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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이사야 57 : 14 ~ 21
제목 / 내가 그를 고치리라
우리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우리 자신의 대한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조금 무리하게 일하면 지치고 피곤하여 계속해서 일하기 어렵습니다. 질병에 걸리면 꼼짝없이 드러누워야 합니다. 잘못된 습관이 한 번 형성되면 여기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굳은 의지로 시작하지만 끝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 있는 이 세상도 불완전합니다. 오염의 문제가 있습니다. 전쟁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거짓과 차별과 불의의 문제가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갈등과 분쟁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각종 사건 사고가 연일 터져 나옵니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다보니 마음이 힘듭니다. 불안합니다. 인생살이가 고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한계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절망에 이르게 되는 줄 알지만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같은 문제는 우리가 사는 현시대에서 붉어져 나온 문제가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이 겪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전 인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에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심각한 병에 걸린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13절에서 하나님은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하며 이들의 영적타락을 지적하였습니다.
1:23절에서는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한다”고 하시며 공의가 무너져 내린 사회를 신랄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2:6절에서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다”고 하며 우상숭배와 미신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을 말씀하십니다.
2:12절에서는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라”고 경고하시며 이들의 교만과 자만을 책망하십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총체적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 상태로 가다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벨론을 채찍으로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70년이라는 포로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들이 왜 이런 수치를 당하고 고통을 겪게 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지키지 않고 불순종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소망하며 포로생활 가운데서도 율법을 배우고, 말씀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들이 기다리던 예루살렘 귀환 길이 열렸습니다. 이는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최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이 무너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나라가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바사를 일으켜 바벨론을 무너뜨리시고, 바사왕 고레스로 하여금 칙령을 내리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적인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지만 그들의 예루살렘 정착은 쉽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에서부터 방해를 받아 20년이란 지루한 시간에 걸쳐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그 이후로도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불안정하였습니다. 여전히 예루살렘 성은 폐허가 된 채로 방치되어 있었고, 이들의 영적 상태도 헤이해질대로 헤이해졌습니다.
이 상태가 오늘 본문의 시대적 배경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이사야는 6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크게 3단락으로 구분이 됩니다. 1~39장은 분열왕국 시대에 남유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40~55장은 바벨론 포로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56~66장은 바벨론 포로귀환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지만 그들의 삶은 불안정하였고, 생활의 기반을 마련하는 일도 버거웠습니다. 그들의 영적 상태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며 먼 길을 왔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생활은 훨씬 안정적이고 편했을 겁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을 이루지 못한 것은 방해하는 세력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회복할 능력이 없었고,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다시 죄악의 문제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17절입니다.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이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 포로로 가게 된 이유가 탐심의 죄악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그들이 아직도 패역하여 이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탐심에 빠지면 영적생활은 무너집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탐심은 수많은 죄를 낳는 죄악의 모체입니다. 탐심에서 비롯되는 죄들은 부정한 상거래, 뇌물수수, 비리, 사기, 절도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이 나태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고 있다면 그 원인을 진단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탐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물질우상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문제에 걸렸습니다. 이들이 탐심의 죄에 빠진 것은 그들의 수중에 돈이 많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정착하기도 버거웠습니다.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에 탐심의 죄에 걸려들었습니다. 부유한 사람만이 탐심의 죄에 걸려드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도 이 죄에 걸려듭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방치해야 합니까? 이전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한 것처럼 또 다시 그들을 징계해야 합니까?
본문 16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하나님은 그들과 다투지 아니할 것이고, 그들에게 노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영혼이 피곤할까 염려가 되어서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다투고, 죄를 범할 때마다 분노하면 그들의 영혼을 피곤하게 만들어 그들이 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냥 넘어가시겠다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악의 문제를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죄로 인하여 영혼이 피폐해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자기 백성을 수수방관하지 않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들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하나님이 이들의 처지를 보았기 때문에 그를 고치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고치시겠다’고 하신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고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잘못된 것을 정상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치료를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어떻게 하셨습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시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그 보혈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죄인 되었던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희망촌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이 은혜를 입어 여러분의 죄가 씻음 받고, 깨끗하게 고침받기를 바랍니다.
18절을 다시 주목해 보십시오.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 다음에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인도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목자가 되셔서 그들의 길을 친히 지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고쳤으니 알아서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를 인도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영적인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적 분별력이 없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모릅니다. 무엇이 죄인지 선인지 모릅니다. 무엇이 축복의 길인지 모릅니다. 자기 입장에서 자기 유리한 대로 판단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의(義)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축복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의(義)의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면 이전에 헤어 나오지 못하였던 죄의 굴레에서 벗어납니다. 우리의 삶이 온전하게 되어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이 회복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등을 두드려주는 일시적인 위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온전히 회복하여 죄로 인한 모든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벗어나서 얻는 진정한 위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지워준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율법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의 한계를 느낍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의(義)의 길을 갈 수 있는 길은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죽은 영혼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따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자신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합니다.
사랑하면 초인적인 힘이 나옵니다. 우리 막내아들이 어릴 적에 우량아였습니다. 몸집이 큰데다 살도 많이 쪄서 다른 아이들보다 몸무게도 많이 나갔습니다. 보통 첫돌이 되었을 때 10kg정도 되는데 우리 아이는 13kg가 넘었습니다. 누가 13kg되는 짐을 주고 들고 다니라면 아마 거절할 겁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자식이니까 안고 1시간 이상도 다닙니다. 무거운 짐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회복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영혼이 거듭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행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고치시고, 인도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5절입니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 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그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통회함’과 ‘겸손함’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입니다. 겸손한 자가 통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고, 이로 인해 내 자신이 심각한 문제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통회하는 자가 영혼이 소생되고, 마음이 소생되는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통회하는 자에게 소생하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이 소생되고, 마음이 소생되어 고치시고, 인도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시기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가 자신의 죄를 통회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악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고치시고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교만한 자, 마음이 완고하여 통회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리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