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Beijing)여행기 : 자금성( 紫禁星) - ㅡ여행'08.10.23-29일 기간중 26일 오전- |
◈ 자금성((紫禁星)◈
★ 자금성((紫禁星)은 중국의 후기 봉건왕조였던 명(明)과 청(淸)의 왕궁으로서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재위 1402-1424) 4년인 1406년에 착공되어 영락 20년인 1420년에 완공되었으며,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가 퇴위할 때까지 24명의 황제가 491년간 이곳에 기거하면서 중국을 통치하였다.
★ 오늘날의 이름은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이다. 흔히들 줄여서 고궁(故宮)이라고 한다.
★ 1987년 "명·청 시대의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
[1]▲ 단문(端門)통과 :정각 10시
천안문광장 주위를 구경하고 천안문을 지나 단문을 통과하고 있다.
.
[2]▲ 오문앞 광장
오문 앞의 3,000 평 크기의 광장.. 이곳은 문무백관이 황제로부터 하사품을 받거나 임금이 백성들을 위해 행사를 벌렸던 곳이라 한다.
.
[3]▲ 단문을 나와서 보이는 모습
① 광장 중간쯤 있는데 간판에 참관성루(參觀城樓), 궁녀,황궁의 생활전(生活展)의 매표소 등의 글씨가 있다.
② 우측으로 보이는 건축물
③④ 자금성 입구인 오문으로 다가 가고 있는 모습
.
[4]▲ 오문 가까이 왔다.
사람들이 무척 많다. 일행을 잘 보고 다녀야 하겠다. 양쪽에 매표소 안내표시가 보인다.
[5]▲ 입장표 구입
왼쪽에 발간 티셔스입은 사람이 우리 안내원...
여행사 매표창구가 따로 있다.
입장표에는 매표시간이 8:30-16;00 ,개방시간은 8:30 - 17:00, 입장은 4시10분까지,입장료는 60원
.
[6]▲ 자금성 의 건물 배치도 및 관람코스
★자금성은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 터 면적이 23만6,000 평(79ha)이고, 둘래가 3,428m 이다. 이 안에 980채의 건물이 들어 서있으며 건축면적만도 4만 7,000여 평에 이른다. ★성내는 남쪽과 북쪽의 두 구역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으며, 남쪽은 공적(公的)인 장소의 바깥부분으로 오문에서부터 북쪽으로 태화문(太和門)·태화전(太和殿)·중화전(中和殿)·보화전(保和殿)이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동서에 문화전(文華殿)·무영전(武英殿) 등의 전각(殿閣)이 배치되어 있다.
★ 바깥부분, 즉 외조(外朝)의 북쪽은 황제의 사적인 생활을 위한 내정(內廷)으로서 보화전 북쪽에 있는 건청문(乾淸門)으로부터 건청궁(乾淸宮)·교태전(交泰殿)·곤녕궁(坤寧宮) 등이 한 줄로 늘어서 있으며, 그 좌경(左京)에 많은 건물이 있다. 내정은 1925년 이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중국 문화재의 전당이 되고 있다.
▣ 관람 코스
이와 같이 방대한 관람대상을 효율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은 중로(中路), 서로(西路) , 동로(東路)의 세 갈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중로(中路)는 오문과 북쪽 정문인 신무문을 있는 남북 중추선상의 건물군을 관람하는 코스로 태화문광장,태화문,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그리고 건청문광장과 후3궁인(건청궁 교태전 곤녕궁),어화원,흠안정등이다.
-서로(西路) 와 동로(東路)는 중로와 같이 진행하다가 건청문광장에서 서쪽 또는 동쪽 건물을 돌아보고 어화원으로 합쳐지는 코스이다.
.
.
.
[7]▲ 오문(午門)
자금성의 정문이다.오문에는 모두 5개의 문동(門洞 - 윗부분이 무지개처럼 휘어져있는 동굴모양의 문)이 있는데 3개는 정면에 있고 2개는 곁문으로 좌우 가장자리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앟는다.
가운데 문동은 황제의 전용통로로, 세개의 문동중 동쪽에 있는문은 문무대신이,서쪽 문으로는 종실왕공이 각각 출입을 하였고,양가에 있는 곁문으로는 주로 전체 조회때 조신들이 출입하였다고 한다.
.
[8]▲ 추녀밑에 달아놓은 오문 편액(午門偏額)
.
[9]▲ 우리일행이 입장하는 모습(10시 7분)
우리는 관람코스를 중로(中路)로 하였다.
즉 오문과 북쪽 정문인 신무문을 있는 일직선상에 있는 건물군을 관람하였다.
