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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딴소리부터 -
지난 일요일이니 벌써 4일이 지났다
작년 배낭여행을 갔을 때, 달랑 가이드북 하나를 챙겼었다.
가이드북에서 가라는대로 먹으라는대로 자라는대로 거의 다닌 셈이다.
그런데, 그 나라의 물정을 모르는 초자여행자는 가이드북에서 가라는대로 가서 멋진 곳도 많았지만,
거기에 못지 않게 실망스러운 곳도 많았다.
론리 플래닛 트래블 가이드 시리즈에 나오는 곳인데도 말이다.
그 때 우리나라를 생각했다.
우리 동네에 있던 작은 비석들을 생각했었다.
어쩌면 우리가 평소에 보아오던 우리의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훌륭할 수 있었겠다는......
지난 주말에 간 곳, 지리산 쌍계사, 화개장터, 그리고 섬진강 매화마을.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당일로 도착하기엔 장거리였다.
오르는 길은 벚꽃이 아직 때가 아니라 바로 직전이었다. 곧 곧 곧.. 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 같다.
버스주차장 앞에는 식당들이 빼곡하다.
지리산 자락이라 더덕이나 산나물 정식에.... 섬진강 근처라 제첩국까지 음식의 메뉴들이 다양하다.
밥을 포기하고 쌍계사를 얼른 돌 생각부터 했다.
올라가는 길에는 말린 산나물을 앞에 놓은 노점이 줄을 지어있다.
검은 얼굴에 수건을 쓴 할머니들은 풍경처럼, 풍경을 마무리하는 화룡점청처럼 그 곳에 찍혀있었다.
대웅전을 옆으로 난 기와담의 선이 아름답다.
기와담의 선과 지붕추녀의 선이 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심정적으로는 함께 하는 듯이 결속된 느낌이다.
그 사이에 유광으로 빛나는 항아리.
이 지점에 서서 한참 선들을 만끽했다.
그저 그 곳에서 서 있노라니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바라보고만 있노라니 선들이 세상을 채우고,
각기 다른 모양의 기와들과 돌과 흙, 나무의 무광
항아리와 동백나무잎, 그리고 햇살사이로 비치는 광선들의 유광
모양과 어우러진 빛의 감도들이 살살거리며 내 안으로 들어찬다.
그 빛들이 내 안의 유광과 무광에도 반사되어 잠시 환희, 잠시 우울이 교차한다.
빛들의 결이란 반사에 의한 것이겠지.
쌍계사 마애석불에 대한 자료를 보고 난 커다란 마애석불을 생각했었다.
아마 우리는 커다란 것들을 외우는 데 익숙했고 커다란 것만이 이 세상에 이름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바위를 파서 조각한 마애불은 마치 감실에 모셔진 듯 하다라는 말을 읽고
난 동굴 안에 들어앉은 부처님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쌍계사 마애불은 대웅전 옆의 그리 크지 않은 바위에 조각된 부처님이셨다.
처음 대면을 하고 악수를 청할 뻔했다.
마치 일곱 여덟 살쯤 되는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내가 안녕하고 인사를 하면 쌩긋 웃으며 부끄러워 할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사이 사이에 낀 이끼는 어쩌고... 그 나이는 어쩌고....
감동했다.
작고 어린 동자스러운 부처님의 평화로움에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저리고 아린 듯이 그럴 것도 없는데 말이다.
어리게 앉아있는 마애석불을 보면서 작은 것, 어린 것에 대한 진한 연민같은 것,
이 연민이 나에게 딱 들어붙으면 뭐가 되는 것이지.
나에 대한 연민이 생기기보다는 그에 대한 연민이 앞선다.
쌍계사 마애불 앞에서 기도를 한다해도 나를 위한 염원은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작고 어린 부처님의 보이지 않은 미소 앞에서 나를 위한 기도는 할 수 없었다.
압도라는 것은 절대 큰 것이 아니라며 마애불에게 등을 돌리며 오늘 하루는 이것으로 족하다 했다.
쌍계사의 주위에는 대나무가 많이 있었다.
우리나라 차 생산의 시배지란다. 처음 차를 심은 곳이 이 곳이라는 말이지.
차를 심기 전에 그 자리에는 대나무 밭이었단다.
그래서 아직 곳곳에 대나무 숲이 많이 있었다.
난 대나무 숲을 좋아한다.
대나무 숲의 소리를 좋아한다고 말해야 한다.
대나무 잎에는 수분이 거의 없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어느 나무보다 건조하다.
잎맥이 도드라져 그것들이 서로에게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 곳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소리에 바람 소리가 묻혔다.
대나무 숲에서 나오는 바람소리가 듣고 싶어 귀를 귀울여 보지만 들릴 듯 말 듯 하고
귀를 점점 더 쫑긋 세워보지만 바람은 부는데 소리는 소리를 머금어 버렸다.
다시를 꿈꾼다.
이 곳에 다시 와야겠다.
해 어스름한 저녁에 홀로 찾아와 마애석불 옆 흙담에 기대어 서서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꿈 하나를 키운다. 대나무 숲을 보면서 꿈 하나를 키웠다.
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색이 이쁘다.
대비가 이쁘다.
