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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윤석화 |
“내용 좋은데 흥행 안 된 작품? 그건 ‘마스터베이션’이죠” |
● 연극 ‘위트’의 대박 요인은 ‘배우 윤석화의 힘’ ● 연극은 내 삶의 구도(求道)…모든 것을 연극에서 배웠다 ● 잊을 수 없는 작품? ‘목소리’ ‘딸에게 보내는 편지’ ‘덕혜옹주’ ● 예술가에겐 어느 정도 ‘자뻑’이 필요 ● 만날 트렌디한 아이돌 스타에 환호하는 우리 문화 답답 ● “윤석화는 관객의 영혼 치유하는 외로운 광대” |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는 한국 연극의 메카다. 가난한 연극쟁이와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이 어깨를 부딪히며 서로의 숨소리를 확인하는 거리다. 방송통신대학을 중심으로 어느 골목에 들어서든지 소극장 간판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설치극장 ‘정미소’ 건물에 앙코르 공연을 알리는 ‘위트’의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극장 정미소(精美所)는 쌀 방앗간 정미소(精米所)와 가운데 ‘미’자의 한자(漢字)가 다르다. 방앗간 정미소가 육신의 양식인 쌀을 도정하는 곳이라면, 정미(美)소는 정신의 양식인 예술을 창조하는 공간이다. 작명자 윤석화(尹石花·49)의 해석이 그럴 듯하지만 척박한 연극계와 사양길에 들어선 시골 정미소가 오버랩 되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지금 농촌에 가도 발동기가 통통거리는 정미소는 찾아보기 어렵다. 봄바람에 나부끼는 현수막 속의 윤석화는 삭발이다. 난소암에 걸린 대학교수 역을 하느라 머리를 잘랐다. 17세기 영시를 전공한 영문학자 비비안 베어링 교수는 연극 공연 2시간 동안 죽어간다. 두 시간짜리 모래시계다. 정미소 건물 4층에 공연전문 월간지 ‘객석’의 사무실이 있다. ‘객석’은 창간 20년을 넘기는 동안 주인이 몇 차례 바뀌었다. 우리나라 유일의 이 공연전문지는 ‘가난한 예술’을 다루는 ‘활자매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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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는 서울 금란여고 재학 시절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해 인기 ‘짱’이었다. 자전거도 타고 탁구도 치고 노래도 불렀다. 성적도 꽤 좋은 편이었다.
가수 조영남은 30여 년 전 금란여고 채플시간에 초대돼 성가를 부른 적이 있다. 초록색 교복의 여학생들이 가득 찬 강당에서 똘망똘망한 여학생이 사회를 보고 있었다. 재담이 뛰어났다. 조영남은 행사가 끝난 뒤 그 여학생을 따로 불러내 “나중에 너는 뭐가 돼도 크게 될 애야” 하고 예언했다. 그 여학생 MC가 바로 윤석화다.
“조 선생님은 원래 성가를 한 곡만 부르기로 돼 있었죠. 제가 MC를 맡아 분위기를 띄워 여러 곡 부르게 했어요. 조 선생님이 ‘너 같은 MC는 처음 만났다. 네가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구나’라고 하더군요.”
이화여대 생활미술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가서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다들 미팅하고 땡땡이 칠 궁리만 하고 공부를 소홀히 했다.
“대학이 재미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오로지 유학만 생각했어요.”
그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했다. 초등학교 때도 교단에 불려나가 노래를 부른 적이 많았다. 중·고교 때는 음악선생님이 새 노래를 가르쳐주고 나서 가장 먼저 그에게 부르게 했다. 선생님들이 지루한 수업시간에 “누가 나와 노래 한 곡 해봐라”고 하면 여기저기서 “윤석화요, 윤석화요!” 하고 소리질렀다.
