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여행이라는 단어에서 휴식이라는 키워드를 제공받았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직접 체험한다는 즐거움과
호기심 천국과 자유로운 영혼으로 대면하는 남들과 다른 시각을 찾아내는 만족에 있었다.
하여 개인적으로 다니던, 패키지로 무리지어 여행을 하던 언제나 나만의 시선을 찾기에 골몰하고
열심히 여행지의 정취나 문화를 누리며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나
인문학적 패턴의 박물관, 미술관 찾아들기 혹은 소소한 일상을 누릴 골목골목을 탐방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완전히 휴식과 가족 단합의 여행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코로나 덕분에 각자도생하며 살아낸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는 참으로 어려웠던지라
간만에 코로나 이후에 한국에 다녀간 아들네와 딸네 가족 모두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낙점된 오키나와는 그야말로 고즈넉한, 마치 통영 그 어디쯤 인듯 싶은
익숙하지만 또 다른 느낌의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에 번잡함을 좋아한다던가 문명의 이기를 잔뜩 누리고 싶다던가 무엇인가 궁금하다면 오키나와의 정서는
그런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엔 그저 조촐하고도 한가로운 그러나 여유있는 그런 장소라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고 해서 볼꺼리 먹을꺼리가 뒤처지는 곳은 아니니 다양성에 있어서는 그 어느 곳과 견줘도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키나와 전체를 돌아보려면 나하시를 비롯하여 중부, 북부, 남부에 걸쳐있는 여행코스를
여정에 맞춰 선별하여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입맛대로 선택할 일이나 천천히 음미하며 여행을 하는 재미를 느끼고 누리며 다니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전에 먼저 오키나와 문화와 역사를 알고 가면 더욱 좋을 듯 하다.
오키나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류큐왕조"로 대변되며 일본에서도 독립체재로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겼던 왕조다.
1897년 메이지 신정부에 의해 "슈리성"이 점령되고 전쟁을 거쳐 그후 1972년에 일본으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에서는 육지전이 벌어졌고 그로인해 많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희생되었으며
지금도 건물을 짓기 위해 땅믈 파면 불발된 포탄이 나온다고 하며 그런 연유로 지반을 세우는 일은 쉽지 않다고 한다.
하여 일본 본토처럼 목조건물이 많을 듯한데 사실은 그다지 건물이 높지 않은 편이며 의외로 콘크리트 건물이 많아 보였다.
일단 오키나와는 그들만의 문화가 존재하므로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 마땅할 일이나 어느 곳이나 지배받는 쪽의 입장과
편입된 주민들이 겪는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은 외모조차 다른고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더불어 그들만의 수호신이자 오키나와 방언으로 사자를 뜻하는 "시사"는 수컷은 입을 벌리고 있고 복을 불러들이며 오른쪽에 놓아두고
입을 다문 채 재난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암컷은 왼쪽에 두는 것으로 14세기 경에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본땄다는 설이고
실크로드를 통해 14세기 경에 중국에서 오키나와로 전해졌다고 한다.
또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현악기 "산신"은 중국이 기원이며 오키나와를 통해 일본본토로 전해져 샤미센이라 불리운다.
그 산신은 샤미센보다 조금 작고 뱀가죽으로 몸통부분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3줄 현으로 류큐 전통문화 뿐만 아니라 그 무슨 음악의 선율이든 소화해 낸다고 하며 배우기가 어렵지 않다고 한다.
또한 "반카타"라 불리우는 오키나와 대표 염색 기법은 오키나와의 독자적인 염색 기법이다.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선명한 색깔의 염색 직물을 통칭하며
거리 곳곳에서 남국의 자연풍광을 염색한 옷을 걸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빈병의 재활용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류큐유리" 유리공예문화는 미군 지배 시절
그들이 사용하던 콜라병이나 맥주병을 원료로 컵이나 그릇등을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하여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유리공예가 되었다고 한다.
더불어 오키나와 도자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야치문"이라 불리우는 독자적인 오키나와 도자기는 류큐교역시대 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소박하고 실용적인 생활용 그릇으로 시작하여 지금 현대에도 어울리는 감각은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추석 무렵에 오키나와를 찾는다면 그들의 "봉오도리" 일종인 추석 전통무용인 "에이사" 관람을 추천한다.
조상의 영령을 추모하며 노래와 춤을 추며 마을을 행진하는 의식이다.
뿐만 아니라 에이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대중음악과 접목시키거나 창작 에이사 그룹도 점차로 많아지고 있다고.
