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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과 그리스도인의 참된 직무
기억절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
이번 주에는 바울이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사역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직무”에 대해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바울은 뛰어난 신학적 통찰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추진하고 매듭지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역의 훌륭한 길잡이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부름받았나? 부름받지 못했나 고민하는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됨의 증거가 회심한 자들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으며 죄인들이 사는
새로운 삶으로 입증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하늘이 주는 가장 큰 신임장이며 주님께 부름받은 종이란 가장 강력한 증거인 것입니다.
● 참된 사역의 결실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추천서는 흔했습니다.
바울당시 거짓교사들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화려한 종이추천서, 즉 스펙을 자랑하며 바울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추천서를 지니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자이자 가말리엘 문하생, 당대 최고성골이었던 바울은 그 모든 스펙을 분토처럼 버렸습니다.
바울에게 유일한 추천서는 외형적 스펙은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성도들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지혜나 노력으로 고린도교회가 탄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그는 자기홍보에 몰두하지 않았습니다(고후 3:4-6; 고전 2:2).
오늘날도 세상은 스펙을 봅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배경과 성적을 따집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도 세상의 스펙주의가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어느 교회의 직분을 맡았는지, 모태신앙인지, 삼육출신인지가 그 사람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곤 합니다.
어떤 교회는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박사학위가 없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기이한 스펙주의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 사역의 본질을 두언약의 구원론적 경험으로 선명하게 대조합니다.
“바울이 말한 옛 언약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은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려는 율법주의적 시도입니다.
내 의지나 행위, 또는 직분과 배경이라는 스펙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 할 때, 율법은 죄인을 정죄하고 죽게 만드는 ‘죽이는 문자’가 될 뿐입니다.
새 언약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은 “이미 값없이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 일방적인 은혜에 감사하여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삶입니다.
율법의 조문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의 본질인 ‘이타적 사랑’을 기쁨으로 실천하는 구원의 완성입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는 구원을 자기노력으로 이루려는 것과 예수께서 이루신것을 믿음으로 받는 차이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언급한 옛 언약과 새 언약은 복음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두 가지 반응을 언급한
것이지 구약과 신약에 서로 다른 두 복음이 있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음은 오직 하나이기 때문입니다.(딤후 1:9).
참된 사역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시고 화목과 거룩함의 사명을 이루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린 사람은 고난속에서도 위로와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말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는 뜻입니다.[고후3:1~9]
우리는 세상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하늘의 인정을 받으면 되는 사람들입니다.
재림성도 여러분!
우리는 화려한 신앙의 스펙이나 직분, 학위로 증명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마음판에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새긴 ‘새 언약의 일꾼들’입니다.
이제는 행위와 문자, 머릿속 이론에 갇혀 살아가는 ‘옛 언약의 신앙’을 과감히 벗어버립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붙들고, 내 안에 계신 성령을 의지하며, 날마다 참된 삶의 변화를
이루어가는 ‘새 언약의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출생한 사람들이다.
에덴동산의 첫 아담은 창조주와 맺은 언약을 어겨서(호6:7) 영생을 잃었다.
그에게는 영생 생명의 씨가 없어졌다.
그래서 말씀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생명의 씨가 되어 동정녀에게서 사람으로 탄생하셨다.
그는 마지막 아담이시다.
사람들이 둘째 아담이라는 말을 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
마지막 아담이라고 했다(고전15:45).
옛 언약은 히브리서의 설명으로 보면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다.(히8:7~10).
에덴동산에 아담과 맺은 언약이 첫 언약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교과 저자의 말대로 첫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을 사람이 행위로 이루겠다는 언약이다.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이미 사람은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되어 종신으로 달려가는데, 그들이 스스로 행동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
새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셔서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마지막 아담으로부터 영생의 생명을 얻어서 영생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되며 그렇게 된 사람들은 이 사망의 세상에서 사망의 존재들에게 생명이신 예수님의 편지가 되는 것이다.
● 고난과 영광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무너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답답한 일을 당하고,박해를 받고,거꾸러뜨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싸이지 아니하며, 낙심하지 아니하며,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합니다.(고후 4:7-18)
바울은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질그릇에 큰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란 보배가 담긴 것입니다.
