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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하는 자
잠 21:25-31
25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26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푸느니라
27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28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
29 악인은 자기의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삼가느니라
30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21:26-31 / 사람들은 날마다 `좀더 모아야지, 좀더 잘 살아야지' 한다마는 바르게 살려는 이는 주고 또 주기만할 뿐 욕심 내어 모아들 생각은 하지 않는다. 27) 못된 짓만 일삼으며 남 짓누르고 착취하는 자들이 가져오는 제물도 여호와께서 신물나도록 역겨워하시거늘, 하물며 저지른 못된 짓 얼버무리려는 속셈으로 바치는 것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28) 거짓 증인은 거꾸러질 수밖에 없으나 진실을 밝히는 증인의 말에는 힘이 있다. 29) 못된 짓만 일삼으며 남 등치고 착취하는 자들은 뻔뻔스럽게도 얼굴을 쳐들고 다니나, 올곧게 사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길인지를 곰곰이 살펴본다. 30) 그 어떤 지혜로, 그 어떤 통찰력으로, 그 어떤 궁리로, 여호와를 거슬러 설 수 있으랴! 31) 전쟁에서 이기려고 제 아무리 군마를 수없이 준비해 두어도 전쟁의 승리는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을 뿐.
지혜는 내가 겸손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오는 세계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입니다. 이 통찰이 우리의 인생을 풍성하게 합니다. 잠언의 글쓴이는 대조의 형식으로 된 경구를 써서 우리를 깊은 통찰로 인도합니다.
의인은(25-26) 생존의 동기가 되는 욕망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욕망을 다루는 방식이 관건입니다. 게으름은 일하지 않고 욕망을 채우며, 편안한 삶을 누리려는 그릇된 삶의 태도입니다. 게으른 자는 욕망을 가지면 가질수록 무너지다가 마침내 죽게 됩니다(25). 자기가 원하는 것의 가짓수를 늘려 행복해지려는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소유를 무한정 늘려가는 방식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내가 복의 근원이며, 주는 것이 복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타인을 섬기고, 자신의 것을 베푸는 삶을 살면 어느새 행복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26).
악인은(27-29) 하나님께 제사하는 목적은 기복과 번영 추구, 죄책감의 감소, 마음의 평안 도모가 아닙니다. 제사는 하나님과 거래하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일도 아닙니다. 제사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에게 순종하기 위함입니다(27). 거짓 증인에 대한 잠언 가운데 하나입니다(19:5, 9, 28). 악인은 위증합니다. 위증은 거짓 증인을 패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의인은 본대로,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28). 악인은 자기의 악한 의도를 숨기기 위해 표정과 태도, 말을 꾸미고 감추는 일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하지만 의인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를 많이 씁니다. 두 사람의 우선순위가 이렇게 다릅니다(29).
여호와께(30-31)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지혜와 명철과 모략은 결코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에게서 나올 뿐 아니라, 하나님은 그것들 너머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혜의 근원인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할 일은 그저 순종뿐입니다(30). 어리석은 사람은 전쟁에서 “내게 마병이 얼마나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전쟁에서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를 성찰합니다. 우리는 지금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편에 서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승리가 우리의 것입니다.
