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12월19일 [(자)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판관기 13,2-7.24-25
복음 루카 1,5-25
◈ [서울] 12월 19일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안식년을 하면서 좋은 점은 다양한 영상물을 보는 것입니다. BBC에서
방영했던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청결, 시간, 유리, 빛, 냉기, 소리’라는 주제로 인류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수처리를
효과적으로 하면서 인류는 질병에서 벗어나고, 도시 생활이
쾌적해졌습니다. 표준시간을 정하면서 무역과 여행이
발전하였습니다. 유리는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볼 수 있게 하였고,
광섬유는 소통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빛과 전기는 밤을 밝혀 주었고,
산업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냉기는 더운 지방에도 사람이
쾌적하게 살 수 있게 하였고,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소리는 음악, 예술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고, 더 많은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발전은 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혁신과 발전은 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통합과 융합의 과정을 통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호기심이 많았던,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발상과 생각이 모여서 지금
우리들의 삶이 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보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랐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홀로된
시어머니를 끝까지 모시는 롯의 효성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믿었던 이사야 예언자의 꿈이 있었습니다. 별을 보면서 먼
길을 떠났던 동방박사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밤을 새우면서 양들을
돌보던 목동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길을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이들의 꿈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탄생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예언자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고,
신약의 새로운 예언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칭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하였습니다. 언젠가 오기로 한 엘리야가 요한이라고 말을 하셨습니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었고, 광야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면서
살았습니다. 요한이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신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품 안에서 기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현실의 삶에서 우리는 참된 기쁨과 평화를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원인을 알면, 방법을 찾을 수 있기에, 원인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공허함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어도 공허함을 느낄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공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이제, 더는 오를 곳이 없으므로 공허함을 느끼곤 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워낙 높은 벽 때문에 좌절하는 사람도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의 것들로는, 세상의 것들로는 우리들의 공허함을
채우기가 어렵습니다. 무엇으로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을 영원처럼
생각하며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죄책감입니다. 예전에 많은 분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었고,
본의 아니게 자녀를 유산시킨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낙태’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유산시킨 어머니들은
죄책감 때문에 평생 가슴앓이를 하곤 합니다. 제가 아는 분도 술을
드시지 않으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곤 했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미안함이 있었고, 가족들에게 많은 걱정을 주었다는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가족들은 다 품어주고, 이해하는데
본인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평생 술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이와 같은 죄책감은 하느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하느님의 자비가
넘친다는 것을 믿을 때, 치유됩니다. 이사야서 1장 18절은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 죄가 진흥같이 붉어도,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눈처럼, 양털처럼 하얗게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셋째는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과 두려움의 90%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지나간 날 때문에 원망과 분노를 하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의 삶을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시 중에 ‘未得先愁失 當歡己作飛’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심이 오지도 않았는데 기쁨이 벌써 날아가 버린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두는 나에게 와서 쉬어라.
나의 멍에는 편하고 가볍다.
이제 곧 성탄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크신
랑을 믿으며 ‘공허함, 죄책감,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희망과 평화를
담고 살아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일생의 기회들을 놓치는
이유
2018년 다해 12월19일 대림 3주간 수요일
<일생의 기회들을 놓치는 이유>
복음: 루카 1,5-25
유튜브 레볼루션(Youtube Revolution)이란 책에 평범하고 가난했던
한 나이든 여성이 유투브를 통해 자신이 살던 온 마을까지 변화시킨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시골마을은 8천 명 정도 사는데
그녀가 시작한 사업에 4백여 명이 종사하고 있으니, 그 마을 자체가
이 여인 덕분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60세가 넘었지만 현재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제니 도안
(Jenny Doan)이라는 여성은 아들의 림프샘 암으로 재산을 거의
탕진하다시피 하고 캘리포니아에서 미주리주의 해밀턴이라는 아주
시골로 이사합니다. 미래가 막막하고 우울하기만 했던 제니 도안에게
아들이 “어머니는 퀼트를 잘 하시니 유튜브에 퀼트를 가르치는
동영상을 올려보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합니다. DVD 시대에 살았던
어머니는 유튜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퀼트에 대한 전문가도
아닌데다, 자신은 말도 잘 하지 못하니 안 되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들의 권유에 못 이겨 ‘어차피 손해 볼 것 없으니’ 그냥 올려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 채널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것입니다.
