의뢰했는데 이 박사팀이 현장조사를 나와 천성산구간은 '지하수 100% 유출구간'이라고 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박사팀은 다음 용역에는 더 이상 참여하지 못했다는게 지율스님의 말입니다. 지율스님이 목숨을 내건 단식을 하게 된 것도 1차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에 대한 신뢰에서 나왔고 노 대통령 후보도 천성산 구간의 문제점을 잘 알았기에 후보시절 '노선 백지화'을 공약을 내세웠다는 점입니다. 2차단식은 부산지역 시민종교단체가 자신을 배제한 채 노선재검토위원회에 참여한데 대해 공단입장에 이끌려가는 것에 반발한 것이었고, 3차 단식은 공단이 공사를 강행하는 바람에 이를 막기 위한 것이었지요. 4차 단식은 환경부와 협의해 공단측이 법원에 서약한 공사중지를 깨려고 한 점과 재판부가 이러한 잘못된 피신청인의 행태를 알면서도 이를 시정토록 하기 보다는 현장검증을 기피하고 판결시기를 앞당기려 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종합적인 문제가 결국 환경영향평가의 문제로 나타났고, 그 가운데 도롱뇽 소송으로 대변되는 '자연의 권리 소송'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1993년 환경영향평가 당시 고속철이 통과하게 될 천성산 일대 고원습지인 무제치늪, 화엄늪에 대한 조사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사업이 한 때 중지되었다가 2001년부터 재추진하게 됐는데 사업이후 7년이 경과된 시점인 2001년 11월 이후부터 환경영향평가 재협의대상이 됨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는 재협의 행정지도를 하지 않았지요. 고속철도건설공단에서도 재협의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입니다. 공단이 낸 환경영향평가서의 자연생태계 조사도 엉터리란 점이 드러났습니다. 천성산의 경우는 200여과에서 천여 종의 생물종이 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고 있는데 특히 64과 219종의 습지 식물에 대해선 검토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또한 단층대나 연약지반 지하수맥 등이 통과되면서 지하수의 고갈이라든가 지반 침하 등의 문제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성산 금정산 관통계획은 수정될 줄 모릅니다.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한번 정해진 국책사업을 결코 중단할 수 없다는 '국책사업 불패신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부 또한 반성해야 합니다. 환경처는 92년 6월 30일로 예정된 고속철 착공일에 맞추기 위해 착공하루 전날인 29일에 환경영향평가협의 회신을 해 스스로 환경영향평가제도를 무시했습니다. 당시 4월 교통부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불과 2개월만에 분석완료하면서 1차례 보완 요구만 했을 뿐 오염저감대책 추가요구를 하지 않았지요. 경향신문 92년 7월 3일자를 보면 당시 고속철 철로주변 주거지 예상소음이 대부분 청력장애를 초래하는 80데시빌이상의 심각한 상태가 예상됐는데도 이를 막연히 70데시빌(말초혈관 수축초래)이하로 낮추라고만 했을 뿐 실제 저감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은 채 협의회신한 적도 있습니다. 이번 천성산 구간도 환경영향평가를 엉터리로 한 소위 학자와 용역기관에 문제가 있고, 이를 방조하고, 7년이 지났는데도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지 않은 환경부가 더 문제이고, 나아가 시민단체와 공동합의한 환경영향평가 검토약속까지 환경부가 파기한다는 것을 보면 환경부의 존재 의의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왜 우리나라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없는 것일까요? 단층대가 발달한 지질구조와 지하수 유출에 따른 붕괴위험 가능성에 대해 공단측 관계자들은 방송토론에서 지하 300-400미터 밑으로 고속철이 지나기에 고산습지에 영향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공단의 팸플릿 등에는 환경에 절대 안전하다는 문구를 넣어놓고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지 이를 환경단체가 검증하자는데 왜 참여하지 않았을까요? 2002년도 대한지질공회의 자료는 정족산 인근의 무제치늪에서 이뤄졌고, 또 시공사들이 한 조사도 밀반늪 정도에서 시추조사도 아닌 지표조사 중심으로 이뤄진 것 아닙니까? 공단측은 터널공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산습지가 안전하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그 주장의 사실성 확인을 하자는 것이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자는 것 아닌가요? 절대 안전하다고 홍보지에 쓰면서도 지율스님과 환경단체가 그토록 주장하는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는 진짜 이유가 뭘까요? 터널은 땅의 기맥과 수맥을 끊는 것 아닙니까? 지하로 숨어든 소음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의 수면을 막아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천성산에는 물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새로 발견된 법기단층대와 고속철도가 만나는 대성계곡은 지표에서 불과 80미터 아래인데 이곳의 단층대는 특히 위험하다고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산은 그 자체로 온전한 생명체입니다. 지금까지 고속철 사업자들은 오로지 고속철의 경제성과 효용성 그리고 환경파괴와의 무관성을 얘기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도 결국 기술관료이상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2004년 4월 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산림청의 산림 공익기능 평가에서 국토의 65%인 6백43만헥터의 산림이 1년간 창출하는 공익적 가치(2000년말 기준) 연간 49조9천5백10억원으로 국민 1인당 106만원의 혜택 보는 것으로 분석돼 있습니다. 지난 95년의 연간 공익적 가치인 34조6천110억원(국민 1인당 78만원)에 비해 44.3% 증가한 것인데 작년 임업 총생산 규모(1조7천268억원)의 29배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구체적 내용은 광합성 작용 통해 산소 공급하고 이산화탄소 및 대기오염 물질을 빨아들이는 '대기정화기능'이 전체 27.1% 13조5천여억원이고, 산림이 갖고 있는 물 저장능력을 나타내는 '수원 함양기능' 평가액은 소양강댐(유효수효저수량 19억톤) 10개를 건설한 것과 맞먹는 13조2천여억원(점유율 26.6%)이라고 합니다. 비가 많이 올 때 토사 유출되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이 10조560억원(20.1%)이며, 도시민에게 휴식공간 제공하는 산림휴양기능이 4조8천여억원(9.7%),. 산림 정수기능이 4조8천여억원(9.7%), 토사붕괴 방지기능이 2조6천여억원(5.3%) 그리고 야생동물 보호기능이 7천6백80억원(1.5%)으로 각각 집계됐습니다.
