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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밑의 글 중 제리 스택하우스가 워싱턴 시절 조던과 함께 뛰며 그에 대한 존경심이 일부 사라졌다는 인터뷰가 있어 이에 대해 반박글 정리하고자 합니다. 인터뷰의 요지는 "감독 덕 콜린스가 시카고 시절에 대해 미안해서인지 조던이 맘대로 하게 해줬다. 우린 초반에 좋은 시작을 했는데 내 위주로 오펜스가 돌아가서 조던이 맘에 안 들어해서 조던 위주로 더 아이솔레이션을 많이 하게 해줬다. 그것 때문에 그에 대한 존경심을 많이 잃었다" 정도입니다.
솔직히 제가 조던 팬이어서가 아니라 전혀 공감이 가지 않더군요. 립 해밀턴이면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유망한 선수였고 좋은 팀플레이어였으니까요. 근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리 스택하우스가? 이런 선수들이 하는 비판은 이해가 안 가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스택하우스의 말이 타당한지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봤습니다. 이름하여 "스택하우스, 니가??" 뭐 잘먹고 잘사는 스택하우스는 이런 거 있는지도 모르고 신경도 안 쓰겠지만 그냥 재미로 하는 거니까요 ㅎㅎ
일단 두가지를 짚고 가고 싶습니다.
1) 마이클 조던의 위저즈 시절엔 비판받을 요소가 있긴 하다.
제가 예전에 글을 통해 조던이 위저즈 시절에 얼마나 뛰어난 선수였는지 살펴본적이 있습니다. 당시 글의 요지는 01-02시즌 당시 조던은 수술이 필요한 큰 부상을 입기 전까지 46경기를 치르며 25점 6리바 5어시, 팀은 26승20패로 순항하고 있었다는 거죠.
또한 조던이 복귀하기 직전 19승을 거둔 위저즈는 조던이 뛰던 두 시즌 동안 각각 37승으로 거의 두배로 승수가 뛰었습니다.
그러나 조던팬인 제가 보기에도 위저즈 시절 조던은 비판받을 점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1- 팀케미스트리
이 점은 조던 탓만 할게 절대 아닙니다. 콰미 브라운은 이후 10년간 커리어에서 볼 수 있듯이 멘탈에 문제가 있는 선수들이었고 당시 위저즈의 젊은 선수들은 결코 좋은 팀메이트들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리더로서 조던의 책임은 결코 간과할 수 없죠. 또한 80년대 거친 환경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어린 동료들이 보기엔 지나치게 강압적이고 엄격한 면이 있었죠. 어찌됐건 팀의 케미스트리가 안 좋았던 건 리더로서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죠. 같은 논리로 감독 덕 콜린스도 비판받을 부분이고요.
2. 당장의 승리를 향한 집착
조던을 역대 최고의 선수로 만든 그 승부욕과 승리를 향한 집착이 위저즈 팀 자체로만 보면 어느 정도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이는 위의 이유와 연결되어 있는데, 그는 승리를 위해 동료들을 지나치게 몰아붙히곤 했습니다. 이 부분은 사실 "마이클 조던"이란 승부욕의 화신을 영입하면 당연히 예상했어야 되는 부분이고, 그에게 휘둘렸던 팀프런트와 코치진에 더 큰 책임이 있지만 조던 본인도 자유로울 수 없죠.
대표적인게 바로 제리 스택하우스-리처드 해밀턴 트래이드입니다. 개인적으로 당시 가능성이 보이던 해밀턴을 보내버린 것에는 큰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립이 좋은 선수기도 했지만 제가 볼 때 당시 28세이던 제리 스택하우스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선수였기 때문이었죠. 피펜 외에 득점을 어느 정도 하는 동료를 가져본 적이 없던 조던 입장에선 더 경험이 있고 완성된 스택하우스가 필요했겠지만 저는 해밀턴을 보내고 스택하우스를 데려온 게 득이 될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 제리 스택하우스란 어떤 선수인가?
