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금블로그갔더니 업로드되어서 퍼왔어여
-
2007펜타포트: 하이라이트 & 비하인드
겨우 2년만에,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손익분기를 맞췄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렸던 축제였다. 60여 팀과 4만5천 관객이 7월 마지막 주의 송도를 찾았다. ‘신의 축복’이란 말을 쓸 수 있을 만큼 날씨마저 도왔다. 간 사람은 그리워하고 못 간 사람은 후회할만큼 뜨거운 시간이었다. 빛나던 3일의 잊지못할 순간들을 기록한다. 화려했던 무대 뒤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남겨본다. 글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ㅣ 사진 김작가, 아이예스컴
자정 무렵이었다. 메신저로 말을 거는 친구들은 온통 펜타포트 얘기였다. 기대와 설레임으로 온라인은 이미 들끓고 있다. 그 틈을 뚫고 누군가가 조용히 메시지를 보냈다. “데미언 라이스 취소라는군요.” 얼마 후, 펜타포트 공식홈페이지에 공지가 떴다. 그동안 한번도 공연을 취소해본 적은 없지만 무리한 스케줄로 건강에 위협을 느낀다는, 데미언 라이스의 친서가 공개됐다. 이 공지를 접한 언니들이 흘릴 눈물이 느껴졌다. 데미언 라이스 하나만 보면 된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는데 그들의 꿈을 꺾은 데미언 라이스였던 것이다. 몸이 아파도 무대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노래하는 게 뮤지션의 참된 자세이거늘 일정을 모두 취소하다니, 누가 ‘쌀’씨 아니랄까봐 참으로 좁쌀영감 같은 태도로군. 이런 생각들을 하며 자위해봤지만 소용은 없었다. 중년탐정 김전일 모드로 전환해서 후지록 페스티벌의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후지록 페스티벌은 펜타포트와 파트너쉽을 맺고 있는 페스티벌이다. 따라서 후지록에 서는 뮤지션중 데미언 라이스의 대타로 투입될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라인업을 살펴봤다. 그래그래, 첫 날 자비스 코커가 있고 요 라 탱고도 있군. 이들 중 누군가가 와준다면 꽤 위로가 될 것이야. 온갖 공상과 희망으로 새벽은 깊어갔다. 공연 비자를 하루만에 따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했던 부질없는 망상이었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잠은 오지 않았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Ok GO
하염없는 늦잠을 깨운 건 한 통의 전화였다. EMI의 관계자였다. 오케이 고 인터뷰를 할 생각이 있냐는 전화였다. 이건 생각의 문제가 아니다. 해야만 하는 것이다. 짐 따위, 하나도 챙기지 않고 노트북, 카메라만 들고 집을 나섰다. 태양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라는 아름다운 문장은 쓸 수 없는 폭염이었다. 작년 첫 날의 미친듯한 폭우에 비하면 천국이지만 공연보다가 쓰러지지는 않을까 하는 간사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미 서브무대인 펜타포트 스테이지에서는 공연이 시작했을 시간, 비로소 그렇게 인천으로 출발했다. 인천 차이나 타운 옆에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오케이 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명의 단발 청년과 두 명의 스킨헤드 청년으로 구성된 그들은 펜타포트 참가팀 중 가장 먼저 입국했던 사람들이다. 마침 스케줄이 비어서 공연을 4일 앞둔 23일에 한국에 도착한 것이다.
