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산행을 함께 다닌 대학 동기와는 몇 가지 채집을 같이 해오기도 한. 봄날이면 여항산 깊은 산중으로 가 머위를 캐오거나 북면 양미재로 올라 취나물이나 다래순을 따오기도 했다. 초여름엔 일동 강가로 나가 돌복숭을 따와 담금주를 담거나 효소를 만들었다, 한여름엔 불모산을 올라 영지버섯을 찾아내기도 했다. 우리가 겨울엔 불모산 기슭 칡뿌리를 캐 차를 달이는 재료로 삼는다.
동기가 칡을 캐러가자는 제안이 와 길을 나섰다. 나는 별스런 장비가 없고 호미와 작은 톱을 챙기고 양곡을 담는 마대를 하나 준비해 길을 나섰다. 동정동에서 만나 북면으로 가는 녹색버스를 탔다. 굴현고개를 넘은 외감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동구 밖을 지나 달천계곡으로 들지 않고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곁으로 올랐다. 단감나무수원으로 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등산로를 찾았다.
양매재를 거쳐 작대산으로 가는 등산로는 사람들이 많지 다니질 않은 곳이었다. 들머리에는 근래 누군가 염원을 담은 돌탑이 세워져 있다. 둘은 부엽토가 삭은 산비탈을 따라 걸었다. 고요한 숲속에서 저 멀리서 전동 톱날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부들이 재선충 피해목을 잘라 처리하는 작업을 하는 듯했다. 여기저기 재선충으로 말라죽은 소나무를 잘라 비닐로 덮어 놓았다.
양미재로는 대학 동기와 봄날에 취나물을 뜯느라 함께 다녀간 적 있었다. 나는 가끔 구고사를 찾고 산정마을로 오르내린 적 있어 주변 지형지물에 대해선 훤했다. 우리가 칡을 캐러가는 장소는 양미재를 넘기 전 산기슭으로 지난 봄 취나물을 뜯으면서 지나칠 때 봐두었다. 칡넝쿨은 주변 나무들을 감아 타고 올라 피해를 주기에 칡뿌리를 캐주면 숲을 가꾸는 간접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고개 못 미쳐 너럭바위에 앉아 동기가 가져왔다는 곡차를 꺼냈다. 나는 안주로 챙겨간 야콘을 꺼냈다. 야콘은 멀리 있는 친구가 겨울에 생고구마처럼 깎아 먹으라고 택배로 보내준 것이었다. 친구는 아내가 집에서 누룩으로 직접 담근 막걸리라고 꺼낸 것을 맛보니 막걸리가 아니었다. 냉장고에 도토리묵을 빚으려 전분을 침전시켜둔 것을 막걸리인 줄 알고 가져와 곡차는 너뛰었다.
우리는 쉼터 바위에서 일어나 칡뿌리를 캐려는 산기슭으로 이동했다. 숲에는 칡넝쿨에 감긴 나무들이 말라죽어 가기도 했다. 칡뿌리를 캐려면 위치 선정을 잘해야 한다. 일단 넝쿨이 외가닥이고 아주 굵을수록 좋다. 그리고 주변에 바위나 다른 나무들의 뿌리가 겹쳐지지 않아야 캐기가 수월하다. 몇 개 칡넝쿨 가운데 캐기 적합한 칡넝쿨을 하나 골라냈다. 배낭을 벗어 연장을 챙겼다.
나는 톱과 호미를 가져갔고 동기는 작은 곡괭이와 모종삽과 자귀였다. 부피가 작으면서도 칡뿌리를 캐는데 모두 효율성이 높았다. 먼저 칡넝쿨 주위 가시덤불과 잡목들을 제거했다. 칡넝쿨 가지도 둥치 부근을 잘랐다.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칡 둥치 주변을 파헤쳤다. 흙살이 부드러워 힘들이지 않고도 작업이 순조로웠다. 칡뿌리는 수직을 뻗지 않고 대개 옆으로 드러누워 뻗어갔다.
길쭉하게 뻗어가는 칡뿌리를 한 개 캐고 그 주변 보이던 다른 칡넝쿨에 도전했다. 바위 근처러 아까보단 힘이 들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한 개만 더 캐려고 주변을 살폈다. 우람한 참나무를 타고 오르는 칡넝쿨을 발견해 세 번째 칡뿌리에 도전했다. 흙을 파기 수월했으나 참나무 뿌리와 엉켜 힘이 더 들기는 해도 칡뿌리는 아주 굵고 좋았다. 공을 들여 칡뿌리를 캐냈다.
칡뿌리 흙을 털고는 배낭과 보조가방에 들어갈 만큼 크기로 잘랐다. 칡즙을 내어 먹으려는 동기가 더 많이 가져가도록 챙겨주었다. 나는 어섯 썰기로 잘라 말려 차로 달여 먹을 셈이다. 배낭과 보조가방을 챙겨 외감마을로 내려섰다. 국숫집으로 들어 아까 아쉬움으로 남은 곡차를 먼저 비우고 국수를 먹었다. 동구 밖으로 나와 시내로 가는 녹색버스를 탔더니 해는 중천에서 기울었다. 19.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