개인적으로 (팬은 전혀 아니지만) 제리 스택하우스란 선수에 대해 거의 전 커리어를 지켜봤는데 드는 느낌은 그가 역대 하이스코어러 중 가장 효율이 낮은 선수란 것입니다. 일단 스택하우스는 커리어 통산 16.9점, 커리어에서 20점을 넘긴 시즌이 5번이나 될 정도로 뛰어난 스코어러입니다. 또한 그는 00-01시즌에 평균 29점을 올리며 리그 2위에 올랐습니다.
이건 엄청난 업적입니다. NBA는 빠른 페이스와 거친 피지컬의 80년대, 90년대 초반을 지나고 페이스가 점점 줄어들었고 90년대 중반부터 엄청난 로우페이스 농구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98파이널 당시 시카고 불스와 유타 재즈는 단 한경기도 100점을 못 넘겼고, 90점대 득점도 불스만 두 번 있을 정도였죠. 득점왕 조던이 28점대였습니다. 이 와중에 지역방어 허용으로 수비트렌드가 바뀌고 저득점트렌드가 이어졌습니다.
이후 04-05시즌을 앞두고 2차 핸드체킹룰 개정이 이뤄지면서 외곽선수들의 개인득점이 오르기 시작합니다만, 그전까지 00년대 들어서 스택의 이 스탯보다 높은 득점을 올린 선수는 00년의 샤킬 오닐(29.7점), 01년의 앨런 아이버슨 (31.1점), 02년의 아이버슨(31.4점), 03시즌의 트레이시 맥그레디(32.1점), 코비 브라이언트(30점), 04시즌엔 아예 없고 05시즌의 아이버슨(30.7점) 뿐이었습니다.
스택하우스는 분명 좋은 득점원이었습니다. 허나 개인적으로 느낀 점엔 그의 스탯에 다소 거품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스택은 필드골 성공률 45%를 넘긴 시즌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커리어 통산 40.9%, 3할대 시즌도 5번이나 있습니다. (2할대 시즌 두번은 10경기와 7경기만 뛴 시즌이니 빼겠습니다). 29점을 넣을 때 그의 야투율은 40.2%였고 이 시즌 디트로이트는 32승을 기록했습니다.
게다가 스택이 29점을 기록한 임팩트가 큰지 "29점을 넣는 선수가 조던과 공격권 나눠먹느라 21점에 그쳤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는 원래 29점대 스코어러는 아니었습니다. 스택하우스 커리어에서 가장 높은 득점은 29점 다음에 23.6점 (야투 42.8%), 21.5점 (40.9%), 21.4점(39.7%), 20.7점 (40.7%)... 그리고 저 커리어에서 세번째로 높은 득점인 21.5점은 바로 위저즈 시절에 올린 것입니다.
99-00시즌 당시 디트로이트는 리그 4위의 빠른 페이스로 리그 2위의 고득점을 올리던 팀이었는데 이 팀에서 공격을 담당하던 선수들이 바로 25.8점을 올리는 그랜트 힐과 23.6점을 올리던 스택하우스였습니다. 대신 수비는 상대편 득점이 꼴찌에서 4번째일 정도로 공격으로 먹고사는 팀이었죠.
01시즌에 앨빈 젠트리 코치와 에이스 그랜트 힐이 떠난 피스톤즈에서는 시즌 중반에 트래이드되어온 콜리스 윌리엄슨이 15.2점, 그 다음으론 조 스미스가 12.3점일 정도로 득점할 선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팀에서 공격권을 마음껏 쓴 (야투 시도 24.1개) 스택하우스가 40% 갓 넘는 성공률로 29점을 올린 거죠.