적용: 당신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꺼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려는 열망이 모든 헛된 갈망을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知人者知, 自知者明,勝人者有力, 自勝自强.[지안자지, 자지자명, 승인자유력, 자승자강] 다른 사람을 잘 아는 사람은 지혜롭지만,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현명하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쎌 뿐이지만, 스스로를 이겨내는 사람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다.-도덕경.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려운 이유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나 반성하고 곱씹는 마음으로 나를 이해하도록 연구하고 허황된 욕망을 추구하지 않고 남의 것을 욕심내지 않도록 스스로 갈고 닦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 설 교 >
높은 정상에 이르는 승리의 삶
잠 21:28-31 / 고일성 목사
“폐달을 밟을 수 있도록 도와준 어머니와 팬들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이는 1990년도 아시아 경기 대회 사이클 부문에 처녀 출전하여 거푸 2개의 금메달을 따낸 ‘박민수’라는 선수의 말입니다. 한국 사이클 사상 2관왕이 탄생한 것은 1987년 방콕대회에서 이관선씨가 1km 개인 독주와 4km 출발에서 우승했을 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박민수 선수의 영광은 12년만의 쾌거였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야간대학에 진학했지만 공부에도 강한 집념을 보였고 원래 그는 체격이 적어 파워가 부족하지만 지구력과 엄청만 연습량으로 이를 극복하고, 막판 뒤집기에 능한 강인한 정신력으로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처칠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승리는 밝은 색깔의 아름다운 꽃이다”
어찌보면 우리는 매일같이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힘껏 싸워가며 길든지 짧든지 한 평생을 살아가는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네가 이기느냐?, 아니면 내가 이기느냐?’‘내가 앞서느냐? 아니면 네가 앞서느냐?.’‘네가 더 잘하느냐? 아니면 내가 더 잘하느냐?’의 기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세상은 어찌보면 투쟁과 싸움의 도장과도 같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고통과 환난과 그 무서운 핍박 가운데서 승리했고, 두려움과 절망과 사망의 어두움과 싸워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 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너희들도 나와 같이 세상을 이기는 자는 나와 함께 보좌에 앉게 하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사가 ‘토인비(Arnold Toynbee)는 “모든 도전에서 이겨내는 민족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인생은 모든 싸움에서 승리해야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는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했기 때문이요, 우리 몸이 건강한 것은 질병과의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은 적은 일이든 큰 일이든 이기면 승자로서 대접을 받지만, 지면 패배자가 되고 낙오자가 됩니다.
승자에게는 승자로서 누리는 면류관의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으나, 패자에게는 수모와 고통이 있고 후회가 있을 뿐입니다. 승자에게는 영광과 찬사가 있지만 패자에게는 수치와 고난과 비난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해야 합니다.
만일 승리와 성공이 없는 인생은 생의 보람과 기쁨이 없는 생활이 되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승리하는 자에게는 한없는 만족과 희열이 가득하고 찬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한 평생이 몇 년이 되든지. 혹 100세를 산다해도 일장춘몽, 잠깐인데 이왕이면 한 평생 평안하고 기쁘고 즐겁게 참되고 보람된 나날을 보낼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시간 그런 승리 생활의 길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기도는 승리생활의 열쇠입니다.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습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든지 비젼이 있어야 합니다.
비젼은 곧 이상이요, 꿈이요, 목표이며 삶의 방향입니다.
우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실천하는 길은 기도생활입니다. 즉 믿음를 가지고 기도하는 자가 승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의 고등 술책은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승리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1) 야곱입니다-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귀하게 여기는데 서부터 세상 생활에 풍요함을 얻은 자로서 마지막에 는 기도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는 얍복강변에서 하나님과 기도로 대결하기도 했습니다. 그 기도의 태도는 다급하고 진지했으며 마지막에는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매달렸습니다.
그 결과로 야곱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1) 인간성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이 잘사는 것 못사는것. 인간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맡겨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2) 생활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야곱의 과거는 거짓말로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삼촌까지 속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w니실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3) 신앙심이 달라졌고 이름도 달라졌습니다.
끈질길게 하나님께 매달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심을 알았으며 기도의 결과로 야곱이 아니라 이제‘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가 되었습니다.
(4) 형에 대한 감정이 달라졌고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형에 대한 증오와 감정을 해결해야 화목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깨달았기에, 지난 날에는 도망가는 그 였지만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 마음이 평안함.
2) 다니엘을 소개합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차례 고국을 향해 창문을 열어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 드리면서 반드시 그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믿고 기도했더니 그는 사자굴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믿고 기도드리면 승리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예나 지금이나 승리했습니다.
교회가 약한 것은 사람이 적어서나 경제력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기도에 중풍이 걸려 있을 때 약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크신 일을 이루실 때 주님의 힘만 가지고 하시지 않으시고 기도하시면서 일하셨으며, 십자가상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십시요. 주님은 깨어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가 승리의 비결입니다.
기도 드릴 때에 믿음에 바로 서게 되며, 하나님이 내 기도를 지금 들어 주시지 않는다 해도 내가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 계심을 믿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겠다고 하는 장한 모습이 나카나게 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낙관도 비관도 하지 말고 주의 도우심 속에서 장하게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나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1) 다니엘과 그의 친구 세 사람을 보십시요.
저들은 하나님이 현재 여기 계심을 믿었습니다.
저들이 재판받는 자리에도, 풀무불 속에도 현존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승리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
모든 조건과 환경까지도 초월하시는 하나님!
