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828)... 기능성 표시 ‘김치’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김장문화
겨울 김치의 제왕인 김장김치를 담그는 김장이 한창이다. 우리 집은 지난 11월 중순 토요일 오전에 아내(전 고려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와 둘째딸(가천대 식영과 교수)이 ‘해남 배추’ 40kg(16포기)을 구입하여 김장을 했다. 사위와 손자(中3)가 김장을 도왔으며, 필자는 김장이 끝나고 가족과 함께 갓 담근 배추김치를 수육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필자 가족은 마포 한 아파트의 21층에, 딸네는 5층에 거주하고 있다.
김장은 연례행사로 절인 배추에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등 기본양념을 넣고, 미나리, 부추, 갓 등 향신 채소를 첨가한다. 그리고 새우젓, 조기젓, 굴젓 등으로 풍미를 더해 잘 버무리면 김장김치가 완성된다. 김장김치의 깊고 오묘한 맛의 비결은 오랜 기간 숙성되고 곰삭은 것에서 나온다. 혹자는 김장김치는 철학이며, 인생의 맛이라고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지난 12월 2일 기준 4인 가족 김장 비용이 33만1356원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김장 비용인 30만5365원보다 8.5% 상승했다.
양념재료인 고춧가루, 대파, 생강 등은 올해 작황이 양호해 전년 대비 가격이 하락한 반면 주재료인 배추는 재배면적 감소와 무름병 피해로 공급량이 줄면서 가격이 상승했다. 이에 정부는 김장채소 수급안정과 소비자 부담 경감을 위해 배추, 깐마늘 등 김장 채소류의 공급을 확대하고 농축산물 할인쿠폰 행사를 지원하고 있다.
인간은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채소의 섭취가 필요한데 채소는 곡물과 달리 저장하기가 어렵다. 이에 채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장, 초, 향신료 등과 섞어서 새로운 맛과 향을 생성시키면서 저장하는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발된 우리 고유의 식품이 김치이다.
우리 민족은 소금에 절인 채소에 소금물을 붓거나 소금을 뿌림으로써 국물이 많은 김치를 만들었다. 이것이 숙성되면서 채소 속의 수분이 빠져나오고 채소 자체는 채소 국물에 침지(沈漬)되며, 국물이 많은 동치미는 채소가 국물 속에 침전된다. 여기서 우리의 고유 명칭인 ‘침채’가 생겨났다. 침채가 팀채가 되고 딤채로 변하고, 딤채는 구개음화하여 김채가 되고, 다시 구개음화의 역현상이 일어나서 ‘김치’가 되었다고 한다.
근대 및 현대의 김치 변화의 주된 요인은 김치 재료의 품종개량과 젓갈 및 조리법의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속이 꽉 찬 결구형 배추가 우리 식탁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정도이다. 배추가 김치의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배추의 품종 개량이 계속 이루어 졌다. 김치 재료의 하나인 젓갈도 요즘은 공장에서 생산한 김치용 액젓을 가정에서 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김치의 특성은 고추를 섞는 것이다. 고추의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capsaicin)과 고추에 함유되어 있는 비타민 E는 비타민 C의 산화를 막아주는 작용을 한다. 이에 긴 겨울 동안 부족 되기 쉬운 비타민 C를 김치를 통해 섭취할 수 있다. 또 캡사이신은 젓갈의 지방이 산패하여 비린내가 나는 것을 막아준다. 그리고 김치에 들어가는 고추와 마늘은 김치를 발효시키는 젖산균의 번식을 도와준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 메뉴인 ‘배추김치’는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춰 동맥경화와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 그리고 발효 효소와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장운동 촉진과 대장 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한입 크기로 먹기도 좋고 맛도 좋은 ‘깍두기’는 무에 들어있는 이소티오시아네이트(isothiocyanate) 성분은 항균, 항암 등의 항산화 작용을 한다.
지역(서울,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에 따른 김치의 종류 및 특성이 있다.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는 고춧가루를 적게 쓰는 백김치, 보쌈김치, 동치미 등이 유명하며, 영남지방은 짠 김치, 호남지방은 매운 김치가 특색이다. 젓갈로는 중부와 북부지방에서는 새우젓, 조기젓 등을 많이 쓰고, 남부지방에서는 멸치젓, 갈치젓 등을 많이 쓴다.
지난 12월 2일 국회 헌정회 앞 생생텃밭에서 열린 ‘김장 나눔 행사’에 우상호 생생텃밭 동호회장(국회의원), 박병석 국회의장,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등이 불우이웃 등에게 나눠줄 김장을 담았다. 국회 생생텃밭 동호회 회원들은 직접 단근 김장김치 1000포기를 취약계층 주민 등에게 전달했다.
우리나라의 김장은 2013년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 등재됐다. 정식명칭은 ‘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김장-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다.
유네스코는 김치가 한국에 수백 년간 전해 내려오는 음식일 뿐 아니라 한민족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을 형성해온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라는 데 주목했다. 김장 품앗이 등을 통해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해외 한인들 역시 김치와 김장문화를 지켜나가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소속감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자리에 많은 사람이 모여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김장 문화는 나눔의 정신과 연대감을 증대시킨다.