수백만 명이 이 채널을 보고 퀼트도 배우고 제니 도안의 인생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감동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젠 전 세계에서 그
마을로 사람들이 퀼트를 배우고 작품을 사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시골마을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퀼트 성지가 되어버렸고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그 덕분으로 더 윤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3번은 꼭 온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은 그 기회를 잡고 어떤 사람은 잡지 못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은 그 기회를 잡아 인생을 바꾸고 어떤 사람은
그냥 흘려가게 내버려둘까요?
‘열등감’이 큰 문제입니다. 사실 기회라는 것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쳐야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스쳐지나가도
모르게, 또 그 기회를 잡아도 ‘크게 손해 볼 것 없는 정도’로만 오기
때문에 눈치 채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크게 손해 볼 것이 없지만
그래도 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 ‘자존감’이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열등감이 자신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자존감은 오히려 그것을 해보고
실패해도 큰 손해 볼 것 없다고 믿는 게 자존감입니다. 열등감은
자존감이 아닌 자존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것을 그리거나
쓰거나 만들어서 사람들 앞에 내어놓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평가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보다 못하게 평가받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작은 실패도 두려워하여 결국
아무 시도도 못해보고 이런저런 핑계로 좋은 기회들을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구세주의 선지자가 그에게서 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그는 믿지 못합니다. 그것을 믿었다가 아니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창피만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냥 그렇게 되는지, 안 되는지 시간이 지나보면 알 것을
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벙어리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조용하고 순응해보라는 뜻입니다. 해 보지도 않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해보면 알게 될 것이란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못하게 되자 정말로 그 일이 실현됩니다. 만약 계속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축구에서 공격수를 하다보면 반드시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아무리 경기가 안 풀려도, 경기 중 2~3번의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면 기회가 와도 우물쭈물
하다가 놓쳐버립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후회하느라 다음 기회도
잡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믿으면 순간순간 그것이 기회인 것을
알고 슛을 날립니다. 물론 빗나가는 경우도 많지만 골도 많이 넣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핑계를 접고,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본다면 인생의 기회들을
놓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원] 요한 세례자의 탄생 예고/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8년 다해 12월19일
복음: 루가 1,5-25: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요한의 출생에 대한 예고는 구원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에 관한 묘사는 그들은 구약성경의 신실한 남은
자들을 잇는 후예라는 것을 암시한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고, 게다가 둘 다 아이를 낳기에 너무 늙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라와 레베카, 라헬, 한나에게 그러셨듯이, 아기를 못
낳는 엘리사벳의 몸에서 거룩한 인물이 태어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신다.
천사의 발현은 참된 사제가 오시리라는 것을 알리는 하느님의
현현(顯現)을 암시한다. 천사는 기적적인 출생과 아이에 대한 이름에
대한 예고를 하기 전에 먼저 “두려워하지 마라.”(13절)고 한다. 요한의
경우에는 그의 생부인 즈카르야에게 천사가 나타나는 반면, 예수의
경우에는 요셉에게가 아니라, 마리아에게 찾아온다.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지어 준 아기 이름 요한은 ‘주님께서 은총을
베푸신다.’는 뜻이다. 이 은총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은총, 하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세상에 선포하러 왔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충만했고 하느님은총의 기쁜 소식을 전했던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이미 은총의 선포를 나타냈다. 이 때문에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하리라고 말하고 있다.
