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당시부터 여러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전해져 오던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던 건, 처음이라는 것이 주는 왜인지 모를 두려움 때문이었던걸까, 아니면 캐스팅 된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미덥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 입소문에도 불구하고 내 영화 목록에서는 젖혀버렸던, 그래서 머릿속에 아스라이 남아있었던 이 영화 제목이 기억에서 불살라질 무렵 다시 이 영화를 기억해 낸 건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불살라지고 있던 이 영화 제목의 그 매캐한 연기를 다시금 맡게 했을까?
영화는 시종일관 소박함의 미덕을 잃지 않는다. 삶 속에서 언제나 예기치 않던 순간에 불현듯 나타나는 '사랑'이라는 감정, 농촌과 바다·깊은 산 속에 위치한 절 등의 '배경', 그리고 그 공간속에서 상우가 채취하는 '소리'들(풍경소리, 파도소리, 심지어 우리 민요까지).. 모든 것이 다 친숙한 것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네 서민들의 삶의 방식과 이 영화 등장 인물들의 삶의 방식이 너무나 많이 닮아있다. 지나치게 화려한 방식도, 지나치게 궁핍한 방식도 아니다. 그저 그런 것들 사이에서의 작은 '에피소드'에서 나는 소박함을 느낀다..
삶은 결코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프기만 한 것도 아니다. 또한 사랑의 결말은 뻔한 동화처럼 해피엔딩도 아니고, 비극처럼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도 아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 산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불투명한 것이다..
-만남, 사랑 그리고 헤어짐-
첫 만남때부터 전혀 남의 눈을 개의치 않고, 기차 역 대합실에서 빨간 목도리를 얼굴에 두른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자, 은수.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얻고야 마는 '똑 부러지는 성격'. 작은 시골이지만 라디오 진행과 PD를 동시에 하고 있는 '능력 있는' 여자.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서울에서 강릉까지 단번에 차를 몰고 갈 정도로 순박한 남자, 상우. 어딘가 모르게 나사가 풀린 듯한 '멍한 표정',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이는 소리들을 따러 다니는, 어쩌면 남들이 보기엔 대단찮아 보이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서로 다른 이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느끼고(이 사랑을 느끼기에는 은수의 적극적인 다가갊이 큰 역할을 차지하지만), 함께 있는 것으로도 행복함을 느끼지만.. 이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은수는 익숙함에 곧 지루함을 느끼고, 상우에게 한달간의 유예기간을 갖자고 제의하고, 결국 한밤중에 마냥 보고 싶어 달려온 상우에게 이별 통보를 한다. 그리고 상우는, 출근하던 버스에서 내려 뛰어와서 이별 통보를 하는 은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은수-
은수는 개인적으로 보기에 나와 너무도 닮은 캐릭터이기에, 영화를 보면서 그저 가슴이 아릴 수밖에 없었다. 간절하게 원하지만 결국 쉽게 싫증을 내고 떠나가버리는 은수. 아파하는 상우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지만, 그것은 잠시뿐. 곧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하고 행복하게 웃어 버리는 은수. 시간이 흘러 상우가 가르쳐준 지혈법을 무심코 사용하다가 그를 기억해내고 다시 만나면서 또다시 상우에게 손을 내미는 은수. 상우가 힘든 이별의 시기를 겪어내기까지의 고통을 그녀도 과연 알고 있을까? 느낄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은수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소중하기에.. 타인을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기에.
그리고.. 그런 은수는 나와 너무도 닮아있었다. 부정하려 늘 애쓰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나의 단점을 그녀에게서 보았다.
-상우-
바보같기만 한 상우. 은수의 마음이 변해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사랑'하기에,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도 방법은 조금 다를지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기에, 헤어짐을 말하는 은수에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고 간신히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상우.
그가 보기에 '사랑'이란 결코 변하지 않음을 뜻하는 말이었을까? 외도를 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할아버지를 쭉 기다리는 할머니를 보며 '사랑은 이런것이다' 라고 생각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랑'은 변함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할머니를 사랑해서 결혼했던 할아버지가 결국 할머니에 대한 사랑의 믿음을 저버리고 외도를 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러한 사랑의 '유통기한'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다시 만났을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예전처럼 손을 내민 은수에게 인사를 하며 돌아서는 상우의 모습은, 그가 겪었던 쓰라린 이별의 고통(사랑은 변한다)을 관객에게 짐작케 함이요.. 가다가 다시 은수를 돌아보며 머뭇거리는 상우의 모습은,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조금이나마 남겨두고 싶은 그의 마음을 관객에게 짐작케 함이리라..
-그 외의 이야기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을 말하라면, 단연코 '소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상우와 은수가 사랑하기까지의 동기를 제공해준 '소리'. '소리'들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깊어졌고, 이별을 겪으면서 '소리'들은 그들에게서 잊혀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잊혀지던 '소리'를 기억하고, 다시 '소리' 속에서 은수를 느끼는 상우. 아니 은수와의 사랑했던 시간들을 느끼는 상우..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야기의 흐름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는 탁월한 배경과, 그 수채화같은 배경을 영화 필름속으로 살포시 담아온 영상감독의 표현력. 영화를 보며 내내 감탄하고 감동했던 것은, 아찔한 그 배경 때문이었으리라..
마지막으로 아직도 가슴에 울리는 상우와 할머니 scene 두 컷.
(대사가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
# 기차 역 scene
상우 : 할머니 이제 가요.
할머니 : 할아버지 기다려야지..
상우 :(언성을 높이며) 할아버진 돌아가셨어요!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 상우, 그런 상우를 보며 할머니는 조용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신다. 가방에서 꺼내신 것은 다름 아닌 사탕 하나. 할머니는 조용히 사탕의 포장을 벗겨내고 상우에게 사탕을 먹여주신다.)
상우 : ......
# 마루 scene
(마루에 멍하니 앉아있는 상우에게 할머니가 조용히 다가오신다.)
할머니: 많이 힘들지?
상우 : (흐느껴 운다.)
할머니 : 버스와 여자는 떠난 뒤엔 잡지 말아야 하는 법이란다...
(결국 할머니에게 안겨 오열을 하는 상우. 할머니는 그저 조용히 다독여주신다.)
첫댓글 오늘 빌려다 봐야게따...
저는 화면에는 -1점을 꾸욱... 화면이 너무 칼 같고 잘 짜여져 있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왠지 모를 냉기가 서려있었던 것 같은..
아직 못봐따는 그래도 얼핏 들은 대사.."사랑이 어케 그리 변하니?"이거 맞나;;;암튼 그게 마니 생각나효..케케;;힛 언제 봐야지...
이 영화 보구...이영애가 좋아졌더랬지....
언젠가 우리 다시만나면....음악두 좋았더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