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갯가로
열흘 전 소한이 지났고 대한을 나흘 앞두고 반짝 추위가 찾아온 일월 중순이다. 그간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에 미세먼지가 끼어 야외 활동에 지장을 주었다. 미세먼지는 날씨가 따뜻하니 더 기승을 부렸다. 차라리 추위가 닥치더라도 미세먼지가 끼지 않으니 좋았다. 아침 식후 해안가 산책을 나서려고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마산의료원 앞으로 나갔다.
마산역 광장에서 출발해 구산이나 삼진 방면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는 모두 거기를 통과해 가는 길목이었다. 나는 구산 갯가를 가는 60번대 버스를 기다렸다. 마침 원전 종점으로 가는 62번이 와서 올라탔다. 밤밭고개를 넘어 현동 택지지구를 지났다. 예전엔 시골이었는데 근래 높다란 아파트가 곳곳에 들어섰다. 초등학교는 개교를 했고 신설되는 중학교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영버스 차고지를 지난 유산삼거리에서 내렸다. 유산마을 입구가 내 일일 보도 여정의 기점으로 삼았다. 마을로 가는 길가에 식당이 한 곳 있는데 아침 이른 시각이라 문은 열지 않았다. 송아지만한 개를 두 마리 묶어두었는데 내가 지나치니 컹컹 짖어대어 움찔 놀랐다. 평소 마을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분명 적을 터인데 녀석한테는 내가 정체 모를 이방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을을 지날 무렵 마산 거제 간 5호선 국도 현장이 나왔다. 낮은 산마루를 깎고 터널이 뚫리고 있었다. 공사구간을 지나니 골짜기에는 골프연습장과 숯가마 찜질방이 나타났다. 유산에서 마전으로 넘는 고갯마루에는 오래 전 도로가 개설될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을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었다. 요즘과 달리 예산이나 장비가 부족했을 시대에 한적한 갯가에서는 큰 공시였지 싶다.
산비탈을 내려서니 자전거 라이딩을 나선 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비탈을 내려선 갯가는 마전 앞 포구였다. 군령 삼거리에어 명주나 진동으로 가질 않고 수정을 향해 걸었다. 수정은 구산면소재지다. 군령마을 지나니 다시 오르막으로 고개를 넘었다. 고개에는 노인전문요양원인 시니어카운티가 있었다. 국도 개설 공사로 아늑한 산중 요양원이 장비들이 지나쳐 한동안 불편할 듯했다.
고개를 넘으니 석곡마을이었다. 응달 산비탈 농원에서는 수탉이 영역 표시를 확인하는 듯 ‘꼬끼오!’라고 길게 울어대자, 알을 낳은 암탉은 ‘꼬꼬댁! 꼬꼬!’라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마을 어귀를 지나니 산언덕에 트라피스트 수녀원이 보였다.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는 봉쇄수녀원인 줄 알고 있다. 마침 오전 미사를 끝내는 알림인지 뎅그렁뎅그렁 종소리가 들려왔다.
마을을 빠져나가니 수정 버스환승장이고 모롱이를 돌아가니 시골 중학교와 주민복지센터였다. 골목길 반점으로 드니 주인장 중년 부부가 분주히 손길을 움직였다. 우동을 한 그릇 시켰더니 바지락과 홍합이 먹음직해 맑은 술잔을 같이 곁들였다. 소진된 열량을 보충시킨 후 매립지를 지나 수정만으로 나가보았다. 갯가로 가는 볕바른 길섶엔 광대나물이 자주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방파제 이르니 바닷물이 무척 맑아 마을 이름을 ‘수정(水晶)’이라 불러줄 만했다. 파릇한 해수면에 홍합 양식장 부표가 줄지어 떠 있었다. 선착장 연안은 뗏목을 변형시킨 포장마차와 같은 시설이 가득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홍합을 까는 장소인 듯했다. 겨울 한 철은 홍합의 계절이었다. 해안을 따라 계속 가니 죽전마을로 그곳서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어 수정으로 되돌아 나왔다.
수정만 매립지를 돌아가니 어촌계 회관 외벽에 내다 붙인 ‘대한민국 홍합 1번지’라는 큰 글씨가 눈길을 끌었다. 지역 어민들은 자기네 고장에서 생산되는 홍합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듯했다. 보건진료소 곁 시립 어린이집에서는 재잘대는 아이들 소리가 들려왔다. 시골길을 걷다가 모처럼 들어본 소리였다. 면사무소를 바꾸어 부르는 주민복지센터 앞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19.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