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에는 입가에 붙어있는 밥알도 무겁다"는 옛말은 어쩌면 이토록 시기적절한 표현인걸까!
복날이 아니더라도 더운 여름에는 몸의 진기가 다 빠져나가고 무기력해지는 것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손가락하나 까딱하기도 힘든 여름을 이겨내기위해 우리 조상들은 음식에 많은 신경을 썼다.
이 중에서도 임금이 많이 드셨던 건강음료로 제호탕(醍醐湯)이 있다. 오매육(烏梅肉), 사인(砂仁, 생강과 약초), 백단향(白檀香, 단향나무 줄기), 초과(草果, 생강과 식물) 등을 곱게 가루 내어 꿀에 재워 끓였다가 냉수에 타서 마시는 청량음료이다.
특히 왕실에서는 민가에서 구하기 힘든 타락, 즉 . 우유에 타서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제호탕은 더위를 풀어 주고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마르는 증상을 그치게 해준다고 전해지는 데, 기록 속의 처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오매육 굵게 간 것 1근을 따로 가루 내고, 초과 1량과 축사(縮砂)와 백단향(白檀香) 5전씩을 곱게 갈아서 꿀(煉蜜(연밀)) 5근에 넣고, 약간 달여서 도자기그릇에 저장해 두고 냉수에 타 먹는다. - 허준, 「동의보감」
제호탕은 그 재료가 귀해 임금이나 높은 관리들만이 마실 수 있었는데, 정조는 이를 수원화성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백성들에게 하사해 맛볼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근일의 찌는 듯한 더위는 근년에 처음 있는 일이고 어제 오늘의 따가운 햇볕은 근일에 처음 보는 일이다. 성을 쌓는 수고를 생각하면 자나깨나 먹을 때나 쉴 때나 매우 걱정이 된다. 전번에 더위 식히는 약(제호탕)을 준 것은 특별히 ᆢ (중략)‥ 비록 한 사람의 인부나 한 사람의 장인(匠人)이라도 혹 더위를 먹고 갈증이 난다면 이것이 성을 쌓는 일로 인하여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 정조실록
정조의 제호탕 하사는 백성을 아끼는 마음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조는 제호탕만 하사한 것이 아니라, "무더운 날에 부역에 종사하는 장인과 인부를 염려하다보니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마음을 고달프게 하는 단서가 되었다. "며 스스로 백성에대한 걱정의 마음을 여러차례 토로하였다.
성을 쌓는 공사장 중 돌을 뜨고 기와를 굽는 여러 곳에서는 뙤약볕 가운데 서있게 되므로 부역하는 일은 서늘한 기운이 생길 때까지 멈추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린기록도 정조실록 곳곳에서 확인 될 정도였다.
제호탕과 관련하여 오성과 한음 중 한음인 이덕형과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한음 이덕형(李德馨)이 영의정으로서 창덕궁 중수(重修)의 도제조(都提調)를 겸해 주야로 분주할 때였다.
본가에서 들여오는 먹거리로는 마땅치 않아서 대궐 가까이에 조그만 집을 마련하고 재주와 용모가 출중한 소실을 하나 두고, 때때로 잠깐 들러 쉬기도 하고 식사시간을 놓쳤을 때 식사도 하곤했다.
어느 여름날 더위에 허덕이며 소실 집에 들어섰는데 ,그 여인이 말도 꺼내기 전에 바로 자기가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던 제호탕을 가져왔다. 이덕형은 이를 받아 마시지 않고 첩을 쳐다보기만 하다가, 이윽고 "나는 너를 버릴 것이니, 다른 곳으로 가도 좋다" 하고는 나가 버렸다.
그녀는 갑자기 당하는 일에 밤새도록 슬피 울다가, 이덕형이 오성대감 이항복과 가장 친함을 알기에, 오성대감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고 상의하였다.
오성 이항복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궁금함에 이덕형을 찾아가서 애첩을 갑자기 쫓아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덕형은 웃으면서 말했다.
"어제 대궐에서 나왔는데 갈증이 몹시 심했습니다. 첩은 내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제호탕을 바쳤으니 어찌 총명하고 민첩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평소보다 더욱 어여뻐보였습니다.
스스로 대장부(大丈夫)라 하면서 미혹(迷惑)되어 여색(女色)에 점점 빠지면 국사를 그르치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그래서 은정(恩情)을 끊고 영영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무슨 허물이 있었겠습니까?"
이항복이 이덕형의 깊은 생각에 탄복하면서 "공이 행한 일은, 보통 사람들이 어렵게 여기는 일이며 나도 따르지 못할 일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는 기록이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적혀 전해지고 있다. 오늘 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일단 소실을 둔 행위 자체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더구나 내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사랑하는 이에게 그것을 이유로 이별을 고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아보인다. 그야말로 속이 꼬일대로 꼬인 꼰대에다가 즐겁게 사는 일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다.
하지만 성리학과 나라에대한 충성이 일생의 기준이었던 당시의 시대배경을 곱씹어보며 그저 역사 속의 일화로 재미있게 읽어보자면, 문득 궁금해진다.
도대체 제호탕은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는 음료였던 걸까?
저토록 도덕과 기준에 철저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절제하는 데 익숙한 이덕형조차 더운 여름날 퇴청하는 퇴근길에 마시고 싶어서 애가탔던 그 제호탕의 맛이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