참고로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는 우리나라보다 산림의 가치가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환경파괴의 구도를 읽는다'(후쿠오카 가츠야, 시사통신사, 1990)라는 책을 보면 일본의 국토의 68%인 2천5백28만 헥터의 산림이 연간 내놓은 공익적 가치는 40조엔(우리돈 4백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일본의 산림이 우리나라보다 4배 이상임을 감안하더라도 연간 50조인 우리나라에 비해 4배이상 높은 가치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대기정화기능이 약 8조2천억엔, 산림휴양기능 7조4천억엔, 야생동물 보호기능 3조엔, 수원함양기능 5조1천억엔, 토사붕괴 방지 등 재해방지 기능 11조5천엔, 홍수 피해 방지 2조5천억엔 등입니다. 이러한 액수는 임업의 수익과 비교해도 목재 수익의 30배 이상에 이른다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 산림에는 야조만 8천만마리가 있다고 합니다. 이들 새가 먹는 나무열매는 무한하고, 새는 많은 해충을 잡아먹습니다. 우리의 산림청에 해당하는 일본 임야청 조사에 따르면 적어도 일본산림에는 4조5천억마리의 곤충이 새의 먹이가 되고 있고 이 때문에 산림이 지켜진다고 합니다. 산림이 갖고 있는 가치를 기대효용가치라고 하지만 산림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해 벌채를 하거나 산림이외의 이용목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영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산림의 기대효용가치를 잃어버리고 마른 것이 될 것입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일본의 산림이 매년 내는 가치를 자본으로 환산한다면 적어도 1천조엔(우리돈 1경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국민 1인당 지분으로 나누면 약 8백만엔이며 5인 가족이라면 그냥 4천만엔의 자연재산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 산림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면 GNP의 5.2%에 이르는 엄청난 액수이지만 현실적인 일본의 국가 및 지자체의 산림 비용 약 1조엔은 GNP의 불과 0.2%에 지나지 않기에 산림의 환경편익에 대해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국책사업 고속철은 정말 고칠 수 없는 것일까요? 1998년 경부고속철 3차 계획 수정 이전인 그해 4월 대통령직속 기획예산위원회는 경부고속철계획 가운데 경주역 건설계획 백지화와 대전∼대구역사 지상화로 2조6천억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등 총사업비 규모를 15조원 수준으로 낮추면 고속철 건설이 채산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6공과 문민정부 때 정치적 이유로 변경됐던 고속철 사업계획을 사실상 최초 원안대로 복귀시키는 수정안을 만들려고 했으나 3차 수정안에선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 경우 대구∼밀양∼부산간 직선 코스를 택하면 대구∼부산간 1백17킬로 구간 가운데 지금보다 32킬로미터의 거리를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철도기술연구원은 1996년 당시 경주역 건설계획 백지화를 전제로 대구∼밀양∼부산 기존선을 전철화하고 고속철에 적합하도록 선형을 개량하는데 이 구간 고속철사업비의 10분의 1도 안되는 4천7백여억원을 투자하면 평균 시속 1백25킬로, 최고 1백60킬로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10년 고속철이 완전개통되면 이 구간의 소요시간은 약 35분. 기존의 새마을보다 25분 정도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1백60킬로만 달리면 현재 개통된 대구∼부산간 노선을 이용해도 그 시차는 불과 10분대인 것입니다. 10분을 앞당기기 위해 2010년 개통을 목표로 6조원 이상의 막대한 국고를 낭비하고 천혜의 천성산 금정산 생태계를 파괴하면서까지 신선 건설을 강행해야 하는가 의문이 갑니다. 현재 경부선 구간을 활용하면서 좀 더 지혜를 모아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17대 국회에 한번 기대해 볼 수는 없는 것일까요?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 이뤄진 17대 국회가 해야 할 일이 많겠지만 경부 호남고속철을 비롯해 새만금간척 등 우리 나라 국책사업의 추진과정과 문제점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거쳐 해답을 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도롱뇽소송'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바탕으로 선진 입법을 도입해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이상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미래세대,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결단내는 일만은 막아야 할 것 아닙니까. 아무리 급하다고 해서 바늘을 허리춤에 감고 할 순 없는 것 아닙니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가 아닌가 합니다.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에 천성산 뭇생명의 목숨이 걸려있습니다. 한순간의 어리석음으로 어머니 산과 대지의 큰 자산을 잃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감히 적어보았습니다. 지혜로운 판단을 지켜보겠습니다. 이만 총총.
2004년 11월 21일
김해창 습지와 새들의 친구 지도위원/국제신문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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