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떠올리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동물이 있다. 바로 닭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축구 경기를 할 때마다 화면을 장식했던 마스코트 닭 ‘푸틱스’ 덕분에 그 이미지는 더욱 강력해졌다. 특히 결승전에서 개최국이었던 프랑스가 브라질을 3대 0으로 완파하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을 때 관중석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살아있는 닭을 들고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요리인류> 촬영을 위해 프랑스 동부에 있는 부르앙브레스(Bourg-en-Bresse)라는 곳에 간 적이 있다. 이 지역에서 기르는 특별한 닭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초록의 벌판이 넓게 펼쳐져있고 소박한 집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은 시골 마을의 한적한 길을 따라 농장에 도착했다. 먼저 주인인 파스칼 샤넬 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바로 농장을 둘러보았다. 농장이라기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너른 풀밭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곳에 오기 전, 500마리 정도의 닭을 키우는 규모 있는 농장이라고 듣고 왔는데, 닭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큰 농장이라더니 닭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농장을 한 바퀴 죽 둘러볼 요량으로 걷다 보니 넓은 풀밭 곳곳에 닭들이 한 마리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봐왔던 닭장의 닭들과는 달리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마치 대관령 목장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소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닭들이 자유로워 보여요.” 내가 말했다.
파스칼 씨는 내심 자랑스럽고도 뿌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저희는 갓 태어난 병아리를 35일 동안 키운 뒤에 농장에서 자유롭게 자랄 수 있게 풀어놔요. 그런데 여기엔 조건이 있어요. 농장의 전체 면적이 5,000제곱미터 이상인 동시에 한 마리의 닭이 12제곱미터의 공간에서 자랄 수 있도록 면적에 따라 사육하는 닭의 수가 법적으로 제한돼있답니다. 닭이 뛰어놀 수 있는 곳을 만들어줘야 하는 거죠.”
그뿐만이 아니다. 먹이도 직접 재배한 옥수수와 밀가루, 그리고 유장(젖 성분에서 단백질과 지방을 빼고 남은 부분)만 먹인다고 한다. 이렇게 엄격한 조건을 갖춰서 기른 닭이 바로 ‘브레스 닭’인데, 이 지역의 이름을 딴 것이다. 브레스 닭은 프랑스 입법부에서 가금류로서 유일하게 원산지 증명을 보장하고 있다. 치즈나 와인처럼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닭들이 어찌나 위풍당당하면서 아름다운지, 하얀 깃털은 윤기가 흘러 빛이 나는 듯했고, 붉은 볏과 청회색의 다리도 눈길을 끌었다. 고상하고 기품 있는 자태였다. 그래서일까? 파스칼 씨는 촬영하는 내내 우리에게 닭이 놀라지 않게 조심해달라고 당부하면서 카메라 앞에 자기 자식을 내보이는 사람처럼 닭 한 마리 한 마리를 소중하게 대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유별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성의가 진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파스칼 씨의 소개로 미식의 도시, 리옹에서 전통적인 프랑스의 닭요리를 다양하게 선보여 7년 동안 <미슐랭 가이드>의 2스타 평가를 받아온 요리사 ‘디디에 괴퐁’을 찾아갔다. 한눈에 봐도 잘생기고 따뜻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맛있는 닭인 브레스 닭으로 프랑스 전통 가정식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디디에 셰프는 성큼성큼 냉장고로 가서 닭을 꺼내오더니 겉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스티커가 브레스 닭의 원산지를 보장한다는 표시예요. 무게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뉘는데, 9주 정도 기른 1.4킬로그램 안팎의 작은 닭이 풀레(poulet), 1.8~2.3킬로그램에 난소를 제거한 암탉은 플라르드(poularde), 그리고 23주가 넘은 4킬로그램 이상의 거세한 수탉을 샤퐁(chapon)이라고 해요.”
그는 덧붙여 크리스마스나 명절 때는 가장 비싼 종류인 샤퐁이 10만 원을 넘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1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닭을 사 먹는다는 말인가! 놀란 만큼 더욱 더 디디에 셰프의 요리가 기대됐다.
“제가 만들 요리는 ‘코코뱅(Coq au vin)’이에요. 영문으로 풀자면 ‘chicken braised in red wine’라고 하는데 ‘와인에 빠진 닭’이라는 뜻이죠. 프랑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나 명절, 연말에 ‘코코뱅’을 많이 먹는답니다.”
최고급 닭으로 만든 프랑스의 전통음식을 맛보게 될 생각을 하니 저절로 흥분됐다. 그는 팬에 불을 켜고 그 위에 고기를 올렸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고기가 닭이 아닌 것 같았다.
“디디에, 그건 뭐예요?”
“이건 ‘라돈(Radon)이라는 염장한 돼지고기예요. 기름기가 많아서 라돈을 구울 때 나온 기름으로 다른 재료들을 굽기도 해요.”