대학 1학년 때부터 CM송을 불렀다. 첫 작품은 ‘맛좋은 다시다.’ 1977년에 부른 ‘오란씨’는 ‘국민가요’처럼 애창됐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필자는 오란씨 CM송 가사를 지금도 기억한다. CM송을 거의 혼자 싹쓸이했다. 방송을 탄 CM송이 약 300곡, 녹음만 하고 끝난 것까지 합하면 1000곡쯤 된다. 한 곡 부를 때마다 5만원씩 받았다. 보통 직장인 한 달 봉급에 가까운 돈이었다. 그때 번 돈은 연극할 때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
CM송 녹음을 하는 사무실 옆에 ‘민중극단’이 있었다. 극단 사람들이 기막히게 노래 잘하는 윤석화에게 연극도 해보라고 권유했다. 추억거리를 만드는 기분으로 워크숍 작품 ‘미운 오리새끼’에 조연으로 참여했다. 안데르센의 동화를 각색해 올린 아마추어들의 무대였다. 연극과의 첫 만남을 안데르센으로 시작해 그의 탄생 200주년 홍보대사까지 했으니 묘한 인연이다.
연극 출연은 재미있었지만 CM송처럼 돈벌이는 되지는 않았다. 다시 CM송을 부르며 유학자금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연출가 정진수씨가 찾아와 작품을 하자고 했다. 정씨는 안 하겠다고 버티는 그에게 세 번씩이나 찾아와 “대본이나 한번 읽어보고 얘기하자”며 셸라 딜래니의 ‘꿀맛’을 던져줬다. 정씨는 원래 주연을 당시 최고의 인기 탤런트이던 김영애에게 주려던 참이었다고 넌지시 흘렸다. 그 시절 김영애는 지금의 이영애보다 더 유명했다. 김영애에게 갈 것을 내게 준다? 치기어린 도전의식이 생겨났다.
윤석화는 중학교 2학년 때 단테의 ‘신곡’을 읽었을 정도로 책벌레였다. 그때까지 읽은 문학작품이 안개 같은 거라면 ‘꿀맛’은 소낙비를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CM송과 연극에 빠져 있는 동안 대학에는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는 언니들이 있는 미국에서 유학 하고 싶었지만, 언니들이 “한국에서 언더(학부)를 마치고 오라”고 말렸다. 일본 와세다(早稻田)대를 졸업한 아버지의 동기동창이 일본 메이지(明治)대 이사장으로 있었다. 그는 메이지대 입학허가서를 받았다. 일본 비자를 받고 여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즈음 신문에 일부 부유층 자제들이 외국유학을 하며 호화사치 생활을 한다는 기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일보 ‘두꺼비’ 만화가 롤스로이스를 탄 유학생을 그렸다. 얼마 안 가 외국유학 전면 금지령이 내려졌다. 일본 비자를 세 번 연장하며 기다렸지만 유학금지 조치는 풀리지 않았다.
“유학을 잊고 연극을 열심히 했는데, 제가 연극영화과를 나오지 않았잖아요. 제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기가 힘든 거예요. 다른 배우들이 ‘윤석화 네가 연극에 대해 뭘 알아’ 하면 저는 속으로 ‘너네들 공부 못했으니까 드라마센터 갔지. 나는 그래도 이대 출신이야’ 했지만 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죠.”
외국에서 유학하고 온 연출자가 그에게 유학을 권유했다.
“너는 공부를 더 하면 좋겠다. 나는 가끔 너한테 진짜 깜짝깜짝 놀란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너는 작품에서 집어내더라. 그런데 우리 사회는 디그리(degree·학위)가 없으면 아무리 옳고 바른 소리를 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너 같은 사람에겐 꼭 디그리가 필요해.”
“연극계에서 제가 알려질 만큼 알려졌을 때였어요. ‘주간여성’ 표지에도 나가고 언론 인터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학부를 4, 5년 다니고 나면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연극을 평생 업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미래를 위해 4년이든 5년이든 투자하기로 결심하고 과감하게 미국으로 떠났죠.”
윤석화는 마침내 뉴욕대 공연학 학사 ‘디그리’를 안고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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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다닐 때 미팅도 안 했나요.
