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不信)과 신심(信心)!
불교는 ‘믿음’의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覺]’의 종교라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법화경』에서는 믿음으로써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였으며
『화엄경』에서는 신위도원공덕모 장양일체제선근(信爲道源功德母 長養一切諸善根)이라 하였습니다.
즉 믿음은 도(道)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가 되어서 일체 선근을 길러준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 즉 신심이란
바로 결정심(決定心)이라고 「대승기신론」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진리다.’ ‘이것은 믿어도 되겠다.’라고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마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의 믿음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리하여 일단 확신이 서면 그 확신에 의한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화엄경』에서는 실천수행(實踐修行)의 단계로 신(信)․해(解)․행(行)․증(證)을 들고 있습니다.
즉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여 증득(證得)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조국사 지눌(知訥)은
‘믿음이 있으나 올바른 이해가 없으면 미신(迷信)이 되기 쉽고
이해(理解)는 있으나 참다운 믿음이 없으면 사견(邪見)이 되기 쉽다’고 하였고,
한편 원효 스님은
‘믿음이나 이해가 없이 실행만 하는 것은
마치 동쪽으로 가려는 사람이 방향을 착각하여 서쪽으로 가는 것과 같고,
믿음이나 이해만 있고 실행이 없는 사람은
마치 보물이 있는 장소는 알고 있으나 가서 가져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되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철저히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믿음이 견고해졌을 때 비로소 법(法)의 바다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믿음은 이토록 중요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은
만약 자기가 믿는 종교에 대하여 그것이 어떤 종교이든 간에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크게 의심해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많은 종교가 각기 그들 나름대로 진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그토록 여러 개의 진리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만약 존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여러 개의 종교 중 아무것이나 골라잡아 믿어 버리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개의 진리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면
오직 진리는 하나뿐일 것이며 그 이외는 모두 거짓 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를 처음 가지려는 사람들이 흔히 경험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과연 어느 것이 참 진리인가를 냉철하게 생각해 보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는 한번 갖게 되면 몸과 마음을 모두 던져 깊이 침잠(沈潛)해 들어가는 것이므로
실로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한 번쯤 의심(疑心)을 거쳐 이룬 신심(信心)이라면
더욱 견고하여 깨달음의 바다에 더 빨리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사위국 동남쪽에 큰 강이 있었습니다.
그 강가에 있는 오백여 마을 사람들은 아직 ‘도덕’이란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채,
남을 속이는 일로 업을 삼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그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그 강가의 나무 밑에 앉아 계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왔을 때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셨지만 아무도 믿는 이가 없었습니다.
마침 그때 강(江) 남쪽에서 강을 건너오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강물이 깊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발목밖에 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경탄하며 그 재주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강남에 사는 무지한 사람으로서
부처님이 여기 계신다는 말을 듣고, 오려고 했으나 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쪽 언덕 사람에게 물었더니 강물이 발목 깊이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냥 건너왔을 뿐 다른 재주는 없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들으시고 찬탄하셨습니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대개 믿음이 진실만 하다면 생사(生死)의 바다도 건널 수 있는데
하물며 얼마 되지 않는 그따위 강쯤이 무엇이 이상하겠는가?”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마음이 열리고, 믿음이 굳어져 갔다고 합니다.
한때 우리나라에 “진짜”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남의 말을 전해 들을 때나, 물건을 살 때
으레 “진짭니까?”하고 물어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물론 ‘가짜’에 어지간히 골탕들을 먹었던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남을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스스로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발로였던 것입니다.
하기야 자신도 가끔은 믿을 수 없을 때가 있는데
하물며 남을 믿는다는 게 어리석은 일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남을 믿어서 당하는 불행보다도 남을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행은
훨씬 더 근원적이며 고질적인 병폐(病廢)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믿음이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요, 일체 착한 것을 길러낸다고 하셨습니다.
불신(不信)과 신심(信心)!
그것은 똑같은 마음의 서로 다른 용입니다.
믿는 마음이란 지극한 마음이고, 강한 신뢰를 의미하며, 긍정적인 사고와 기대를 하고 있어
불가사의한 힘으로 작용하여 가시화되기도 합니다.
옛이야기 속의 지극 정성이 이룩한 갖가지 기적들을 우리는 옛날이야기로 일축해 버리고 말지만,
강한 믿음, 견고한 믿음의 불가사의한 힘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출처 : 법구비유경 독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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