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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춥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어언 3년이 다 되가는 다 커버린 어른, 윤은해. 입만 열었다 하면 말이 얼음이 되어 뚝뚝 발밑으로 추락해버릴 것 같이 추운 날 나는 나의 모교를 그윽히 지켜보며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불여우 교수의 오전수업도 목숨을 무릅쓰고 빠지면서 이렇게 개고생하는 이유가 뭐냐고? 후훗,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너무 자랑스러운데! 바로 오늘은 내 남자친구가 올해들어 처음으로 진지하게 데이트신청을 해주겠다고 한 날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약속장소를 고등학교 앞으로 정했냐고? 그것도 내 모교로? 길을 심하게 잘 못찾는 나를 배려해준 남자친구의 센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그건 절대로 아니고 우와 들으면 놀랄지도 모르는데.
왜냐하면, 왜냐하면 말이지...
"윤은해!"
"어, 해빈...아?..."
...교복을 입고 온갖 요란한 고등학생들로부터 화려하게 등장하고 계신 바로 저 분,
저 분이 바로 내 자랑스런 남자친구 이해빈이기때문이지.
나쁜자식과 연애하기
W.보고싶은걸
"빈! 여기 꽤 비싼 곳 아니야?"
"훗 이 형님을 뭘로 보고. 여긴 개껌이다."
"푸하핫- 너 지금 애인있다고 폼잡는거냐? 병신"
빨간머리, 주황머리, 노랑머리, 초록머리... 위에서 머리만 보면 무슨 무지개가 돌아다니는 줄 알겠다. 게다가 귀에 피어싱은 기본이고 어떤 놈은 뭔 멋인지 혓바닥에다가도 뚫었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화장을 적게 하고 다닌다는 개념을 깨고싶기라도 한 듯 한 놈은 스모키화장을 진하게 하고있는, 정말 한 눈에 봐도 딱 알 수 있는 폭주족놈들.
그 속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저 놈, 이해빈. 내 정말 자랑스런 남자친구.
다행스럽게도 머리는 아직 한국인 고유의 머리인 검은색이지만 저것도 노란색으로 염색한다느니 빨간색으로 염색한다느니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모른다. 결국 일주일 내내 내가 연락두절을 해서 겨우겨우 검은색으로 유지시켜놓긴 했지만.
그런데 중요한 건 머리만 정상이지 다른 거는 다른 놈들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 교복은 이미 몸에 착 달라붙어 무슨 쫄바지를 입은 것 같고 요란하게 피어싱을 한 것은 다른 놈들과 마찬가지다. 혓바닥과 코에 안뚫은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다행스럽게 얼굴은 제일 낫구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게 바로 저거다.
"음 여기 C코스로 사람 수만큼 주세요."
"해, 해빈아! 여기서 제일 비싼게 C코슨데 너 돈이 얼마나 있다고!"
"윤은해, 이 오빠를 못믿는거냐? 진짜 나만 믿으라니깐!"
...윤은해? 저것이 죽을라고 또 반말깐다. 내가 그래도 너보다 3살 더 많은 대학교 2학년 생이란 말이다!
"오- 서로 반말까? 아름다운데?"
"훗 사실 나이만 조금 많을 뿐이지 정신연령은 나보다 적다 우리 은해가."
...이해빈 너 나가서 죽었어
"저... 손님?"
"네?"
"계산하고 가셔야죠."
"네, 네?"
잠시 화장실을 갔다오니 이미 놈들은 싹 없어진 상태. 뭐야, 뭐냐고 이해빈! 불안하다 불안해...
"여기... 있던 교복입은 남학생들은요?"