안계시는 곳이 없으시고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는 분이심을 믿는 그 믿음 안에서 참된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든지, 사업의 문제든지. 가정에 문제까지라도,사회와 국가의 문제까지라도 하나님께 맡기면 해결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맡겨버립시다.
우리의 형편만 보고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자기들의 할 일을 다하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와 같이 풀무불 같은 고난과 역경도 다 이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2) 모세를 보십시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났습니다
430년 동안이나 종살이 했으나 스스로 해방될 수는 없었습니다. 저들은 이제 해방이나 자유란 말은 상상도 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강한 자에게 눌러 사는 그것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강한 애굽에 도전한다는 것을 꿈에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저들을 이끌고 애굽을 떠났습니다.
개선가를 부르며 한참 신나게 가다 보니 홍해 바다가 저들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때 모세가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출14:16)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대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를 땅처럼 건넜는데 추격해 오던 애급의 군대들은 물속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저들은 이와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혹시 우리 앞에 있는 위기, 절망, 시험은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어려움이 변하여 감사의 조건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런 사실을 믿으시고, 힘들고 어려울 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길을 가는데는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서지 마십시요. 믿고 계속하여 나아가면 기적이 나타나실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이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저하지 말고 옳은 뜻을 정한대로 또 신앙의 확실한 목표대로 밀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실 때 새 역사가 일어납니다.
3. 승리의 비결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언제나 햇빛이 비치는 푸른 하늘과 장미 빛과 같은 아름다운 것만 약속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애가 아무런 문제도 없고 고난도 없는 안일한 생애를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더 많은 고난과 아품이 있고 역경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바르게 살려하면 친구들의 비난도 따릅니다.
때로는 배반을 당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성공하고 승리하기를 원하신다면 모든 고난과 문제를 인내함으로 뚫고 나아가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용기는 인내함으로 얻어집니다.
로마의 바티칸 궁전 베드로 성전의 천정을 올려다보면 거장‘미켈란젤로’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그림은 유명한“천지창조”의 그림입니다. 그 그림은‘미켈란젤로’가 중상모략을 당하여 많은 사람의 시기와 미움 가운데 천정에 매달려 그림을 그리도록 명령이 내려진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가능한 일을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함으로 세계적인 대작을 완성하였습니다.
1940년 영국이 히틀러의 침략을 당하여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당시 영국 수상이던‘처칠’경이 하원 연설에서 “나는 이나라에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 그 이외에는 바칠 것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오직 승리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승리요, 아무리 어렵고 험한 길이라도 승리를 쟁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승리가 없으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고난을 극복해야 하며,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합니다. 큰 일을 이루려면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이 필요합니다. 피와 눈물과 땀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액체중 가장 고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귀한 액채를 투자할 때 고귀한 댓가를 통하여 큰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피와 눈물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좋은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데 씨뿌리고 추수할 때까지는 1년이 걸려야 하며, 과수 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면 4-5년을 수고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더구나 인생에게 있어서 열매를 얻으려면 수 십년이 걸려야 합니다. 열매를 얻기까지는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신앙 안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며 참고 견디었습니다. 환경을 극복했습니다. 마음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가난과 굶주림도 견디었습니다. 불안과 초조함도 이겨야 했습니다.
그런 쓰디쓴 아품들을 믿음으로 참고 견디더니 그는 마침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었고, 믿음의 조상, 축복의 조상이 되어 인생의 승리자, 신앙의 승리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믿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잘 참고 견디므로 인생의 삶에서 성공하시고, 신앙의 삶에서도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4. 잊을 것은 잊고 버릴 것은 버려야 승리합니다.
잠언23장7절에“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라고 말했습니다. 승리는 그 마음의 자세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1) 성공과 승리의 중요한 자세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과거에 붙잡히고 과거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하고 승리하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이 나의 발목을 잡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생을 살면서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잊어버리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사람은 언제나 지난 일을 기억하고 거기에만 만족하면서 매달리는 삶이 아니라 자기의 부족함을 깨달으면서 회개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날마다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2) 과거에 잘한 것도 잊고, 실패도 잊고, 좋지 못한 감정도 잊어야 합니다.