요한은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찬 분이다. 어머니 배 속에서
뛰어 놀아 주님의 오심을 미리 알렸다.(루카 1,44 참조) 엘리야와
요한은 둘 다 독신이었다. 두 사람은 다거친 옷을 입었고 광야에서
살았다. 두 사람 다 정의를 지키다 왕과 왕비에게 박해를 받았는데,
엘리야는 아합과 이제벨에게(1열왕 19,1-3 참조) 요한은 헤로데와
헤로디아에게 받았다.(마태14,3 참조)
엘리야는 불마차를 타고 하늘에 오름으로써(2열왕 2,11 참조) 사악한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고, 요한은 순교를 당해 하늘 나라에
들어감으로써 사악한 자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요한은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17절) 백성들을 불신에서 신앙으로 돌려놓았다.
그래서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17절) 하는 역할을
하였다.
즈카르야는 자신의 나이, 백발이 된 머리카락, 힘을 잃어버린 몸을
떠올렸다. 또 아내가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는 사실도 떠올렸다.
그래서 장차 일어나리라는 천사의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이렇게 천사의 말을 믿지 못했던 즈카르야는 목소리를
잃었고, 마리아는 곧바로 믿었기 때문에 세상을 구원하시는
“말씀”을 잉태하실 수 있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25절) 나이 많아서 갖게 된
아들 때문에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냈으나 요한을 갖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하며 주님을 찬미한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도회] 우리네 인생에도 낙법(落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2018년 다해 12월19일
우리네 인생에도 낙법(落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체조나 피겨 스케이팅 종목에서 유연하고 화려한 공중 돌기 묘기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닥에 착지할때의 동작 역시 아주
중요합니다. 잘 내려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에 의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때 반드시
응용해야 할 낙법(落法)은 정말 중요한 기술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낙법은 잘 지는 기술입니다. 바닥으로 내리꽂힐 때,
급소나 예민한 부분은 가급적 피하면서 다치지 않게, 충격이 가장
덜하게 떨어지는 기술입니다. 낙법을 잘 사용해야 부상을
최소화하면서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에도 낙법(落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근본적인 한계와
결핍을 지닌 인간 존재이기에, 언제까지나 승승장구, 상승곡선만 그릴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 원치 않아도 내려와야 합니다. 밑으로
떨어져야 합니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져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높이, 올라간 사람일수록 떨어질 때 그 충격이
크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낮은 곳에 있는 사람, 자세를 낮춘 사람은
떨어질 때도 그리 충격이 크지 않습니다. 결국 잘 내려서기 위한
방법은 단 한가지! 너무 높이 올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늘 자세를
낮추고 있는 것입니다.
노년기에 접어든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오랜 주님으로부터의 단련을
통해 낙법(落法)을 잘 익히고 있었습니다. 불임과 무자식이라는
쓸쓸함과 허전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원망하거나 투덜대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이웃들 앞에 의롭게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내려주신 모든 계명과 규정을 철저하게
준수하면서 흠없이 살아갔습니다.
이토록 겸손했던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을 눈여겨보신 주님께서 비록
많이 늦었지만, 그들의 소원을 성취시킵니다. 주님께서는 두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들 세례자 요한을 통해 오랜
이스라엘의 소원을 성취시켜주십니다.
다음의 표현을 통해 평생에 걸친 두 노인의 고통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잘 알수 있습니다. 얼마나 자주 바닥으로 떨어지는 연습을 많이
헀었는지를 잘 알수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루카 복음 1장 25절)
결국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큰 관건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처럼
기다리는 것이군요. 인생이 낙법을 배우면서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은 일년 이년이 아니라 십년 이십년,
오십년 백년, 평생에 걸친 기다림입니다.
인간의 시간과 하느님의 시간은 언제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기다리고 또 기다릴 일입니다. 지금은 막막해보이지만 기다리다보면
기적처럼 문 하나가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떨어짐(falling)을 경험했으며, 앞으로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젊은 꿈의 상실, 체력의 저하, 희망의 좌절,
가깝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림,
그리고 언젠가는 닥쳐올 종말, 우리는 떨어짐을 선택할 수도 없고,
그게 언제 닥쳐올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떨어지는 방식에 대해서는 우리도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스타일’ 문제는 우리에게 결정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떨어짐을 통해 우리의 본질적인 인간성을
표현할 기회를 갖습니다.”