"여자분이 계산하실거라고 먼저 나가시던데요"
...이...해빈 너 진짜 죽었어!!!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
후우- 이 한숨도 몇 번째인지. 더불어서 이해빈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것도 말이다. 이 얍삽빠른 놈은 내가 자기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는 것을 눈치채고는 벌써 어디로 도망가버리고 없다. 그 잘난 친구들까지 모조리 데리고 말이다. 또 어디서 술이나 마시고 있겠지. 오늘은 방학식했다고, 또 이제 졸업도 얼마 안남았으니 거하게 한 잔 할 것이다.
[현태카드입니다. 윤은해 고객님! 2008년 12월 29일 13시 56분에 fantasy of food에서 500,000원을 쓰셨습니다. 자세한 문의는 02)123-4567에 하시기바랍니다.]
...하하... 50만원... 이해빈을 죽이기 전에 내가 엄마한테 죽겠구나.
결국 이해빈은 그 날 하루종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해빈, 너 진짜 잡히면 죽여버릴테니까 각오하라고! 이번에는 싹싹 비는 거 가지곤 안될 줄 알어!
이해빈, 미워하고 미워해도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이 모순덩어리 악마를 만난 것은 내가 고등학교 졸업식을 모두 마친 후였다.
"이야- 이제 10대도 다 끝나고 진짜 어른이 되는구나아-"
"그러게 말이야. 내가 유치원 때 남자애한테 뽀뽀했던 게 아직도 엊그제 같구만..."
"뭐야 민지소, 너 그런게 다 기억나?"
"그럼! 난 니가 유치원 때 바지에 똥 싼 것도 기억나는데?"
이웃사촌으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녔던 친구 지소와 같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제 졸업도 했으니 마음껏 놀아보자- 는 마음으로 한창 들떠있을 때였지.
"윤은해! 누가 너 부르는데?"
"누가?"
"몰라, 옥상으로 좀 와달래."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나를 부르며 '옥상으로 가봐라' 라는 말 한마디를 전하고는 아쉽게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누구지? 나 부를사람 없는데?"
"너 다굴당하는 거 아니야? 아이고 어쩌나. 우리 은해 3년동안 열심히 지 개같은 성격 감추고 다녔는데 이렇게 졸업식 날에 딱 찍히고 말았으니..."
"민지소 죽고싶지 않으면 그 입 다물라. 나 갔다올테니깐 조금만 기다려!"
궁금한 마음 반,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일진회애들한테 다구리당할 것 같애서 무서운 마음 반을 가지고 옥상에 올라갔다. 에씨, 민지소는 괜히 그런 말을 해가지고!
끼릭- 옥상문이 열렸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한데? 우리 학교 옥상은 원래 잠겨있는데!
조심스럽게 들어가서 옥상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누가 장난하나 싶어 다시 가려는데 저기에 누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주, 중학생?"
근처 중학생 다니는 한 남자아이였다. 에엑, 뭐야. 손에는 꽃다발까지 들고 있다.
"저기..."
내가 부르자 살포시 나를 쳐다보는게 우웃 꽤나 귀엽다! 이것이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1년동안 수능에 찌들었던 수능생들 사이에서 같이 늙어가던 나로써 이렇게 풋풋한 중딩을 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이 남학생은 얼굴도 하얗고 키도 크며 몸매도 호리호리했으며 무엇보다도 내 이상형, 즉 무척이나 순수해보였다!
"혹시 니가 나 불렀니?"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그 아이를 쳐다봤다. 까만 눈동자에는 내가 한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 아이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추운건지, 아니면... 내가 지금 상상하는 것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제, 제 이름은 이해빈이에요! 지금은 광운중학교에 다니고 있고... 또 이번에 한빛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요."
"아... 그래 안녕. 나는... 내 이름은 윤은해고 이제 한빛고등학교 졸업해. 그런데 나 왜 부른거야?"
내 물음에 해빈이, 그 당시 무척이나 순수해보였던 해빈이는 더욱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덩치에 맞지않게 그렇게 수줍은 모습은... 아아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가슴떨리는 일이었다. 내 몸보다 훨씬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꼭 안아주고 싶은, 그래 맞아 모성애를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그랬던 이해빈이 어떻게 이렇게 사악하게 변할 수가 있냔 말이다!
