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님들 안녕하십니까?
설이 다가오니 부산이 더욱 그리워 집니다.
4개월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4년이 된 느낌이랄까...
자갈치 충무횟집의 한 상 가득한 공짜안주가 그립고 주일에 한두번씩 출석하든 옛날 일본책방 골목의 c카페의 음악과 2차로 들리든 근처의 포장마차들, 거나해 지면 3차까지 가곤 했는데 3차로 가는 곳이 제 취미와 잘 맞습니다.
술에 취하면 노래가 부르고 싶어지는데 그렇다고 갑갑한 노래방에서 마이크로 부르는 것은 별로이고 그냥 마시든 곳에서 자연스럽게 부르는데 그것도 주위 테이블의 눈치를 봐야하므로 후배들부터 몇몇 시켜보고 주인이나 손님들의 반응이 괜찮다싶으면 본격적으로 뽑기 시작하는데 종류도 다양합니다.
가곡을 비롯해서 동요 팝송 가요 심지어는 약장수 흉내까지 하는데 질리지 않는 곳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쫒겨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지요.
그런데 3차로 가는 "바브라"는 통술집 비슷한 곳인데 주인 아주머니와 또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 두 분이 가곡 부르기를 좋아해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노래만 부르다가 날이 하얗게 새서 집에 간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 날은 집에서 요강단지만 없었다 뿐이지..뭐..하하하...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서편에 달이 호숫가에 질 때에 / 저 건너 산에 동이 터누나
사랑 빛이 잠기는 빛난 눈동자에는 / 근심 띄운 빛으로 편히 가시오
친구 내 친구 어이 이별 할까나 / 친구 내 친구 잊지 마시오.
가사가 한두군데 틀린 것 같은데... ...
어쨌든 후배와 둘이서 화음을 맞춰 불렀습니다.
처음에 화음이 잘 맞지가 않아 다시 하자고 했습니다.
부르고 나니 후배가 마음에 들 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불렀습니다.
어느덧 되풀이해서 자꾸자꾸 부르다보니 너무 화음이 잘 맞아서 그 맛에 취해 또 부르고 또 부르고...
기쁜 노래도 아니고 이별하는 노래인데 그 곡만 부른 지 족히 두어시간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예상하던 일이 터져버렸습니다.
우리 옆 테이블에, 자주오시든 조금 지긋한(저에 비해서) 단골손님이 한 분 앉아 계셨는데평소에는 별 말없이 조용히 마시고 우리들 노래도 한번씩 호응도 해 주시곤 했는데 그 날은 우리가 해도 너무했던 모양입니다.
갑자기 일어나서는 의자를 집어들어서 땅에다 패댕이치더니 "밤 새도록 불러라 불러"
당황스러워하는 우리 일행에게 주인 아줌마 왈 "아저씨 술 취해서 그러니 이해하이소. 미안해서 오늘 술값 안 받을테니 그냥 가이소"
우리때문에 손님 떨구고 그런데다 술값까지 안 받고...테레사 수녀같은...
바브라라는 술집이 어디 있냐구요?
물론 위치를 가르쳐줘도 못찾죠.
주인 아줌마의 코가 바브라 스트라이잰드를 닮아서 제가 지은 별명인데 아마 몇몇 이외엔 잘 모를겁니다.
1 2 3차 가는 곳이 모두 국도레코드 근처에 있다보니 광복동 거리의 추억들이 새삼 떠 올라 글을 쓰는 지금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제가 앞글에 소설같은 첫사랑 얘기라고 했는데 겸서님 pia님 사오정님 그리고 나르치스님께 미안해 지네요.
헤르만 헷세의 "청춘은 아름다워라"같은 얘기도 아니고 나로서는 아프고 후회가 있는 추억이지만 그래도 아득히 지나버린 시간들이 그리워 그만 허세를 부려 본 것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제가 다니든 초등학교는 보수동에 있는 b초등학교였는데 3학년까지는 남녀 혼합반이고 4학년부터는 남녀 유별(?)반이었습니다.
2학년초에 전학와서는 졸업때까지 다니면서 6년 개근상이라는 흔치않는 상도 받았을 만큼 공부도 잘 했습니다.
당시에 참 가난하게 살았는데 아파서 결석하고 배고파서 결석하고 또 숙제 안해서 선생님께 맞을까봐 결석하고...
그만큼 6년 개근상 타기가 어려웠는데 가난한 와중에도 꼬박꼬박 학교에 가게 해 주신 어머니가 존경스러울 밖에요.
저는 그때 먹는 것이 부실하다 보니 키가 자라지 않아 다른 아이들 보다 많이 작았던 모양입니다.
전학오니 맨 앞자리에 저 보다 더 작은 여학생옆에 앉게 되었는데 그 애와 4학년 올라 갈 때 까지 짝지(짝꿍)를 하게되었죠.
둘 다 꼬마 소리를 듣다보니 서로 동질감을 느꼈는 지 위기감(?)을 가졌는 지 몰라도 그 때부터 놀림감이 되도록 같이 붙어 다녔습니다.
운동회때 배웠던 유희를 아이들끼리 모여 자주 추곤 했는데 하루는 방과후에 그 유희를 하게 되었죠.