과거에 잘한 것을 잊지 못하고 기억만 하면 잘못하면 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교만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과거에 실패했던 일에 대하여서도 너무 오랫동안 마음에 깊이 새겨둘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가 있고 죄가 있습니다. 우리가 실수와 죄를 잊어버려야지 과거에 붙잡혀 있는 사람은 전진하지 못하기에 성공도, 승리도 못하며 하나님의 영광도 드러내지 못합니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다 보면 좋지 못한 감정이 생길 때가 있는데 그런 것은 되도록이면 빨리 털어버려야 합니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섭섭한 마음을 오래 품고 있으면 승리자가 되지 못합니다. 또 후회의 감정에만 매달려 있으면 그 사람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억울하고 분한 감정에만 사로잡혀 있어도 승리하지 못합니다. 지난 날 실패했던 어떤 일이든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었던 나쁜 감정도 속히 잊어버려야 그의 앞에 성공과 승리와 축복이 있습니다. 사람이 복수심이나 용서하지 못하는 감정을 오래 품고 있으면 패배자가 됩니다. 성령은 앞을 바라보게 하고 마귀는 뒤를 바라보게 합니다.
5. 승리의 비결은 매사에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속담에“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7:16)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뿌리고 심은 것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될 것이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될 것이며,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성공과 승리는 절대로 우연이나 요행으로 이루어 지는 법은 없습니다. 반드시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습니다.
어떤 일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사용하게 되면 그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며, 순리도 아니며 잘못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감언이설이나, 권모술수나, 허위선전은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때가 되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누가 말하기를‘거짓은 몰락과 파괴에 이르는 불행의 길이요 진실은 성공과 승리에 이르는 영광의 태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해야 합니다.
‘링컨’대통령은“사람은 얼마만큼은 속일수도 있다. 또 모든 사람을 잠시동안은 속일수도 잇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평생을 통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슬픔을 견더내며 고통을 이겨내 위급한 사태를 만날 때마다 진실하고 충실했다고 합니다.
구약의 요셉은 진실한 사람이였습니다.
꿈에 본 것을 그대로 이야기 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가서 종 노릇을 했지만 자기일에 대하여 성실했고 그 마음은 진실했습니다.
자기 주인에게도 성실과 진실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의 진실한 행동 때문에 나중에는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더 잘 되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승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는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일 때문에 당하는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가난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진실이 이기고, 정의가 이기고, 양심이 이기고, 신앙이 이기는 승리의 날이 반드시 옵니다.
우리의 생활속에 수없이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직장과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의 생활과 영적인 삶에도 여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롭게 대처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주님 안에서의 성공과 승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이 잘 되었다고 교만하지도 말고. 무엇이 안되었다고 낙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서 기도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서 소망을 저버리지 말고, 잊을 것은 속히 잊어버리고, 버릴 것도 과감하게 버리고, 자기의 분수를 지킬 줄 알고, 진실함이 인생의 큰 재산임을 깨닫고 선을 쌓으며, 열심을 다하여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는 만족이 없습니다. 완성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나깨나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뒤를 따라 충성과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어 이 어두운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성공하시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잠 21장 30~31절 / 홍문수 목사
인생을 가리켜 흔히 전쟁에 비유합니다. 그만큼 경쟁도 심하고 고난도 많다는 뜻일 겁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무한경쟁시대’라고 불릴 만큼 살아가기 힘듭니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공부하고 학교 들어가는 것도 하도 어려우니까 ‘입시 전쟁’이라고 부르겠습니까? 이처럼 전쟁 마당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어쨌든 우리는 승리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만만치 않습니다.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전쟁 마당처럼 힘든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 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러면 쉽죠. 그냥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정말 그런가요? 노력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때로는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사람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열심히 노력하기도 어려운데 기껏 노력했는데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때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그 좌절감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겁니다.
이제 수능 시험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입시철이 되면 제 마음 속에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떠오릅니다. 고3 때 제 딴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 당시엔 예비고사와 본 고사가 실시되고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예비고사 치르고, 그 후 각 대학별로 본 고사를 치른 후 두 가지 점수를 합산해서 학생을 선발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예비고사 보는 날 시험장으로 가다 그만 기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길거리에 쓰러져서 전봇대를 의지하고 한참을 있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약국에 가서 드링크 하나 마시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머리가 도통 돌아가지 않아 계산하는 문제는 그냥 찍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해 다음 해에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신문에서 보던 일이 나 자신에게 벌어진 겁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히던지! 나중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 인생에 좋은 약이 됐지만, 당시로서는 정말 황당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최선을 다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성공은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복을 주시지 않으면 인간이 제 아무리 노력하고 재간을 부려도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전쟁 마당 같이 살벌한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성공하셨습니까? 다시 한번 점검하셔서 계속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혹시 지금까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습니까? 이제는 실패에 종지부를 찍고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본문 말씀 중심으로 승리의 비결 몇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1] 하나님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인정하십시오.
