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거래
그가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는다.
종일 시답잖은 일로 입정을 놀리다보니 이 틀이 시리고 때는 저녁참이라 몸이 움친다.냉장고에서 피티병에 담긴 콜라를 꺼내서 너부죽한 대접에 안다미로 치고 목을 적시니 꼬르륵거리며 목젓을 타고 시원스럽게 뱃구레를 뚫는다.
스르르 눈을 감는다.그가 가진 (과람하게도)최고의 알천인 흔들의자가 몸뚱이 오가는대로 코대답하며 끄덕거린다.마음이 자적한 시절에는 애써 수잠이라도 들었건만 눈시울이 천근인 오늘은 수이 잠들지 못하고 그래도 장마통에 여우볕보듯 잠깐 의식이 드러날 즈음에는 멀건 눈을 떠서 책상 윗녁어름에 삐뚜름히 달려있는 월력을 바라보는데......아, 가윗날! 달포도 남지 않았지.......하며 혼잣말을 씹어 삼킨다.
사업이라고 시작한지 어언 20여 성상,되돌아보면 그 언제 태깔 고운 봄볕을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기중에도 가난한 집 명절 찾아오듯 바쁜 명절을 맞다보면 그와 같은 옹삭한 축에게는 추연함만 한 켜 더할 뿐이었다.가진 샐닢은 뻔하고 명절이라고 채신머리있게 고달은 떨어야 되겠으나 두엇 데리고 있는 곁꾼들의 품삯이며 올망졸망 고시랑거리는 권솔들의 덩덩한 기운을 눅일려면 얼마간의 떡값도 있어야겠고 지난 여름부터 긋어 놓았던 엄대도 이번 참에는 모개로 아퀴를 지어야만 할 터,이럴때면 간담상조(肝膽相照)라도 할 수 있는 동무를 찍자라도 부려서 만나 희학질을 떨라치면 조금은 나을법도 한데 이녁도 돌아가는 셈평이 또한 일반일지니 ,아! 서산낙일(西山落日)이요 일모도궁(日暮途窮)이라, 마땅한 섭수가 없으니 애써 잠을 청할 수 밖에........
눈을 붙이고져 한참을 뒤치닥거리는데 핸드폰이 책상바닥을 털어대며 울린다.
[거기, 공사하는 김사장님이시죠?]
[네,그런데요?]
[여기가 서노송동인데 어설픈 공사 하나 해 주시죠......]
[네,알겠습니다.곧 찾아뵙도록 하죠.]
이렇게 낯설은 대화가 끝났다.걸죽하고 우렁한 목소리는 소심한 사람은 듣기에 오갈들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경험상 중씰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딱'하고 핸드폰을 갈무리 하며 드러눕는 순간,문득 망각속에 애써 찾았던 어떤 단어?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신기하였다.아,그 곳!.......
얼떨결에 핸드폰을 열어제낄 때면 늘 내가 아닌 장사꾼이 되어서 기계적이며 상투적인 계산꺼리부터 생각하기 마련인데 방금 그 순간,찰나지간에 시큼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 곳의 위치가 무척 묘했다는 것이다.
약속시간은 오후 6시,번지르하지 못한 도롯가 수채구멍에서는 개숫물인지 비눗물인지 모를 포말이 무지갯빛 영롱한 모습으로 끓어오른다.지난 여름날,모악산 중턱 어느 솔가리 밑에 그렇게 아름답게 피었던 독버섯이 뭇 야생초보다 자별했다는 기억과 더불어.......
역시 홍등가였다.문득 어림하여 스친 짐작이 맞았던 것이다.
