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폭발이 고려 초기에 일어 났다는데 주변에 있을법한 문명의 흔적이 사라졌다면-
신라의 수도가 지금의 경주가 아니라는 말이 있네요, 상상력의 발로로 보면 백두산 폭발이 고려 초기에 있었나 봅니다.그러면 대폭발이 일어나기 전 그 주변에는 뭔가 있었을 것 같은데, 모든 것이 화산에 쓸려나갔다면, 상상을 합니다. 이야길 들어보니 그런 대폭발이 지금 일어난다면 엄청난 재앙이 된다는데, 당시에 한반도 동북지역을 터부시 했던 것도 환경적으로 살기가 곤란한 지역이기에, 그곳에 사냥꾼 집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이 드네요. 혹 천년 신라의 도시가 백두산 폭발로 사라진 것은 아닌지, 경주는 그냥 왕족들의 무덤이 있는 장소라고만 생각이 드는군요. 무덤 있는 곳에 궁궐을 짓지는 않을 것이라 보기에 더욱 경주가 신라의 수도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천년 신라는 어느 지역에 있는 나라였을까?
무덤에서 유물이 나왔다고 해서 그곳이 신라의 수도였다는 것은 당시의 도시건설 철학인 음양의 이치로 보면, 주택이 밀집한 지역을 양이라고 하고 무덤을 음이라고 했을 때, 그리고 서양은 집안에다 시체를 두지만 한반도는 음양설에 의해 무덤을 피해 집을 짓거나 도시를 건설합니다. 경복궁에서 먼 동쪽에 태릉이나 정릉 같은 곳에 무덤이 있고, 망우리 넘어 금곡에도 무덤이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요? 신라는 음양철학이 없던 나라였을까요? 신라에 불교가 들어왔다는 것은 중국을 통해서인데 그 연대는 정확히 모르지만 더구나 모르겠는 건 신라인의 철학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또한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였는데 불교문화는 화장 문화이고 사리를 모시는 탑문화인데, 어떻게 왕족은 매장을 했던 걸까요? 그것은 불교가 신라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신라의 문화가 불교가 아니라는 것이고, 일부 종교시설의 문화재 정도로 보입니다. 즉 요즘 기독교가 한국의 종교가 아니듯이, MB가 비록 장로라 해도 기독교가 국교는 아닌 것 이듯이, 신라의 불교가 그러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불국사나 석굴암의 보전이 신라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를 대표하는 것이므로, 그래서 경주의 문화재가 신라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고려 초 백두산 폭발은 당시로서는 큰 사건인데 역사에 기록된 부분이 약소하단 것인데 신라의 수도가 지금의 원산지역이나 그 위쪽일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백두산이 폭발하기 전 분명 뭔가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첨하여 상상해 봅니다. 마찬가지로 고구려의 기록도 그런 면에서 다시 고찰해야 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백두산폭발이 실제가 아니고, 인간 역사 이전에 있었던 일이라면, 지금의 삼국사기 기록이 맞는데, 고려 초기에 일어났다고 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봅니다.
첫댓글 1. 현 경주는 신라의 도읍이 맞습니다. 2. 왕족들이 묻힌 거대한 무덤은 신라의 불교 도입 이전이고 그 이후 무덤은 간소화해집니다. 더구나 한 중교가 들어왔다고 해서 바로 장례문화까지 변하진 않습니다. 장례 문화는 매우 보수적인 것이라서요. 로마의 기독교처럼 이교도 탄압이 이어셨다면 또 몰라도.. 그래도 유럽을 기독교화 하는데 천년이 넘게 걸렸죠. 3. 신라인에게 유교적 음양이론이 있었을지 의문이네요.
지금의 잣대로, 조선 유교식 잣대로 신라를 보지 마시길. 그때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세계관 속에 살았습니다. 무덤을 중요시하고 가까이 하는 것이 한 예이죠.
음...그러니까 경주에는 신라유적이 무덤 밖에 없나 보죠? 그럼 신라의 수도는 어디? 화산폭발로 묻힌 백두산어디??? 안드로메다?? 경주에서서 한번 답사라도 하고나서 이런 글을 쓰심이...
백두산은 발해멸망후 폭발했습니다. 그시기에고려초에이러난사건이라고 책에쓰여있습니다.
백두산의 폭발로 인해 발해의 국력이 쇠퇴하고 내부분열이 심화되었으며, 이틈을 타서 요나라(거란)의 태조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공격해서 서기 926년에 발해가 멸망했습니다. 즉, 발해멸망후 백두산이 폭발한 것이 아니라, 발해가 멸망을 하게된 직접적인 계기가 백두산 폭발이고 폭발후 발해의 국력이 쇠퇴된 시점에서 요나라(거란)가 침입을 해서 발해가 멸망 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안국은 포함하지 않고 글을 적었습니다.^^)
신라를 실증하자고 쓴글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믿으면 되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 강요하는 이시대의 역사책은 뭔가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 까요..상고시대의 영토를 잃었다고 분노하는 파쇼적 민족애보다는..서울에 땅한평 못가진 기층인이 무슨 상고시대의 영토를 생각이나 할 처지가 되겟습니까만.. 아뭏튼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시니 저도 그동안 무관심했던 역사에 대하여 깊히 생각해 봅니다..아무튼 감사합니다.
역사든 문학이든 상상력은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상은 몽상일 뿐이지요.
제가 글을 쓰고도 여전히 의심되는 것은 신라인의 철학입니다.. 무엇이었을까요..음양이론은 고려중반 주자학이 들어오면서 사서오경과 같은 송나라의 문물을 수입했던 당시 유학자들에 의해 되다가, 음양오행론이라고 도교와 역학이 결합되면서 점사의 기능으로써 활용되는데..물론 주역의 기본 틀에서 나오긴 했지만, 그것이 일상에 깊이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인건 조선 중반 임진왜란 이후부터 랍니다. 아뭏튼 간에..역사의 실증과 해석은 쉽지 않습니다.
불교가 과연 신라를 지배한 사상의 주류였을까요? 문화유산이 그렇게 말하겠지만 매장문화는 분명 광야의 문화가 아니었을까요? 신라 고구려 백제의 문화가 다 매장문화이고.
고대이집트나 이슬람국가 고대이스라엘 등이 매장문화이고..신약에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제사문화에도 강신제와 송신제가 있는데 신의 옴과 가심을 기리는 제례의식입니다. 이것은 매장문화에서 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면 불교가 신라에서는 어떤 불교였는가가 공부할 이유가 생기네요. 즉 대승불교라고만 알고있는데..일단 대승불교부터 뭔지 알아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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