그 다음 피스톤즈는 릭 칼라일 감독과 그랜트 힐 트래이드 당시에서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거듭난 벤 월러스를 중심으로 한 좋은 수비팀으로 거듭납니다. 오펜스 레이팅 12위, 디펜스 레이팅 8위의 균형잡힌 좋은 팀이었죠. 근데 팀 전력과 별개로 당시 디트는 공격권을 많이 쓰는 선수가 거의 없었습니다. 스택하우스가 1위로 21.4점, 득점 2위가 노장 클리포드 로빈슨으로 14.6점이었죠.
즉, 스택하우스의 29점은 원맨팀에서 원없이 공격하던 여파로 인한 인플레일 뿐 원래는 21~23점 사이 넣는 선수였다는 겁니다. 그것도 효율적인 것도 아니었고요.
공격권은 어떨까요? 스택하우스는 29점 시절 야투 24.1개를 던진 걸 제외하면 00시즌 17.6개, 02시즌 17.4개, 03시즌(위저즈) 17.2개가 커리어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즉, 02-03시즌 당시 스택하우스는 바로 직전 시즌에 자기를 제외하면 14개 이상 야투를 던지는 선수가 하나도 없던 피스톤즈에서 던지던 것 (17.4개)랑 거의 비슷하게 공격권을 썼던 겁니다. 그것도 20점 이상 넣는 조던과 공격권을 나눠가지면서요.
이럼에도 위저즈가 조던 위주로 가느라 스택하우스가 손해를 본 걸까요?
물론 저 기사에서 언급된대로 02-03시즌 당시 조던은 야투 18.6개, 스택하우스는 17.2개를 쐈습니다. 그런데 스택하우스의 야투율은 40.9%, 조던은 44.5%였어요. 일단 당시 조던은 스택하우스보다 더 좋은 선수였습니다. 득점원툴에 가까운 그와 달리 리딩도 됐고, 공격창출 능력이 있는 선수였습니다.
근데 제 개인적인 체감으로 당시 스택하우스를 제쳐두고 조던에게 공격권을 몰아주는 것도 아니었다는 거죠.
일단 당시 게임로그를 살펴보며 스탯상으로 이들이 어땠는지 살펴봅시다.
3) 02-03시즌 당시 스택하우스와 조던
일단 구간별로 이들의 성적, 공격권을 살펴보겠습니다.
1~15경기
첫 구간은 첫경기부터 15경기까지입니다. 이걸 분리하는 이유는 조던은 전 시즌 당한 무릎부상의 여파+벤치강화의 일환으로 시즌초반을 벤치에서 출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동안 스택은 야투 17개를 던지며 야투율 40%로 21.9%, 조던은 야투 14.6개를 던지며 야투율 46.6%로 16.4점을 기록합니다. 일단 출장시간부터가 조던은 28.3분, 스택은 39.7분으로 10분 넘게 차이나니 당연히 스택의 야투가 더 많습니다.
이 기간동안 워싱턴은 6승9패를 기록합니다.
16번째 경기에 조던이 처음으로 주전으로 올라섭니다. 첫 주전 출장경기에서 위저즈는 패배하지만 이어 13승 9패를 기록합니다. 이 중에는 스퍼스-불스-페이서스-셀틱스-불스를 상대로 한 5연승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간동안 스택은 1옵션으로 17.6개 야투를 43.4%로 던져 23점을, 조던은 17.1개 야투를 42.4%로 던져 18.4점을 기록합니다.
시즌초반부터 하면 첫 37경기동안 19승 16패입니다. 아마 스택하우스가 "초반에 잘나갔다"고 하는게 이 걸 의미하는 것 같네요. 보면 확실히 1옵션 스택하우스, 2옵션 조던이지만 팀성적으로 보면 스택하우스 원톱이고 조던이 벤치 출장하던 15경기동안은 5할 이하, 조던이 주전으로 올라온 이후 성적이 좋아집니다. 오히려 스택하우스를 위주로 잘 나간게 아니라 조던이 선발로 올라온 이후 분위기를 탄 것처럼 보이네요.