그는 이 도로,이 고샅길을 알면서도 잘 모른다.도시라는 대처의 그렁저렁한 모롱이,그이 사무실 앞에 길게 연한 오종종한 비디오 가게며 분식집,치킨집 같은 굳이 간판을 익힐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익숙하기도 하거니와 선입견이 뜨악해서 억지로라도 기억 저 편에 가두고 싶은 마음이 도렷하게 앞서기에 낯섫어함일 것이다.이미 해는 이울어 이허(里許)정도의 거리 도로 양편에 여남은 정도 되어 보이는 장명등에도 희밋하고 뿌연 불빛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가게마다 주막집 깃대같은 노랑,빨강,주황색의 전구들이 처마에 달려 있는데 그 색색의 연출을 바라보면서 그는 이미 졸망스럽고 단작스러운 이방인 아닌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화려와 슬픔이 교차하는 곳,그는 이 곳을 지나칠 때마다 여러 자별한 생각에 목젓이 밋밋해지곤 하였다.꽃다운 나이 열일고여덟에 스님이 되겠다고 동정을 내던져 버린 곳,그래서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아니 생의 마지막 날까지도 짊어지고 갈 '自由'라는 도그마를 이 곳만큼 명징(明澄)하게 드러내는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또한 언젠가 - 그러니까 까까머리 학창시절,센둥이를 늘 껴안고 사는 옆집 할배가 '버드나무와 여인네는 어느 곳에 던져 놓아도 적응할 수 있느니라'는 그런 애매한 말씀을 내내 이해하지 못하다가 장대비가 무섭게 쏟아지던 어느 날,문득 깨달았던 것도 바로 이곳을 연상했기 때문이었다.깨닫는다는 것이 완전한 것은 아닐것이다.양파껍질이 한겹 한겹 벗겨질 때마다 또다른 세계가 열리듯 흔히 이야기하는 진리는 경전이나 말씀에 있지 않다.세상의 좋은 글이나 경전은 양파껍질의 한 조각,티끌정도일 뿐이지 황차 세상의 흐름과는 별무상관이리라.그래서 세상의 어느 경전에서는 그것을 '不立'이라 이름하는 듯 하였다. 양파껍질을 한겹 벗기며 그는 그것을 '불립의 경계'라 이름하기도 하였는데 조금씩 시간이 흐르며 陰이며 陽이며 남자의 구공(九孔)과 애를 낳는 여자의 십규(十竅)에 대해서 생각 해 보기도 하였다.그가 사는 세상에서 그는 그들을 늘 만났다.낮에 일하고 밤에 잠자고,남자가 반,여자가 또한 반.......그러나 문제가 있었다.불균형의 오류......남자에게 없는 여자의 일규(一竅),남자인 그가 죽어도 이해하지 못할 그 하나........아마도 세상을 이해하려 든다면 그 일규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핸드폰 너머 들리던 주인공의 모습은 실제 예상과 크게 엇나지 않았다.겉보매에도 불혹을 훌쩍 넘긴 나지리한 체수의 졸토뱅이로 번지르한 얼굴이며 태깔나는 매무새만 아니라면 족히 지하철 계단에나 나앚아 있어야 할 성 싶은 중씰이로 보였다.
[사장님,이곳을 둘러 보시고 얼마간의 견적이 나올건지 알려주시죠.]
[네,알았습니다.]
[경원아,이 곳 견적을 뽑아 보아라.]하고, 같이 갔던 직원을 느루 불렀다.
경원이는 무슨 일이건 두루치기인데다 해병대 출신다운 씩씩함이며 야젓하기까지하여 직원이라고는 하지만 서로 내남없이 지내는 사이이기도 하였다.그 모습에 연탄 잉걸불에 쪼그려 앉은 아가씨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아 희룽져 웃기만 한다.
잠시후,
[이제 됐습니다.소요시간은 세시간여 걸리고 견적가는 190만원입니다.]
[아,그래요?비싸진 않군요.그렇게 합시다.]하며 의외로 싹싹한 본새가 기특하기까지 하였다.
다음날 공사를 끝내기로 약조하고 문을 나서는데 모처럼 음충한 분위기를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직원들을 돌려 보내고 잠시 거닐어 본다.
이곳에서의 산보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황차(況且) 어둠이 밀려오는 지금에야 더욱......
아가씨들의 짖꿎은 걸터듬은 물론,길을 지나치는 이들의 의뭉스런 시선에 객적스러워 할 낯빛도 애써 외면해야 되는데 이 거리를 충그리 하려고 마음먹은 이상 술의 힘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검게하고 술은 사람의 마음을 붉게 한다'는데 골목 가녘의 포장마차에서 소주 두 잔을 날름 먹고나니 또한 그랬던 바 자릿내 나는 작업복이면 어떻고 수삽(羞澁)스러울 일은 또 무엔가......그도 남정네인지라 쇠리쇠리한 불빛 아래 이맛전이 훤하고 물색 좋은 삼패(三牌)들의 흐벅진 비역살을 언뜻언뜻 빗보면 아랫도리 샅이 불끈 치치는 것을 통렬하게 느끼는데, 뻔한 이치라는듯 한 집 건너 계집들은 서로 마주보고 낄낄거리며 밴댓짓을 하거나 손톱여물짓을 섞어서 슬쩍 째리는 간릉짓을 해 대는데......아뿔싸!이게 무슨 황망한 꼴인고?이미 불콰해진 낯빛이라 표가 안나서 다행이지 정말 이런 낭패가 있나......행인지 불행인지 정신은 말똥해서 그 와중에도 피식 싱거운 웃음을 짓기도 한다.오래 전 이야기지만 그가 노동일을 시작한 것은 그 벌이 라는 것이 무척이나 깨끗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구질구질하지 않은 올곧은 댓가,그것으로 족했었다.그렇게 생각했던 그와 행창(行娼)질을 하는 이 아가씨들의 몸짓에는 얼마만큼의 상거(相距)가 놓여있는 것일까?남자로써 가장 오래된 직업을 가진 그이와 여자로써 가장 오래랄 수 있는 직업을 가진 그녀,그만큼 생명력이 길다는 것은 그만한 진리가 있다는 뜻인데........어쩌면 그의 오랜 숙제 즉, 일규(一竅)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어 보였다.