“미팅을 우습게 알았죠. 물론 남자 친구는 있었습니다. 사귀다가 싫증나 차버린 적도 있었고요. 제가 먼저 ‘필’이 꽂혀 ‘어머 쟤랑 사귀어봤으면’ 해서 막상 사귀다가 1년 넘으니까 어휴 ‘쟤는 날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어휴 지겨워’ 하면서 끝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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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ngailbo.co.kr/docs/magazine/shin/2005/04/25/200504250500009/200504250500009_3.html
윤석화씨 홈피 프로필
The City College of New York , Performing Arts 수료
(뉴욕시립대인데 뉴욕대 드라마&공연학 수료)
하버드대학교 드라마연구원 연극분석이론 연수
- Harvard Drama Institute , Drama Trugy )
뉴욕시립대 수료. 하버드에서 연수받은거네요. 결국 졸업한 것은 없고요.
뉴욕대 아님, 싸이가 버클리 음대 졸업했다고 하더니, 그 버클리 아닌데요~ 한거랑 동일한건가요?
뉴욕시립대 레벨을 잘 모르니.....
이대가 뭐나 된다고 다른 학교를 깔봐요~ㅋㅋㅋ 안깔봐요~ 서울대생들도 안그러는데 이대가 뭐라고..ㅋㅋㅋㅋ
안깔아봐요...ㅜㅜ 근데요 이대가 뭐나 된다고라는 말은 이대생으로서 조금은 기분이 그렇네요..;;뭐 당연히 서울대보다 좋다는말은 아니지만요...그래도...ㅜㅜ
그러게 말이예요. 앞의 분들 모두 깔아보지 않는다고 겸손하게 얘기하는데, 왜 베스트들했어님만 삐딱하게 얘기해요? 객관적으로 봤을때 굉장히 거슬리는 말이네요. 게다가 그럼 서울대 학생이면 깔아봐도 된다는 얘기긔???각 학교마다 별 학생들이 다 있는데 뭘 안다고 그렇게 일반화해서 말하는지... 뭔가 자격지심있나보긔????
베스트들 했어, 자격지심있나요???ㅋㅋㅋ 왜저러지?
인생을 연극으로 사셨네..정말 너무너무 실망스럽다...
법적으로 구속같은건 안되나 ..나 저런사람다시는 안봤으면 좋겠고,객석인가 거기도 박탈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정아,윤석하,이창하는 같은급인거 같고 정덕희는 그아래급...
오 노! 신정아는 더 나쁘다긔. 반성은 커녕 맨마지막 뉴욕공항 인터뷰에서 "논문표절(표절만 했다해도 엄청 큰 잘못)을 고졸로 결론짓는 대한민국 언론에 할 말이 없습니다(매우 뻔뻔스러운 태도로)" 요로구 사라졌긔. 정신이상이라고 밖엔 볼 수 없긔...
윗분말에 동감. 정덕희도 피해자는 아니죠. 책에 약력소개에 다 나와있는데, 몰랐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봤으면 충분히 수정할수있는거 아니냐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던거죠. 다 똑같음-_-
책에 나온 작가 소개는 본인이 적는게 아니라 출판사에서 쓰는 걸로 알아요. 그래서 번역가 분들 중에서도 나중에 자기가 번역한 책에 자기 소개에 학력이 잘못 나온 적도 많다고 들었구요.. 정덕희 씨는 진짜 피해자 같아요.
저도 정덕희씨 피해자라고 동의할 수 없는게, 방송에서 고졸출신이라고 밝혔다고는 해도 출판이나 강연 등에서 부풀려진 잇점을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연에서도 매번 고졸 출신이라는거 얘기 했었대요 뭐 출판사쪽에서 그렇게 적어놓으면..판매부수랑도 연관이 있고 하니까.. 또 자기자신도 굳이 바로잡고 싶진 않았겠죠뭐..
그동안 학력으로 이용할건 다이용하고.....지금와서...또 이제는 양심선언햇네..용기있다 이런소리들을려고 ㅡ.ㅡ
인생이 연극이군...니 인생으로 연극하나 올려보시지..여튼 욕나올만큼 대단한 연극배우다..
미친...
이렇게 가짜인생 살면서 무섭지도 않나
진짜 사기꾼이네.
