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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존 랜디스 감독의 영화 '브루스 브라더스'에 출연했던 여배우 달리스 커리가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일대를 휩쓴 산불 4건 가운데 하나인 '이턴 산불'이 자택을 덮쳐 목숨을 잃었다고 가족들이 확인했다고 일간 더 선 미국 판이 보도했다. 향년 95.
응급 요원들이 12일(현지시간) 오후 6시쯤 LA 북쪽 앝타데나 자택에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맘마 D'로 알려진 고인의 시신을 발견했다. 고손녀 달리스 켈리는 페이스북에 비극적인 소식을 알리며 “한 시간 전쯤 부검의가 자택 부지에서 발견된 유해를 확인해줬다"고 덧붙였다.
켈리는 황망한 현장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공유했는데 고조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던 푸른색 캐딜락 승용차만 멀쩡하고 자택이 불쏘시개로 전락한 모습을 보여줬다. 켈리는 동영상에 나와 냉장고와 자전거, 문을 손으로 가리키며 "여긴 부엌이었다"고 말한다. 그 뒤편 하늘은 여전히 주위의 산불 영향으로 오렌지 색처럼 붉게 그을려 묵시록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켈리는 지난 7일 늦은 밤에 고조 할머니를 병원에서 모셔와 집 앞에 내려준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몇 시간 뒤 '이턴 산불'이 발발, 치명적인 피해를 일으키기 시작했는데 켈리는 당국의 경보를 듣기 전까지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켈리는 알타데나 자택으로 달려갔지만 경찰이 "이미 불에 타 무너져 내렸다"며 접근을 막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경찰은 시내 실종 신고 센터 등을 찾아 할머니의 안위를 확인하라고 했는데 할머니의 행적을 찾을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닷새 동안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렸다. 10일 연방 방위군 한 명의 에스코트를 받아 고조 할머니 자택을 다시 찾았는데 "모든 것이 사라져 완전 황망했다"고 말했다.5
고인은 1950년대 올드 블랙 할리우드 신의 일부였으며, 아이콘 영화들에 엑스트라로 많이 출연했다. 고령에도 가족들은 그녀가 매우 활력있고 충만한 삶을 누렸다고 입을 모았다. 손녀 로리 비머윌킨슨은 "도무지 95세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0일 플로리다주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89년의 삶을 접은 샘 무어도 영화 '브루스 브라더스'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무어는 1960년대 미국의 흑인음악 솔의 황금기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남성 아티스트로 꼽히던 '샘 & 데이브' 멤버였다. 그와 함께 1961년 듀오를 결성해 1981년까지 활약한 데이브 프래터는 1988년 4월 9일 세상을 등졌다.
1966년 '홀드 온, 아임 커밍'으로 대중음악계에 이름을 알린 듀오는 이듬해 '소울맨'으로 리듬 앤 블루스(R & B) 차트 정상뿐 아니라, 팝 차트에서도 2위에 오르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소울맨'으로 그래미상까지 받은 샘 & 데이브는 꾸준하게 솔 음악의 명곡들을 내놓았다. 1965년부터 1968년까지 솔 음악 분야에서 샘 & 데이브보다 꾸준하게 히트곡을 발표한 아티스트는 '솔의 여왕' 어리사 프랭클린뿐이란 평가를 듣는다.
남부 테네시주 멤피스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샘 & 데이브는 모타운으로 대표되는 북부의 팝적인 솔 음악과는 달리 거칠고 개성 있는 사운드를 선보였다. 특히 샘 & 데이브는 '더블 다이너마이트'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뽐냈다. '솔 음악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오티스 레딩조차 이 듀오와 같은 무대에 서는 것을 꺼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샘 & 데이브는 1969년 멤피스의 스택스 레코드에서 뉴욕의 애틀랜틱 레코드로 이적한 뒤 인기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샘 & 데이브가 다시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은 1978년 듀오 '블루스 브라더스'가 리메이크한 '소울 맨'의 히트 덕이었다. 시쳇말로 '역주행' 인기였다. 인기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 출연하던 존 벨루시와 댄 애크로이드가 남성 가수 2명의 춤과 노래를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블루스 밴드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도 과거 샘 & 데이브 공연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블루스 브라더스'가 인기를 끌면서 원곡에 대한 관심이 확산했고, 샘 & 데이브의 '소울 맨'은 1980년대와 90년대에 각각 영화와 TV 드라마 시리즈의 주제곡으로 사용됐다. 샘 & 데이브는 1992년 로큰롤 명예의전당에 헌액됐고, 2019년에는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