일이 끝났다.
그가 포주를 마주하고 부러 고달지게 허두를 꺼낸다.
[사장님,맘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아,정말 맘에 쏙 듭니다.]
[허면,결재를......]
[네,해야지요.]하면서 돈을 건네는데 달랑 100만원권 수표 한 장 이었다.
[아니?약속과 차이가 나는데요........잔금은 어떡 하실려구?]
[아,그거요?그런데 사장님! 한 가지 물어 봅시다.]
[예!]
[사장님도 장사 하고 나도 장사 하는 사람 맞지요?]
[........]
[그래서 하는 말씀인데 ......아까 직원들 보니 세 분이 일을 합디다?
여기 아가씨들 해웃값이 30만 원 이거든요.사장님도 여기서 얼마간 이득을 보았을 것이고 나도 좀 남깁시다.
한참 불경긴데......뭐,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유?]
삼 일째,저녘참이 끝나면 그는 그 거리에 나타난다.
낮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단다.
이미 이 거리의 아가씨들도 손님이 아닌 아저씨를 반기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世上은 善하지도 惡하지도 않다(天地不仁).......
野汀
첫댓글 참 거시기한 거래다요
아공
에고 ~~ !
읽기에 거북하시쥬 ? ㅎㅎㅎㅎㅎㅎ
그러나 독자들의 대상이 연륜이 있으신 분들이고
또한,내 아닌 다른 세상을 필자를 통해서 대리경험하시라구 적어보기로 맴을 먹었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존재의 이유가 있으니까요 ~~~ ^^
감사해요 ~~~ ^^
언어의 향연이 이런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운 날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야정님의 내공 깊은 글에 퐁당 하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그 제안은 받아들여졌나요
짧지도,길지도 않았던 지난날을 되돌아 보면,인생은 언제나 타협이나 선택으로 방향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타협을 봤습니다.
잔액의 반만 받고 일을 마무리 짓기로 말이죠...... ㅎㅎㅎ
개인적으로 글을 쓸 때 가지는 자세가 있는데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하고
엄정함을 유지하고
도덕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 !
그렇습니다.
어째,
재미는 있던가요 ??
ㅎㅎㅎ
감사해요 ~~^^
ㅎㅎㅎ
맨 마지막에 한참을 웃어 보네요.
이 글을 읽다 보니 사회초년생일때가 생각나는군요.
저의 첫직장이 서울 남대문근처에 있었는데 사옥 바로 턱밑에 일명 사창가가 있었어요.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명 양동골목이라고 유명한 곳이지요.
나이가 연로하신 할매들이 골목을 접수하고
골목을 지나는 뭇 사내들에게 영업을...ㅎ
우리야 늘 그 골목을 지나치니 얼굴을 알만도 한데
영업에는 끝이 없더라구요.ㅎ
야정님 덕분에 옛 추억에 잠겨 보네요.
지는 사회초년생을 동대문에서-평화시장 언저리-보냈는디요 ~~ ㅎㅎㅎ
야정은 사연많은 사람이랍니다,그래서 그러한 일들의 끝물,또는 가슴알이를
가끔 글을 빌려서 써내려가고 있지요~~
직선적이고,따라서 내숭이 없고,그러한 이유로 詩의 형식보다는 줄거리를 따지는 형식을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많아도 댓글을 쓰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름없는 들풀들이 있기에 장미꽃이 환하게 빛나는 것입니다.
늘 들풀이기를 바라는 사람이 이 글을 작성했나이다.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