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공학 10가지 도전적 질문 ⑤
뇌와 같은 인지구조의 인공지능 만들 수 있을까?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51호(2024.02.15)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의 ‘과학과 기술의 미래 클러스터’(클러스터장 이정동)에서 최근 ‘그랜드 퀘스트 2024’(포르체)를 펴냈습니다. 이정동 클러스터장은 “도전적 질문 (Grand Quest)이 진정한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10개의 도전적 질문을 통해 최신 과학∙공학의 이슈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서울대총동창신문에서 10회에 걸쳐 그 내용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Grand Quests 연재 순서 1. 집적회로기반 양자컴퓨팅 2. 프라이버시 기반 인공지능 3. 효소모방 촉매 4. 추론하는 인공지능 5. 체화 인지구조 인공지능 6. 인공지능 기반 항체설계 7. 노화의 과학 8. 초미세/초저전력 반도체 9. 환경적응적 로봇 10. 초경량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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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탁(전자계산82-86) 모교 컴퓨터공학부 교수
이인아(심리90-96) 모교 뇌인지과학과 교수
닫힌 환경(closed environment)의 한정된 데이터 기반으로 학습하는 현재의 인공지능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확실한 환경과 문제에 스스로 대응하지 못한다. 반면,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사람의 뇌는 발달과정에서 경험을 통해 인지구조(cognitive architecture)를 변형하고 성장시키면서 적응한다. 인간의 뇌와 같이 동적인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인지구조를 형성하며 발달해 나가는, 아기의 마음(baby mind)을 가진 인공지능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AI) 기술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라는 강력한 학습 알고리즘의 개발에 힘입어 다양한 패턴을 인식하고 예측하는 기술 분야에서 엄청난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현재의 AI기술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들은 대체로 방대한 데이터와 인간의 지도 (supervision)가 주어져 있는 환경에 한정되기 때문에 현재의 AI는 ‘닫힌 환경(closed environment)’에서만 좋은 성과를 낸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하지만 현실세계는 지금의 AI 관점에서 너무나 가변적이고 애매한 요소가 많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술 이 필요하다. 그 고민의 일환으로 AI가 인간의 뇌처럼 주변 환경의 변화에 빠르고 안정적으로 적응하면서 인지하고 행동하는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인간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몸을 통한 행동인 반응 (response)이다. 인간의 뇌는 평생동안 해마(hippocampus)를 통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경험적 학습 (experiential learning)’을 하고 세상에 대한 거대한 인지모델(cognitive model) 혹은 인지구조(cognitive architecture)를 완성해 간다. 이와 달리 현재의 AI는 몸이 없기 때문에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아닌 정해진 정보를 수동적으로 학습하고 판별하는데 그친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의 AI 기술은 인간의 뇌와 달리 체화된 인지 (embodied cognition)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몸을 가지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지각-행동 사이클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하기 위해서는 AI에 체화된 인지구조를 설계해야 하는데, 이는 설계의 개념이 기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AI를 요구한다.
인간의 뇌와 같이 인지구조를 스스로 생성해 나가는 AI를 만들기 위해서는 뇌의 작동원리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AI의 현재 발전 패턴과는 다른 알고리즘을 생각해내야 한다. 이 두가지 모두 현재로서는 어려운 일들이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개의 뇌세포들이 수백 조 개의 시냅스로 연결된 복잡한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뇌의 인지적 기전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뇌의 구조적-기능적 원리를 단순한 방식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현재의 AI기술은 패턴인식과 예측의 성능을 올리는데 매몰되어 있어,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에 도전하기 위한 여러 보완적인 기술들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마디로 체화된 인지구조를 갖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한 플랫폼이 무척 부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뇌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알기 위해서는 뇌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등 관련 학문의 초융합적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지 구조에 관한 기존의 연구로 ACT-R, SOAR, ICARUS 등의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전통적인 계산주의적 인지모델들로 볼 수 있으나 인지구조와 관련된 AI를 개발하기 위한 시도로 보기는 어렵다. 최근 딥러닝(deep learning)이나 트랜스포머 방식의 초거대 AI 모델은 신경망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뇌의 작동방식을 일부 모사했다고 볼 수 있으나 인간과 같이 실시간으로 적응하고 학습하며 발달하는 AI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른 대안적 시도는 많은 데이터를 사전에 준비하여 학습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몸을 가지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자기조직에 기반한 비지도 학습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이다. 마치 아기의 마음과 같은 상태로부터 출발한다는 뜻에서 아기마음(baby mind) AI라고 할 수 있다.
AI가 몸을 가지고 환경에 대응하며 상호작용할 수 있으려면 인간의 뇌와 같은 인지구조(cognitive architecture)를 가지고 학습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뇌세포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 시냅스(synapse)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적응적 유효성이 입증된 연결들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가지치기(pruning)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안에서 행동하는 지능을 발휘해야 하는 뇌로서는 이 방법만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유일한 진화적 솔루션이었을 것이다. AI 분야에서는 모델의 크기와 연산량을 줄이기 위해 딥러닝 모델에서 불필요하거나 중요도가 낮은 파라미터를 제거하는 것이 뇌의 가지치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뇌를 모방한 체화된 인지구조(embodied cognitive architecture)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이보다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2022년 9월, 매년 열리는 AI DAY 행사에서 자율주행기술로 유명한 테슬라에서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개하였다. 일론 머스크는 운전자들이 주행한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키는 방식의 테슬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옵티머스)에 탑재된 인공지능을 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완전자율주행차 개발을 최근에 포기한 한 거대 자동차 회사예시와 같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불확실하면서도 애매모호한 환경에서 스스로 학습하며 대처할 수 있는 AI 로봇이 탄생할 수 없다. 인간처럼 행동을 구현할 몸이 있고 그 몸을 움직일 적응적 인지구조를 가진 AI 기술이 등장한다면, 복잡한 현실세계에서의 활동제약을 극복하여 인공지능 시장뿐만 아니라 로봇시장에서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