밴드의 보컬 데미언 쿨래시는 시카고의 코리아 타운에 산다. 당연히 교포들도 많이 알고 한국 음식에도 익숙하다. “코리아 타운의 한국 음식은 본토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라 단언하는 그는 작심하고 한국 관광을 즐길 자세였다. 입국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그의 손에 들려있던 론리 플래닛 서울편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첫날 밤 행선지는 코엑스 몰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로마로부터의 여행에 지쳐 모두 숙소에서 잠들어 있었다. 데미언도 피곤하긴 마찬가지, 하지만 그가 코엑스몰에 나타난 이유는 시차 적응을 위해서였다. 하루 평균 6시간 정도로 유지하는 수면 시간과 밤낮을 맞추려 코엑스몰로 향한 것이다. 그러나 코엑스몰의 밤은 대체로 한산하다. 대부분의 가게가 일찍 문을 닫는다. 심야영화관람 말고는 할 게 없다.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본 후 오케이 고의 한국 방문 첫 날 밤이 끝났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사고 싶다고 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구입한 카메라를 들고 오케이 고는 서울 이곳저곳을 누볐다. 인사동과 남대문, 비원과 청계천, 홍대앞까지 넉넉한 시을 두고 느긋이 여행을 즐겼다. 많은 소소한 일이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날은 마침 중복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보신탕을 먹는다는 말을 이미 들었던 모양이다. 멤버 모두 관심을 보였지만 역시 모두 개를 키우고 있는지라 먹지는 않았다. 몇 년전 내한했던 페이브먼트의 스티븐 말크머스가 도전 정신으로 보신탕 집을 방문해서 아주 맛있게 전골 한 그릇을 비웠던 걸 떠올리면, 역시 보신탕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가보다. 모든 여행자가 그렇듯, 그들도 보신탕 뿐 아니라 다른 한국 음식도 두루두루 훑었다. 일정상 먹지는 못했지만 데미언이 무척 먹고 싶어했던 건 맵디 매운 낙지였다. 시카고 코리안 타운에 북창동 낙지볶음 집을 내면 아마도 연신 땀을 닦아내면서 ‘hot! hot! hot!'을 외치는 데미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궁금해했던 보신탕과 먹고 싶었던 낚지 볶음 대신, 그가 먹은 건 멍게회였다. 인사동 궁중한정식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던 중 나온 요리였다. 데미언은 핫 소스(고추장)을 달라고 했다. 주방장은 말했다. “내추럴한 맛을 즐겨야지.” 아무것도 찍지 않은 생멍게를 먹은 후 데미언은 “disgusting"을 연발했다. 멍게를 그냥 먹다니, 누구라도 그럴 수 밖에. 불쌍하다 데미언.
베이스인 팀 노드윈드는 인사동 쇼핑도중 큰 우산을 하나 샀다. 펼치면 주지훈 사진이 나오는 우산이었다. 설마, 팀이 주지훈의 팬이란 말인가. 한류의 물결은 저 머나먼 시카고에서도 흐르고 있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주지훈 우산은 팀의 룸메이트를 위한 선물이었다. 참고로, 그의 룸메이트는 게이다. 목요일은 드러머인 댄 크노프카의 생일이었다. 이역만리타향길을 누비며 생일을 맞이한 그를 위해서 멤버들은 깜짝 파티를 준비했다. 파티 도중 나머지 멤버들이 사라졌다. 나타난 그들은 말 가면을 쓰고 있었다. 데미언이 남대문에서 사온 가면이었다. 말 가면을 쓰고 호텔안을 뛰어다니며 흥청망청, 그들은 파티를 즐겼다. 자고로 한국에선 이런 파티에 폭탄주가 빠질 수 없다. 그들을 위해 호텔바의 매니저는 소맥(소주+맥주)을 제조해줬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된 방식으로. 매니저가 소주잔을 꽂은 맥주잔에 냅킨을 덮고 탕, 내리친 후 생기는 회오리와 젖은 냅킨을 벽에 던지는 모습에 그들이 신기해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척, 그리고 척, 또 척, 벽에는 계속 냅킨이 달라붙어갔다.
그들은 다른 페스티벌에서 뮤즈를 만난 적이 있다. 뮤즈를 통해 오케이 고는 한국 관객들이 열광적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사실에 상상을 더하자면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을까.
