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를 읽다 보면 낯선 나무나 꽃 이름과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처음 듣는 꽃 이름과 만날 때면 앞 뒤 문맥을 살펴서 꽃이 피는 시기며 꽃의 빛깔이며 모양을 짐작하기는 하지만 그 꽃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아요. 식물도감을 뒤적거려도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꽃은 또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나 시에서 만난 꽃을 직접 보았을 때의 터질 듯한 기쁨을 당신은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수유, 인동열매, 쥐똥나무, 후박나무, 꽝꽝나무, 석류꽃, 복수초, 능소화,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얼레지, 물봉선..... 나는 이런 이름들을 시에서 먼저 만난 뒤에 나중에서야 직접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구절초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용래의 시 <구절초>를 맨 처음 읽은 게 열일곱살 때였습니다.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던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추분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구절초 - 박용래
하지만 나는 정작 그 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시에 나타난 대로 가을이면 피는 꽃이겠지. 뭔가 청순하고도 서러운 느낌을 간직한 꽃이겠지, 하고 어림짐작만 할 뿐이었지요. 나는 구절초를 모르고 시 <구절초>만 좋아하고 있었던 거지요. 내가 구절초를 보게 된 것은 그 후 이십여 년이 지나서였습니다. 꽃이 귀해서 만나지 못한 게 아니라 내가 무관심했기 때문에 꽃이 나에게로 오지 않았던 거지요. 어느 초가을 날, 산비탈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구절초를 만났던 날, 나는 참회의 시 한 편을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무식한 놈/이라는 제목으로 말입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 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그 이후 나는 꽃과 나무의 이름에 대하여 무식하기 짝이 없는 나 자신하고 완전하게 결별하였습니다. 또 하나 고백할 일이 있습니다. 한때 그 이름이 그냥 좋아서 내 눈으로 본 적이 없는 자작나무며, 물푸레나무며, 영산홍등의 이름을 함부로 시에다 끌어들인 적이 있습니다, 꽃 모르고 오용하고, 나무 좋다고 남용한 격이지요. 그러나 요즈음은 시를 쓸 때는 나는 국어사전과 식물도감을 항상 옆에 둔답니다. 꽃들에게, 나무에게 사죄하기 위해서지요.
- 안도현 글 - 키큰나무 사진.
**제가 가는 야생화 모임의 '노루귀'님이 올린 글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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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 나이 40 이 넘어서야 알게 된 풀꽃의 아름다움....그것도 아주 쬐금...나는 무식한 ( ) ^^ 이네요.*^^* 그렇지만 그때서라도 알게 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해요. 풀꽃 사진 많이 보여 주세요. 저도 공부하게요^
전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해요......무무식식한한.....이제 메모장 들고 다녀야 될 것 같아요 우가희님이랑 매발톱님 옆에 있으면 나아지겠죠 희망사항입니다 ㅎㅎㅎ
ㅎㅎㅎ........가희님! 무식한 놈하고 촌놈하고 비슷해서 저더러 욕하는지 깜짝놀랬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