이후 스택하우스가 결장한 네경기에서 위저즈는 2승2패, 조던은 야투 23.8개를 던져서 43.2%로 평균 26점을 기록합니다.
스택하우스가 돌아온 42~47번째까지 6경기동안 스택은 야투 18.7개를 던져 41.1%로 22.5점을 기록합니다. 같은 기간에 조던은 야투 17.8개를 던져 42.1%로 16.2점을 기록합니다.
위저즈는 1승5패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5경기동안 스택의 결장, 조던은 22.8개를 41.2%로 넣으며 23.6점을 넣습니다.
위저즈는 3승 2패고요.
53~62경기째 구간
: 스택하우스는 야투 16.2개를 던져 39.5%를 넣으며 20.3점을 넣고, 조던은 21.8개를 던져 45.4%로 23.2점을 넣습니다 --> 조던이 야투를 더 많이 시도한 첫 구간입니다.
위저즈는 5승5패를 기록했습니다.
63~72구간
스택하우스는 17.7개를 던져 41.2%로 21.6점을 넣습니다. 조던은 19.7개를 던져 48.7%로 23.1점을 넣습니다. --->조던이 야투를 더 많이 시도한 두번째 구간입니다.
위저즈는 4승6패입니다.
두 선수가 마지막으로 같이 뛴 73경기에서 78경기까지 구간입니다. 스택하우스는 야투 16.8개를 던져 35.6%로 19.2점을 넣고, 조던은 20.2개를 던져 45.5%로 21.7점을 넣습니다. -----> 조던이 야투를 더 많이 시도한 세번째 구단입니다.
위저즌는 2승4패고요.
스택은 시즌 마지막 네 경기 중 3경기를 결장했는데 여기서 위저즈는 1승2패, 스택이 잠깐 뛴 닉스전에서 패배합니다. 닉스전에서 스택의 스탯은 미미하니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요, 이 세경기에서 조던은 야투 19개를 던져 43.9%로 평균 19점을 기록합니다.
* 종합
- 스택하우스는 초반만 공격기회를 얻은게 아니라 올스타브레이크 이전까지 꾸준히 조던보다 많은 야투기회를 얻었습니다. 조던이 선발로 올라온 이후에도 전반기에는 스택하우스가 계속해서 조던보다 더 야투를 던집니다.
그런데도 조던의 야투시도수가 스택하우스보다 더 높게 나온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스택하우스 결장기간에서 조던은 공격을 많이 했다.
해당 시즌에 조던은 전경기 출장, 스택하우스는 12경기를 결장했는데, 12경기동안 조던은 평균 22.2개의 야투를 던졌습니다. 총 266개의 야투를 던져 113개를 성공, 42.5%의 야투율을 기록했죠.
스택하우스가 뛰지 않는 동안 위저즈는 6승6패, 정확히 5할을 기록합니다.
2) 시즌 후반부에 스택하우스가 부진하는 동안 조던이 야투를 많이 던졌다.
위에 나와있지만 53경기째부터 스택하우스는 16.2~17.7개 사이의 야투를 던졌으나 야투율이 35.6%에서 41.2%를 오갔습니다. 이 기간동안 조던은 45.4%에서 48.7%를 오갑니다.
53경기째부터 종료때까지 하면 스택은 야투 16.6개를 39.1%의 확률로 던지며 20점을, 조던은 야투 20.5개를 46.2%의 확률로 던지며 22.4점을 넣습니다.
즉, 스택이 부상으로 나오지 않을때를 제외하면, 혹은 시즌 중반 이후부터 그가 부진해서 야투율이 3할대로 떨어지기 전까지 스택하우스는 계속 조던보다 더 많은 야투를 던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택은 전체적으로 조던보다 낮은 야투율을 기록했습니다.