오케이 고: 형들, 혹시 한국에 가본 적 있어? 뮤즈: 응, 3월에 갔었어 오케이 고: 한국, 어때? 우리가 일본은 간 적이 있는데, 거기랑 비슷한가? 뮤즈: 야, 고기는 일본이 맜있는 것 같은데 관객들은 한국이 진짜 죽여. 반응이...하여튼 엄청나. 가서 보면 알거야. 분명한 건 일본과는 달라. 하지만 말만으로는 알 수 없는 법. 관객들은 그들의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 대표적인 히트곡인 ‘Here It Goes Again'은 물론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1집 수록곡들을 할 때 조차 후렴구를 따라 부르고 소리를 질러대고 점프를 해대고...하여튼 난리도 아니었다. 그들은 또렷한 한국말로 “좋아! 가는거야!”를 계속해서 외쳐대며 노래하고 연주했다. 공연 전 어느 인터뷰에서 기자가 오케이 고라는 밴드 이름이 한국말로는 “좋아! 가는거야!”이며 노홍철이라는 개그맨이 자주 쓰던 유행어라는 사실을 전해듣고는, 계속 연습한 멘트였다. 그들은 심지어 관계자에게 노홍철이 그냥 웃기려고만 하는 개그맨이냐, 아니면 쿨한 사람이냐 물어보면서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결국은 아예 노홍철을 자신들의 무대에 세울 수는 없겠느냐고 궁금해했다. 비록 노홍철은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그가 급출연했을 때 나왔을 열기 이상의 그것이 본 공연이 끝나고 나서 솟아올랐다. 그들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동영상, ’Million Ways'의 뒷마당 댄스를 오케이고가 앵콜무대에서 재현한 것이다. 작심한 듯 겉옷까지 벗어 제끼고, 그들은 뮤직 비디오에서의 모습과 100% 똑같은 율동으로 객석을 혼수상태로 몰아갔다. 예정에는 없던 이벤트였다. 워낙 이 비디오로 주목을 받았던 탓에 그들은 어느 공연에서나 이 춤을 요구 받았다. 어느 순간 질리는 게 당연했다. 그들은 댄스 그룹이 아닌, 록 밴드가 아닌가. 그러나 한국 관객들이 공연 내내 보여줬던 놀라운 반응에 이들도 오랜만에 팬 서비스를 했다. 공연이 끝나고 데미언은 말했다. “나 너무 흥분해서, 노래하다가 가사 잊어먹었어.” 누적된 투어의 피로, 혼신의 힘을 다한 한국 공연에 그들은 탈진했다. 원래 케미컬 브라더스의 공연도 볼 예정이었지만, 15분 정도 지켜본 후 그들은 호텔로 향했다. 아마 다음 페스티벌에서 한국에 올 예정인 밴드를 만나면, 그들도 뮤즈와 같이 말해주리라. 어둠이 깊어졌다. 케미컬 브라더스를 위한 바로 그 시간이었다. 그들이 무대에 나오기도 전에, 객석에는 환호가 터졌다. 무대 뒤로 거대한 LED가 드리워지고, 우주선을 방불케하는 그들의 장비세트가 옮겨졌다. 기대감이 높아지고 케미컬 브라더스가 등장했다. 그 전에 어디선가 이런 말이 들려왔다. “이런 공연을 맨정신에 볼 수 있어? 약이라도 좀 해야하는 거 아닌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자 약 따위는 필요없었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무아지경이 밀려왔다. 약을 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그들의 음악만이 아니었다. 음악은 조명과 영상과 삼위일체를 이루며 그 큰 무대를 하나의 생명체로 만들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매트릭스였다. 케미컬 브라더스는 매트릭스의 조정석에 서서 자신들의 음원을 실시간으로 믹스해나갔다. 황홀은 쌓이고 또 쌓였다. LED위로 큰 나비들이 춤을 췄다. 그야말로 호접몽의 경지였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몸만 나비처럼 흔들렸을 뿐이다. 오르가즘으로의 프로파간다였다. 객석이 황홀경에 젖어있을 때, 케미컬 브라더스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앞에 있는 1만여명의 인파가 자기들 노래를 다 알고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오랜 시간 사람을 만나고 관찰하다보면 앞에 있는 남녀가 연인인지 지인인지를 직감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흥분했다. 