디디에 셰프는 라돈에서 나온 기름 위에 밀가루를 얇게 묻힌 닭고기를 올렸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와 냄새가 귀와 코를 지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닭을 꺼내고 다시 팬에 마늘과 양파, 버섯을 살짝 볶아내더니 닭과 채소를 볶았던 팬에 와인을 가득 부었다. 그런 다음 가스 불을 세게 올리고 그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라이터였다. 나는 그제야 디디에 셰프가 와인으로 플랑베를 하려는 것을 눈치챘다. 플랑베는 술에 불을 붙여 단시간에 알코올을 증발시키고 술의 향이 음식에 배어들게 하는 프랑스 조리법이다. 디디에 셰프는 코코뱅에서 닭과 와인이 주인공인 만큼 플랑베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딱 한 번의 스냅으로 멋있게 불을 붙이는 그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와인은 보통 부르고뉴산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는 친절하게 당도가 높은 것보다는 드라이한 것이 닭고기와 잘 어울린다는 팁도 잊지 않았다. 구운 닭과 채소에 플랑베로 알코올을 뺀 와인을 넣고 조리는데, 이때 디디에 셰프는 개운한 향을 위해서 타임이나 월계수 잎을 넣어주면 좋다고 말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진한 빛의 와인이 배어들어간 닭고기를 나에게 건넸다. 오랫동안 조려 닭의 육질은 너무나 부드러웠고 와인의 깊은 향은 입안 가득 퍼졌다. 보기에는 우리나라 음식인 닭볶음탕과 비슷했는데, 먹어보니 맛은 전혀 달랐다. 닭볶음탕이 화려한 장미꽃이라면 코코뱅은 길에 핀 들꽃이랄까. 프랑스의 대표 가정식 ‘코코뱅’은 우리에게 알려진 여느 프랑스 음식들처럼 화려하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 단순함 속에 담긴 깊고 은근한 풍미가 있었다. 어쩌면 내가 맛본 그것이 진정한 원조 프랑스의 맛이 아니었을까?
내가 만났던 디디에 셰프는 정말 겸손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미슐랭 가이드> 2스타 정도 되면 자만심이나 겉멋(?)이 있을 법도 한데 그에게서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촬영을 부탁한 우리를 귀찮아하기는커녕 하나하나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 그리고 요리를 대하는 진지함이 그의 음식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코코뱅을 만드는 동안 작은 주방 안에서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했던 말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그에게 요리는 관계이자 인생의 기쁨이라는 말.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또는 누군가를 위해서 요리합니다. 그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기쁨이 제 요리에 담긴 정신이에요. 그래서 저는 늘 요리하는 것이 지구상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리옹에 가면 꼭 그를 만나고 싶다.
코코뱅의 유래
프랑스의 대표적인 가정식 닭요리인 코코뱅은 그 유래가 여러 가지인데 대표적인 것은 아래 두 가지다.
첫째, 프랑스의 가난한 농가에서 늙고 질긴 수탉을 부드럽게 먹기 위해 와인을 넣어 오랫동안 끓여 먹었다는 설이다.
둘째, 전쟁을 치르고 기근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가난한 생활을 본 16세기 프랑스의 왕, 앙리 4세가 “모든 국민이 일요일이면 닭고기를 먹게 하겠다.”라고 언급한 후 만들어진 닭요리라는 설이다.
- 재료(4인용)
- 마늘 3쪽, 샬롯 10개, 양송이 250g, 베이컨 100g, 닭다리 8개, 식용유 4큰술, 토마토 페이스트 1큰술, 브랜디 2큰술, 레드와인 600ml, 닭육수 150ml, 타임 3줄기, 월계수 잎 2개, 다진 파슬리 3큰술
만드는 법
1. 마늘은 슬라이스하고 양파는 8등분 정도 한다. 양송이는 2등분한다.
2. 베이컨은 3cm 길이로 썰어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바삭해질 때까지 볶는다.
3. 닭은 밀가루옷을 입힌 다음 베이컨을 볶은 팬에 넣어 노릇하게 굽는다.
4. 마늘, 양파, 버섯과 함께 넣어 볶다가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 볶는다.
5. 불을 세게 올린 다음 브랜디를 넣어 플랑베를 한다.
6. 와인을 붓고 닭육수, 타임, 월계수 잎, 파슬리 줄기를 넣고 은근히 졸인다. (약 45분)
7. 접시에 코코뱅을 담은 후 다진 파슬리를 올린다.
‘이욱정 PD의 요리인류’는 KBS, 그리고 예담과 함께합니다. 
< 이욱정 PD의 요리인류 키친>은 온라인과 전국 서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네이버 네이버TV 이욱정 피디의 요리인류키친 네이버 포스트 요리인류키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