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밴플리트(오른쪽) 장군과 아들 밴플리트 주니어. 밴플리트 장군의 외손자 조 매크리스천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사진을 올리고 "밴플리트 주니어가 아버지(밴플리트 장군)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다"고 적었다. 이 사진은 1952년 3월 한국에서 찍힌 것이라고 매크리스천은 전했다. /조 매크리스천 페이스북
6·25 전쟁 당시 미8군과 유엔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외아들이 북한에 포로로 끌려갔으며, 이후 중국·러시아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밴플리트 장군의 외손자 조 매크리스천 주니어는 16일(현지 시각) 주(駐)로스앤젤레스 한국 총영사관이 주최한 ‘한국전쟁 역사’ 온라인 세미나에 참석해 “외삼촌 제임스 밴플리트 주니어가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서 포로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밴플리트 주니어는 6·25전쟁에 공군 중위로 참전, B-26 폭격기 조종 임무를 맡았다. 당시 27세였던 그는 1952년 4월 4일 북한 순천 지역에서 폭격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포격을 맞고 실종됐다. 당시 아들의 실종 소식을 들은 밴플리트 장군은 동요 없이 자신의 임무에 열중했다고 한다. 참모들은 “수색을 확대해 밴플리트 주니어를 찾자”고 건의했지만, 밴플리트 장군은 “내 아들을 찾는 것보다 다른 작전이 더 중요하다”며 수색 작업을 중단시켰다.
밴플리트는 이후 부활절을 맞아 실종 군인 부모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든 부모가 저와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밴플리트 장군 부자(父子)의 이 같은 일화들이 전해지면서 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했다는 찬사가 잇따랐다. 우리 국가보훈처는 2014년 밴플리트 부자를 6·25 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
매크리스천 주니어는 이날 세미나에서 이 같은 밴플리트 장군 부자의 생애를 전했고, 실종 2년 뒤 전사 처리됐던 외삼촌 밴플리트 주니어가 사실은 살아남았고 북한에 포로가 됐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밴플리트 주니어는 북한에 억류됐다가 6개월 뒤 중국군에 넘겨졌다. 중국군은 적군 사령관의 아들을 포로로 잡은 것을 축하하고자 베이징에서 밴플리트 주니어의 군 인식표를 공개 전시했다. 밴플리트 주니어는 이후 러시아(옛 소련) 시베리아 지역의 강제 노동 수용소 ‘굴라크’에 수용됐다.
매크리스천 주니어는 미 육군 정보국 참모차장을 지낸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 같은 정보를 확인했고, 1990년대 초반 옛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NKVD) 관계자가 ‘미국 4성 장군의 아들(밴플리트 주니어를 의미)이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매크리스천 주니어는 17일 본지 통화에서 “정보를 담당하던 미 육군 장성이었던 나의 아버지가 들려준 외삼촌에 대한 말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중국·러시아는 외삼촌을 포로로 붙잡았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며 “외삼촌은 아마도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사망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