"아... 저... 누나를 사실 시내에서 처음 봤어요."
크윽, 이것은 으레 순진한 남학생들이 고백할 때 처음으로 던지는 멘트가 아니던가! 난 정말이지 수능을 보고 원하는 대학에 간당간당하게 붙었던 것보다 더 큰 성취감을 느꼈다. 드디어 인간 윤은해, 여자로써의 매력이 발산되는 시간이란 말인가!
"그 때 은해누나를 처음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는데..."
'한눈에 반해버렸는데' 이 말이 나올 때 해빈이는 슬슬 장미꽃을 든 하얀 손가락을 꼼질꼼질 거리기 시작했으며 수줍게 내 얼굴을 바라보던 시선을 아래에다가 내다꽂아버렸다. 귀여운 자식, 누나앞에 서니까 긴장되냐?
"그,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은해누나만 좋아했어요! 은해누나 제발 저랑 사겨주세요!"
"어, 어?"
꺄앗! 드디어 윤은해가 이 풋풋한 중딩에게 고백을 받았다. 순간 당황해서 말이 헛나오기는 했지만 당연히 오케이지! 아 진짜 나 어떻게하니! 지금 기분으로써는 지구 대기권을 뚫고 우리 태양계를 한바퀴 돌고와도 모자를 정도로 붕붕뜨는구나!
"그런데 이번에 고등학교 입학한다고 했지?"
"네..."
"그럼 나랑 나이차이가... 3, 3살이나 나는데?"
"괜찮아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다잖아요!"
그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매우 중요한 숫자.
"은해누나! 전 나이따윈 상관없어요! 요즘은 띠동갑들도 사귀는 추세인데 무슨상관이에요!"
"하...하하... 나는 괜찮지만 해빈이 니가 좀 걸리지 않을까..."
"전 괜찮아요!"
"그, 그래?"
아아... 그때의 그 순진했던 해빈이로 다시 돌아와달라구!
해빈이가 사악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래. 우리가 한창 사귈 때는 정말 참 순수했었다. 그러나 100일이 지나자...
"윤은해! 나 배고프다. 니 입술 참 맛있게 보이는데 밥대신 먹으면 안되냐?"
반말은 기본으로 깠으며 변태적인 발언도 서슴없이 해댔다.
[누나, 나 큰일났어.]
"어? 왜?"
[나 오토바이 새로 산거 아빠한테 걸렸다. 씨발]
"뭐야? 내가 그러니까 사지 말랬지? 하여튼..."
[나 쫓겨났어. 집에 못들어가.]
"뭐라고?"
[나 좀 재워주면 안돼냐?]
가끔 누나라고 부를 때는 자신이 엄청난 위기에 몰릴 때 였으며
"김석훈이 누구야 씨발!!! 어떤 새낀데 계속 윤은해한테 집적대?!"
같은 과 교실을 서슴없이 열고 닫으면서 나를 곤란케 했다.
"은해야, 아직도 그 연하남자친구랑 만나는거야?"
"네? 아 네..."
오랜만에 만난 벌써 졸업한 같은 과 선배들에게 나는 이미 '망나니 어린애랑 사귀는 아이'로 찍혀있었다.
으어어어!!! 다 정리해보니깐 이해빈, 정말 죽여버려야겠구만!!!!
그 일이 일어난 지 약 한 달 후.
"은해야, 너 리포트 작성 다 했어?"
"응. 난 다했지롱- 넌 아직 안했나봐?"
"뭐라고? 다했다고? 그걸 다 했단 말이야?"
"어. 왜?"
"야 이기지배야 니가 인간이냐? 지금 그걸 물어보고 있단 말이야?"
지소가 나를 보더니 허걱 하고는 뭐라고 뭐라고 떠든다. 하지만 정말 미안하게도 나는 지금 지소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후훗. 지금은 행복한 상상 중.
