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歲寒圖)의 기구한 운명
세한도는 천하 명필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의 대표작이다.
건물을 중심으로,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주위는 텅 빈 여백이어서, 극도의 절제미를 보여준다.
거칠고 메마른 붓질을 한, 고목의 스산한 분위기는, 추운 겨울의 맑고 청결한 것을 나타낸다.
절제와 생략을 통해, 회화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화다.
세한도의 탄생
추사는 어떤 사화에 연류 되어,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 가고, 찾는 이가 없어 적막강산이더라!
그런데 중국에 사신으로 간 제자 이상적이, 선물과 함께 서책을 보내왔다.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던 추사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추사는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정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난 후에야, 소나무가 푸르다는 것을!
(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
세한도는 갈필(渴筆)과 검묵(儉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와 쌍벽을 이루는 백미(白眉)다.
풍채와 도량
김정희는 풍채가 뛰어나고 도량이 화평해서,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그러나 의리에 이르러서는 창끝 같아, 감히 막을 자가 없다.
이런 성격인지라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존경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경멸했다. 이것이 추사의 약점이다.
유홍준의 문화가 산책
추사는 글씨만으로도 그분의 풍채와 도량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엇갈린다.
말년에는 불운이 찾아왔는데, 그 불운이 오히려 불멸의 글씨를 남겼다.
기구한 운명
세한도는 민씨 일가의 소장품이었는데, 일본의 대학 교수,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세한도를 인수한 지 석 달 만에, 도쿄 대공습으로 화재가 일어나, 작품들은 모두 소진되었다.
그런데 비자나무 상자에 있던 세한도만 무사했다.
그리고 명필로 소문 난 손재형(孫在馨1902-1981)의 간곡한 부탁으로, 세한도는 한국으로 돌아았다.
손재형이 정치에 투신해서 재산을 탕진하자, 세한도를 사채업자에게 맡겼는데, 갚을 길이 없게 되자, 소유권을 포기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개성 출신 갑부, 손세기에게 들어갔다.
그리고 아들 손창근이 소유하고 있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손창근은 2024년 6월 17일 95세로 사망했다.
다른 기구한 운명.
주물 제지 등 조선의 앞선 문물을 전수하기 위해, 파견한 조선통신사 품목에, 신윤복의 고사인물도가 포함되어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서 197년 만에 돌아온 것인데!
오비이락인가? 악마의 저주인가?
손창근이 사망한 바로 그날. 미인도, 인왕제색도 등으로 유명한 신윤복의 고사인물도가 도난당했다.
양반 출신 신윤복이 문인화의 대가라면, 서민 출신 김홍도는 풍속화의 대가다.
첫댓글 지극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올려주신 정성이 가득한 훌륭하고 아름다우며 소중한 아주 멋진 좋은 작품 감명 깊게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