케미컬 브라더스는 같은 사전 세트리스트로 진행됐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의 공연보다 더 오랜시간 플레이했다. 앵콜이 한 곡으로 예정되어있었지만, 세 곡이나 했던 탓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은 맨체스터인이다. 업된 기분 그대로 황량한 호텔로 들어갈 수야 없었다. 차안에서 그들은 “딱 한 시간만 마시겠다”며 근처 술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러나 그들이 마지막 술잔을 비운 시간은 새벽 다섯시였다. 그 동안 그들은 근처의 포장마차를 모두 들렀다. 맨체스터 출신다운 시끄러움으로 가는 곳 마다 오래 못버티고 쫓겨나야했기 때문이다. 기다리다 지친 운전기사가 결국 먼저 철수하거나 말거나, 케미컬 브라더스는 기대 이상의 폭발적 반응을 자축하며 잔을 비우고 밤을 지샜다. 맨체스터인답게 시끄럽게. 보았노라
둘째 날 모인 관객은 약 1만 5천. 그들 대부분이 기다린 건 아마 이 날의 헤드라이너였으리라. 라르캉시엘 말이다. 그들이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서는 그 어느 공연 보다 높은 소프라노 톤의 환호성이 울렸다. 여성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무대 뒤편에는 대형 LED가 설치됐고, 그 화면에는 보컬 하이도의 클로즈업이 잡혔다. 1969년생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는 청춘이었다. 그들의 공연은 가장 많은 실신 관객들을 낳았다. 100여명이 탈진해서 안전요원들에게 구조됐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라르크를 가까이 보고자 팬들은 앞쪽으로 압박에 압박을 거듭했다. 하이도가 무대 좌우로 움직일 때 마다 그들도 좌우로 쏠렸다. 군중의 물결이었다. 하이도는 냉면 매니아다. 그것도 함흥식 비빔냉면의 팬이다. 공연하기 전에도 먹었고, 공연을 끝내고도 먹었다. 그의 냉면에 대한 사랑은 공연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객석을 향해 “냉면 먹었어? 나 냉면 먹었어. 냉면먹고 건강해졌어.”라 외쳤다. 후문에 의하면, 그의 이런 멘트는 그저 농담이 아니다. 진짜로 냉면을 먹으면 하이도는 힘이 솟는다고 한다. 그러니 누가 알겠는가. 이 날 탈진해서 실려간 팬들도 함흥냉면을 먹으면 하이도만큼 건강해질지. 라르크의 공연이 끝났지만 페스티벌의 둘째날이 막을 내린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펜타포트 스테이지에서 진행된 그루브 세션에서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의 디제잉에 맞춰 주말밤을 불태웠다. 푸드바 곳곳은 술과 만남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곳 저곳에서 파티가 열렸고 작은 공연이 이어졌다. 음악으로 누리는 휴가였다. 이 순간만큼은 축제가 곧 일상이었다. 송도는 곧 홍대앞이요, 압구정동이자, 명동이었다. 날씨의 축복까지 받은 펜타포트는 마지막 하루를 남겨놓고 있었다. 여전히 좋은 하늘이었다. 적어도 날씨에 관한한 신의 축복이라도 과언이 아닌 삼일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원망스러운 부정확한 일기예보지만, 이 때는 일기오보가 그리도 좋을 수가 없었다. 장화와 우비도, 부채와 선크림도 필요없는 하늘 아래서, 2만 5천명이 일요일의 펜타포트를 찾았다. 어딜가나 사람이 북적였고 어딜가나 웃음이 넘쳤다. 아빠 무등을 타고 온 꼬마가 있었고, 손잡고 음악에서 사랑을 구하는 커플들이 넘쳐났다. 연예인들이 보였고 이곳에서 공연을 했던 뮤지션들도 도처에서 페스티벌의 마지막날을 즐기고 있었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가 없이 모두 어울려 걷고 앉고 누워있었다. 이미 공연에 집중하는 건 의미없어 보였다. 그 분위기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설레였다.
