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를 처음 썼던 날을 기억하는가? 웬지 모를 낯선 느낌 때문에 얼굴을 붉히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던 기억들. 여성이라면 누구나 1년의 1/6을 같이 보내야 할 생리대. 이 조그만 골칫덩이를 둘러싼 이야기들.
아직도 그 날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졸업식 예행 연습 때였다. 우등상을 탈 아이들이 단상에 올라가 교장선생님 앞에 나란히 줄을 서는 광경을 바라보던 중 그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배가 살살 아프고 묵지근한 것도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고, 무엇보다 뭔가가 밑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건 내가 곧장 어머니에게 뛰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한 출혈이 있었음에도 죽을 병에 걸렸구나라는 생각보다는 부끄럽다는 마음뿐이었다. 난 엉망이 된 팬티와 바지를 방 안 깊숙이 숨겨놓고, 제발 빨리 이 고통스러운 일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물론 출혈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결국 난 어머니에게 자수(?)했다. 어머니는 일단 놀라셨고, (그때만 해도 초등학교 6학년 때 초경을 한다는 건 무척 이른 축에 들었다) 다음에는 혀를 끌끌 차시며 나를 구석방으로 끌고 갔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낡은 자개장 안 옷감들 사이에 깊이 숨겨져 있던 빨간 생리대 봉지. 아마 코텍스였던 것 같은데 날개나 울트라 슬림은 커녕 두툼한 데다 냅킨처럼 뒤가 접혀 있던 초창기 모델이었다.
그후 나는 1년의 1/6를 생리를 하며 보내고 있다. 평생으로 치자면 5백 회의 생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갈짓자 걸음으로 전전긍긍했던 사춘기 시절보다 프로(?)가 되었냐면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어김없이 돌아오는 그 날이면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내 몸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걸 느낀다. 그래서 그 사후처리도 어떤 생리대 CF 커피처럼 감쪽같이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받아들이게 된다. 방심하다간 꼭 돌발 사태가 일어나는 그간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더더욱.
간혹 실수를 저지른다고 해도 옛 여성들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 위스퍼가 신제품 위스퍼 소프트 라이트를 출시하면서 개최한 여성의 삶을 바꾼 생리대 히스토리 전시회를 살펴보면서부터.
놀랍게도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과 북미 지역 여성들은 생리혈이 옷 밖으로 새어 나와도 헝겊이나 패드, 스펀지 등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고 지냈다고. 생리혈을 흡수하기 위해 어떤 장치든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1867년에는 미국의 한 발명가가 컵 모양의 생리 용품을 특허 냈다. 이 생리 컵은 벨트에 와이어가 연결되어 있으며 이 와이어 끝에 컵이 달려 있어서 지금의 탐폰처럼 몸 속으로 집어넣어 생리혈을 받아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 1800년대 후반에는 이런 식으로 질 속에 집어넣는 컵 형태의 특허가 많았다.
19세기 후반에는 생리혈을 모으기 위한 주머니에 멜빵을 연결한 생리멜빵이 등장했다. 이 제품이 처음 나왔을 때 언론은 여성들을 위한 가장 편안한 기구라는 호평을 했지만 이후 20세기 초반 생리벨트가 등장하면서 인기를 잃었다고. 생리벨트는 접착력이 있는 일회용 생리대가 등장할 때까지 1900년대를 풍미했다. 특히 유럽, 북미 지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한때 1백 종 이상이 대량 생산되었다. 면으로 된 벨트와 생리패드를 튼튼한 고리로 연결한 모양으로 처음 대중을 상대로 한 광고가 등장한 것도 이 제품부터다.
1930년대에는 두 가지 중요한 여성용품이 발명 됐는데 하나는 탐폰이고, 다른 하나는 생리컵이다. 발명 후 최초의 생리컵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생산되었는데 전쟁 때문에 고무가 부족해서 생산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1950년대 후반, 한 회사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지만 여성들은 이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질 속에 이질감을 주는 물체를 넣는다는 게 내키지 않았던 것. 1935년부터 1940년까지 독일에서는 니트로 된 생리패드와 고정벨트를 사용했다. 독일 여성들은 생리패드와 벨트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는데,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해서 세탁 후 재활용하곤 했다. 벨트 중앙 하단부에 단추를 달아 생리패드를 연결, 고정시켜서 사용하는 형태로 오늘날 생리대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생리 스펀지가 쓰이기도 했다. 이 생리 스펀지는 피임 목적으로도 이용됐다고. 푹 젖으면 빨아서 5~10분 동안 뜨거운 물에 삶는 것이 유일한 소독 방법이었다. 스펀지를 이용한 피임법은 오늘날에도 직경 5.5cm, 두께 2.5cm 크기의 콜라겐이나 우레탄으로 만들어져 지금도 쓰이고 있다.