바울은 질그릇같이 연약한 존재였지만 그 안에 보배를 담아 갖은 고난을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바울이 고난을 이긴 또 다른 이유는 환난을 경한 것으로 만드는 영광된 것을 믿음으로 바라본 것입니다.(고후 4:17-18)
바울은 미래의 삶에 관한 소망으로 가득차서 그 이야기를 본문전체에 걸쳐 계속합니다(고후 5:1-10).
우리는 처음부터 흙으로 빚어진 '질그릇'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스펙, 학위, 직분, 재력이라는 '금빛 물감'으로 겉면을 도색해도 결코 금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질그릇이 최고의 가치를 갖는 유일한 방법은 겉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의 친필로
쓰여진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 하나님의 친필사인과 예수의 흔적이 우리 삶에 새겨질 때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금그릇이라도 그 안에 썩은 음식을 담고 있으면 가치가 떨어지지만, 볼품없는 질그릇
이라도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가 담기면 그 인생의 가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치로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 신앙인의 삶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 인생의 질그릇 속에 예수가 계시는가, 그렇지 않은가?"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0)
내 교만과 자아가 깨어지는 시련이 곧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는 경험’입니다.
그리고 내 연약함이 드러나는 바로 그 순간, 내 능력이 아닌 내 안에 계신 ‘예수의 생명’이 비로소 세상에 밝히 드러납니다.
우리의 결함과 연약함은 결코 낙심할 이유가 아니라, 내 자신을 내려놓고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아래 서서 오직 그분께만 영광을 돌릴 기회입니다.
나 자신의 연약한 그릇을 보며 낙심할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들어와 계신 보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내가 깨어지고 낮아질 때, 내 힘이 빠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부가설명>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사람의 환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현미경으로 겨우 보는 미생물이라도 보이는 것에 속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이 세상 차원 밖의 것이다.
사람이 밤하늘의 별들을 보지만 그 실상을 정확하게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의 세계를 어떻게 바르게 알겠는가?
성경에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을 보는 눈이 믿음의 눈이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성경이 사실과 현실로 보인다.
사망과 생명이 분명히 구분된다.
동시에 산 자와 죽은 자의 실상을 알게 된다.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옮기는 것이다.
●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
교회는 본래 지상의 작은 천국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수많은 교회가 성도간의 관계가 깨지고 갈등이 심화되어 지옥처럼 괴로운 장소로 변하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고치려 하거나 특정사람을 비난합니다.
교회의 모든 문제는 사람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재, 예수님과의 단절’에서 시작됩니다.
교회의 중심이 예수님이 아니라 '나'가 되는 순간 교회는 무너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자랑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자랑했습니다.
반대자들의 자기중심적인 사역과 현저히 대조되는 모습입니다.(고후 5:11-15)
예수님은 화목하게 하는 일의 유일한 전문가이십니다.(고후 5:17-18, 바른)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서 인류와 하나님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갈등현장에 직접 오셔서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으시고, 연약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복음을 전함으로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라고 말합니다.
대사는 자기 뜻이 아닌 자기를 보낸 분의 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직무는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사역입니다.
그리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으니”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돕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교인들 간의 애정과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고후 6:11-13).
하나님과 화목해졌다는 증거는 서로 화목해지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발견됩니다.
그런 사람은 수평적인 화목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바라기는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사역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사역을 통해 많은 영혼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가설명>
성경에서 화목은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한다.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 제자들을 위한 마지막 기도가 하나 되게 해 주시라는 것이었다.
요한복음 17장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려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 보기를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려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가르친 것이 성소와 그 봉사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셔서 죽으심으로 죄를 없이하시는 길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함께 거하실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임마누엘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화목의 결과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이것을 하나 되게 하셨다고 표현했다(엡2:13~16).
● 거룩해지라는 부르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우리는 이미 거룩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많은 신앙인이 이 순서를 오해합니다.
'거룩해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면 마침내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함을 입은 존재가 되었기에,
그 은혜에 답하며 거룩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고후 7:1)
내가 깨끗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성전삼으시겠다는 은혜의 약속을 먼저 주셨습니다.(고후 6:16-17)
약속이 먼저이고, 거룩함은 그 약속을 받은 성도가 마땅히 드러내는 열매입니다.
거룩함은 내 노력이 아닌 성령께서 내 안에서 행하신 활동의 결과입니다.