그 시간, 아티스트 전용 화장실 앞에는 누군가의 보디가드가 서있었다. 그는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 다른 화장실을 이용하라”며 막아섰다. 그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이는 바로 뮤즈의 보컬, 매튜 벨라미였다. 매튜는 예민한 성격으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 3월의 내한 공연 당시, 호텔 방 근처에 아무도 얼씬 못하게 했을만큼 민감하다. 사소한 생활 소음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보통, 그정도로 예민한 사람은 달고 다니는 병이 있다. 변비다. 그렇다. 객석에서 뮤즈를 기다리는 동안, 매튜는 화장실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그러나 감감무소식이었다. 숙소에서 출발할 때 먹고 나온 변비약은 시간이 지나도 효과가 없었다. 그는 보디가드를 통해 관장약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그 순간, 스텝들의 무전기에는 불이 났다. “관장약 없어? 관장약!” 아스피린이나 대일밴드 같은 응급상비약도 아니고, 관장약이 준비되어 있을 리가 없다. 어찌어찌 약을 구해서 화장실로 투입했다. 얼마 후, 매튜는 화장실에서 나와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그는 한국 관장약의 효과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이제 객석의 거센 부름에 화답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관장약의 효과가 너무 좋았던 것이다. 뱃속의 신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무대에 올라갔다가는 록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았다. 이번에 그가 찾은 건 지사제였다. 스탭 무전기엔 다시 한번 불이 났고 어디선가 지사제가 도착했다. 공연 내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한국 지사제도 매우 효과가 좋은가 보다. 약의 힘으로, 뮤즈는 무대에 올라갔다. ‘Knight of Cydonia'를 시작으로 그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공연이 끝났을 때, 스키조의 기타 주성민은 디카를 꼭 쥐고 무대 뒤편에 있었다. 뮤즈의 팬으로서, 사진이라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뮤즈가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는 시간도 감안, 그는 화장실에 갔다. 그 때였다. 주성민은 말한다. “변기 앞에 서서 지퍼를 내리는데 문이 열리면서 누가 딱 들어오는겁니다. 우와, 크리스하고 도미닉이데. 갸들이 내 옆에 서는 데 말은 붙여야겠고, 영어는 못하고. 그리고 괜히 오줌싸는데 말 걸면 또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계속 보던 일 봤죠. 크리스가 먼저 나가고, 그 다음에 나가서 도미닉을 기다렸어요.” 도미닉과 사진을 찍은 주성민은 내친김에 대기실 앞에서 매튜가 나오길 기다렸다. 아무리 예민한 매튜라도 일단 부딪혀 보자는 생각이었다. 매튜가 나왔다. 그는 흔쾌히 촬영에 응했다. 주성민과 같이 그를 기다리던 소년 팬이 있었다. 소년은 매튜에게 혹시 기타 피크를 하나 얻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매튜는 주머니를 뒤졌다. “미안한데, 아까 무대위에서 다 쓴 것 같아. 어쩌지?”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으로, 그는 계속 주머니를 뒤졌다. 아무리 예민한 매튜라지만 이렇게 멋진 공연을 마친 지금에야 선량한 영국 청년으로 돌아갈 수 밖에. 게다가 생리적인 문제도 어쨌든 큰 탈 없이 치루지 않았던가. 그들은 이런 말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저번 공연도 좋았지만 이번 공연은 너무나 훌륭했다. 다음 투어 때 꼭 올테니 그 때도 꼭 불러달라.” 뮤즈 뿐만 아니라 이번 펜타포트를 찾은 그 어떤 뮤지션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것이다. 관객들도 그런 마음으로, 일행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스테이지를 떠났다. 보이는 얼굴마다 행복을 넘어선 어떤 경이와 환희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총 4만명이 펜타포트 3일을 찾았다. 유료관객은 지난해에 비해 2배 증가했다. 그 기간동안 1376만 CC의 맥주와 14,190톤의 물이 소모됐다. 라르크와 뮤즈의 공연에서는 3600병의 물이 객석으로 투입됐다. 9만평의 공연장에 조명과 음향 장비를 제외하고도 16대의 대형 컨테이너와 10여대의 대형 트럭으로 공수된 설비와 물량이 투입됐다. 그러나 이 숫자들을 능가하는 우리의 후기와 사진과 동영상이 디지털 공간을 떠돌고 일년 내내 술자리의 화제거리가 될 것이다. 누군가는 뿌듯해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일년을 헛 산 느낌도 들 것이다. 땅을 치며 그 때 그 자리에 없었음을 후회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자유와 질서의 완벽한 공존이 사랑과 평화를 만들었다. 과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얘기다.
날이 흐렸다. 하지만 공기는 무겁지 않았다. 상쾌한 바람이 흘렀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페스티벌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헤비 사운드의 팬을 위한 라인업이었다. 바닐라 유니티, 자니 로얄, 스트라이커스, 69챔버스 등 하드코어와 펑크 밴드들이 집중배치된 날이었다. 두 메탈 레전드가 메인 무대에 등장했다. 한국 스래시 메탈의 대부 크래시, 그리고 크래시가 데뷔할 무렵, 메탈 키드들의 피를 끓게 했던 테스타먼트였다.
