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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WEDING
나를 제외한 모두의 행복한 결혼식
"얼마나 남았지?"
"이 주 정도."
"너도 총각파티 뭐 이런거 할거야?"
"그렇지 않아도 벌써부터 그 얘기 나오고 있다."
그렇게도 말렸는데 끝내 담배에 불을 붙이길래 등짝을 후려쳐줬다. 제법 아픈 소리가 났는데도 쓱쓱 문지르고 물고 있는 담배에 집중한다. 넓고 넓은 집안에서 내 방만을 고집하는 너 때문에 한겨울에도 문을 열고 살았다. 가끔 굴러다니는 말보로 라이트의 꽁초를 볼 때면 화가 뻗쳐서 대뜸 찾아가 두들겨 패주기도 했었다.
"근데 스물넷이면 너무 이르지 않냐? 니 나이 서른칠팔이면 애가 육학년이야. 으, 징그러."
"내가 애를 언제 날 줄 알고."
"애 밴 채로 드레스 입히는 주제에 뻔뻔스럽게."
뻔뻔스러운 놈에게 곁에 있던 쿠션을 집어 던졌다. 내 딴엔 세게 던진건데 손쉽게 잡아 내려놓는다. 평소같으면 똑같이 내게 던지겠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법 심각한 얼굴을 해보인다. 너야 애아빤지 총각인지 누가 알겠냐만은 니가 임신시켜버린 그 여잔 꽤나 곤란할거다. 결혼드레스를 배가 불러 맵시없는 모양으로 입어야 하니까.
아니, 아닐수도 있다. 임신덕분에 그렇게나 고대하던 결혼을 하는 거니까.
"하여간 발랑 까져가지고. 동기들한테 쪽팔리지도 않냐?"
"부러워하던데. 이쁜 아내에 덤으로 애까지 얻었다고."
'이쁜 아내에 덤으로 애까지'라.
딱 두 번 봤던 그 여자는 과연 예쁘긴 예뻤다. 키도 아담하고 몸도 가녀린데다 얼굴도 굉장히 어려보이는 전체적으로 보호본능 일으키는 스타일. 겉모습만 그런게 아니고 성격도 조신하고 살림도 잘한댔다. 말도 어쩜 얌전하게 하는지 그런 여자는 첨 봤다. 망나니같은 놈이 여자 하나는 제대로 잡은거다. 옛날 옛적에 다 멸종된 줄 알았던 그런 여자를..
근데 그런 여자가 겁도 없이 임신을 한건 미스터리다. 보나마나 놈이 꼬셨거나 덥친거겠지만.
"그래. 그런 여자 만난건 니 복이다. 놀거 다 놀았으니까 결혼하면 정신차리고 가정에나 집중해. 결혼해서도 지금처럼 살면 내 손에 먼저 죽을 줄 알아."
"지금처럼 사는게 어떤건데?"
"문란하고 지저분하게."
이 여자 저 여자 찝적거리다 결국 사촌동생한테까지 손 뻗는 파렴치한 짓같은거 그만 두라고. 거기에 꿍짝 맞아 홀랑 넘어간 사촌동생은 이만 자진해서 옛날 이야기로 묻어둘테니까. 정말로, 묻어둘테니까.
"너도 정신차리고 공부해서 대학가야지. 한 살 어린 애들이랑 지내는 것도 쪽팔린데 자칫 두 살 어린 애들이랑 지낼 수도 있어,너."
"남 걱정 말고 너나 잘하라고, 너나. 난 학교가는 거고 넌 결혼하는 거라고. "
철없이 지냈던 불과 일년 전을 난 뼈져리게 후회하고 있다. 그 때 이후 학교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웬지 열아홉 그대로인 것만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네가 결혼하고 나면 나도 이 정체되어 있는 성장에서 벗어날 것이다. 벗어날 수 있을거라고 확신한다. 내 방황했던 열아홉의 중심에 네가 있었으니까.
놈이 절반 정도밖에 타지 않은 담배를 창틀에 비벼껐다. 그 행동에 다시한번 등짝을 후려쳐주려다 말았다. 비벼끄는 놈의 표정이 뭐랄까 너무...아련하다고 해야하나. 겨우 담배 비벼끄는 주제에 후까시 잡기는.
"나 결혼하면 유럽 가는거 알지."