인간은 자기 인생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혜와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는 꼭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잘 되지 않는 겁니다.
본문 30절을 보면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혜, 명철, 모략 등 세 단어는 모두 비슷한 말로 성공을 위한 인간적인 노력이나 방법을 가리킵니다. 그것만으로는 인생을 승리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겁니다.
“뛰어 보았자 벼룩!”이란 말이 있습니다. 벼룩은 근육이 아주 발달되어서 자기 몸 길이의 200배를 뛴다고 합니다. 사람과 비교해 보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키가 누구나 1미터는 넘으니까 사람 길이의 200배라면 2백 미터 이상입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힘을 내서 펄쩍 뛰어보았자 얼마나 뛰겠습니까? 2미터 뛰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벼룩은 200배를 뛰니 굉장하죠? 그러나 워낙 벼룩이 작으니까 뛰어보았자 아무 것도 아니란 겁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재주가 있고, 능력과 지혜가 많다 해도 별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필패입니다! 시127:1~2 보면 뭐라고 말씀합니까?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아무리 인간이 노력하고 심지어 근면 성실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헛수고라는 겁니다.
그런데 간혹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성공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잘 보면 진짜 성공한 게 아닙니다. 눅12:16~20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오죠. 한 부자가 농사를 잘 지어서 소출이 풍성합니다. 창고가 좁아서 증축을 하고, 곡식과 물건으로 쌓아둡니다. 그리고 이제는 편히 쉬고 먹고 마시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으니 이제 여행이나 다니며 쉬겠다는 겁니다. 이 정도면 정말 성공한 거죠? 그러나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부자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눅12:20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 없이 성공한 사람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영원히 멸망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살았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앛ㅍ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관계없는 인생이 된 겁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화려하게 성공한 것 같이 보여도 구원 받지 못하면 진정한 성공은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 지옥에 가면 세상에서 가지고 누리던 모든 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그렇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성공한 겁니다. 구원 받아야 그 후에 무엇을 성취하든 말든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계속 지켜봐야 됩니다. 일시적으로 성공한 것 같아도 끝이 안 좋은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유명한 바벨탑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 홍수 이후 인류가 번성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이 힘을 합쳐 높은 성(city)과 대(tower)를 세웁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 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던 그들은 상관없이 홍수를 대비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들끼리 기울이는 모든 노력은 헛된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그들을 사방으로 흩어버리셨고, 그로 인해 언어가 혼잡케 됩니다. ‘바벨’이란 말이 바로 ‘혼잡’이란 뜻이죠. 이 사건 때문에 오늘날까지 우리가 외국어 공부하느라 고생고생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을 무시하는 인간은 끝에 가서 다 멸망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악한 자들이 형통하는 것을 봐도 결코 그것 때문에 부러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가 봐야 압니다. 시37:1~2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하나님이 없이 성공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신앙이 시작됩니다. 그런 마음 자세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 성공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2] 인생의 승부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인정하십시오.
인류의 역사와 인생 만사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믿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리켜 흔히 ‘하나님 절대 주권 신앙’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운행을 주관하십니다. 인류 역사도 주관하시고 통치하십니다. 개개인 인생의 생사화복도 직접 주관하십니다. 그런 사실을 그대로 확신하는 것이 곧 하나님 절대 주권 신앙인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능력과 노력도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승부를 위한 보조적인 요소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능력과 노력이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 조건이 좋다고 다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됩니다. 그래서 본문 31절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 ...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인생의 승부는 오직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인생은 풀리기 나름이다!” 그렇다고 요행만 바라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꼭 의식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가 복된 인생입니다. 시146:3~6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영국의 법무장관 데이빗 라미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나이가 지금 32세입니다. 대단하죠?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으면 정말 엄청납니다. 그는 흑인으로 22세 최연소 변호사가 됐고, 이어서 하원의원이 됐습니다. 그러면 그가 본래부터 가문도 좋고, 머리도 좋아서 그랬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런던 북부의 빈민가 출신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와 고생하며 살았습니다. 정부 보조금으로 겨우 연명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11세 때 동네 교회의 찬양대원으로 봉사할 때의 일입니다. 반듯하게 신앙생활하며 열심히 찬양하는 소년을 보고 한 미션 스쿨 책임자가 전액 장학금을 제의합니다. 그래서 공부하게 됐고, 런던 대학을 거쳐 하버드 대학에 유학까지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승승장구하게 된 겁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분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 자기 힘으로? 자기 노력으로? 아닙니다. 물론 자신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결정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은인을 만날 수 있었고, 결국 놀라운 일이 생긴 겁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을 만져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풀어주시고, 열어주셔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공부도 시켜주고, 여러 가지 뒷받침을 해줘야 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손이 그들의 인생을 만져줘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3] 세상의 성공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공법을 따르십시오.