태화문광장,태화문,태화전광장,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그리고 건청문광장과 후3궁인(건청궁 교태전 곤녕궁),어화원,흠안정등이다.
.
.
[10]▲ 내외금수하(內外金水河)
오문을 나오니 곧바로 넓은 돌다리가 보이고, 돌다리 위에 올라서니 멀리 태화문광장과 태화문이 보인다.
★자금성에는 두개의 물줄기가 있는데 태화문광장의 한복판에는 내금수하가 흐르고,외금수하는 자금성 밖에 있고 천안문을 지난다.금수하의 물은 호성하에서 공급된다.내금수하는 그 길이가 2km 남짓 되며, 빗믈의 배수와 소방용 물의 공급기능 뿐만 아니라 주변의 경치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
[11] ▲ 다섯개의 돌다리
태화문광장에 흐르는 이곳에는 다섯개의 돌다리가 무지개처럼 놓여 있다.
한가운데 있는것은 길이23.5m, 폭6m의 어로교(御路橋)로서 황제만이 다녔고, 그 양쪽의 다리는 왕공교로서 종실왕공들이 다녔으며,바깥 양쪽다리는 품급교로서 3품이상의 문무대신이 다녔다고 한다.
★ 우리는 지금 적선친 다리위를 건너고 있다.
.
.
[12]▲ 태화문광장(太和門廣場)
오문과 태화문 사이에 있는 공간이 태화문광장이다.
.
.
[13]▲ 태화문광장(太和門廣場)
관광객들의 팀별로 가이드로 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
.
[14] ▲ 태화문(太和門)
태화문에 가가히 왔다. 조금더 앞으로 가서 문패인 편액을 촬영했다.
태화문은 자금성에서 가장 웅장한 대문으로 명나라 때에는 봉천문(奉天門)에 이어 황극문(皇極門)으로 불렀다.
.
[15]▲ 태화문(太和門) 계단 오르는 모습
태화문은 청나라 말기인 1894년에 지은것으로 역사가 가장 일천 하다고 한다.
- 사진 매수를 줄이려고 편액을 떼어 붙였다.
.
.
[16]▲ 태화문(太和門) 통과(10시 12분)
문안에는 이곳의 안내판이 벽에 설치되여 있다.
문밖의 모습을 담으려고 하는데 이 젊은이 커풀이 비켜주지를 않아서 그냥 찍었다.
.
[17]▲태화전광장(太和殿廣場)과 태화전(太和殿)
태화문을 나서면 9천여평의 자금성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 보인다. 멀리 정면으로는 한백옥9漢白玉)의 힌돌로 3단으로 앃아 올린 3대(높이8.13m의 집터) 위에는 태화전이 보이고, 그 뒤로는 중화전(中和殿),보화전(保和殿)이 자리잡고 있다(사진에는 안보임)
.
[18]▲ 태화전광장(太和殿廣場)
광장 중간에서 광장주위의 건물에 대한 설명을 가이드로부터 듣고 있는 우리일행 모습 ★ 광장의 좌우로 홍문각(弘門閣)과 체인각(體人閣)이 있고.
★ 동편과 서편에 생김새가 똑 같은 건물 체인각(體仁閣)과 홍의각(弘儀閣)이 있다.
.
[19]▲ 홍의각(弘儀閣)
4개의 건물중 제일 가까이 있는 홍의각(弘儀閣) 만을 촬영할 수 있는 여유밖에 없었다.
앞의 건물과 생김새가 똑 같은 건물이 맞은편에 있다. 체인각(體仁閣)이라한다.
체인각은 과거시험을 통해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던 곳이였다고 한다..
.
[20]▲ 홍의각(弘儀閣) 편액(偏額)
홍의각은 황가(皇家)의 재물창고로서 진귀한 물건과 금화등을 보관하였다고 한다.
.
.
[21]▲ 홍의각(弘儀閣) 의 채색
단장된 채색이 아름다워 가까이서 찍어 봤다.
.
[22]▲태화전 집터 3단에 놓인 향로(香爐)
이제 태화전광장(太和殿廣場) 주위를 둘러보고 태화전(太和殿) 으로 올라가기 위하여 계단 앞에까지 왔다.
앞에 놓인 것이 향로...태화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과 맨윗단 앞에 진열해 놨다.
황제의 등극등 중요한 의식과 행사가 있으시 향연(香烟)를 피어오르게 하였다고 한다.
.
.
[23]▲ 계단에 세운 기둥에는 구름, 학, 용들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
[24]▲ 태화전(太和殿)
계단을 올라와 태화전(太和殿) 앞에 왔다.
