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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펜후드 원문보기 글쓴이: 一波
초등학생 5학년생은 다른 일로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내가 알았던 파커만년필의 촉은 몸통 속에 숨어서 작게 머리만 나왔던 것을 기억해서다.
어린 눈으로 볼 때 카메라의 아랫도리는 몽땅 촉이었다.
셋집의 큰 아들은 만년필을 썼다. 대학생이다. 나는 그 만년필을 한 번 써보려고 별렀다.
셋집 경대 위에 있던 쉐퍼 만년필을 슬그머니 챙겨든 지 얼마 지나서이다.
몇 자를 벌벌 떨며 써보았다.
종이를 긁으면서 글씨가 뭉겨진다.
이 짓을 하려고 남의 것을 들고 왔나해서 겁이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 집에서 난리 법석이었다. 당연한 것이 만년필은 자산 목록 첫째였던 때 인데다가 만년필 말고는 쓸 것이 달리 없을 때였으니까.
다시 나중에 그 만년필을 몰래 경대에 가져다 놓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쓰기엔 버거운 만년필이었다.
한참 뒤, 군대 갔다 오고 취직도 했다. 만년필만 보면 걸음이 멈추었다.
1970년대 거리에는 만년필과 라이터니 색안경을 팔던 좌판이 길거리에 흔했다.
그곳에 숫하게 꽂혀 있던 만년필 풍경이 떠오른다. 좌판의 만년필을 보는 것으로 만족 못한 나는 백화점 진열대까지 가서 기웃댔다.
몇 번을 들여다보고 다시 또 와서 보며 벼르던 끝에 미도파 백화점에서 쉐퍼 하나를 샀다.
디자인은 그렇다 손 쳐도 잉크 넣기에 절차를 따졌다.
잉크를 넣으려고 몸통의 놉(만년필 몸통의 꼭지부분)을 돌리면 튜브(잉크를 빨아들이는 관)가 침처럼 쑥 혀를 내미는데 그 길이가 손가락 마디 하나 길이였다.
그 침 같은 관을 통하여 쉐퍼는 잉크를 들이마신다.
쉐퍼 디자인은 깜짝 놀랄 정도로 카리스마가 있었다.
파카 x1에서 만년필촉은 잉크 마름을 막으려는 설계로 촉에 보일 등 말 등이나 쉐퍼의 촉은 자신 만만한 알몸인데다가 관우의 언월도처럼 과감했다.
그 모습은 마치 "촉있으마"하는 자기 강조이었다.
문제는 촉감이 파카와 달리 종이를 긁는 느낌이 나서 쓸 때 마다 신경이 쓰였다. 파카의 연한 촉의 감촉에 익숙해진 탓이었다. 글을 쓸 때 종이에 촉이 착지하는 느낌이 강한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일품이었음에는 틀림없었겠지만.
파카는 만년필 뚜껑을 몸통에 끼고 뺄 때 느낌은 슬며시 들어가서 단단하게 잡아주는데 쉐퍼는 왠지 버걱댄다.
쓰다보면 뚜껑이 몸통에서 벗어난다.
이제 생각하면, 그 만년필이 언제 사라졌는지.
남 주기 좋아하는 성질이니 누굴 주었나.
그 후 다시 코네이져 클래식 세트를 한 동안 쓰다가 부하 직원이 사표내고 나가니 덥썩주고 만다.
또 쉐퍼 생각이 나서 다시 두 자루를 품는다. Sheaffer Pen for Men (PFM). 산 지 15년이 지났다. 잉크를 넣고 보름이 지나도록 뚜껑을 닫았다가 써도 잉크가 바로 나온다. 물 찬 제비, 물위를 가볍게 나르는 촉의 감각이다.
파카처럼 만년필 뚜껑에 제품명을 각인하지도 않고 마치 시골 아낙 같은 소탈하고 밋밋하다.
쉐퍼에 대한 이런 긴 인연은 쉐퍼가 가진 야성에 빠진 유년의 추억이 나를 잡고 놓지를 않는다.
또 하나의 쉐퍼, 인크리그 자주색은 F촉이나 EF의 감각으로 책을 보며 메모를 하기 좋다. 다만 뚜껑이 잘 빠진다. 그만큼 잉크가 잘 마른다. 자주 촉을 물로 닦아낸다. 특별하게 잉크를 넣는 구조가 재밌다. 펌프식이 아니고 회전식으로 하는데다가 쉐퍼 잉크카트리지를 삽입하여 쓸 수도 있다. 나는 병 잉크만 넣어서 쓴다.
디자인이나 펜의 촉감이 "촉있으마"하고 자신만만한 쉐퍼는 마치 정을 안주는 무뚝뚝한 장부 같다.
나는 잡으면 바로 행동하는 그의 우정을 바라며 그를 잡고 다시 몇 글자를 잠시 써본다.
어떤 인연으로 쉐퍼가 태여 났나 궁금했다.
동학의 교주 최제우선생이 동학을 세운 때, 1860년. 몇 년 뒤 1866년에 병인양요로 천주교도이 줄줄이 잡혀 새남터로 끌려가는 통곡의 날들이 우리 땅에 가득하던 그 때, 쉐퍼 웰터는 1867년 7월27일 미국 아이오아주 블로움필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야곱 로이어 쉐퍼는 보석상이었다. 월터는 중등교육과정의 공식 교육과정 없이 가업인 보석상의 기본을 배웠다.
센터빌과 유니온 빌에서 보석의 기초를 끝내고 고향인 블롬필드에 오던 1888년에는 아버지의 가게 일꾼으로 손색없이 제법이었다.