"어. 좋겠다? 우리 엄마는 그렇게 보내달래도 안 보내 주는데."
"같이 갈래?"
"뭐?"
진심으로 놀랜 내 표정이 꽤나 볼만 했을 거다. 그런데도 놈은 놀리지 않고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가만히 쓰다듬는 그 손을 뿌리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이번에 가면 애가 한 육학년쯤 될 때 까지 안 돌아올 생각이야. 간간히 오기는 할건데, 그래도.."
"됐어. 가뜩이나 애 때문에 너네 신혼도 없을텐데 나까지 껴봐라. 니 여자 조신해 보여도 변해서 바가지 긁는거 한 순간이다."
"하긴 내가 없는게 너한텐 낫겠다. 나보면 괜히 심난하기만 하니까. 내가 없어야 니가 정신차리고 철 들지."
난 꽤 장난스럽게 말했는데 놈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여전히 머리위엔 손이 있었고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내가 놈에게 조신한 여자가 변해서 바가지 긁는게 한 순간이라고 했던가. 담담했다가 열 받는것도 한 순간이다. 지금 내가 그렇다. 놈은 날 걱정했을 뿐이고 난 여전히 장난스럽게 대꾸하면 되는건데 순간 열이 뻗쳤다.
정체모를 것을 꾹꾹 눌러뒀다가 난데없이 터뜨리는 모양으로.
"그래, 잘 아네. 너보면 심난하기만 한 줄 알아? 난 니가 내 인생에 끼어들고 나서부터 이 모양 이 꼴인데 넌 이쁜 여자랑 애 배서 결혼한다고 지랄났고 아주 미치겠어! 그런데 나보고 같이 가자고? 외국으로? 이젠 아주 부모님 눈 피해서 일을 벌일려고? 어?"
"지은아,"
"이름 부르지마, 씨발. 이번엔 또 어떤 식으로 날 망치려고 들어! 니 새끼 때문에 내가 엄마 얼굴을 못 봐. 근데 넌 존나 멀쩡하다? 웃으면 서 우리 엄마한테 인사도 하고. 니가 작은 엄마라고 부르는 여자 딸이랑 잔 주제에."
얼마나 악에 바쳐서 소릴 질렀는지. 지르고 나서도 드는 생각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혹시 누가 들었을까 하는 따위였다. 더 악담을 퍼부어줄 생각으로 입을 열려는데 놈이 내 얼굴을 쓸었다. 그러니까 그건..눈물을 닦아주는 거였다. 그제야 내 입으로 들어오는 짠 무언가가 내 눈물이라는걸 알았다. 아, 나 울었구나. 진짜 뜬금없다.
잘만 웃다가 울며 소리를 지르는 이런 심한 감정기복조차 놈의 탓으로 돌려버렸다.
"미안해. 근데 말로 될 게 아니잖아. 미안하다는 말로만 되는게 아니잖아, 지은아."
"말로만 되는게 아니면 뭘로 되는건데? 나한테 뭐해줄건데?"
사실 놈이 나한테 미안할건 없었다. 방황하고 함부로 몸을 굴리던 나를 잡아준거 그리고 잠시나마 행복하게 해줬던거, 고마우면 고마웠지 미안한건 맞지 않는다. 하지만 시작은 내 잘못이었을 망정 사촌과 몸을 섞었다는 것만으로도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자기 탓으로 돌릴 놈을 알기에 괜한 투정을 부렸다.
"일단은 떠날거야. 그리고 나중에 돌아와서 니가 해달라는대로 해줄거야."
아까 니가 말했던 그때쯤이면 넌 나따윈, 나에대한 죄책감따윈 다 잊었을거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겠지. 평범하게. 나따윈 잊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화가 남과 동시에 눈물이 쏟아졌다. 니가 날 잊고 행복해하는 모습 따위 보고싶지 않다.
"그런데 왜, 흡, 흐읍. 왜 나한테 같이 가쟀어, 어?"
어깨까지 들썩거렸다. 눈가를 비비고 비벼도 뿌연 막이 거둬질 줄을 몰라서 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우는 것에 집중했다. 울면 울수록 눈물이 나온 본래의 원인은 잊고 서러움만 커졌다.