태화전의 크기는 앞면 60m, 옆면 33.3 m, 높이 26.9 m,면적이 720평으로
자금성에서 뿐만아니라 중국 전국적으로도 현존하는 궁전 중 가장 크다.
그래서 사람들은 태화전을 금란보전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25]▲ 태화전은 자금성의 정전(正殿)이며 황권의 상징이었다.
태화전(太和殿)은 황제의 등극이나 칙서의 반포 등 중요한 의식과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
.
[26]▲ 태화전의 어좌
백성들은 이 어좌를 금란보좌라 하였다
.
[27]▲ 2중 처마로 된 지붕
처마가 섬세하고 금박을 입혀서 찬란하다..건축에 대한 상식이 없어서 설명을 못합니다.
.
[28]▲ 용마루에 각종동물상
황금색이 황제를 나타내는 색이기 때문에 기와를 황금색으로 한것이라 한다.
용마루에 동물이 많을수록 높은 사람의 집을 나타낸다나??
.
[29]▲ 태화전(太和殿) 뜰의 일구와 ......................... 동항(銅缸)
★ 해시계로 돌 바탕위에 청석질(靑石質)의 둥근 돌 시계판을 45도 각도로 고정시켜 놓고 그 중심에 구리로 만든 바늘대를 수직으로 꽂아 만든 것이다. 바늘대 주위는 시간표시금이 그어져 잇고 해가 움직임에 다라 바늘대가 사간표시금에 그림자를 드리움으로써 시각을 나타내도록 설계되어있다.
.
★동항(銅缸) : 구리항아리는 옛날 명나라와 청나라 때부터 궁전밖에 진설해 놓은 것으로 소방(消防)과 장식의 용도를 겸한 것이다. 평상시에는 맑은 물을 담아 놓고, 추울때는 뚜껑을 덮고 솜옷을 입혔으며 동항이 놓인 돌바닥밑에 석탄불을 넣으므로써 물이 얼지 않게 하였다.
.
[30]▲ 해시계에 대한 설명
.
[31]▲동항아리에 대한 설명
. .
[32] ▲ 태화전 뜰의 동학(銅鶴)과 동귀(銅龜)
장수를 상징하는 학과 거북이 진열되여 있는것은 아마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지않은가 생긱된다. .
.
[33]▲ 태화전(太和殿) 우측 문
이문으로 나가면 중화전으로 가게 된다.
.
.
[34]▲ 태화전에서 중화전으로 넘어가고 있다(10시 36분)
.
.
[35]▲ 자금성(紫禁星)의 공적(公的)인 장소
자금성은 두부분으로 나누는데 오문에서 보화전까지가 황제가 정무를 보는 장소(외조 外朝 )이고
보화전 뒤쪽으로는 황제의 사적인 생활을 위한 내정(內廷)으로서 건청문(乾淸門)으로부터 건청궁(乾淸宮)·교태전(交泰殿)·곤녕궁(坤寧宮) 등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
★ 우리는 위 사진의 화살표 방향으로 관람하고 있는데 ①로 표시된 문을 통하여 중화전으로 갔다.
.
[36]▲ 중화전(中和殿)
안에는 보좌(寶座)와 세발 달린 황금빛 솥.그리고 향로등이 놓여 있다. 이곳은 태화전에 큰 행사가 있을때 황제가 사전에 신하 등을 접견하거나 치하를 받는일과,작은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는 곳이었다. .
.
.
[37]▲ 중화전 편액과 중화전 뒤에 보화전 건물이 보인다.
.
[38]▲ 중화전의 내부
.
[39]▲ 보화전(保和殿) 황제가 태화전 전례에 나가기 전에 곤룡포를 갈아입고 면류관을 바꿔 쓰던 곳이다.
청나라 때는 연회장으로, 과거시험장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
[40] ▲ 보화전(保和殿) 내부
.
[41] ▲ 보화전의 옆건물
.
[42] ▲ 보화전 우측으로 멀리보이는 건물 (용도는?)
.
[43] ▲ 보화전에서 나가고 있다(10시 51분)
문을 나서니 3단 축대 아래로 건청문광장((乾淸門廣場) 저멀리 건청문(乾淸門)이 보인다.
★ 앞으로 보게되는 건청문(乾淸門). 건청궁(乾淸宮)·교태전(交泰殿)·곤녕궁(坤寧宮) 등은 황제의 사적인 생활을 위한 장소이다.
.
[44] ▲ 보화전(保和殿)에서 건청문광장으로 내려가는 길
보화전은 터전을 높여쌓은 3대의 가장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보화전 뒤쪽에는 평지인 건청문 광장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는데,계단옆에 용무늬를한 큰 판돌이 있다. 운룡석계라 하는데 아래로 내려가서 보기로 한다.