흐름을 보면 스택하우스가 잘함에도 불구하고 조던이 탐욕 때문에 본인의 비중을 늘리라고 주문한게 아니고, 오히려 스택하우스가 부진하자 조던이 슛을 많이 쏴서 팀을 캐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조던과 스택하우스가 동반 출전하던 구간 중 조던이 야투를 가장 많이 쏜 구간은 53~62경기째, 그리고 73~78경기째 구간입니다. 이 구간동안 스택하우스는 둘 다 3할대 야투율에 그쳤으며 조던은 45, 48%를 기록했습니다.
그 중간에 스택이 약간 야투율을 회복하자 스택의 야투 시도수는 평년치만큼 올라갔고, 조던은 야투 갯수를 두개나 줄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조던이 스택의 기회를 빼앗긴 커녕 오히려 스택이 공격에서 부진할 때는 되도록 1옵션 취급을 해준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위저즈는 선수단이 젊고 기복이 심했습니다. 이에 따라 01-02시즌, 02-03시즌 모두 중반까지 플옵권에 있다가 막판에 헤메서 플옵 막차를 간발의 차로 놓치곤 했죠. 위저즈가 플옵에 실패한 것은 이 팀이 실력이 안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조던, 스택하우스 다음으로 득점이 높은 선수는 래리 휴즈, 12.8점이고 나머지는 전부 한자리수 득점원입니다.
팀 전력 면에서 보면 조던은 위저즈에 엄청난 플러스 요소가 됐습니다. 동네북 팀이 그의 입단 직후 플옵컨텐더까지 올라갔죠. (19승->37승)
무엇보다 제리 스택하우스는 위저즈 시절만큼이라도 공격기회를 많이 얻은 적이 커리어에서 손꼽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많이 쏠 때도 야투가 17개대에 그쳤고, 원맨팀에서 맘껏 공격할때나 그 이상 던졌을 뿐입니다. 그것도 40% 야투율로요. 감독 입장에서 이런 선수에게 공격권을 몰아줬어야 할까요?
결론적으로 스택하우스는 02-03시즌 그가 평상시 얻는 것에 비해 전혀 모자라지 않은, 오히려 많은 편의 공격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가 그 정도(조던) 득점력이 있는 동료와 함께 뛰고도 더 많은 공격권을 얻은 적은 단 한번, 00시즌밖에 없고 그것도 야투 0.4개 더 쐈을 뿐입니다. 스택하우스는 이때나 전이나 후나 높은 득점스탯에 비해 효율적이지 못한, 득점원툴의 선수였을 뿐입니다.
스택하우스는 어쩌면 좋은 신체조건과 폭발적인 운동능력, 노스캐롤라이나 추신이란 것 때문에 과도한 기대를 받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폭발적인 득점력이 있지만 안정적이지 못해 중위권 이상 팀의 에이스급은 절대 아닙니다. 02시즌 당시 복귀 직후에 큰 부상 당하기 전까지 50경기 가깝게 평균 25점씩 넣던 위저즈 시절 당시 조던보다도 아래 레벨의 선수였다는 거죠.
실제로 스택하우스가 1옵션이었던 팀이 잘 나간 사례는 01-02시즌 피스톤즈(50승)가 유일한데, 이 팀의 아이덴티티는 수비와 팀플레이였다는 걸 생각하면 스택하우스가 득점 1옵션이었을 지언정 에이스라고 불리긴 힘들다고 봅니다. 실제로 그가 나가고 나서 경험이 적은 해밀턴으로 대체되었음에도 피스톤즈는 여전히 잘 나갔으니까요. 최소한 그는 그의 존재로 팀의 성적을 눈에 띄게 향상시킨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는 확실한 1옵션 아래에서 조연으로 가장 빛날 만한 선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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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던이 있는 워시텅위저즈가 왜 플옵을 못갔을까 하는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스택 때문만은 아니고 전력이 딸렸지만 그래도 립 보낸 건 두고두고 아쉬워요. 나이들어 점프슈터가 된 조던 입장에선 슬래셔인 스택이 더 좋은 파트너였겠지만 제가 립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ㅎㅎ 그래도 03-04피스톤즈란 멋진 팀을 봤으니 만족하렵니다
그당시 조던이나 스텍하우스나 큰차이는 없었는데 그래도 조던이 40먹었어도 스텍하우스보단 조금 낫구나 했네요 ㅋㅋㅋ
아으 나았죠. 1대1만 놓고 보면 스택이 나았어도 농구는 팀스포츠였으니까요. 스택은 일단 시야가 좁았어요. 팀플레이 능력이 좀 더 있었어도 훨씬 대성했을 겁니다
감탄이 나오는 글입니다
별말씀을요 ^^;; 감사합니다
저도 그 글 보면서 생각한게 당시 워싱턴에서 제일 뛰어난 선수는 조던이었는데 뭐 저리 불평인가 싶던...