"....한국에 있으면, 그래도 한국에 있으면 같은 땅 밟고 있는 거니까 굳이 얼굴 안봐도..그것만으로 위안이 되는데,"
내 눈을 완전히 피한채로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하지도 못하고 놈은 횡설수설했다.
"유럽게 가게되면 너 정말 못보니까. 그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어. 미안하다. 그 말은 잊어."
"도대체 임신은 왜 시켰니. 그렇게 놀아나도 온갖 깔끔한 척은 다하더니, 이제와서 나 보란듯이 그랬니, 어? 나한테서 벗어나서 너도 가족 이란걸 갖고 싶었니? 흡..으...흡..말해봐. 말해보라고!"
놈은 울고 있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날 외면한건지 차마 보지 못하는건지는 모르겠다.
왜 이제와서야 서러운 건지. 어른들이 계신 자리에서 대뜸 무릎을 꿇은 놈이 여자를 임신시켰다며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얘기를 했을 때조차 언젠간 그럴 줄 알았다는 비소섞인 반응을 했던 나다. 무덤덤하다 못해 홀가분함까지 느꼈었는데, 아까까지만 해도 가깝고 친한 사촌으로서의 대화를 했었는데 갑자기 뭐가 그렇게 서럽다고.
보통의 연인처럼 행동했지만 애인은 결코 아니었으며 돼서도 안돼고 애초에 애정을 기반으로 한 관계가 아니었기에 아쉬울 것도 없는 사이.
놈과 나 사이엔 아무것도 없다. 이 사실이 날 더 서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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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내 방에서 울고 불고 했던게 어제같은데 결혼식은 끝났고 난 고3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방황하고 구제불능처럼 행동했던 내 작년을 알고 있는 가족들은 코웃음쳤을게 뻔하지만.
"아무리봐도 일등 신붓감이다. 저 놈이 여자문제로 지 엄마 속을 그렇게 썩이더니 저런 여자를 만날려고 그랬나."
멀치감치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내 대꾸가 없음에도 놈의 여자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기에 바빴다. 이제는 제법 티가 나게 배가 부른 여자는 놈의 옆에서 말갛게 웃고 있었다.
"너도 가서 인사해야지, 그래도 사촌오빤데. 너네 꽤 친하지 않았니?"
-친했어. 우리 많이 친했어, 엄마.
우물거리듯 말을 하고 환하게 웃고 있는 남녀에게 다가갔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 대신 아내쪽의 집에 머물렀던 놈과 이제는 아내가 된 놈의 여자는 오늘 유럽으로 간다.
가까이 다가가자 꽤 친했던 친구와 얘기를 나누던 놈이 내쪽을 돌아봤다. 결혼식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내가 평일날 공항까지 나온 것이 의인듯 마주친 두 눈이 꽤나 놀란듯 보였다.
"고쓰리 사촌동생이 여기까지 나와줬는데 반응이 왜 그 모양이야."
"너..."
"해줄 말이 있어서."
꼭 해줄 말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어.
"잘가, 오빠. 다신 오지 마."
장난스러운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놈은, 오빠는 얼이 빠진 얼굴을 해보였다. 하긴 내가 자진해서 오빠라고 한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다신 오지 말라고 한건 장난이고,"
오빠의 손목을 덮고 있는 옷을 움켜쥐었다.
"오빠가 말한대로 자식새끼 육학년쯤되면 돌아와. 자식 키우는 재미가 좋다고 나 잊으면 안돼. 그러니까 "
옷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웃고 있을 입술 끝이 살짝 떨리는 것도 같았다.
"꼭 돌아와."
"...알았어, 임마. 그건 너무 늦고 좀 일찍 돌아올게."
지난번처럼 머리 위로 손이 올라왔다. 손에 무게에 못 이기는척 고개를 숙였다.
'좋아했다'고 아니 '좋아한다'고 말해야 하나. 아님 묻어둬야 하나.
"시간 다 됐다. 갈게, 지은아."
눈물은 손톱만큼도 나지 않는데 목은 눈물이 차오를때처럼 이상하게 꽉 막혀서 고개만 끄덕였다.
입안에서 맴돌던 말은 삼켜버렸다.
"갈게요, 어머니."
난 그렇게 놈을, 사촌오빠 이정운을 보냈다.
내 열아홉에 머물러있던 그가 떠났다.