.
[45] ▲ 계단을 내려가기전 우측면
. [46] ▲ 운룡석계(雲龍石階)
보화전 터에서 내려와 뒤돌아서서 보면 길이 16.57m, 폭 3.07m, 두께 1.7 m 무게 200톤의 판돌(板石)이 계단과 같이 경사로 비스듬히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구름속에 노니는 용이 새겨져 있다.
이것이 운용석계이다. 조각하기 전의 이돌의 무게가 300톤이 넘었을거라 하고,이돌은 북경성 서쪽의 방산 석굴에서 나온 것으로 이곳까지 옮겨오는데 1천여마리의 노새와 10만명의 인력이 들었다고 한다.
.
[47] ▲ 운룡석계를 보고 뒤로 돌아서니 넓은 건청문광장((乾淸門廣場)을 지나 건청문(乾淸門)이 보였다. ★건청문광장((乾淸門廣場)
황제가 국사를 보는 외조(外朝)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사는 후3궁 간의 경계가 되는 공간으로 면 청시대를 통틀어 경계가 가장 삼엄했던 곳이다.당직을 서는 대신과 황제가 부른 사람 이외에는 제아무리 왕공대신이라도 출입이 금지되었다.
광장을 지나 건청문 앞까지 오니 층계를 올라가야 문을 통과할 수 있다.
층계 입구에 사자상이 양쪽으로 두마리가 있다.
.
[48] ▲ 권력의 상징 사자상
좌측사자는 발로 누르고 있는 것이 새끼 사자란다. 이것은 번영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우측사자는 지구본을 누르고 있는것으로 세상은 모두 내손에 있다는 의미로 왕권을 의미하고 있다고 한다.
★건청문을 지나니 건청궁이 눈에 들어왔다.(11시 4분)
.
.
[49] ▲ 건청궁(乾淸宮)
건청궁은 후3궁 가운데 가장 큰 궁전으로 황제들이 기거하며 국사를 돌보던 곳이다.
이곳에서 기거한 황제는 명 16. 청12 의 28명 황제중 16명이였다고 한다.
.
[50] ▲ 건청궁(乾淸宮)의 어좌(御座)
어좌 위편에 正大光明 네 글자를 담은 가로 액자가 걸려있다. 이 글씨는 원래 3대 황제 순치가 쓴글이다.
◎ 正大光明(정대광명)편액(偏額)
★ 아버지의 서법을 흠모해 온 강희황제는 세월과 더불어 퇴색해 가는 아버지의 글씨를 애석하게 여겨 그 본을 떠서 돌에 새기도록 하였다. 지금의 것은 강희의 손자 황제인 건륭이 1790년에 다시 새긴 것이다.
★강희 다음의 5대 황제였던 웅정(雍正)은 황제의 밀지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안으로 이 편액을 활용하였다.
총리사무대신을 제외한 모든사람은 나가게한 후 그가보는 앞에서 자신이 결정한 황태자(皇子)의 이름을 써서 밀봉한 다음 이 액자뒤에 넣어 두었다.
이러한 밀지 보관 방법이 관례화되면서 황가 내부에서의 형제간 황권 다툼이 사라지고 황권이 강화되었다고 한다.
.
[51] ▲ 건청궁에서 잠시 쉬는 동안 기념촬영.. 사진을 찍고 뒤에 있는 교태전으로 갔다.
★ 건청궁에는 황제 잠자리가 27개 있는데 옆에 내시 한명만 빼고 어느 누구도 어느 침실에 드는지 모른다고 한다. 자객을 방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 .
.
[52] ▲ 교태전(交泰殿) 교태전은 건청궁과 곤녕궁 사이에 있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절에 황후가 명절이나 생일을 맞아 황제의 첩실과 자손들로부터 인사를 받던 곳이다.
.
[53] ▲ 교태전(交泰殿) 내부
교태전 안에는 보좌가 있고,그 의편에 강희황제가 쓴 無爲(무위) 두글짜의 편액이 걸려있다.
무위의 원래의미는 자연에 맡기고 인위적으로 어떻게 하지 않으려는 도가의 처세 또는 정치사상인데, 강희는 이 의미를 빌어 두가지를 일깨우고자 했다. 그 하나는 신하들이 하는 일에 과도하게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황후비빈들은 조정의 일에 간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 교태전을 둘러본 후 바로 뒤에 있는 곤녕궁(坤寧宮)으로 갔다.(11시 17분)
.