즐겼노라
한국 하드코어계의 동방신기, 바세린이 빅 탑 스테이지의 포문을 열며 생전 하드코어 공연을 본 적 없는 이들조차 사로잡았고, 한국 펑크의 기둥, 럭스는 천여명의 관객에게 때창을 이끌어내며 객석으로 몸을 날렸다. 누구하나 빠지지 않는 무대였다. 매스컴에서 음악이 사라진 지금, 펜타포트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뮤지션의 마음을 전할 절호의 찬스였다. 칼을 갈고 나오는 게 당연했다. 브라스 섹션과 스트링까지 동원, 9인조 체제로 무대에 선 더 멜로디는 그 시간에 진행되는 빅 탑 스테이지의 공연이 끝난 후 무대에 서려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그래야 보다 많은 사람들을 앞에 노고 공연을 시작할 수 있을테니까. 무대 감독이 재촉했다. “아, 왜 안올라가는데!” “아니 지금 보컬이 화장실에 가서...” 그 때, 절묘한 타이밍으로 보컬 타루가 생글생글 웃으며 나타났다. ‘조금만 더 끌면 되는데...’하며 올라간 그들에게 빅 탑 스테이지에서 공연하던 넬이 선물 비슷한 걸 했다. 그들의 예상보다 공연을 빨리 끝낸 것이다.
99년 트라이포트 페스티벌 이후 8년만에 한국을 찾은 애시의 무대가 끝난 후 크라잉 넛이 빅 탑 스테이지에 등장했다. 일도양단. 늘 절정에서야 터뜨리는 ‘말달리자’가 이 날은 첫 곡이었다. 인트로의 비트가 울리자마자 9만평의 행사장을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 빅 탑을 향해 맹렬히 달리기 시작했다. 일종의 반사작용이었다. ‘말달리자’라니, 누구나 다 알고 누구나 다 노래방에서 불렀던 노래 아닌가. 이만큼 크라잉 넛이 나타났다는 걸 잘 알릴 수 있는 노래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순간, 화장실에 있던 대학생 조하나씨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 뛰어가는데 맘은 급하지, 그래도 쉬는 싸야겠지. 냉큼 싸고 전속력으로 달려갔더랬죠.” 그런 모습들을 무대에서 지켜봤던 크라잉 넛이었다. 첫 곡이 끝나자마자 베이스 한경록은 외쳤다. “오늘, 분위기 짱인데!” 1년 365일 공연으로 전국을 누비는 그들이지만 또 어디서 이런 장관을 쉽게 만날 수 있었으랴. 2만의 인파가 오직 음악을 위해 일제히 모여있는 모습을. 해질 무렵 시작한 그들의 무대는 ‘밤이 깊었네’로 끝났다. 그 때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있었다. 펜타포트 화룡정점의 순간이 다가왔다. 뮤즈였다.
그러나, 예정 시각을 한 시간 넘기도록 용의 눈에 점을 찍을 주인공은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관객들은 쉬지 않고 ‘뮤즈! 뮤즈!’를 연호했다. 오직 뮤즈를 가까이서 보고자, 낮부터 맨 앞줄에서 자리잡고 기다렸던 사람들 중에서는 결국 지쳐서 실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세팅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몇 달전 런던 웸블리 구장에서 7만 5천명을 상대로 벌였던 콘서트의 음향과 영상 장비를 고스란히 가져온 그들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만도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임기응변을 발휘하던 케미컬 브라더스와는 달리 “우리를 케미컬 브라더스와 비교하지 말아라. 그들은 다 맨체스터 사람들이다. 우린 일하면서 술도 안먹어”라며 영국 남부 출신다운 꼼꼼함을 과시했던 뮤즈 캠프였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이 전부였을까.
뮤즈의 매니저는 보통 공연을 보지 않는다. 맨날 보는 공연이니 그럴 필요도 없다. 그는 대신 백스테이지에서 다음 투어 장소로 메일을 보낸다던가 하는 사무를 본다. 이 날도 그랬다. 그러나 일처리를 하던 도중, 몇 달 전의 웸블리 콘서트보다 더 큰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정도인가 싶어 무대로 갔을 때, 그의 눈에 펼쳐진 풍경은 ‘Starlight'에 맞춰 1-2-1-3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함성을 지르는 2만의 관객이었다. 그랬다. 무대에서 내뿜는 거대한 에너지 못지 않은 거대한 에너지가 무대 쪽으로 향했다. 둘은 서로 부딪히며 계속 기운을 높여갔다. 뮤즈는 그들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고, 관객들은 뮤즈가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열광의 화합을 만들어냈다. 환희와 열정이 이지러지고 뒤엉키며 생전 경험할 수 없었던 전율이 밀려왔다.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알 수도 없었다. 그곳은 주술의 공간이요, 음악의 자궁이었다. 객관도 주관도 없는 초현실의 경험이었다. 부지불식간에 목이 쉬어오고, 눈물이 흐르고, 껑충껑충 뛰고 있었다. 3일동안 쌓여왔던 근육통은 우주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가장 큰 싱얼롱이 울려 퍼졌던 곡은 ’Time Is Running Out‘이었다. 한 시간 반이 그렇게, 알 수 없이 지나갔다.