바울은 거룩한 삶을 여섯가지 권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고후6:11-7:1)
①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② 그들 중에서 나와서
③ 따로 있고
④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⑥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그리고 교회가 거룩한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7가지 약속도 함께 주시고 있습니다.(고후 6:16-18).
①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② “두루 행하여(즉 사람들 사이을 걸어다니며)”
③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④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⑤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⑥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⑦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포도나무 가지 스스로는 단 하나의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열매와 생명력은 원뿌리와 줄기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세상의 모습만 보면 거룩함을 유지하기 어려울거 같습니다.
오늘도 참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붙어 계십시오.
성전 삼아주신 그 약속의 은혜를 붙들고, 포도나무로부터 흘러오는 성령의 진액을 받아, 세상의 부정한 멍에를 벗어던지시기 바랍니다.
<부가설명>
거룩함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구별되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와 구별되고 우상에게서 구별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에 합당한 성전이 되라는 것이다.
그것은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는 것이다.
부정한 것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거룩함이 손상당한다.
거룩하다는 것은 성품이 아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과 구별되시는 분이다.
세상은 사탄에게 속해 있다.
세상의 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끊는 것이다.
우리는 성화를 성품 변화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화는 세상과 관계를 끊는 것이다.
그렇게 끊어버린 후에는 하나님께만 속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생명이 그 사람에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그것이 빛의 열매다(엡5:8,9).
하나님이 빛이시니 세상과 단절하고 하나님께 속하면 당연히 그 빛이 내게 비치고 빛의 옷을 입으며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 위로와 기쁨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는 참 많은 아픔을 준 교회였습니다.
바울을 오해하기도 했고, 바울의 사역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엄중한 편지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 편지를 보내면서 바울의 마음도 참 많이 아팠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회심과 변화소식을 들으며 깊은 쉼과 위로를 얻었습니다.(고후 7:4-6)
그러나 바울은 교회가 주는 위로는 스쳐 지나가는 통로일 뿐, 자신의 영혼을 채우는 근본적인 위로는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사랑하고 용서할 대상이지, 결코 기대나 의지의 대상이 아닙니다.
<부가설명>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가 보낸 편지에 어떤 반응을 나타낼는지 마음을 조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디도를 통하여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한 소식을 듣고 조리던 마음이 펴이며 마음에 쉼이 왔다.
그것이 위로가 아니겠는가? 당연히 기쁨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ABC기도운동을 시작한 쿤 목사를 찾아와서 자기 죄 용서 받기를 원한다고 근심 띤 얼굴로 말했다.
쿤 목사가 물었다.
“형제는 그 죄를 진정으로 하나님께 회개로 아뢰고 용서받기를 원하시오?”
“예, 그렇고 말고요.” “그러면 하나님께 진정으로 고백했나요?” “예,”
그러면서 쿤 목사에게 허물을 털어놓으려고 했다.
쿤 목사가 말했다.
“그 허물은 하나님께만 고하면 됩니다. 같은 사람인 내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함께 무릎을 꿇고 쿤 목사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무아무개 형제의 죄를 다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그 형제가 아멘하지 않았다.
그렇거나 말거나 쿤 목사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형제여, 하나님께서 형제의 고백한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으니 축합니다.”
그 형제는 의아한 눈을 쿤 목사님을 쳐다보면서 악수하려는 손을 뒤로 빼고 말했다.
“목사님,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한 것을 어떻게 알아요. 아무런 대답도 없는데”
그때 쿤 목사가 말했다.
“형제여,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믿으십니까?” “그럼요.”
그는 요일1:9을 읽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진정으로 자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지요,
형제는 진정으로 고백하고 회개했지요, 그러니까 용서받은 것이 확실하지요.”
“아이 목사님도, 무슨 용서한 표가 나야지요. 그런 기도 40년동안 늘 했지만, 용서하신 표를 받은 일이 없어요.”
우리는 기록한 말씀보다 내 감각과 느낌을 더 믿는 것이 아닌가?
바울을 고린도 교인들의 회개를 진정으로 기뻐했다.
마무리
오늘 교과를 요약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직무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고난을 이기고,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며, 거룩한 삶을 살아,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말씀 잘 기억해서 직무를 잘 수행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바랍니다.
[26.3기.10과 안교교과/ 부가설명 김명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