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고 떠나는 사랑 '장기기증'
재채기와 사랑. 세상에 감출 수 없는 게 이것뿐일까요? 행복한 사람도 감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밝은 표정과 부드러운 말투에서 ‘나 행복해요’가 느껴지니까요. 슬픈 사람은 어떨까요? 낯빛이 어둡고 힘이 없어 금세 알아챌 수 있습니다. 감정을 숨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은 감정이 너무 큰 탓일까요?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연인들이 있습니다. 어린 연인, 젊은 연인, 나이 든 연인…. 성별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전철,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도 꼴불견 애정 행각을 벌입니다. 특히 밤늦은 퇴근길, 전철 안에서 이런 사람들을 보면 진저리가 납니다.
세상에 빛이 되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친절 베풂 도움 공감 배려 등이 그런 사랑이지 싶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사랑하다’를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다” “남을 이해하고 돕다”로 설명합니다.
세 가지 뜻 중 '남을 이해하고 돕는 사랑'이 가장 와닿습니다. 이런 사랑은 대부분 남몰래 이뤄집니다. 얼굴 없는 천사, 이름 없는 천사들이 떠오릅니다. 이들은 모두 ‘왼손도 모르게’ 사랑을 실천합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파렴치한이 설치는 요즘, 얼굴도 이름도 없는 천사들 덕분에 찌푸린 인상을 펴고 미소 짓게 됩니다.
뇌사자 한 명이 기증한 장기는 최대 9명에게 새 삶을 선사할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를 살리고 떠난 사람들은 절로 두 손을 모으게 한다.
특히 누군가를 살리고 떠난 사람들은 절로 두 손을 모으게 합니다. 2월 말 두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고 떠난 60대 요양보호사는 생전 늘 밝은 표정으로 주변을 행복하게 했다고 합니다. 뇌사에 빠지기 전 “죽으면 하늘나라로 갈 몸인데 장기기증으로 아픈 사람을 돕고 떠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기에 가족들이 선뜻 장기기증에 동의했다고 전해집니다.
같은 달 딸의 장기를 기증한 어머니의 사연이 방송을 타면서 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결혼을 앞둔 딸이 남자친구와 스노클링 중 익수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지자 식구들이 장기기증을 결정해 네 명의 생명을 살렸다고 합니다. 가족의 빠른 결정에 딸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웠습니다.
“딸이 뇌사 판정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희 식구가 장기기증을 결정했죠. 마지막으로 수술실에 들어갈 때 꼭 아이가 ‘내일이면 눈을 뜨려고 했는데 왜 나를 포기해’ 하고 원망하는 것 같았어요. 의학적으로는 사망이었지만 우리에겐 살아있는 아이였거든요. (…) 딸이 네 사람을 살리고 갔다고 들었어요.”
2023년 기준 국내 뇌사로 인한 장기기증자는 483명, 이식 대기자는 5만1,857명입니다. 100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장기·조직 기증 희망자는 약 14만 명으로, 2022년(11만7,584명)보다 늘었습니다. 2022년 국내 뇌사 장기기증률은 7.88%. 미국(44.5%) 스페인(46.03%), 영국(21.08%)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보건복지부 자료).
장기기증률이 다른 나라들보다 크게 낮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마도 유교 문화의 탓이 클 거예요. 제 주변에도 “나는 되지만 내 가족의 장기기증만큼은 안 된다”고 꺼리는 이가 많습니다. 하루빨리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공감대가 형성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기증자의 사회적 예우가 높아져야 합니다. 신청 방식 등 정보를 알리는 건 기본이고요.
그래서 알아봤습닌다. 장기기증은 16세 이상이면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온라인으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보건소나 의료기관 등 장기이식 등록기관을 직접 방문해 신청서를 쓰거나, 작성한 신청서를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우편으로 보내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임신부, 출산한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나지 않은 임산부, 지적장애인 등은 제한됩니다.
장기기증은 살아있는 사람, 뇌사자, 사망한 사람으로 구분해 진행됩니다. 각각 기증할 수 있는 장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건강한 신장 2개 중 1개, 간장·말초혈관·골수·폐·췌장·췌도·소장을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이식이 적합할 경우) 일부를 기증할 수 있습니다. 뇌사자는 신장·간장·폐장·췌장·소장·안구·손·팔·발·다리 등을, 사망한 사람은 안구를 기증할 수 있습니다.
장기기증 등록을 했는데, 마음이 바뀔 경우엔 어쩌나 걱정이죠? 걱정 마세요. 언제든 취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기증 등록을 했더라도 사망했을 땐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 등 유가족이 동의해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장기기증 등록자는 건강할 때 가족에게 미리 알려 둘 필요가 있습니다.
매일 8명의 환자가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숨진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기기증을 간절히 바라는 이웃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어요. 장기기증의 숭고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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