달리노라
펜타포트를 모델 삼아 내년부터는 상하이에도 록 페스티벌이 열린다. 그러면 한-중-일을 잇는 삼각형이 생긴다. 당연히 더 좋은 라인업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더 지명도 있는 팀을 부르기 위해서는 더 큰 음악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계속 음악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CD를 사야한다. 페스티벌의 열기와 반비례하는 음반 시장이 있기에, 이런 록 페스티벌이 한국에서 열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일 수도 있다. mp3만 주야장천 다운받아서는 보고 싶은 팀을 보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야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다. 하기도 듣기도 지겨운 이야기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다. 뮤직 비즈니스는 허상이다. 하지만 때론 정직하다. 중심에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음악이 있다면 반드시 그렇다. 음악을 위해 투자하면 음악은 종종 보답한다. 언젠가 후지록과 섬머소닉을 부러워하지 않을 그 날을 위해 달리자. 그 때까지, 닥치고 로큰롤!
프리미어 8월 3째주에 실렸던 기사의 원본.
책에 있는 기사보다는 꽤 길지요.
퍼 가실 때는 덧글 남겨주시는 센스~
첫댓글 이런 후기자료 목말라 있었어요!! 감사!!먼저 후감상ㅋ
met you님 안뇽 올라왔던 글이긴 한데 사진도 추가돼 있고 수정을 하셨다고 하니 무리는 없어보여용 뭣보다 손익분기점이 맞춰졌다고 하니 안심이 되네요 계약상 펜타 내년이 마지막인데 제발 끊기지 않았으면.. 우리 제발 음반을 삽시다 근데 맷 남팬하고 찍을 때도 좀 웃어
Ruke님도 안뇽~ㅎㅎ 매튜 조민혜? 그 인형녀랑 찍을때 입이 귀에 걸린거랑 비교되네요ㅋㅋㅋ 진짜 남녀차별함ㅋㅋㅋ 펜타 영원하길ㅠ_ㅠ
조민혜?랑 찍은 사진있냐규! 좀 보고 싶은데 ㅠㅠ..모야 매튜!!ㅠㅠ
이름을 확실히 모르는; 그 여성; 펜타때 아티스트 팔찌 차고 들어가서 매튜랑 찍었더라구요-_-+++ 사진은 악숭에서 봤어요ㅎㅎ
ㅋㅋ 그 조민혜랑 찍은 사진 봤어요.. 메튜 방긋 ㅋㅋ
엄마야..조민혜 싸이 갔는데 도미닉 하고도 찍었네여 ..캐부럽 ㅠㅠ
아티스트 팔찌를 차고 있길래 저여자 뭐냐고 막 그랬는데 크라잉넛 멤버 여친이라던데 그래서 아티스트 팔찌를 차고 있었나봐요 ㅡㅡ;; 그래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겠죠..
조민혜가 크라잉넛멤버 여친이라구요???누구??사귈만한사람이 업는데!!
친구면 스텝아닌감?
아 최고최고.. 내년까지 펜타기억으로 버틸꺼예요!!
읽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땀이.. 흥분 그 자체
와.. 감사합니다! 제 비공개 블로그에 담아두고 몰래 볼게요 ㅎㅎ
메튜 멋있다 자랑스럽다
내년엔 기필코 가리라.....
나도 냉면멋었쪄 오빠 ㅠㅠㅠㅠㅠㅠ
김작가님 상상을 잘못 하셨네 매튜가 바베큐 극찬한걸 모르시나봐요
감사합니다..퍼가용..
진짜 봐도봐도 흥분되긔ㅠㅠㅠㅠ 나도 내년까지 펜타추억하며 하루하루를 살거긔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