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라고 하면 사춘기 적에 읽었던 사랑의 체험수기가 떠오른다. 그 시절엔 읽을거리가 부족해서 갱생지에 펜팔할 수 있는 주소들이 적힌 삼류잡지나 체험수기만을 모아 따로 펴낸 책들도 촌구석에서는 귀했다. 그리고 그 때는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체험수기들은 제법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옥중수기라고 하여 감옥에서 일어난 일이나 감옥에서의 체험담을 담은 <야생초>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같은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옥중 체험수기가 아니라 옥중에서 직접 쓴 북한 공산주의 체험수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것도 성장소설형식의 장편소설이라 할 만큼 훌륭한 글솜씨를 자랑하고 있는 소설같은 수기이다.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했던 1960년대 지은이 김질락(가명 이영수)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다 친삼촌 김종태의 권유로 서울로 올라와 <청맥>의 주간이 되고, 통일혁명당 발기인이 되었으며, 학사주점을 운영하던 이문규와 같이 입북하여 북한의 실상을 보고 돌아온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두가지 관점에서 궁금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신이 믿는 사상을 위해 죽음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인간정신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어떻게 가능한가였고, 두번째는 그렇게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확고한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 어떤식으로 변화되었고 어떻게 새로운 생각이 가능한가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초반부는 성대했으나 그 마지막은 미약했다. 특히 북한을 다녀온 것으로 수기가 아쉽게 끝나버려 맥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북한의 실상을 직접 본 것을 계기로 사상의 직접적인 변화가 일어 났는지, 그렇다면 검거되기 전에 왜 자수하지 않았는지, 사형이 선고되고 난 후에야 살기위해 전향을 했는지 그런 이후의 애기가 빠져 있다. 그런 면에서 혹시 이런 반공 수기를 써야만 사형을 면할 수 있다는 유혹이 있었거나 예상치 못했던 사형집행때문에 북한을 나녀온 이 후의 이야기를 쓸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우리나라 근대사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 마음 한구석에 울분과 화가 치밀어 온전하게 사물들을 대면하고 있을 수 없다. 특히 815부터 625와 419사이는 차라리 외면하고 모른 척하는게 속편할 정도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망국과 동족간의 이념전쟁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그 흔한 노벨문학상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미약한 국력이나 언어의 장벽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살아야 할 사람은 다 죽어 버리고 죽어야 할 사람만 살아 남아서 부끄러움조차 사라져버린 이 땅에 무슨 의리가 살아 있고 무슨 진리가 남아 있겠는가. 요즘 세대는 공산주의 자체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불온서적이 있을 리 없고 주암산에 다녀온 어느 지식인의 죽음엔 더욱 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오로지 색과 욕과 술이 있을 뿐이다.
" 유물론적 변증법은 시간과 공간의 연관성에서 우연을 인정한다. 변증법의 기본 이론은 물질을 정의하되 물질을 물건이나 물체와 구별하고 모든 물체의 궁극적 구성인자를 물질이라 정의한다. 그것은 분명 인식론의 영역이며 과학은 아니다. 그들은 모순이 격화되면 투쟁의 상태가 일어난다는 유물론만 알았지 모순도 투쟁도 맥을 못추는 반야의 세계는 모른다. 무수상행식하고 무안이비설신의하며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하고 오장이 개공인 상태를 깨달을 만한 큰 지혜가 없다. 공산주의자들이 종교를 가리켜 아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종교가 현세적인 권위를 결코 영원을 지배하는 권위 위에 두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에는 사랑을 주고받고 사람을 용서해 주는 관용의 창구가 없다. 다만 지령의 창구가 있을 뿐이다. - 122P, 329P에서 발췌 - "
첫댓글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