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정원
김휼
토끼는 이제 그만 잊어줘
너의 바깥을 좀 빌려줄 수 있겠니, 굴절된 빛을 모아 담을 두를 거야
문고리가 딸려 있어도 좋아
이 정원은 순환의 주기를 가지고 있으니
창백한 삭망의 밤은 묻어야겠다
안으로 닫아 건 상처들이 한 번에 왈칵 쏟아질 것도 같은
나는 범람하는 슬픔을 가두고 글썽이는 눈동자
새털구름 가득한 얼굴로 오는 내일은 불투명하지
오늘 보낸 짓무른 달빛은
행여 네가 오는 길을 잃을까 계수나무에 걸어둔 안부 중의 하나
뒤편에서 모여 울던 이들이 떠난 후 색을 탐하던 붉음을 잊은 지 오래야
허공에 매달린 채 기울어지는 침묵이
이해는 안 가지만 오해는 할 수 없어
둥근 발끝에 구름이 엉기는 걸 보며
종소리로 울타리를 두른 정원을 거닐고 있어
순환의 메타포로 지는 달에 흰무리가 돋고
레인스틱을 흔들고 간 자리 첩첩이 꽃비가 내리는데.
― 계간 시 전문지 《포지션》 (2022 / 겨울호)
김휼
2007년 《기독공보》 신춘문예, 2017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백교문학상, 여수해양문학상, 목포문학상 본상 수상. 2021년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그곳에 두 개의 달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