* * *
"그래가지고 그 여자 머리끄댕이를 확 잡아서 내동댕이쳤다는거 아니야."
"진짜로요, 형님? 그 사람많은데서 진짜로?"
"그렇대두. 내 눈으로 본거야, 내 눈으로."
공강시간에 들어온 집에선 여전한 친분을 자랑하는 엄마와 큰엄마가 계셨다.
"엄마, 나 왔어요. 오셨어요, 큰엄마."
"어, 지은아. 요즘에 얼굴을 통 못본다."
이젠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고 큰엄마와 마주치기를 피하는 일도 없다. 시간이 흐름에 서서히 잊혀지고 익숙해진다는건 감사하지만 슬픈 일임을 절실히 느낀다.
"지은아, 니 메일 좀 확인해봐."
"메일은 왜?"
"정운이가 사진 보냈대. 저번 주가 애기 생일이었잖아. 큰엄마가 못간 대신 사진 보내왔대."
한숨 자려던 생각을 접고 곧바로 메일을 확인했다. 첨부된 열 몇개의 파일은 이국적인 배경속의 아기와 여전히 가녀리고 조신한 그녀의 사진이 전부였다. 아무리 재차 확인을 해도 오빠가 흐릿하게 찍힌 사진조차 없었다. 혹시 나에대한 배려라도 되는건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구, 이뻐. 지은아 얘가 니 조카야. 벌써 세 살이래."
"지은이 애기 본적 없어?"
"글쎄 형님, 얘가 정운이 입국할 때마다 엠티다 뭐다해서 코빼기도 안 비췄잖아요."
"그랬어?"
엄마와 큰엄마는 사진을 넘길 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아직 세 살밖에 되지않은 아기의 재롱담을 펼쳤다. 사진 속 여자아이는 과연 객관적으로 봐도 예쁘고 곰살맞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는 제 엄마를 닮은 듯 한데 전체적인 생김새는 저번에 엄마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던 그대로 이정운을 빼다 박았다.
한참동안 엄마와 큰엄마가 경쟁하듯 펼치는 재롱담을 듣고 나서 미뤄둔 잠을 자기위해 파일의 창을 끄고 메일 창을 올렸다. 간단한 안부인사가 적힌 메일의 스크롤바를 길게 내리는데 맨 아래쪽에 미처보지 못한 영어문장을 발견했다.
"아..."
지금껏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귀국한 이정운을 만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역시 어떠한 접촉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오빠가 메일을 보낸건 이유가 있었다. 맨 아래에 써있는 말은 내게 보내는 것이었다.
-곧 돌아갈게.
오빠가 곧 돌아온다.
HAPPY WEDDING 마침
* * *
안녕하세요
훼이크가 인소닷에서 올리는 첫번째 단편!!!!!!!! 입니다.
조회수나 코멘에 연연하지 않고 쓰기로 마음먹었지만 코멘 달아주시면 감사해서 눙물이 다 날것 같네요ㅠㅜ 흑
꽤 긴 분량인데(어디까지나 제 기준에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전 이제 다음 번외를 위해 달립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엄훠 '느린'님!!!댓글을ㅠㅜㅠㅜ눙물이차오르네요 우선감사드리구요 사촌끼리의사랑이라는게금역이기때문에 둘이이어졌다,헤어졌다가 아닌 열린결말이랍니다^^ 뒷이야기대신 과거번외를준비하고잇숴여!
재밌었어요...처음엔 무슨 내용인가 했는데..;;
안녕하세요'사탕'님 댓글감사드리구요 제가아직많이부족해서 처음부분을애매하게써버린것 같네요ㅠㅜ 번외쓰고있답니다^^
정말재미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번외화이팅!
'순돌'님!!! 그렇지않아도번외를쓰다가 막혀서 잠시버려두고있었는데 화이팅이라니ㅠㅜ 감사합니다^^ 힘내서써보겟숩니다
...끝이 어떻게되는건가요??지은이랑 서로 좋아하는건가요??잘모르겠네요ㅠㅠ
안녕하세요 '고딩대지'님^^ 열린결말이라생각하시기나름이지만 일단 서로좋아하는건맞구요 다만사촌이라는제약이있고결혼까지했으니까남주는유럽으로떠났는데 이제돌아오는거죠 그이후는상상에맡기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