UNC출신이란 이유로 잠깐 포스트 조던 후보중 하나로 끼어있었단것 때문에 자기가 진짜 당시 마찬가지로 포스트 조던 후보군이었던 5성슈가들과 거의 동급이었던줄 아는건지...
언론이 문제죠 그놈의 포스트조던... 다른 방향으로 갔으면 재능도 있겠다 하드웨어도 좋겠다 충분히 대성할 수 있었는데 아까운 선수 중 하나입니다
조던의 위엄만 새삼 깨닫게됩니다 ㅋㅋ
위엄...이라기보단 저도 위저즈 시절은 좀 아쉽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망시즌은 아니었죠. 망가져도 그 정도니 위엄은 위엄이네요 ㅎㅎ
스택하우스는 넥스트 조던 소리 듣는 선수였지만 제 기억에 스택에 대한 평가는 '볼호그'였습니다.
공격창출력이 떨어지는 선수인데 공을 오래 쥐는 것을 좋아해서 선수간 평가가 별로였을 겁니다.
물론 이건 제가 크게 관심두지 않았던 선수라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한 평이긴 하지만요.
피스톤즈에서 1옵션이고 01-02시즌 플옵에서 극적인 위닝샷을 넣은걸로 아는데
다음해 트레이드 되는 것을 보고 당시에 에.. 1옵션을 트레이드?? 굉장히 이례적이네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공격력 떨어지는 수비팀에서 1옵션을 뽑아버리는게 흔한 일은 아니죠.
성격도 쎈편이라 조던과 충돌은 당연한 것이었달까요.
매번 느끼지만 조던황제님 평과 일치하는 게 많습니다. ㅎㅎ 스택하우스는 흐름을 멈추는 타입의 선수였죠. 위저즈 시절 당시 조던은 가끔 슛을 너무 던지거나 무리해서 던질 때가 있어도 흐름을 툭툭 끊어먹는 아이솔레이선 일변도의 선수는 아니었는데 스택하우스는 볼호그기질이 심했죠. 그래서 그가 그랜트 힐과 호흡이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힐은 리딩이 뛰어났으니까요. 성격도 무난하고... 조던과는 이래저래 안 맞았던 것 같습니다
@maverick45 저도 그래서 매버릭님 글에 자주 덧글을 남기게 되나 봅니다 ㅋ
써주시는 글 항상 재미나게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좋은글 감사합니다. : D
심지어 플옵에서 엄청난 새가슴이었죠. 정규시즌용 선수였는데 정규시즌도 비효율의 극치이긴 했습니다.
맞습니다. 극적인 위닝샷이 한번 있었지만 플옵에서 강한 선수는 아니었죠. 00시즌에 힐이 아웃됐을 때 말고는 20점을 넘긴 시리즈가 없습니다.