"윤은해! 지금 내 말 듣기는 듣는거야?"
"어, 어?"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너 무슨 일 있냐?"
"흐흐... 사실은..."
사실은 말이다, 이제 이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뭐가?
"뭐, 진짜? 벌써?"
"그렇다니깐- 윤은해랑 이해빈이랑 1000일이 이주일밖에 안남았다구!"
"야 근데..."
"응?"
"이해빈이 기념일 챙겨준거... 딱 100일 기념일 밖에 없지 않냐?"
...그러고보니 그렇네.
"은해야, 너무 기대는 하지마라. 내 생각에 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것 같은데."
"야! 민지소 아주 악담을 퍼부어라, 악담을! 어?! 우리 해빈이가 기념일을 챙겨줄지 안 챙겨줄지 니가 어떻게 아냐, 엉?!"
으어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도 내심 불안하다구! 이해빈, 정말 나 이번엔 너 믿어도 되는거야?
"이해빈!"
"어, 벌써 와있었냐?"
"뭐, 뭐? 벌써 와있었냐구? 너... 니가 제정신이야! 벌써 30분이나 늦었잖아!"
"30분가지고 째째하게. 그런 건 상관없어. 중요한건 우리가 만났다는 거잖냐. 이렇게."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어? 왠지 뭔가에 휘둘린듯한 느낌이...
"이해빈, 너 우리 이렇게 데이트하는거 완전 오랜만인거 알아?"
"아니 몰라. 우리 어제도 만나지 않았냐?"
"...어제도 만났지. 만났는데! 너, 대체 고딩주제에 왜그렇게 호프집을 들락날락 거리는데?! 그리고 그 외상값을 왜 다 내가 갚아야되는건데! 내가 무슨 죄로!"
이새끼, 잘 걸렸다. 여기서 왕창 뜯어내버릴테다! 그리고 덧붙여서 저번에 그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일도... 너 때문에 그 때 나 집에서 쫓겨날 뻔 했다구! 이 밉상 이해빈자식아!
"어? 은, 은해누나 오늘따라 누나가 참 예뻐보이네. 오늘 화장도 별로 안한 것 같고만. 어?"
"내가 예쁜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이고... 빨리 돈 안내놔? 어린 것이 벌써부터 사람 돈을 떼먹어? 앙?"
"아잉 누나! 어? 저것 좀 봐! 진-짜 이쁘다, 어? 누나, 저거 좀 봐보라니깐!"
"이게! 팔 안놔? 아파 이 짜식아!"
맨날 말만 돌리는 완전 밉상 이해빈 이 자식이 지금 누구 팔을 막 잡아 끌어! 이게 꼴에 남자라고 힘은 무지막지하게 세가지고는.
"우와, 이거 진짜 예쁘다. 그치?"
...그러면서 벌써 휘둘리고 있는 나는 참, 나는 정신연령이 고등학생보다 낮은가봐.
이 녀석이 나를 끌고 온 것은 한 쥬얼리샵 앞. 투명한 유리 안으로 보이는 것은 작은 보석이 박힌 은반지였다.
"해빈아."
"어, 어?"
"흐흐흐..."
"야, 아니... 누나 왜그렇게 웃냐! 무섭잖아..."
"우리... 조금만 있으면 1000일이다!"
"어, 그래? 오래도 사겼구만."
"뭐야?"
"아, 아니! 누난 내 운명이라고!"
"음- 내가 너한테 부담주려고 그런건 아닌데! 저 반지, 되게 이쁘다. 그치?"
"어..."
"후후, 그냥 그렇다구 해빈아! 우리... 이제 1000일이다, 1000일!"
해빈아. 니가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이 누나는 니가 충분히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해빈아, 화이팅, 오케이?
