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에는 할머니 세 분이 사신다.
90세
87세
85세.
연장자 順으로 910호 어르신
부터 이야기 하고싶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오셨다는 할머니는 제주에 먼저 내려와 자리잡은 딸이 작년에 모셔왔다.
아직은 한국말이 어눌하고 특히 제주 사투리는 낯설어 하신다.
자그마한 몸집에 귀여운(?) 얼굴의 할머니는 유치원 원장으로 오래 일하셨다고 한다.
저녁 밥을 먹고 더부룩하면 동네길을 몇 바퀴 돈다.
할머니도 지팡이 짚고 천천히 걸으신다.
우린 서로 웃으며
"어? 빠르시네요." 농담도 한다.
하루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는데 복지관에 갔다 오신 듯 했다.
"어르신, 거기 할으방들도 있수광?"했더니
"아바이들 있지." 하시며 빙그레 웃는다.
북한식 발음에 놀랐지만
'스탈린이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킬
때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하게 됐구나' 짐작했다.
더운 여름에는 편의점 그늘막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계셨다.
'오래 앉아 있으면 편의점주가 싫어할텐데....'
걱정했는데 어느날은 계단 맨바닥에 앉아 계셨다.
스티로폼 뚜껑을 구해 엉덩이 밑에 밀어넣으며
"여기 앉으시라"했더니 밝게 웃으셨다.
고단한 하루 일과 끝나고 복도에 들어섰더니
지팡이 짚고 왔다갔다 하시길래
"운동 하세요?"물으니 웃으시며
"나물 잘 먹었어."하신다.
미나리 드린 걸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미나리'라는 단어가 생각 안 나신 듯.
그 날은 폰 무음처리를 잊어 버리고 곤히 잠 자는데
한밤중 전화가 울렸다.
"언니, 엄마가 피를 흘리는데
멈추지 않아.
어떡해, 어떡해?"
"119에 신고했어?"
"응."
달려가 보니 이불이 피에 범벅이 되고 코에서 계속 피가 나오고 있었다.
지혈이 안되는 것 같았다.
얼마 후,
119 구급대원들이 들어와 들것에 모시고 한라병원으로 달렸다.
이틀 후, 할머니는 퇴원하셨는데 생각지도 못한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연세도 90세인지라 집에서 통원하며 효심 깊은
딸이 돌보고 있다.
강풍이 몰아치던 날.
요란한 소리에 문 열어보니
할머니 집 앞에 세워둔 휠체어와 유모차에 덮어놓은 비닐이 비바람에 찢겨 날리고 있었다.
두꺼운 비닐과 끈을 들고 가 휠체어에 씌우고 끈으로 단단하게 동여 맸다.
지나칠 때마다
뿌옇게 먼지 쌓이는 휠체어를
바라보며
따스한 봄날,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꽃구경 가실 날을 기다려 본다.
첫댓글
해외에서 귀국하신
이웃 할머니를 따뜻하게
챙기는 아우라님의 손길이
봄처녀처럼 아름답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어렸을 때 할머니랑 살았지요.
마지막 글이 2019.11.13일.
이렇게 세월이 많이 흐른지 몰랐습니다.
따뜻한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고우신 마음을 읽고 갑니다
건강하신 삶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그냥 살아가는 일입니다.
요즘은 나이듦을 새록새록 느껴집니다.
즐거운 봄날 되시길 바랍니다.
노령인구는 자꾸 늘어가는데
그래도 아우라님같은 분이 계셔서 사회가 따뜻합니다.
어제
'할머니가 기저귀 차고 누워만 계신다'는
말을 들었어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아유 마음이 짠합니다.
제주도에 사시는군요.
90세 이웃 할머니
뿌연 먼지 쌓인 힐체어를 바라보시는 아우라님의 글 감동입니다.
저의 어머님도 90세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께 효도 못한 죄송함이
나이들수록 후회가 됩니다.
잔잔히 살아가는 이야기 잼나게 읽었습니다
앞으로 종종 님의글 고대 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앞집 할머니 이야기 올리겠습니다.
요즘 세대 부모님 요양원 에
보내고 아이 안낳고 강아지들 데리고 놀아요
그러게요.
상속은 다 받아 먹고.
아름다운섬 머믈고 싶은섬 제주에 사시는 군요 태어나 제주도 여행을 열댓번쯤?했든가
어느땐 온화한 모습으로 어느땐 바람이 심하게 불든 어느땐 폭설로 공항에 묶였든 때도
제주의 편안하신 삶의 모습 아우라님의 멋진 필력에 힘 얻어 즐겁게 감상해 보았 씀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