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시간엔, 우리가 경험했던 '기적'에 대해 사유해 보았다.
기적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
둘째, 신이나 자연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불가사의한 일.
그렇다.
'기적'은 상상 할 수도 없었던 매우 놀랍고 불가사의한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부여하는 단어다.
그래서 'MIRACLE'은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니다.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다.
치열하고 혹독했던 한국전쟁 이후에 찾아온 평화와 재건의 시기, 그 당시엔 多産이 '시대적 요청'이었다.
이때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붐 세대' 또는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베이비부머들의 중간지점인 1960년도, 그 때의 시대상황을 예로 들어 한국의 '기적'을 설명해 보자.
우선 개인들의 삶의 지표를 보자면,
1960년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독은 79불이었다.
2018년도 연말에 3만1천불이 되었으니, 60년도 안 되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무려 380배가 커진 것이다.
'세계 석학들'은 어떤 경제학, 경영학의 이론으로도 이를 설명할 수 없노라고 했다.
모두 혀를 내둘렀다.
그야말로 '기적'이란 단어 외엔 수식할 문장이나 단어가 없다고 했다.
그 다음엔 국가적인 측면에서 살펴 보자.
같은 기간 세계의 평균 GDP는 7.5배 성장했다.
60여년 만에 7.5배는 매우 놀라운 수치라고 석학들은 이구동성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극동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은 같은 기간 동안 40배 성장했다.
학자들은 한국의 이런 말도 안되는 도약을 비교하거나 분석할 어떤 논리적인 프레임이 없어 평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들도 레포트 맨 마지막엔 딱 한 단어를 적었다.
'MIRACLE'이었다.
이 단어 외엔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고 했다.
인구 5천만 명 이상, 소득 3만 달러 이상을 진정한 富國으로 평가한다.
이것이 세상의 상식이며 기준이다.
'베네룩스 3국'이나 중동의 일부 '산유국'들처럼 소득이 4만불, 6만불이어도 인구가 너무 작거나,
'인도'나 '중국'처럼 어마어마한 인구를 갖고 있어도 국민소득이 형편 없다면 이 부국클럽엔 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17년도까지 이 부국클럽엔 6개 나라가 있었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태리' 그리고 '일본'이었다.
2018년도 연말에 드디어 '한국'이 7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작년 연말에 이를 자축하면서 가슴 뭉클했던 사람도 있었을 테고, 별 생각이나 감흥 없이 지나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작년 어느 송년모임에서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서, 가슴 먹먹한 건배사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전쟁으로 전국토가 폐허가 되었던 아주 작은 나라.
지도상에서 세계인들이 'KOREA'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그런 '국명'이나 그런 '민족'이 있기나 한 건지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
그런 땅콩만한 나라가 일궈낸 놀라운 불가사의를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하고 표현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기적'이라고 적었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전쟁 직후에 태어나 두 세대를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지금 은퇴를 하고 있다.
이들에게 '기적'은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렸던 '생활전선'이었고,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땀'이었고 '눈물'이었다.
'의지'였고 '도전'이었다.
가슴 먹먹한 '성공'이었고 '환희'였다.
신의 '축복'이었고 말 할 수 없는 '감사'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적' 다음엔 무엇이 있을까?
'기적 투', '기적 쓰리'가 있을까?
아니다.
'감사'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
'긍정', '만족', '배려', '베풂'이 있어야 한다.
신의 축복이 영속하기를 소망한다면, 또 다른 기적이나 더 높은 바벨탑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가끔씩은 주변도 살피며 나누고 섬기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한민국 '베이비부머들'은 이제 환갑 전후에 와 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가까이 해야 하고, 실천해야만 하는 삶의 모습들이 있다.
'여유', '포옹', '긍정', '사랑', '봉사' 등이다.
기적 다음에 더 큰 기적을 바란다고 광야에 길이 나고, 사막에 강이 생기는 건 아니다.
놀라운 축복과 불가사의한 성취 다음엔 '겸손'과 '감사'가 있어야 신도 기뻐하신다.
계속되는 축복은 그걸 잘 알고 실천하는 민족에게만 임재하는 신의 '숨은 뜻'이다.
국가도 개인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은퇴싯점까지 큰 탈없이 잘 살아왔다면,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축복'이었노라고 고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제2의 인생'은 그래야 한다.
더 많은 소유에 천착하지 말고, 나누고 섬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인생 후반전의 삶의 모습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 되었을 때 비로소 지극히 만족스런 얼굴로 눈을 감을 수 있으리라.
그리 살아야만 우리네 '귀천의 길'도 평화롭고 향기로울 듯하다.
우리네 소중한 일상, 단 하루라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잊지 않고 살아가시길.
이제 이 아침의 '큐티노트'를 덮는다.
모두 평안하시고 승리하시길 소망한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