일회용 생리대의 진화
1972년에는 생리패드 고정 커버가 선보였다. 이 제품은 벨트형 생리패드에서 속옷에 붙이는 접착식 생리대로 넘어오는 중간 단계. 두 개의 신축성 있는 밴드 사이에 오늘날의 것보다는 훨씬 두꺼운 생리패드를 끼워서 사용했다. 이 시점부터 패키지나 장식 등 외관에 신경을 써서 상품화되었다고.
1977년에는 엽기적인(?) 발명품이 선보였다. 일명 생리혈 추출기. 이 기구는 생리혈을 흡수하는 봉을 질 속으로 삽입한 후 주사기처럼 피스톤 작용을 하는 손잡이로 생리혈을 한 번에 빨아들이도록 설계 되었다. 이 제품이 대중화되었다면 아마 우리는 생리를 하루 만에 끝내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저것 아이디어 상품(?)이 많이 등장했던 유럽, 북미 지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처음 생리대가 선보인 1971년 전까지 꾸준히 한 방법만이 애용되었다. 바로 광목천으로 만든 생리패드. 물론 이 생리용 천은 기저귀처럼 밖에 당당하게 널 수는 없었다. 주로 남들이 보지 않는 저녁에 조용히 세탁해서 방에서 말렸다고.
일회용 생리대의 원조는 제 1차 세계대전 때 종군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들이 솜이 부족하자 킴벌리 클라크사에서 의료용으로 내놓은 흡수지 셀루코튼을 가제로 싸서 만든 임시 생리대였다. 1920년 이를 상품화시킨 것이 코텍스. 이 때의 생리대는 앞뒤에 끈을 달아 고정시키는 방식이었다.
속옷에 붙이는 접착식 생리대가 등장한 것은 1981년의 일이다. 제품명은 소피아 푸리. 이 제품은 촉감이 부드러운 여러 겹의 부직포로 만들어져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1984년에는 기적의 흡수제로 불리던 미라클 젤이 들어 있는 미라젤이 출시되었다. 기존의 다른 제품들이 단순 흡수 기능의 부직포를 여러 장 겹쳐놓은 데 불과했던 반면 미라젤은 오늘날 생리대의 흡수 기능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흡수제가 들어간 첫 번째 제품이었다.
위스퍼의 드라이 메쉬 커버가 파란을 일으킨 것은 1989년의 일이다. 이 커버는 당시 기존 부직포 소재의 제품들과는 달리 생리혈을 흡수한 뒤 다시 배어나오지 않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샘 방지 기능을 강조한 날개 달린 패드가 나온 것도 이 즈음이었다.
이후 생리대의 기능은 진일보하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2mm 두께의 울트라 슬림 제품이 등장해 얇은 생리대 경쟁에 불을 붙였고, 이어서 간편하게 갖고 다닐 수 있는 원터치 포장이 1995년에 소개되었다. 생리 중의 냄새를 막아주는 그린 계열의 제품들, 평상시에도 사용하는 팬티 라이너도 소개되었다.
생리대가 안락의자처럼 느껴지는 그 날은?
지금까지의 발전상을 보자면 언젠가는 정말 그 날인지도 모르고 생리 기간을 보낼 것도 같다. 그러나 동전에는 늘 양면이 있는 법.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이 일회용 생리대와 탐폰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엄연히 있다. 여성 운동가들과 환경 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대안 생리대 운동이 그것. 이들은 일회용 생리대가 여성의 건강을 해치고, 막대한 환경오염을 초래한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이 대안 생리대들을 보면 마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을 준다.
우선 젊은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피자매 연대(www.bloodsisters.gg.gg)는 융(플란넬)으로 날개가 달린 패드 라이너를 만들고 이 사이에 적당히 자른 타월 천을 넣어 사용하는 생리대를 보급하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과 불교생태공동체인 정토회에서는 기저귀 천을 네모나게 자른 기본형 생리대를 팔고 있으며 수입 제품으로는 유기농 면으로 만들어진 루나 패드가 있다. 작은 깔때기 모양의 키퍼(Keeper)를 사용하는 여성들도 있는데 이는 천연 고무 재질로 만들어졌다. 질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아내는데, 4~5시간에 한 번씩 따라내고 세척하면 된다고. 스펀지와 비슷한 해면도 사용된다. 해면을 끓는 물에 소독한 뒤 치실을 붙인 다음 질에 삽입하는 것. 비누와 물로 빨아서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대안 생리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이제 생리대는 자신의 견해와 문제의식을 담아내는 매개체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그만큼 생리는 여성에게 있어서 뗄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일회용 생리대든, 대안 생리대든 우리에게 안락의자 같은 편안함을 주는 그 날이 올까? 대답은 회의적이다. 의미가 어떻든 생리는 우리에게 상당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주는 행사이므로. 그러니 100% 편안함을 기대하는 건 욕심일지 모른다.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건 생리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불편한 게 현실이니까.
에디터 | 이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