하필이면 그 애와 부부오리역을 맡아 마주보고 주둥이를 내 미는데 누가 뒤에서 밀었겠죠.
본의아니게 뽀뽀를 하게 되었는데 그 후로 놀려대는 바람에 서로 서먹서먹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결정적인 사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키가 작은 덕분에 그 때까지도 엄마따라 동네 여탕에 갔었죠.
"때 잘 벗길려면 탕에 들어가 푹 담그고 있그라"
엄마의 말씀대로 목만 내밀고 푹 담그고 있었습니다.
그때 등뒤로 어느 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이 들렸습니다.
"얘봐라 어린데도 엄마 말 얼마나 잘 듣노. 니도 탕안에 들어가서 푹 좀 불라라"
옆으로 한 여자아이가 들어 왔습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보았는데 서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아뿔사 제 짝지가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약속한 것 처럼 서로 벌떡 일어나서 손으로 그 곳을 가리고 뒤로 돌아섰는데 큭큭거리는 그 애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바로 탈의실로 가서는 그 애가 볼까싶어서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도망을 쳤습니다.
그 후로 여탕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한동안 그 애가 내 고추를 봤는가싶어 얼마나 전전긍긍했는 지...
그 후로 더 서먹서먹해 지고 얼마 안 있어 4학년이 되어 반이 갈라지게 되고 그리고 서로 복도에서 마주치면 고개를 돌리는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덧 졸업을 하게 되었죠.
아까 공부를 잘 했다고 했는데 그 때는 공부이외에 특별하게 재밌는 일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공부만 했는데 6학년 국어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자까지 달달 외웠습니다.
중학교 입학 시험이 있었는데 전기와 후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부산의 명문 학교는 전기에는 토성동의 k중학과 수정동인가? b중학이었는데 저는 가까운 k중학을 지원하게 되었죠.
학과 시험이 190문제에 2점씩 380점에다가 체력장 20점 모두 400점 만점입니다.
세살 차이의 저의 형이 k중학에 들어 갈 적에는 커트라인이 375-380점 정도였고 바로 위의 선배들도 마찬가지여서 무척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상한 사건 터져 버렸습니다.
일명 "이근하 사건"이라고 아주 유명한 사건이었죠.
동대신동에 있는 h초등학교에 다니든 이근하라는 5학년생이(당시 내가 6학년) 과외수업 마치고 귀가하다가 납치되어 죽은 사건이었는데 납치범이 그 아이의 삼촌이란 사실이 밝혀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되었었죠.
그래서 생긴 방침이 과외수업 페지와 함께 입학 시험을 교과서 있는대로 쉽게 출제하는 것 이었습니다.
제 시험 결과 400점 만점에 396점.
저의 아버지 말씀 "야 니 톱 아이가"
그런데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600명 모집에 150명이 만점이고 397점 커트라인에 걸린 아이들도 부지기수라 1점 모자라는 것은 하소연 할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쉽다고 덤벙대다가 미역국을 먹어서인 지 후기에는 서대신동에 위치한 d중학에 만점으로 입학했습니다.
지금 구덕운동장 축구장 뒤에 있는 학교인데 대충 아시죠?
나보다 못한 친구들이 쌍백선 두른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에 충격을 받고 열등감도 생기고 해서 그 때부터 공부를 등한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도 공부를 하지 않으니 보다못한 어머니의 배려(?)로 방과후 학원에 다니게 되었죠.
공부가 싫은데 학원 다닌다고해서 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학원을 열심히 안 다닐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그 여자아이가 어느새 키가 훌쩍 커서는 제가 다니는 학교옆 b여중의 세잎 클로바가 그려진 자주빛 교복을 입고는 내 앞에 턱 나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휴일인데 다른 일은 없고 집중하다보니 시간이 벌써...
발안마 받으로 안 오냐고 전화가 왔네요.
한 번 받는데 40분에 30원(우리나라 돈으로 4000원 정도)이니 싸죠?
혈액 순환도 잘 되고 서비스로 부항도 떠 주고 좋습니다.
회원님들 천진올 일 있으시면 꼭 연락하세요. 발안마와 술 대접은 얼마든지 자신있습니다.
본의아니게 정말로 연재가 될 것 같네요.
재미없어도 있는 척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설 쇠고 나서 모두들 뵙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저는요, d중학교 옆에 b여중 다녔는데 혹시 학교 다닐 때 저 못보셨어요??? 젊었을 때는 예뻤는데(?).
겸서님 신문에 날 정도로 공부 잘 하셨으니 b여중 출신일 거라는 제 예감이 맞았네요. d중도 당시에 괜찮은 학교였는데 그죠?
글 잘 읽었습니다. 헌데, 설 지나고 함 보시자고 하셨는데... 언제 귀국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서울에 있는 관계로, 대략적인 모임 날짜를 알 수 있으면, 그때에 맞춰서 부산 함 다녀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사부 신년모임도 하구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두달에 한번 북경에 올라가는데 괜찮으시다면 천진에도 짬을 내서 들리겠습니다. 그때 템슈테드가 지휘한 말러 전곡^^;; 들고 올라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