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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_ 여자 나이 서른 셋 그리고 백수. 미혼이다. 본인 스스로를 ‘무중력의 일상’을 살아가는 여행자라고 소개하는 昇微(승미)님은 그러나 한때 가장 치열한 정치 현장을 취재하는 경제지 기자였다. 글 쓰며 밥벌이 할 수 있는 사람을 꿈꾸며 기자가 되었지만, 4년 3개월 만에 불면증을 얻고, 퇴사했다고 한다. 궁금했다. 만만치 않은 글 솜씨를 지닌, 하지만 만만한 듯 만만한 나이가 아닌 이 언니는 대체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것일까. 찬란하게 도전하고 번번이 실패하는 청춘들에게 고한다. 기꺼이 실패했던 그러나 아직도 찬란하고 싶은 ‘언니’가 나근나근 건네는 ‘진담’ 말이다.
살아오면서 다양한 수업을 받았다. 그 중에 잊혀지지 않는 수업이라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암산 학원을 다녔을 때, 미술학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데생을 배울 때 등이다. 그 중에도 잊혀지지 않는 시간은 바로 피아노 학원의 시간이었다. <하농>, <바이엘>, <체르니>, <모차르트>로 이어지는, 나의 가장 최초의 사교육.
물론 나는 <모차르트>를 결국 졸업하지 못했다.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던 시절, 나는 피아노 학원 대신 종합 학원을 택했다. 당시에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전국 대회에 가서 상을 받는 아이들과 달리, 단 한 번도 피아노 경연 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저 학교를 마치고 매일 학원을 가는 수준이었다.
어느 날, 학원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그만 두면 나중에 후회할 거야. 다음 주에는 꼭 나와라. 그 다음 주에요.” 중학교 1학년생으로 당연한 일이지만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해도 나는 그 다음부터 피아노 학원을 가지 않았다. 그러니깐, 지금까지 나의 절친들도 내가 피아노를 8년이나 쳤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다.
마음이 엉킬 때 나는 피아노를 떠올린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니” 라는 질문을 받으면 피아노를 치는 나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거나 처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갓 태어난 아이처럼 눈과 귀처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다. 바로 피아노를 치던 그때가 내게는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이 내게는 평화였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는 없다. 손가락은 굳은 지 오래다. 샵이 몇 개고 플랫이 몇 개고 오선지만 봐도 머리가 아프다. 절대음감이나 상대음감이란 능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수 시절, 시험이 떨어지면 나는 피아노를 찾았다. 누구 앞에서 연주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저 그 시절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런 걱정이 없던 시기로 무엇이든지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로 말이다.
독립을 하고 나서 제일 먼저 산 것은 피아노였다. 내가 칠 수 있는 곡은 많지 않다. 기본의 기본인 하농을 치고 있다. 피아노 연주자들을 위한 연습곡 모음집이다. 왼손 약지부터 엄지까지 오른손 엄지부터 약지까지 골고루 움직일 수 있도록 씌여진 곡이다. 하농을 치고 있노라면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이십 대 시절, 실패와 실패가 나를 불렀을 때, 내가 깨달은 건 그런 것이었다. 만사 복잡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아도, 내게 잠시라도 마음의 평온함을 주는 것은 열 손가락으로 치는 서툰 피아노였다.
피아노 외에 최근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자전거타기다. 한강을 달리노라면 이내 숨이 가쁘고, 땀이 흐른다. 종아리는 무거워지고 안장 위에 엉덩이도 아프다. 땀의 양에 비례하는 육체의 고통 때문에 아무 것도 생각 할 겨를이 없다.
“나는 왜 이모양이지” “왜 그런 말을 했을 까.” “왜 이렇게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지. ” “문장 하나도 써내려가지 못했어.”라며 자책하는 말들이 마음을 떠돈다. 그런 마음들은 자전거를 타면서 가쁜 숨과 함께 빠져 나가곤 한다. 자전거가 힘들다면 산책도 좋다. 산책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대학 시절 교양학과라고 들을 정도로 전공보다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그 중엔 <메이크업 하기> <세계 음식 문화> <비디오 예술> 이런 수업도 있었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어떤 것들이 우리를 평화롭게 하는가에 대한 수업은 없었다. 물론 지금의 학생들에겐 취업 위주의 커리 큘럼이다보니 더 어려울 듯 싶다.
삶의 면역력을 높이는 강좌.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스스로 발견해 나가야 한다. 내게는 그게 어릴 적 배운 피아노 였고, 이제 타기 시작한 자전거였다. 누군가에겐 요리거나 야구나 축구일 수도 있겠다. 어떤 것이든지 당신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 그게 취미이고 특기라 불릴 수도 있다. 그 어떤 ‘딴짓’이라도 좋다. 꼭 잘 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하면서 마음이 평화로워지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이 ‘딴짓’을 해봐야한다. 쓸데 없는 일. 소용 없는 일, 그렇지만 당신을 미소짓게 하는 일이 언젠가의 당신을 구원할테니 말이다. 그런 일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찾고 방황하길. 이십대에 그 일을 빨리 찾을수록, 남은 당신의 인생은 보다 건강할테니 말이다. 여전히 찾고 있어서 골골하는 나와 달리. 늦으면 늦을수록, 삶의 면역력을 찾는 수업료는 가혹하다.
첫댓글 와 각잡고 정독하고 올게..
와 너무 좋다.... 면역력을 찾는 수업료..
와 너무 좋은 말이다
진찐 좋다 뼈저리긔ㅣ 느끼고 있어
글 올려줘서 고마워!!!
맞아.. 그냥 쭉 할 걸 후회돼..
아 눈물날거같다 참... 정독하고올게 고마워 ㄱㅆ여샤
나를위해 살고싶다..
맞아 남들이 아무리 쓸데없다고 생각한다 해도 그게 날 행복하게 해준다면 그걸로 쓸모를 다한다고 생각해 ㅎㅎ 그래서 지금 상황이 안좋아도 긍정적으로 버티게 해주는거 같아
그렇기 때문이 ‘딴짓’을 해봐야한다. 쓸데 없는 일. 소용 없는 일, 그렇지만 당신을 미소짓게 하는 일이 언젠가의 당신을 구원할테니 말이다. 그런 일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찾고 방황하길. 이십대에 그 일을 빨리 찾을수록, 남은 당신의 인생은 보다 건강할테니 말이다. 여전히 찾고 있어서 골골하는 나와 달리. 늦으면 늦을수록, 삶의 면역력을 찾는 수업료는 가혹하다.
마지막 문단 너무 좋다ㅠㅠ 고마워
맞아 어릴때 진로에 방해된다고 부모님이 못하게해서 취미 포기해버리면 나중에 후회해
되게 공감된다..! 좋은글 고마워
고마워
좋은 글이다...취미를 넓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