[54] ▲ 곤녕궁(坤寧宮) 곤녕궁(坤寧宮)은 명나라 때 황후가 살던 곳이다.청나라 시절에는 서쪽방은 제사 지내는 방,동쪽 방은 신방으로 썼다. 황제가 결혼을 하게 되면 이곳에서 3일간 신방을 치렀으며, 이후에 황후는 별도의 처소로 옮겨갔다.
.
[55] ▲ 황후의 침소
.
[56] ▲ 곤녕궁(坤寧宮)의 동방(洞房)
동방의 현재 꾸밈새는 청나라 11대 황제 광서(光緖)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의 것이다
.
[57] ▲ 곤녕문.이문을 지나면 어화원이 나온다.
★ 자금성에서 후궁까지 지나가야 유일하게 나무와 돌이 있는 공원이 나타난다.
.
[58] ▲ 어화원(御花園)
자금성에는 네 곳의 화원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로 어화원이 3,600 여평으로 가장 크고 꾸밈새가 다양하다.
황제의 가솔들이 바람을 쐬며 노닐기도 하고, 명절 때 야외행사를 열기도 한 곳이라고 한다.
.
[59] ▲ 노목들과 어우러진 조경
★ 어화원에서 궁녀를 선발했다. 서태후도 여기서 17살에 궁녀로 선발되어 함풍황제의 총애를 받아 귀비로 되고, 아들이 동치황제로 되면서 25살에 황후가 되어 48년간 수렴청정을 했다.
.
[60] ▲ 어화원내에 있는 정자
.
[61] ▲ 오래된 측백나무(古柏)
.
[62] ▲ 퇴수산과 어경정(堆秀山과 御景亭)
태호석(太湖石)을 쌓아만든 산으로 자금성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황제들은 비빈들을 거느리고 이곳의 어경정에 올라 주변을 내려다 보면서 복을 빌었다고한다.
또한 어경정은 궁녀가 황제의 눈에 띄기 위해 목빠지게 바라다 보는곳 이라고도 한다.
.
[63] ▲ 堆秀山 안내판
.
[64] ▲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통과(11시34분)
.
[65] ▲ 神武門에 대한 안내글
.
[66] ▲ 신무문을 나서니 앞으로 경산공원(景山公園)이 눈에 들어온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며 일행을 쫓아 여기까지 왔다. 사진을 올리며 못찍어서 아쉬운 부분이 많음을 느낀다.
자금성의 남문인 오문을 10시 7분에 들어서서 북문인 이곳을 11시34분에 나왔다.
중로를 보는데 순 관광시간은 1시간 27분이었다.
남북으로 960m 의 거리에 많은 궁전을 제대로 보고, 어화원의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하려면 중로코스에서 적어도 3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나는 가이드가 일행을 모아놓고 설명하는 시간에도 주위의 사진을 찍는데 열중하였고, 일행보다 뒤쳐서 사진을 찍고 따라가기 위하여 항상 뛰어다니다 싶이 하였다. 그래도 즐거운 여행이었다.
.
[67] ▲ 경산공원(景山公園) 전경을 담았다.
.
[68] ▲ 자금성의 성벽과 성루(城樓). 호성하(護城河)
경산공원에서 눈을 돌려 문옆을 보니 성루와 호성하가 보였다.
★ 성벽 주위 4곳에 각각 1개씩의 궁문이 있는데, 남쪽의 오문(午門)이 정문으로서 특히 웅대하며, 동쪽을 동화문(東華門), 서쪽을 서화문(西華門), 북쪽은 신무문(神武門)이라 부르며 네 모퉁이에 성루(城樓)가 서 있다.
.
[69] ▲ 자금성의 주위에는 10m 높이의 성벽과 성곽 바깥은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폭 52m, 깊이6m의 도랑(호성하.護城河)으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성벽에는 凹 자형 총소는 구멍이 나있고. 20m쯤의 간격으로 빗물이 빠질 수 있는 구멍이 있다고 한다.
.
[70] ▲ 신무문(神武門)의 정면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
.
[71] ▲ 자금성의 건물과 주위 조감사진
맨 앞에 5개의 다리를 건너 천안문이 있고 단문을 지나 자금성의 오문이 보인다.
오문으로부터 네모골의 성곽이 보이며 양편으로는 물이 있는 또랑 즉 호성하가 보인다.
오문 뒤 일직선상의 맨뒤 건물이 신무문이다. 그리고 바로 뒤에 푸른 숲의 경산공원이 보인다.
좌측의 푸른 호수가 보이는데 28일 관광할 북해공원이다.
★ 지금 11시35분인데 점심을 좀 늦게 먹기로 하고
신무문 바로 앞에 있는 경산공원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참고:북경여행 안내서>
|
|
♬잃어버린 30년 외 19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