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볼까요] 가톨릭 장례와 제례의 올바른 이해 (6)
1. 면례(緬禮)
면례는 무덤이나 봉안당의 유골을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실 때 지내는 예식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상장예식’ 326~373쪽의 기도를 바칩니다.
무덤을 열 때 노래하는 시편 117(118)편‧41(42)편‧92(93)편‧24(25)편‧118(119)편 등은 앞에서 해설했으므로
생략합니다.
유교 예서인 ‘상례비요’는 “古者改葬爲墳墓以佗故崩壞將亡失尸柩也世俗惑於風水之說有無故而遷葬者甚非也(옛적에 무덤을 옮겨 쓰는 것은,
분묘가 무너져 장차 시체를 담고 있는 널을 잃어버릴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었는데,
세상 풍속에는 풍수의 말에 혹하여 [합당한] 연고 없이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이가 있으니
심히 잘못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천주교 신자인데도 후손을 위한다는 미신에 현혹되어 멀쩡한 묘지를 옮기는 이는 꼭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2. 제례(祭禮)와 교회
명나라와 청나라를 복음화하는 데 크게 공헌한 예수회는 조상 숭배와 공자공경을 중국문화 의식으로 인정하고
효도와 존경의 표시로 관대하게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이런 행위를 천주교 교리에 어긋나는 미신적인 우상숭배로 보고,
교황청에 문제점을 제기해 의례 논쟁을 치열하게 전개했습니다.
결국 교회는 ‘중국 의례 금지칙령’을 반포하고, 청나라 정부는 천주교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중국교회는 박해에 시달렸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 뒤 교회의 조상 제사 금지 명령을 모르는 이들과 분명히 인식하고
제사의 신령(神靈) 흠향(欽香)을 비판하는 이들이 치열하게 논쟁하다가 북경 교회에 신주와 제사 문제를
문의했습니다.
교회의 엄중한 금령(禁令)을 확인한 조선교회는 윤지충과 권상연이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살라 시작된
박해로 타격을 받았지만, 교회는 인륜과 현세보다 천주 신앙과 내세를 강조했으므로
육신과 사회생활보다 영혼과 신앙생활을 중시했습니다.
천주교를 믿으면 조상제사를 거부해야 했고, 이 때문에 정부‧사회‧집안 등으로부터 박해받았습니다.
박해가 끝났어도 교회는 제사를 거행하고 도와주거나 제사음식 먹기 등을 십계명의 제1계명 위반으로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1932년 만주국이 공자 의례를 의무화해 신자들이 신앙의 위기에 처하자,
교황청이 1939년 ‘문화적 적응’이라며 공자참배를 허락하고, 고인의 시신‧영정‧위패에 절하는 것을 허용하는
‘중국 의례에 관한 훈령’을 공포했습니다.
한국교회는 1940년 “교회의 도리는 만세 불변하는 진리이며 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상제사에 대한
현대인의 정신이 변했기 때문에 용납하는 것에 불과하고…”라는 ‘조선 8교구 모든 감목의 교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용인(容認)한 제사를 신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끝난 뒤 새로[新] 복음을 듣고[聞] 신자가 된 신문교우(新聞敎友)들은 제사를 지냈겠지만,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구교우(舊敎友) 후손들은 “위령기도를 바치는 것보다 더 큰 효도는 없다”라는
굳은 믿음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았습니다.
3. Directorium Commune Missionum Coreae(한국 천주교 공용지도서)
1958년 한국교회는 상례와 제례에 관한 원칙을 발표하고 다음과 같은 것을 허용했습니다.
시신과 무덤, 죽은 이의 사진과 위패 앞에서 인사나 깊은 절, 엎드려 경의를 표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관습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민간의 존경 행위가 분명하므로 도입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로 인해 해(害)가 예상되면 새로 세례를 받았거나 예비신자들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바르게 알고 있기만 하면, 시신 곁이나 사진 앞에 음식을 차릴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에 의해 제사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 적어도 오늘날은 미신적으로 행해지지 않아야 하지만,
죽은 이에 대한 자녀의 효심이나 친구의 우정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자녀는 음식을 드리며 스스로 느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계시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이 음식상을 드릴 것이다.
그러나 이 잔치에 함께 할 수 없어 매우 슬프다. 그분의 영정과 위패 앞에 이 상을 봉헌하여
이러한 나의 고통과 자녀로서 사랑을 표하고자 한다.”
그러나 죽은 이의 입에 쌀을 넣는 반함(飯含), 혼령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저승 여행길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괴롭히지 않도록 죽은 이의 침대 앞에 신발과 세 그릇의 쌀을 놓아두는 사자(使者) 밥,
다시 돌아오도록 죽은 이의 영(靈)을 부르며 죽은 이의 집 지붕이나 그 끝에 죽은 이의 옷을 매달아 두는
초혼(招魂),
죽은 이 곁에 음식상을 차려놓고 죽은 이가 그의 저승 여행이 목적지에 이를 수 있도록 배불리 먹는 동안
문을 닫고 밖에 나가 있는 합문(闔門)과 유식(侑食), 이교인의 관습을 따라 기도문을 외우는 것[祝文] 등은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엄격하고 절대적으로 금지된다고 강조했습니다.
4.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른 종교문화에 대한 존중과 민족 복음화에 중대한 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사목회의 의안 4 전례’,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등을 펴내고, 이를 바탕으로 ‘선종봉사 예식서’, ‘상제례예식서 시안’과
‘가톨릭 상제례 토착화 시안’ 등을 편찬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확정적인 예식서가 나올 때까지 조상 제사 예식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풀어 주었고,
오랫동안 연구하고 논의한 결과를 집약한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 지침’과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을
주교회의가 승인함으로써 조상 제사가 교회 안에서 재해석되어 한국교회의 예식이 되었습니다.
‘상장예식’ 417~420쪽의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 지침’은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전통문화를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한국 천주교 제례의 의미를 조상 숭배의 개념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강조합니다.
비신자 가정에서 자라 나이가 들어 입교한 이를 위한 사목적 배려에서 조상의 기일, 명절에 지낼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므로 가정 제례보다 우선해 위령미사를 봉헌해야 합니다.
신위(神位)‧신주(神主)‧위패(位牌)‧지방(紙榜) 등은 조상 숭배를 연상시키므로 조상(고인)의 이름이나
사진 등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상장예식’ 421~436쪽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은 제사의 주요 부분을 가톨릭 정신으로 재해석하고
교회의 말씀 예절과 위령기도를 바치도록 한 것입니다.
가장의 제례 시작을 알리는 말씀, 성호경과 시작 성가, 가장이 바치는 기일 또는 명절 시작기도 등으로 시작합니다.
마태오복음 5장 1-12절을 비롯한 성경 말씀을 읽고, 가장이 조상(고인)을 회고하면서
가훈‧가풍‧유훈 등을 설명한 뒤에 신앙 안에서 성실히 살아가라고 권고하는 말씀 예절이 이어집니다.
분향하고 절한 뒤에 시편 제129(130)편‧50(51)편과 기일, 설이나 한가위에 바치는 기도,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등을 바치고 마침 성가, 성호경, 음식 나눔 등으로 마무리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2월호, 박명진 시몬(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 상장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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