연.락.두.절
내일이 바로 이해빈 윤은해의 1000일인데 이해빈 이 망할자식은 하필이면 이럴 때 연락두절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벌써 6일째나 말이다.
[아직도 아무 연락 없어?]
"응..."
[걔도 진짜 골때린다. 아예 이참에 확 헤어져버려!]
200일, 내 생일, 또 300일... 하나둘씩 기념일이 지날 때마다 풀이 죽어있는 나에게 지소는 항상 이 말을 하곤 했다. '헤어져버려!' 그래. 나도 솔직히 말해서 헤어지려고 몇 번이나 녀석을 만났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녀석은 내 마음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하루종일 환하게 웃으면서 절대로 나를 놓아주지 않았단 말이다! 게다가... 아직도 나는 이 철부지 남친, 남친 자격도 없는 이놈의 이해빈 자식을 아직까지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다.
후-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에 털썩 누워버렸다. 혹시나 내일 갑자기 연락이 되서 만나자고 했을 때 밤을 샌 것 같은 퉁퉁부은 얼굴로 해빈이를 마주할 순 없었으니까 일찍 자두자, 는 마음에서.
시끄러운 핸드폰 알람 소리에 깨어나서 부리나케 핸드폰 메인화면을 확인했다. 부재중통화 0건, 새로운 문자메세지 0건. 후우. 역시나 해빈이 너에게 이렇게 바라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일까.
거실로 나가니 엄마 아빠 동생은 나빼고 놀러간건지 쪽지 하나만 달랑 남겨놓고 밥도 아무것도 안해놓고 나가버렸다. 에잇- 이 웬수같은 가족들! 게다가 지소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지소마저도 연락이 되질 않는다.
결론적으로, 나 윤은해! 남자친구와 1000일이 됐는데 축하해주는 사람도, 반겨주는 사람도, 더군다나 남자친구까지도 모두 없이 혼자 집에 남아 뒹굴거리게 되었단 말이다!
티비 채널을 정신없이 돌리다가 핸드폰 확인하고 혹시나 몰라서 싹 목욕까지 하고 나와서 핸드폰 확인하고 예쁜 옷 골라서 갈아입고 또 핸드폰 확인하고 화장하고 핸드폰 확인하고.
결국 참지못하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에잇, 이해빈! 너 진짜 만나기만 해봐! 이참에 확 헤어져버릴라! 또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기다리는데...
'서방님이다, 전화받어! 안받으면 콱! 윤은해 전화받어!'
어! 이해빈이다! 핸드폰, 너 간신히 살아남은 줄 알아라. 지금 막 너를 내던지려고 했었는데.
"야, 이해빈! 너 죽을래! 내가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 너 왜 일주일동안 잠수탔어, 너 진짜 나한테 죽고싶지? 앙? 왜 대답이 없어, 또 일주일동안 호프집에서 죽치고 있다가 나한테 외상값내라고 하는거야? 너 진짜 그러면 알아서해! 이번에 확! 그냥!"
[저... 누나, 저 해빈이 아닌데요...]
"뭐, 뭐?"
...으아악! 윤은해 이게 무슨 짓이냐! 생판 모르는 놈에게 이렇게 욕설을 퍼붓다니 으헉, 쪽팔림의 대가구나.
"그, 그래... 음... 무슨 일인데 해빈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니?"
[지금 병원인데요... 해빈이가 지금 쓰러졌...]
"지금 장난치는거야? 해빈이 옆에 있으면 그건 저번에 500일 때도 우려먹었다고 전해줄래?"
[아, 아니... 진짜로 해빈이 쓰러졌는데...]
"하하하하 해빈이 쪽팔린가봐 이렇게 나한테 들켜서."
[진짜 아니에요 누나! 지금 해빈이가 죽을지도 몰라요, 오늘이 고비라구요!]
"뭐, 뭐라구?"