하나님의 손에 인생의 승부가 달려있으므로 하나님이 제시하는 성공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공법은 의외로 단순하고 쉽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두 가지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는 것 :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인간의 노력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을 요구합니다.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 살면서 어려운 일을 만나도 결코 낙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과 한계는 넘어서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것이 남 보기에 크든 작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의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럴 때 살아계신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갈6:9) 힘을 보태 주십니다.
본문 31절 보면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 ” 이렇게 말씀합니다. 인생의 승부가 하나님에게 달려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인간적인 준비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고대 전쟁에서는 기동력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좋은 말을 확보하기 위해 애굽 등지에서 수입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 어차피 하나님이 승리케 해 주실 테니까 우리는 빈손으로 가도 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우리가 때때로 실망할 때가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정말 최선을 다하기 전까지는 아직 실망할 때가 아닙니다. 대개는 최선을 다해 보지도 않고 지레 겁먹고 낙심하고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곤란합니다. 도저히 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도전해야 됩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분이 있습니다.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 경입니다. 그의 청년 시절 에베레스트 산 정복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려오는 길에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산아, 너는 자라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라날 것이다. 나의 기술도, 나의 힘도, 나의 경험도, 나의 장비도 자라날 것이다. 나는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기어이 네 정상에 설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53년 5월 29일, 그는 다른 산악인 두 명과 함께 역사상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정복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 :
인간이 제아무리 노력을 해도, 제 아무리 능력을 갖추어도 역시 부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 전체가 암시하는 바가 바로 이겁니다. 다시 한번 다함께 읽어보시죠. 30절~31절.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큰 손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손은 조막손입니다. 조막손을 갖고 아무리 무얼 해보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큰 손이 도와주시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이런 원리를 터득하고 범사에 기도함으로 승리한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헨리에타 미어즈(신학자, 성경 교사)는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 CCC 총재였던 故 빌 브라이트 박사의 멘토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성경개론서에서 모세의 120년 생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120년을 40년씩 3단계로 나눌 수 있다는 겁니다. 모세는 이 3단계를 거치면서 원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1단계는 40세까지로, 이때는 그가 왕궁에서 지내던 시기입니다. 그는 애굽의 공주 아들로 최고의 학문과 권세를 누렸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 품 속에서 신앙을 배웠지만 아직 미숙한 신앙입니다. 그는 자신이 동족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대단한 인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I'm something.) 이때는 하나님이 그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미디안 광야로 가서 40년을 보내게 됩니다.
2단계는 80세까지입니다. 이때는 모세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시기입니다. 그는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닌 줄 알았습니다.(I'm nothing.) 이것도 불신앙이죠.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데 왜 자기기 아무 것도 아닙니까? 그가 80세 되던 해 하나님이 그를 부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 그러나 모세는 거부합니다.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라는 겁니다.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확신을 심어줍니다. 그가 갖고 있던 지팡이를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랬더니 뱀이 됩니다. 밴을 잡으라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이번에는 다시 지팡이가 됩니다. 그 지팡이를 주면서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지팡이가 갑자기 요술 지팡이로 변한 것은 아니죠. 다만 약속의 증표로 새로운 의미를 담게 된 겁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크게 역사해 주셔서 놀라운 기적과 이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대단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I'm something in God.) 이게 마지막 3단계입니다. 원숙한 신앙인이 된 겁니다.