이 사람이 속인게 더 얄미운게 아니라요, 지금에 와서 뻥 터뜨리는 태도가 더 맘에 안드네요. 너무 속보이지 않나요? 그냥 한번 껴서 묻어가고 싶었나보죠? 어이가 없어서.. 그러면서 글에 온갖 고상한 척 하는 모습 진심으로 역겹네요. 저런식으로 글쓰면 사람들이 그래 윤석화니까.. 하고 봐줄줄 알았나보죠? 아 진짜 싫다..
222222222급물살타니까 이대안나왔다고 말하는게 캐뻔뻔하다규..학력속인것도 배신감이 크지만 누가 말하기전에 이 시기에 말하는게 아주 역겹다규
뉴욕대도 졸업아니네......뉴욕대 다니긴 한건가....뉴욕에서 랭귀지만 하고 뻥치는거 아냐?
아 징그러........참
신정아 사건 없었으면 영원히 묻히게 될 진실이었구만..인지도와 먼저 진실을 말한다는 포장으로 미화되는게 안타까울뿐이다. 신정아나 다른 위조밝혀진 사람들이란 다른점 하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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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 저렇게 거짓말을 하고 어떻게 살 수가 있을까요.. 와..
헐.. 요즘 조사들어간다니까 이제와서 밝히시면서 양심선언하는양 하는거 맘에 안들어요
정덕희교수는 방송에서 여러번 말이라도 했지 이건 뭐 정말 할말없다.....신정아보다 더하넫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와 어떻게 일생동안 거짓말하고 살수가 있지??? 찔리지도 않나... 진짜 보통사람 상식으론 이해가 안되네..
윤석화 여러가지로 대실망...남편은 아마 한국에 못들어오는것 같던데.
무서워 ㄷㄷㄷ 왜그렇게 사냐규ㅠ 내가 다 답답해
참나...한평생을 허위 거짓말로 다른 사람 아래로 깔아보고 지내며 소위 사회지도층이랍시고 살아온 사람이 종교운운하며 고해성사 했다하면 다 용서될줄 아나...정말 우리 문화계 자체가 실망스러워진다
무섭다
선수치네...지랄..
자뻑심하시네 ㅎㅎ 그저 웃음만
와...진짜 무섭다..
왜 남의 학교를 사칭하고 ㅈㄹ인지....... -_- 미친... 어쩐지 싫더라니;;
2222222222222222222222 기분 진짜 더럽네
역겹고 뭐고 난 니가 무섭다.............................................
다들 왜이러신지.. 거짓말 한번하면 계속 하게되는데..
진짜 토나와
명성황후 역에 오디션보고 떨어져서 다른여배우가 됐을때 충격은 말로할수 없다면서 자긴이해할수 없다고 그얘긴 하고싶지않다고 인터뷰하는거 보고 참....저렇게 연극계에서 이름있는사람이 실력으로 뽑인다른후배배우 응원해주진 못할망정 진짜 추잡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대근처에도 못가본게 왜 저래?풉 가식의 절정이다!이화여대 생활미술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가서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다들 미팅하고 땡땡이 칠 궁리만 하고 공부를 소홀히 했다.“대학이 재미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오로지 유학만 생각했어요.”<------------------아주 미쳤꾸나 이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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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222222222 이대 사칭 좀 그만하라고 진짜. 짜증 제대로 남. 이대 이미지는 이대 아닌 사람들이 다 실추시키고 있음.
추접하네요 진짜... 저리 뻔뻔하게.. 겉은 멀쩡한데 머릿속이 저런것들은 아직도 참 많겠죠?
몇년전에 저희학교 오셨을 때 망언하셨던 거 생각나네요. 학생들한테 강의하면서 올해 세계노벨문학상 받은 작품이 뭐냐고 질문하셨는데 학생들이 대답 못하니까 대학 수준이 떨어진다느니 대학생이 그것도 모르냐며 맹비난하며 고상 떠시던 분이..;
개인적으로 이 분 연기 안 좋아해요. 프라다 시즌 상품 입고, 신고 나온 배우를 보면서 연극볼 때 마다 들었던 생각이 이 분이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뭘까..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미모에 이대라는 학벌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가 있었던게 아닐까.. 당시 대학생이 많던 시절도 아니었고, 더우기 이대 학벌은.. 혼자 생각해봤습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