근데 식스맨 시절엔 의외로 정규시즌보다 좋은 활약을 한 적이 꽤 있어요. 제가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에이스로서 공을 몰아주면 비효율적이지만 식스맨으로서 맘껏 헤집고다니게 판을 깔아주면 맹활약할 선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말 크로포드의 업그레이드형처럼 말이죠
역시 명불허전... 정독 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아닙니다. 감사드려요. 둠키님은 댓글에서 뵐때마다 괜시리 반갑네요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스택하우스가 식서스 있던 시절 로워매리언 졸업반 코비한테 1대1 털렸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기억나네요. 등장은 화려했지만 프로에선 기대만큼 보여준게 거의 없는 선수. 노래는 기똥차게 잘했던걸로..
어우 댈러스 시절인가? 경기 시작전에 미국 국가 부르러 나와서 이벤트인가 했는데 잘하더라고요. 그 R&B식 꺾기는 예술이었죠 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인터뷰 기사 보고 이게 뭔가~~ 했는데요~ ㅎㅎ
감사합니다 ㅎㅎ 딴 선수도 몰라도 스택하우스만큼은 진짜 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제 기억에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진 꾸준히 팀에서 1옵손으로 밀어주는게 보였는데도요. 그리고 기록을 찾아보니 역시 그랬네요
와 역시 핵꿀잼. 감사합니다
졸필에 칭찬 감사합니다 ㅎㅎ
한창 전성기인 스텍하우스가
40살의 조던보다 뛰어나지 못했죠.
그건 팩트입니다.
농구가 1대1 스포츠였다면 스택이 확실히 위였겠지만 농구는 팀스포츠니까요
이런 분석적인 글 너무 좋습니다. 덕분에 워싱턴 시절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스택하우스는 뛰어난 1:1 능력을 가졌지만, 딱 거기 까지였죠, 말씀 하신대로 공격 효율이 좋지도 그렇다고 다른 플레이로 팀을 살리거나 할 줄 도 몰랐구요.
오히려 댈러스에서 자기 능력에만 집중할때가 가장 좋은 선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공감합니다. 그래서 댈러스 시절엔 플옵에서 정규시즌보다 활약이 좋더라고요
스택하우스의 볼호그 기질은 필리 시절 아이버슨과의 트러블도 만들어 결국 트레이드 되었죠. 개인적으로도 득적력 높지만 야투율 떨어지는 선수를 극도로 싫어해서... 애가 멘탈도 약해서, 애틀랜타였나 하고 겜할 때 스택하우스가 계속 오른쪽으로 돌파하자, 스티브 스미스가 다른 선수한테 "when's he going left?" 하자 그때부터 스택하우스가 자기는 왼쪽 돌파도 가능하다는걸 보여주려고 애쓰다 경기 망쳤던 기억도 나네요.. 그런 선수가 말년에 조던을 평가 운운하다니 ㅋ
그런 게임이 있었나요? ㅎㅎ 근데 Smitty답네요 ㅎㅎ Smitty가 은근 트래쉬토킹 잘했던 걸로 기억납니다. 매력적인 선수였죠
당시 리차드 해밀턴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삼국지로 치면 제갈량이 늘그막에 강유를 만난 격이었죠.
근데 강유가 아니라 마속이 되었네요.
선수로서의 조던은 완벽 그 자체이지만, 선수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조던은 잘 줘봐야 C급으로 보입니다.
안타깝게 헛스윙이 너무 많았죠...갠적으론 본인이 멘탈최강이다보니까 콰미나 스택처럼 재능은 있는데 멘탈이나 피지컬 외적인 것이 딸려서 실패하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본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댈러스에서 식스맨으로 뛰던 시절의 스택하우스가 가장 빛났던것 같습니다. 그당시 48분 환산 득점 1위였던것으로 기억해요
저도 공감합니다. 스택이 출장시간이 꽤 되는게 13,14점 정도라 48분 환산 1위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말씀대로 식스맨 시절이 제일 빛났건게 맞죠
믿고 보는 maverick45님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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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백갈때마다 생각나는 그이름....
프로페셔널한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