그래서 모세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한번은 아말렉 족속과 전투를 벌일 때의 일입니다. 승산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대는 무장도 시원찮고, 동행하는 노약자나 어린 아이 등 민간인들을 챙겨야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승리했나요?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군대를 맡겨 전쟁터로 보냅니다. 그리고 자기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합니다. 희한하게도 기도를 할 때는 이스라엘이 이기다가 지쳐서 기도를 멈추면 집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아론과 훌이 옆에서 두 팔을 받쳐주고 함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파죽지세로 완전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승리 후 모세는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깃발’이란 뜻입니다. 하나님만이 승리의 근본이심을 고백한 겁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무디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미국에서 부흥의 역사를 일자 영국에까지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래서 초청을 받아 런던의 한 극장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득 모였는데 한 가운데 귀족과 왕족들이 죽 앉아있습니다. 무디는 잔뜩 긴장한 나머지 그만 성경봉독을 하면서 연거푸 몇 차례나 더듬거렸습니다. 그러자 청중들이 웅성거립니다. 더욱 당황하게 된 무디! 겨우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아말렉 전투에서 하나님이 백성을 대신하여 싸워주신 것처럼 이 강단에 서서 제 대신 말씀해 주세요!” 그때부터 담대하게 설교할 수 있었고,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나중에 청중 한 사람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 신앙생활 하면서 숱한 설교를 들었지만, 오늘만큼 큰 은혜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날의 설교는 인간 무디가 한 게 아닙니다. 무디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전쟁터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승리해야 됩니다. 우리는 충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시면 가능합니다. 승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죄와 사망, 그리고 원수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동시에 인생의 모든 질고와 고통을 이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리고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성공법으로 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게으른 자의 욕망
잠언 21:25~31
본문 25절입니다.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성경은 일하기 싫어하면 먹지도 말라고 합니다(살후3:10).
자기 손으로 일하기는 싫어하는데 돈을 많이 가지고 싶은 욕망으로
거짓말하고 사기 치면 결국 자기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경제구조는 복잡해서
게으른 것 같이 보이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부지런해 보이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돈을 적게 벌기도 합니다.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일하지 않고도 많이 버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종일토록 탐하고 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베풀며 사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입니다.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푼다고 합니다.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는 자는 25절과 연결하면 게으른데 욕망만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악인과 달리 의인은 아끼지 않고 베푼다고 합니다.
의인이 베풀려면 열심히 노력한 사람입니다.
부지런히 일하여 얻은 것을 자기를 위하여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 의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속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 아십니다.
예레미야 17:9~11절입니다.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종일 탐하기를 원하는 게으른 자가 남을 속여서 부를 취하고서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은 그 속을 다 살피시고 보응을 하신다고 합니다.
결국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재산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모든 인생의 삶의 영역에서 다 같은 원리입니다.
예레미야 17:5~8절입니다.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말씀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 받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시편 73편에서 시인은 이런 부조리한 현실로 인하여 고민하였습니다.
악인이 항상 평안하고 소득은 생각보다 더하여지고 죽을 때에 고통도 없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족할 것 같았는데 성전에 가서 그 결국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는 악인은 결국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과 연결하여 봐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7~8절입니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게으른 악인이 정욕을 채우려고 사기와 거짓으로 재물을 모은 것이 심판을 받지만,
악인이 부지런히 일하여 재물을 모은다고 하여도 그것이 썩어질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심는다는 것은 성령으로 영생을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의 것을 거두려면 부지런히 일하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내가 하나님의 일을 했으니
하나님이 물질적인 것을 많이 채워주시리라는 그런 생각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이란 썩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도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면 그 영생의 내용이 더욱 풍성하여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섞어서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 27절입니다.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은 더욱 가증한 것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25절과 26절에서 악인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악인들은 게으르면서 탐심은 가득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드리는 제물이 얼마나 가증하겠습니까? 그
러므로 하나님은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이 번 돈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런 것은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라고 합니다(신23:18).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은 더욱 가증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이 땅은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이 가장 큰 힘이 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교회가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세상은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을 합니다만 교회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개 같이 번 것을 가져 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벌든지 많이 헌금하면 많은 복을 받은 증거라고 하거나,
많이 바치면 많이 바친 만큼 더 물질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면 정말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를 사기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말에 아멘하면서 따라가는 자들도
자기의 정욕과 탐심에 사로잡힌 사람이기에 둘 다 가증한 것입니다.
악인이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선지서 세 곳의 말씀을 봅니다.
