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4 특강
한국, CES 최고혁신상 35개 중 14개 차지 “자신감 가지되 자만해선 안 돼”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51호(2024.02.15)
주영섭
(기계공학74-78)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디지털·그린·문명 대전환의 시대
사람을 향한 기술로 혁신 꾀해야
“CES 최고혁신상은 정말 받기 어려운 상인데 35개 부문 중 14개 부문을 우리나라 기업이 차지했습니다. 정말 잘한 거죠. 그러나 자신감은 가지되 자만은 금물이에요. 한국이 세계 기술혁신을 주도한다? 이런 표현을 미디어에서 많이 쓰던데, 굉장히 호도하는 겁니다. 세계를 주도하는 테크기업, 애플·구글·아마존·테슬라 등은 참가조차 안 했어요. 국가 간 상대 비교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오판의 우려가 있습니다.”
관악경제인회가 2월 1일 더플라자호텔 4층에서 올해 첫 조찬포럼을 열었다. 이부섭(화학공학56-60) 회장, 이희범 (전자공학67-71) 명예회장, 서병륜(농 공69-73) 수석부회장, 조완규(생물48- 52)·오세정(물리71-75) 전 모교 총장 등 동문 7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포럼에서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가 ‘CES 2024를 통해 본 미래 패러다임 전환과 대응 방향’을 주제로 연단에 섰 다. 주영섭 동문은 모교 졸업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산업공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대오토넷 사장, 국가 과학기술심의회 미래성장동력 특별위원, 중소기업청장 등을 지냈다. 최근 10 여 년간 열린 CES를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일각에선 구글, 아마존이 참여했다고 오해하시는데 구글의 ‘헤이 구글’, 아마존의 ‘알렉사’ 같은 AI 어시스턴트를 이용해 다른 회사에서 만든 제품들을 모아 꾸린 부스예요. 이미 미국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전시회에 나갈 필요가 없는 거죠. 대신 직원들 쫙 풀어서 경쟁사의 기술 동향을 샅샅이 살핍니다. 반면 미국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삼성·LG·현대차 등 우리 기업은 열심히 참가하는 거고요.” 주 동문은 또 “CES는 제품 전시회가 아닌 기술 전시회, 서로의 기술을 선보이며 향후 협력 전략을 논의하는 곳”이라고 하면서 “물건 팔러 가는 곳이 아닌 데 얼마짜리 계약을 따냈다, 판매 실적을 얼마만큼 올렸다, 얘기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 꼬집었다. CES에 관한 여러 오해를 바로잡은 그는 작년 CES의 핵심 슬로건이 ‘인류 안보(Human Security For All)’였음을 상기시키면서 올해 CES의 핵심 슬로건 ‘All together, All on’을 ‘모두 함께 기술 혁신으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자’ 로 의역했다. “안전, 보장은 곧 위협, 불안을 전제합니다. 작년 CES에서 제시한 7가지 안전은 △식량 보장(Food Security) △건강관리(Access to Healthcare) △경제 안정(Economic Security) △환경 보호(Environmental Protection) △개인의 안전과 이동(Personal Safety & Mobility) △공동체의 안녕(Commu[1]nity Security) △정치적 자유(Political Freedom) 등이죠. 역으로 식량 증산이 인구 증가를 못 따라가 발생하는 굶주림과 제2의 코로나 같은 전염병에 대한 공포,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 기후위기 등을 배경에 깔고 있어요. 정치적 자유는 50여 년 전 유엔이 만든 걸 가져왔고 올해는 ‘기술에 대한 접근(Access to Technology)’을 추가했습니다. AI를 잘 알면 안전을, 모르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뜻이죠.” 이 8가지를 ‘Global Human Securi[1]ty’라고 정의한 주 동문은 “뒤에 이어지는 For All 또한 중요하다”며 인류가 존속하려면 포용성을 띠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8가지 안전 혹은 보장이 성별·인종·지위·계층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 활동 역시 “맹목적인 기술 혁신으론 협력 회사나 소비자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며 “그 기술 혁신으로 이러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뭔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조건 신기술이 주목받았던 CES에서 작년부터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똑같은 자율주행이었는데 BMW는 최첨단이었음에도 반응이 싸늘했고 농기계에 적용한 ‘존 디어(John Deere)’는 엄청난 찬사를 받았어요. 주가도 30% 뛰었고요. 보행자도 없고 다른 차도 없는 농지에서 자율주행이 뭐가 어렵겠습 니까? 농업 기술혁명으로 세계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포부가 마음을 울렸던 거죠. 이러한 관점과 사고의 변화가 절실합니다. 혁신을 위한 혁신이 아닌, 인류 안보를 위한 기술 혁신이 돼야 하는 거예요.” 화장품 회사 로레알은 이번 CES에서 ‘뷰티 포 이치(Beauty for Each)’를 표방했다. 자기 자신을 꾸며 아름다워지면 자신감,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데 착안해 이러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 손 없는 사람에게 립스틱을 발라주고 앞 못 보는 사람에게 매니큐어를 칠 해주는, 생성형 AI 기반 ‘뷰티 지니어스’를 시연했다. 주 동문은 이러한 기술이 과연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겠는가, 반문하면서 “모든 사람이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까닭에 감동을 주고, 이러한 포용성이 회사의 레벨을 끌어올린다” 며 “로레알은 더 이상 화장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다. 우리 기업도 빨리 기술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디지털 대전환’, 기후위기에서 비롯한 ‘그린 대전환’, 코로나 팬데믹·신냉전시대에 요구되는 ‘문명 대전환’까지 세계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그 대응으로 디지털화, 지속 가능성과 함께 저는 ‘협력’이 중요하다고 봐요. 한국은 지금까지 패스트 팔로우 전략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협력보단 경쟁에 익숙하죠. 그러나 퍼스트무버가 되려면 혼자서는 안 돼요. 설상가상 상호 신뢰조차 아직 많이 부족 합니다. 관악경제인회 회원 여러분들이 후배 경영인들과 함께 협력의 모범 사례를 많이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관악경제인회는 이날 참석한 동문 모두에게 주 동문의 공저 ‘산업 디지털 전환: 대전환 시대의 성공 요건’을 증정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