1906년 여기 저기 보석가게를 사서 사업을 늘리면서도 아버지가 죽던 1916년까지 부자지간은 좋은 동업자였다. 쉐퍼가 만년필 제조업에 들어선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1907년 가을 어느 날, 지방지 광고에서 콘클린 자동주입식 만년필을 보고서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만년필은 안약 점적기식이었으니, 대단한 물건을 쉐퍼가 본 것이다. 잉크자동주입식 만년필이 대단하긴 했으나 만년필 몸통에 낙타의 등처럼 튀어나온 문제점이나 그 제품 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곧 이 문제를 풀려고 덤벼들었다. 만년필 몸통에 고무잉크통을 넣어 지렛대를 올리면 잉크가 빠지고 지렛대를 놓으면 잉크가 채워지는 안약점적식을 교체할 수 있다고 착안을 했다.
그는 이런 작업을 자신의 보석가게 작업실에서 했다. 1908년 8월25일 쉐퍼는 이것으로 특허를 땄다. 그의 첫 번째 지렛대씩 잉크 충전특허는 실용적이지 못했다. 고무제품의 탄력이 제대로 안되었다. 지렛대식 잉크 주입이라는 것을 우리는 낡은 만년필에서 이따금 본다. 이런 요령으로 잉크를 넣게 되어있다.
만년필 몸통에 길게 금속 막대가 있다. 막대 끝 홈에 손톱을 넣어 올리면 막대가 위로 올라간다. 막대 상하운동에 따라 잉크 빼고 넣기를 할 수 있다. 만년필 통 속 고무의 탄력성에 따라 잉크를 넣고 뺄 수 있다. 요즘은 이런 제품을 보기 어렵다.
어린 시절 이런 만년필을 보게 되면 장난을 하게 마련, 짧은 손톱으로 막내의 좁은 틈에 손톱을 넣었다가 생손 앓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나이가 먹어서 이런 형식의 만년필을 보아도 선뜻 손이 가지 않은 것은 어렸을 때 된통 혼이 났기 때문이다. 쉐퍼의 이런 잉크 넣기 형식을 그 후 많은 만년필 제조업자들이 받아들여 만년필 구조를 본떴다.
매뉴큐어 바른 손으로 여인들이 잉크 주입을 할 때, 더러 손톱 끝이 부서지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쉐퍼는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든 해가 1912년이었다. 이것은 1세대 만년필에 위대한 개선이었다. 보석업계에 있어 쉐퍼의 제조와 판매 기술은 타고난 재주꾼이었다.
그런 그도 만년필 업계에 들어서기란 만만치 않았다. 이제 그는 가정을 지켜야할 중년이었고 그런 그에게 외부의 치열한 경쟁 관계는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만년필 제조라면 자신이 있었지만 파는 일에 있어서는 상당히 어렵다고 느꼈다. 이때 운이 트일 일이 생겼다. 콘클린 만년필의 전판매원이었던 조지 클라크와 벤 콜손 두 사람이 만년필 판매책을 맡겠다고 쉐퍼를 설득했다. 쉐퍼는 그들의 말에 따르기로 결심을 했다.
1912년 봄, 그의 보석 공장은 만년필 제조와 판매소로 변신을 했다. 쉐퍼의 공장 처음 제품은 쉐퍼의 어린 아들 크랙을 포함해서 일곱 명이 손작업으로 만들었다. 쇠붙이에서 만년필 지렛대를 만들 때는 손톱으로 쓱싹 썰었다. 일꾼들은 주급 3불에서 5불을 받았다. 첫 시작이 좋았다.
두 사람의 판매책이 동업자가 되고 쉐퍼는 자금을 끌어들여 쉐퍼만년필은 회사의 형태가 되었다. 그 후 쉐퍼는 지렛대씩 특허를 지키기 위해 크고 강한 만년필 업자를 상대로 피터지게 법적 대응을 했다. 그 이야기만으로도 소설 한 권이 될 지경이었다. 다음해 1914년 에도 사업은 잘되었다.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전면광고를 낼 정도로 컸다. 이 신문에 광고가 뜰 정도면 일반인들에게 상당한 믿음과 판매를 보장받는 약속 같은 것이었다. 1917년에는 고용인 100명 10만개를 만들었다. 생산과 조립에 11개 부품과 62개 공정이었다.
20세기 들어서 쉐퍼는 많은 필기도구를 만드는 세계에서 정상급 제작사가 되었다.
쉐퍼는 디자인이다. 1981년 눈맛 까다로운 프랑스 소비자 협회에서 최고의 다자인상에 뽑혔다. 디자인이 독특해서이다.
쉐퍼의 클립 위에 하얀 점이 있다. 쉐퍼만의 심벌마크이다. 쉐퍼는 주로 14K금과 18K금으로 만든다. 잉크가 늘 적당량 흐르는 모세관 장치가 장점이다.
쉐퍼만년필 애용자는 미국 대통령 닉슨과 레이건 이었다.
그들의 국산품 애용이었을까. 작가가 쓰는 만년필이기 보다 힘 있는 자가 쓰는 만년필로서 느낌이 강하다. 쉐퍼를 포켓에 꽂고 있으면 20세기 초의 활발한 미국 정신이 느껴진다. 그것은 모험정신이고, 상대방을 보고 더 나은 것을 만드는 탐구심이다.
인크리그 , 지금 인터넷 검색을 하면 20만원이 넘는다. 6년 전 직거래로 6만원에 내 것이 되어서 잘 쓰고 있다.
손맛이 좋다. 잘 흐르고 촉이 종이 위를 그어지는 맛이 느낌이 있다. 만년필의 존재감. 쓰는 즐거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