오키나와를 다니면서 자주 맛보던 "찬프루"는 채소와 두부를 적절하게 섞어 볶은 오키나와 가정식으로서
어느 곳에서나 맛 볼 수 있으며 그런 음식 문화는 역사적인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한때 동남아시아, 일본, 중국, 미국문화가 섞여 존재하다 보니 오키나와 문화를 "찬프루문화" 라고 부른다는 것.
어쨋거나 기본적으로 오키나와의 다양한 문화를 이미 알고 다녔어도
역시 오키나와의 상징성은 바다에 있는 듯하고 그 바다는 전세계 다이버들이 사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바닷속을 유영하며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떠다니다 보면 천국이 바로 여기인가 싶을듯하다.
모래 사장에서 바라본 바다는 그야말로 매혹적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할레쿠라니 호텔에서 누린 최상의 휴식은 앞으로는 누려보지 못할 최고의 호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적어도 여행을 다니면서 하룻밤에 150만냥 짜리 객실에 묵어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으나
아들 덕분에 그런 호사를 며칠동안 누렸다.
게다가 배정받은 객실에 들어가니 그에 걸맞는 선물들이 자리하고 있고
호텔 엽서에 쓰여있는 호텔리어들의 진심은 그야말로 뭉클할 지경이었으며
일본인들 자체가가 상냥하기 이를 데 없지만 눈만 마주쳐도 인사를 하는 그들의 습성은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며칠동안 있는 그대로 온전히 자신을 내어맡기고 시간을 흘려버린다는 것을 상상해 본적도 없건만
어찌 이곳에서는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도 아무렇지도 않던지.
때맞춰 예약된 식사 코스요리 "가이세키 정식"이나 "샤브샤브 정식"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으나
우리 입맛에는 대체로 많이 짜다가 기본이고 순서대로 나온다는 것을 알고 메뉴판을 들여다 보지만
어찌 그리도 일일이 설명을 해주는지...전에 다른 지역에서도 그런 과한 친절이 부담스럽더니 역시나.
게다가 그 호텔에서만 판다는 도치기현의 사케는 또 왜그리 기함할 정도의 가격인가 싶었어도 사케맛은 굿굿굿.
또하나의 즐거움은 남의 손을 타서 잃어버린 쥔장의 "라이카 " 카메라 대신
아들이 사준 가벼운 "라이카" 카메라를 드디어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
라이카는 역시 색감이 다르고 느낌이 달라도 한참 달라 스스로 만족하다가
아들에게 고마운 생각과 뿌듯함이 교차되었고 이제 다시 방치된 니콘 카메라를
다시 들어야 하나 싶었던 마음까지도 사라져 버릴 만큼 완벽한 카메라를 다시 쥔 기분은 그야말로 해피해피.
암튼
그렇게 예정된 시간과 장소를 찾아다녔지만 주된 목적은 가족 전부가 함께 가족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호캉스, 약간의 돌발상황이 있기는 하였어도 나름 뿌듯하고 재미진, 여유로롭고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었으므로 만족한다.
사실 개인적인 촬영은 아이들 사진을 우선으로 하였으므로 별 것이 없다....이해하시라.
단 기본적인 추천지를 작성해 본다면 누구나 찾아든다는 곳 정도?
아메리칸 빌리지, 무라사키무라에서 류큐문화 체험, 슈리성, 쓰보야치문도리-도자기거리- 코쿠사이도리 관광및 쇼핑,
니라이카나이다리 드라이브, 세스코비치, 고리오션타워, 세계문화 유산 가쓰린 센터 전망감상, 후루치마미비치에서
열대어 스노쿨링, 도카시쿠비치 바다거북, 다케토지마 돌담길 라이딩, 별모래 해안에서 별모래찾기 등등등...볼거리는 지천.
첫댓글 푸른 바다에 몸을 풍덩 던지고픈 열망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고 여정을
따라 가 봤네요.
강추하고 싶은 곳...번잡하지 않아 좋더라는
물론 시끄러운 장소는 있을테지만
피해갔더니 해피해피한 일만 가득.
컴퓨터가 다운이 되었다 정상으로 복원이 되어 오랜만에 들어왔습니다.. 멋진 가족 여행 부럽습니다. 이제 겨울이 오게되네요,,, 건강하시기를요,,
아, 그러셨군요.
별 일 있나 싶어 걱정이 되더라는.
덕분에 아주 호사스럽고 진정한 휴식을 누리다 왔네요.
뭐니뭐니해도 가족이 모두 모엿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