[희망병원 703호에요, 정말 꼭 와주셔야되요!]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나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서.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라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벌써 손은 부들부들 떨리며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은 그 녀석이 진심으로 걱정되서겠지? 물론 장난이란 것쯤은 뻔히 알지만 그래도 불안하니까...
이해빈, 너 대체 일주일동안 뭘했는데!!!!!
"헉... 헉... 해빈, 해빈아... 해빈아!"
병원 앞에서 생지랄을 했다. 사람들이 막 쳐다보면서 수군대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이해빈, 이해빈 지금 어디있는건데. 너 대체 뭘 했길래!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었다.
"이해빈... 흐엉... 해빈아..."
혼란스러운 마음을 잘 표현한 듯 애써 한 머리는 이미 산발이고 가지런한 치마는 이미 다 구겨지고 주름지고 화장은 너무 많이 울어서 다 지워지고 한껏 빼입었는데 신발은 슬리퍼...
엘리베이터가 계속 안와서 결국 7층을 계단으로 뛰어갔다. 설마 잘못된건 아니겠지? 막 불치병이라고 그러고 시한부인생이라고 그러고 막 의사가 막 말하는 거 아니겠지? 어떡해, 이해빈 너 막 나 두고 먼저 가는 거 아니지?
"어디 누구 찾으시..."
"이해빈! 이해빈 어디있어, 어디있냐구!"
"아... 먼저 진정하시고..."
"이해빈 어딨냐고!!!"
"누나!"
아까전에 나한테 전화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나를 보며 이리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표정에는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고... 정말 우리 해빈이 어디 잘못된거 아니겠지? 어?
"해빈아!!!"
"누나 진정하시고..."
"해빈이 정말 죽어? 정말 나 놔두고 먼저 가는거야? 응? 흐어엉..."
그 애가 누군지 확인하기도 전에 내가 병실에 뛰어들어갔더니 보이는 모습이...
"죽긴 누가 죽... 누구...?"
"해, 해빈아... 으헝... 나 기억 못하는거야? 나 은해잖어 응? 은해누나잖아!"
이해빈 너 기억상실증인거야? 그래? 그래서 우리 이제까지 사귄 거 기억 못하는거니? 그래도 난 상관없어, 그까짓 추억따위 다 버려버려! 지금부터 내가 처음부터 다시 다 만들어주면 되는 거...
"야 내가 윤은해 데려오랬지 괴물데려오랬냐? 이게 사람이야 괴물이야..."
"...해빈아?"
"우와 너 거울 좀 보지 그러냐? 난 저승사자가 나 잡으러 온 지 알고 존나 두려웠어."
"이해빈 너... 괜찮은거야? 너 죽는다고... 정말... 오늘이 고비라고..."
"아 그거? 심심해서 죽겠다고. 존나 심심해서 오늘이 고비였다니깐."
하...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해빈이가 저렇게 멀쩡한 모습을 보니 참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가슴 속에서 회오리친다. 안도감도 들었다가 이렇게 멀쩡한 모습 보니깐 괘씸하기도 하고 또...
"너, 너... 뭐야! 이해빈 너 지금 뭐하자는 거냐구!"
결국 그 감정은 '분노'로 둔갑하여 해빈이를 마구 쏴대었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해? 너 병원에 있단 소리 듣고 내가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알어? 이 나쁜 놈아... 나쁜 새끼야... 으헝...으헝헝!"
"윤, 윤은해! 왜 울고그래... 어? 은해누나!"
"나, 난 너 큰일 난 줄 알고... 막 뛰어왔는데... 흐윽... 흐아!"
"야 울지마. 어? 나 멀쩡하잖아! 솔직히 좀 아프긴 하지만... 나 멀쩡해! 어? 울지 마"
해빈이가 나를 안아줬다. 이 바보 멍텅구리야. 난 너 다시는 못보는 지 알고 완전 놀랐잖아. 이렇게 따뜻한 품에 다시는 못 안길까봐 진짜 걱정했잖아, 무서웠잖아.