(‘소멸의 아름다움’, 필립 시먼스, 나무심는사람)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루카 1, 19)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8년 다해 12월19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루카 1, 19)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는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기다림 뒤에 오는 기쁜 소식입니다.
첫 번째 받은 기쁜 소식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쁜 소식을 믿고
그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끝내 이루어질 기쁜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이 우리의 길을 걸어가게 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 자리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여 주십니다.
기쁜 소식은 앎에 갇혀있는 우리를 믿음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기쁜 소식은 내려놓고 나누는 믿음입니다.
다가오는 기쁜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은총의 대림시기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소명또한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
소명을 다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기쁜 소식은 우리의 치욕과 비참함까지 어루만져 주고 있습니다.
때가 무르익어 기쁜 소식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기쁜 소식을 이제 받아들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기타] 12월19일(수) - 의로운 자
오늘은 “의로운 자”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로마서 5장 18절 말씀에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과 구약을 중심으로 관통하는 주인공은 아담과 하와입니다. 죄
짓기 이전의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참 진짜 제품으로
만들어 졌지요.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마귀로부터 유혹을 받은 그
이후부터는 그만 하나님을 배반하는 범죄로 인해서 세상의 고통과
지옥으로 가야하는 처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 또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고 그 사망은 곧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까지 가는
참 어처구니없는 죄인이 되어야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짓기 이전의 모습 즉 아담이 죄짓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어디를 가나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예수님으로 인하여 한 모든 행동은 언제나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스스로 확신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고 또
얼마만큼 예수님이 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확신 가운데 사느냐는 얼마만큼 예수님을 의지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생각을 하고 예수 이름으로
판단을 하고 예수 이름으로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예수께서 의로운
자라 불러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청주] 구름만 많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다해 12월19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루카1,5-25)
구름만 많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
즈카르야와 엘리자벳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계명과
규율을 어김없이 지키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어쩌다가 성전에서 봉사할 기회를 갖곤 하였습니다. 마침 즈카르야가
제비에 뽑혀 성전에 들어가 분향을 드리고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제단 오른쪽에 섰습니다.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루카1,13-14)
그러나 즈카르야는 하느님께 기도하면서도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아기가 받게 될 이름, 요한은 “하느님은
은혜로우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천사의 말을 의심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눈에 보이는 표징을 구했습니다. 결국
즈카르야는 이 불신 때문에 천사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된
것이 곧 하느님께서 개입하셨다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즈카리야의 의심, 그리고 유다인들이 표징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구원의 다가옴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의 불신 따위에 구애 받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무슨 짓을 해도
조건 없이 그리고 끝없이 쏟아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말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만 담을 그릇이 준비되지 않으면 담지 못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역사에는 인간의 자발적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간은 이미 자유의지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시는 구원이나 멸망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의심함으로써 은총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니 그 자체가 멸망이 되고,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근원이 됩니다. 사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요한20,29)
즈카르야는 벙어리가 되어 한 주간의 사제직무를 끝내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꼭 지키시는 분이라는 확실한 표징을 간직한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는 말을 하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게 되었고 그가 고백합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일을 해 주셨구나”(루카1,25).
즈카르야에게 말씀을 꼭 지키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주신 분,
엘리사벳에게 주님께서 굽어보셨다는 믿음과 감사를 고백하게 하신
분, 그분께서 우리에게도 구원을 약속해 주시고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혹 ‘밀운불우’(=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게 끼어
있을 뿐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여건이
조성되어 징조는 나타나지만 일이 성사되지 않아 답답하고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비유한 말입니다.)일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은총의 비를 기다려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은총의 때를 놓치지 않도록 깨어 있는
오늘 이기를 바랍니다. “주님, 당신의 길을 제게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제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의 진리 위를 걷게 하시고 저를
가르치소서. 당신께서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니 날마다 당신께
바랍니다.”(시편25,4-5)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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