이사야 1:11~17절입니다.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절기를 지키면서 무수한 제물을 바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일들이 질린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책망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이 베풀어져야 할 나라에 긍휼은 없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학대하면서
제물을 바치는 것이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이들이 이렇게 절기를 지키고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이렇게 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였기에 드리는 이런 일이 가증한 일입니다.
예레미야 7:8~11절입니다.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평소의 삶은 바알숭배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전에 들어와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합니다.
이사야 1장과 연결하여 보면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며 많은 제물을 바칩니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자신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더욱 바알숭배를 하기 위하여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바알숭배란 풍요와 다산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을 바알의 신전으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이 도둑의 소굴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은 쫓아내시면서 예레미야의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악한 뜻으로 드리는 제물입니다.
아모스 8:4~6절입니다.
4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월삭과 안식일을 지키면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언제 안식일이 끝나서 사기로 장사하여 이익을 남길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한다고 합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는 관심도 없고 내가 주일을 성수하고 헌금을 하였으니
내가 하는 사업을 잘 되게 하여 주실 것이라는 마음으로 한다면
이것이 바로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과 거래할 수가 있겠습니까?
주가 주께 먼저 드림으로 갚음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과 거래하기 위하여 악한 의도로 무엇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증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게으르고 악한 자의 정욕은
신과 거래하여 한 몫 챙기려고 하는 것이 가증한 우상숭배이며
이러한 자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이며 이런 말을 따르는 자도 죽게 합니다.
본문 28절입니다.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다고 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참된 선지자들을 핍박을 받고
거짓 선지자들이 왕의 마음을 얻고 백성의 마음을 얻어 호의호식을 합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좋게 함으로 자기들의 배를 채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참된 선지자를 그럴 수가 없기에 바른 말씀을 선포하다가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거짓 증인은 망합니다. 그러나 확실히 들은 사람은 자기가 손해가 와도 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입니다.
악인은 자기의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삼가 한다고 합니다.
새 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악한 사람은 얼굴이 뻔뻔스러우나, 정직한 사람은 자기의 행실을 잘 살핀다.” 얼굴이 뻔뻔스럽다는 것을 철면피(鐵面皮)라고도 하고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도 합니다. 낯가죽이 쇠로 만든 것처럼 뻔뻔스럽고 두꺼워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조심해서 살펴보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살펴보기에 얼굴이 두꺼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본문 30절입니다.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새 번역입니다. “그 어떠한 지혜도, 명철도, 계략도, 주님을 대항하지 못한다.” 잠언에서 지혜와 명철과 모략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혜와 명철과 모략으로도 주님을 대항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세상의 어떠한 지혜로도 하나님을 헤아려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를 오히려 미련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은 측량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로마서 11:32~36절입니다.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풍성하신지 사람으로 전혀 헤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지키라고 주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신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가두어 두심으로 오직 긍휼을 베푸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의 모사가 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의 제물도 가증한데 악한 뜻으로 드리는 제물로 어떻게 갚으심을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만물이 주의 손에 있습니다.
본문 31절입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다고 합니다. 전쟁을 대비하여 군마를 준비하여도 승리는 오직 여호와께 달려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까?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야하는 것은 성도로서 지극히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것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 땅의 싸움을 위하여 예비하면서 살아도 그 승리는 주님께 있듯이, 그 날 주님 앞에 설날을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 이김도 주님께서 주신다고 합니다.
시편 33:10~22절입니다. “10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11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14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15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17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나라들 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꾀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을 호령하던 제국들이 다 무너졌습니다. 다니엘서에서 나오는 거대한 신상과 사나운 짐승으로 나오는 제국들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군대와 군마로 구원 얻는 왕이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스스로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힘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만하여 자기가 신이라고 하다가 망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18~22절을 봅니다. “1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19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20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21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함과 같이 성도는 그 날을 준비하면서 살아갑니다. 혈과 육의 준비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영원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0~58절입니다.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ㄷ)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ㄹ)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성도의 본질적인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주님의 일입니다. 주의 일이란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들입니다. 우리는 생명도 아니고 썩어질 일들을 위하여 수고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고하여도 거두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주님께서는 썩지 아니할 내용과 생명에 관한 것에 대하여 이김을 주시기에, 이러한 수고는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에 수고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자는 이미 은혜가 임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그 수고함으로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을 지금 여기서도 맛보고 누리도록 주님께서 그 이김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