"아, 너 그러고보니까 오늘 1000일! 너 그리고 왜 일주일동안 연락 안된건-"
"손,"
"뭐?"
"손! 병신아!"
...이게 감히 누나한테 병신이라고 해? 기껏 달려왔더니 다짜고짜 손 달라고 이렇게 땡깡을 부려싸니?
"자! 병신아!"
"...풋"
이자식... 웃는게 영 불안한데? 또 '어유 우리 은해강아지 잘했어요 우쭈쭈. 큭큭 니가 개냐? 푸하하!'이러는거 아니야? 으악, 손 괜히 줬다.
"윤은해."
"뭐야, 이자식 왜 반말을 까 또! 죽고싶지 앙?"
"...해"
"뭐라구?"
"아씨... 사랑해!"
놀라서 휘둥그레한 나한테 뭐라 말하지도 않고 무작정 얼굴부터 들이대는 이해빈, 게다가 내가 말할 틈도 주지않고 이렇게 입술을 갖다대면...
"해빈이, 너..."
문득 손에 이상한 감촉이 들어 바라보면.
"이거... 그 때 그..."
"에씨, 병신아! 니가 그때 막 우리 곧 천일이라고 막... 니가 그거 예쁘다고 그래서, 아 진짜!"
...키스까지 했는데 이제와서 얼굴붉히면 이게 뭐하는 시츄에이션?
"그거 이해빈 저 자식이 일주일동안 막노동하면서 번 돈으로 산 거에요! 맨날 막노동 끝나고 반지 파는 데 찾아가가지고 절대로 팔지 말라고 지가 조금있으면 산다고 해서 오늘 사고 누나한테 전화할라고 했는데 과로로 쓰러진거에요."
그래, 너를 잊고 있었구나. 그런데 키스는 우리가 했는데 왜 니 얼굴이 빨개진거니? 해빈이 친구님아.
어쨌거나 해빈아! 완전 감동이구나! 눈에다가 무한감동을 싣고 해빈이를 바라보면.
"너! 아오 진짜! 쪽팔리게 그런건 왜 말하냐고!"
얼굴이 무진장 빨개진 해빈이가 내 눈앞에 있는데. 이거 진짜 꿈 아니지? 그치?
"이해빈 진짜... 그거 농담이었는데..."
"뭐야? 으아악! 윤은해 그거 다시 빼! 환불하게!"
"그렇다고 싫다는건 아니고... 해빈아,"
"으아아악! 내가 일주일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어?"
"내가 이 말 너한테 되게 오랜만에 해주는 거 같다."
"그거 살려고 등골 빠지는 줄 알았다고, 어?"
"사랑해."
"얘가 지금 서방이 말씀하시는... 뭐?"
"이해빈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한다고!!!"
정말 철없는 내 남자친구, 이해빈.
지가 3살이나 어린데 맨날 반말까고 툭하면 속썩이는 나쁜놈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아직도 너를 무진장 많이 사랑해서일거야 해빈아.
이해빈, 정말 죽을때까지 사랑해!
나쁜자식과 연애하기. 마침.
<보고싶은걸>
허허허허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몇군데 맘에 안드는 곳과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되는 부분 약간 수정했습니다
댓글남겨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리구요^_^
지금 번외올리서 슝슝가겠습니다!
첫댓글 ㅋㅋ아진짜진짜잼잇어용 ㅎ.ㅎ
감사합니다><
귀엽다!! 귀여워요!!ㅋㅋㅋㅋ
감사합니다><
번외있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준비중이에요ㅋㅋ감사합니다><
재미잇어용 ㅋㅋ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커플 너무깜찍한듯><
감사합니다><
와앙- 달달한게 재미있어용- ㅎㅎㅎ 단편 거의 처음? 보는건데!!!!! 단편 자주 보러 오겠습니당~ㅎㅎ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꺅..꺅..귀엽네요...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