음식 관련 인류무형유산에는 프랑스 미식(프랑스, 2010년 지정), 지중해 요리(그리스, 스페인 등 4개국, 2010년), 멕시코 전통요리(멕시코, 2010년), 터키 제례음식 케시켁(터키, 2011년) 등이 우리나라 김치와 김장문화 보다 먼저 지정됐다. 일본의 와쇼쿠(和食)는 2013년 등재됐다.
일본 전통음식은 국내에서는 통칭 일식(日食)으로 불리지만 일본에서는 ‘와쇼쿠’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와쇼쿠는 다양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 재료가 갖고 있는 맛을 살려 균형 있고 건강한 식단을 만들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외교부와 문화재청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식문화인 ‘김장문화’의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유네스코 사무국 및 위원국들과의 접촉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김장문화’ 등재는 품격 있는 문화국가로서의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외국 사람들은 ‘김치’는 알지만 ‘김장’은 잘 모른다. 김치를 만들고 나눠주는 문화가 ‘김장문화’다. 이에 김치를 외국에 수출할 때 김치와 김장문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이야기하다)이 함께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1970년대만 해도 기업체에서 직원들에게 ‘김장 보너스’를 주기도 했다. 요즘 가족해체 시대에 식구들이 모두 참여하는 ‘김장문화’ 진작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2회 ‘김치의 날’ 기념식이 지난 11월 22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대한민국김치협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서 김치산업 발전에 공이 큰 4명에게 정부 포상이 수여됐다. 국내 최초 소포장 김치인 ‘꼬마김치’를 개발하고 올해 10개국에 160만 달러어치를 수출하는 등 김치 대중화와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로 백창기 한울 대표에게 산업포장을 수여했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은 기념사에서 “케이푸드(K-Food)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 김치의 산업적 육성을 위해 안정적인 원료 조달과 생산시설 관련 지원을 강화하고 김치 기능성 향상 등 김치 품질 제고를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또 “김치 수출 활성화와 국산 김치 자율표시제 확대를 통한 소비기반 확충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한편 민간과 협력체계를 더욱 단단히 해 김치 종주국의 위상 확립과 산업 활성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김치는 과학적으로 항암(抗癌), 항비만(抗肥滿) 등 건강 기능성이 밝혀졌으나, 건강기능식품에만 기능성 표시를 할 수 있도록 했던 제도에 막혀 기능성 표시에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일반식품 기능성 표시제’가 시행되면서 김치처럼 과학적 근거를 갖춘 일반식품에도 기능성 표시가 가능해졌다.
이에 세계김치연구소(소장 장해춘)는 중소 김치 제조업체인 뜨레찬에 기술을 지원해 프락토올리고당(oligofructose)이 함유된 배추김치를 개발했다. 프락토올리고당은 장내(腸內) 유익균(有益菌) 증식과 유해균(有害菌) 억제와 원활한 배변 활동에 도움을 주는 천연물질이다.
‘뜨레찬 배추김치’는 한국식품산업협회에 기능성 표시 식품으로 등록됐다. 기능성 표시 김치 1호 제품 출시는 국내 김치산업계의 의미 있는 진전이며, 많은 김치 제조업체에서 새로운 기능성 표시 김치를 출시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장(腸) 건강의 핵심은 장내 세균이다. 우리 인체에는 체중의 1-3%에 달하는 세균(細菌)이 살고 있다. 세균 중 95%는 장에 살고 있으며, 100조개가 넘는다. 장에는 음식물 소화와 흡수를 돕고 감염과 싸우는 유익균과 설사나 구토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유해균이 같이 살고 있다.
건강할 때는 이들 유익균이 유해균과 잘 싸우며 균형을 이루지만, 몸 상태가 나쁘면 이 균형이 깨지면서 설사 등 여러 질환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스트레스와 영양 불균형, 운동 부족 등이 유익균과 유해균의 균형을 깨뜨리고 궁극적으론 장내 면역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따라서 장을 건강하게 관리하려면 많은 유익균 수를 유지해야 한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soul food)’인 김치, 된장 등 유익균이 풍부한 발효 식품을 먹는 게 좋다.
김치가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꼽히는 비결은 발효(醱酵) 때문이다. 김치는 배추와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을 섞어 발효시켜 독특한 맛과 풍미를 낸다. 원래 재료에 없던 새로운 영양물질과 유산균(乳酸菌)이 가득하다. 우리나라가 ‘김치 종주국’ 자리를 지키기 위해 김치의 맛, 위생 등 식품 요건에 충실하고, 많은 건강 기능적 연구가 필요하다.
사진: “나눌수록 커지는 행복” 새마을운동 부녀회의 ‘사랑의 김장나누기’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The AsiaNㆍ시사주간 논설위원, The Jesus Times 논설고문) <청송건강칼럼(828) 2021.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