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한계선(樹木限界線)과 천명(天命)
‘수목한계선(樹木限界線)’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나무가 높이 오르게 되면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그 수목한계선에서도 자라는 나무가 있다. 거기에는 엄청난 눈과 비바람이 닥쳐와 나무가 더 이상 자라기 어려운 환경인데 거기에서도 자라는 나무가 있으니 일명 ‘무릎 꿇는 나무’라고 한다. 이런 ‘무릎 꿇는 나무’는 유명한 능호관 이인상 선생의 작품 ‘설송도(雪松圖)’의 윗부분에서도 잘 그려져 있다. 쭉 뻗은 나무의 윗부분이 너무나도 거친 눈과 비바람을 견디기 위해서 스스로 몸을 움츠리게 되었고 그러다가 나무가 굽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무의 굽은 부분이 반드시 쓸데없는 부분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값비싼 최고의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그런 나무의 무릎 꿇은 부분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삶에 닥치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꾼다면, 내 삶속에 큰 용광로처럼 용기와 열정의 어떠한 소재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꾼다면, 피하고 싶은 것을 정면으로 도전해서 내 삶에서 새로운 에너지의 소재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꾼다면 참으로 그때는 진정한 에너지가 내안에서 새롭게 샘솟듯 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으나, 특별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어떤 고난과 역경을 맞이해도 평안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가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니라”(고린도전서 10장 13절).
그는 다가오는 고난과 역경을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의 기회로 알고 인내하며 이겨내면서 끝내 자신의 능력을 기르며 나아가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만든다. “오직 주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 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이사야 40장 31절).
하나님은 자신의 과업(課業)을 누구에게 맡기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그에게 힘든 훈련의 과정을 먼저 거치도록 하여 감당할 능력을 기르신 연후에야 비로소 그를 들어서 사용하신다. 세상에 이런 힘든 훈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결실은 없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으니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섭리(攝理)중 하나이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홍자성은 ‘채근담(菜根譚)’에서 말하기를 “역경(逆境)에 처한 때에는 신변의 모든 것이 양약(良藥)이 되어, 절조(節操)나 행동이 모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닦아진다. 반면에 순경(順境)에 있을 때는 눈앞의 모든 것이 흉기(凶器)로 화하여 몸 전체의 기운이 빠져 나가도 깨닫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흔히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을 인용하곤 하는 데 지금의 고난과 역경이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우리를 유익하게 하려는 것일 수도 있으니 이를 명심하고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로지 진리를 사모하며 살아가자.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이르러 그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1631년(인조9년) 10월3일 백강 이경여 선생 등이 임금에게 상차(上箚)하기를, “임금이 두려워 할 것은 하늘뿐입니다. 하늘은 이치(理致)이니, 한 생각이 싹틀 때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의 일을 행할 때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면 천명(天命)이 계속 아름답게 내려지지만 하늘을 어기고 이치를 거스르면 그 천명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마음은 인자(仁慈)하여 차마 갑자기 끊어버리지 못하니, 반드시 재이(災異)를 내려 견책(譴責)한 뒤 흐리멍덩하게 깨닫지 못하여 끝내 고치지 않은 다음에야 크게 벌(罰)을 내리는 것입니다. ··· 하늘이 멸망시키거나 사랑하여 돕는 것은 공경과 불경(不敬), 정성과 불성(不誠)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천명은 일정함이 없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2024. 2.26. 素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