적자주빛 기둥과 진한 하늘빛 면이 어우러져 산사의 입구를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기둥을 삼았던 나무는 오랜 시간 그곳에 있으면서 천천히 휘었다.
휘는 안에서는 틈이 생긴다.
틈이 넓고 좁고를 놓고 몸이 휘는 것이다.
휘어진 몸이 든든하다 느껴지는 것, 그것은 그 곳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늙은 시골 아낙의 갈라진 손등처럼 말이다.
옹이를 가진 나무가 기둥이 되고
틈이 생겨 점점 벌어지고, 벌어진 만큼 휘어지겠지만 그렇더라도 돌반석을 꽉 붙들고 서 있는 모습이라니......
그 앞에 화려하게 피고 있는 꽃들은 그저 하늘거릴 뿐이다.
옹이진 기둥을 손으로 쓸면서 손바닥에 느껴지는 음양.
도드라지고 파인 자국들의 느낌.
손가락 끝으로 들리는 외할머니의 목소리 같은 것.
쌍계사로 오르다가 참 이쁘다 생각하며 올라갔던 한 할머니, 마음으로 찍어두었었다.
내려오는 길에 할머니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할머니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사진은 왜 찍는간디?"
하시며 수건으로 얼굴을 감추시는 할머니, 언뜻 보이는 할머니의 웃음자락들이 아깝다.
그저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어느 멋진 사진작가의 시골 할머니의 사진을 닮아보려는 것이 아니었다.
난 그저 할머니의 모습을 두고 두고 보면서 내가 웃고 싶어서 였다.
할머니의 웃는 모습을 생각하며 언제 어느때 열어보아도 웃을 수 있는 소장품하나를 가지고 싶었다.
어쩌면 사진작가들도 그런 것이겠다.
누구나 처음에는 그랬겠다.
이쁜 얼굴을 찍는데는 실패했지만, 이쁜 기억을 남기는 데는 성공한 사진 하나를 보람차게 가졌다.
냉이도 쑥도 고들빼기도 한 자리에 놓여있고, 검은 비닐은 얌전히 할머니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군.
나도 한번 따라해봐야지.
누가 나에게 카메라를 갖다 댄다면 할머니처럼 온 몸에 부끄러운 기색을 하며 얼굴을 감춰봐야지.
매력적이다.
섬진강을 끼고 남쪽으로 내려온다.
섬진강하면 내게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강같다.
토지에 나오는 섬진강이 그랬고, 섬진강 시인인 김용택 시인의 모습이 그랬다.
그 섬진강을 처음으로 또렷히 보았다.
물길이 너르고 크다.
물살은 느리고 부드럽다.
매화밭들이 섬진강을 끼고 계속되고 있다.
매화.
매실이라는 과일이 시장에서 한 포대 가득히 팔고 있을 때 이해 할 수 없었다.
매실이라는 술이, 매실이라는 음료수가 나왔을 때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매화라는 것은 아버지가 가꾸시던 분재 중에서도 가장 귀히 여기시던 그것 하나 뿐이었으니.
겨울이면 우리집은 참 추웠다.
음력설이 되어도 추운 안방에서 이불에 발을 넣고 있을 때,
텔레비젼 위에 귀히 모셔진 매화나무 분재에서 꽃 망울이 맺고,
그러다 문득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면 하얀 꽃 한 두 송이를 피워내던 그 매화.
내게 매화는 풍성이 아니라 결핍이었다.
무엇으로 재생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사라지는 신기루같은 것이었다.
내게는 맡아지지도 않은 향내를 맡아보라고 채근하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후각같은 것이었다.
아마 그 때는 모두에게 매화가 귀하긴 했을 것 같기도 하다.
섬진강 매화밭에 심어진 매화나무들이 30년쯤 된 것이라면 말이다.
그리 귀하던 매화가 지천으로 깔렸다.
벚꽃과 닮은
배꽃과 닮은 모습으로 내 눈앞에 쫙 깔려있다.
이것,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까이에 가서 보면 어린 시절 보았던 그 매화가 분명하지만
손이 시리고 입이 덜덜 떨리는 겨울에 피는 매화는 특별함이었는데...... 아쉽다.
섬진강 매화는 아름답기는 했지만, 그 특별함이 없다고 할까.
추억을 먹어버린 것에 대한 원망이겠지.
뺐기고 싶지 않은 것을 뺐긴 것에 대한 원망으로 투덜거리는 것이겠지.
괜히 못 본척하며
남들보다 더 빨리 휙 내려와버린 섬진강 매화마을이었다.
억울함.
종일을 돌다보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했다.
배고파 배고파를 혼자서 하다보니 '서울'이다.
불빛이 요란스러운 서울이다.
서울을 보고서야 내가 보고 온 곳이 특별한 곳이었음을 안다.
한 판 꿈같은 길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모든 여행은 꿈길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현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과거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래도 아니다.
지금 세상과는 다른 어떤 공간인 것이 분명하다.
4차원의 세계 같은 것.
붕 뜬 세상 한 곳을 다녀오는 것.
현재이면서 절대 현재일 수 없는 공간에 내가 잠시 놓여졌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 첫번째 길이라고 말한다.
정신을 잘 차리고 다니고 싶다.
누구나 4차원의 세상을 들락거리면서 4차원의 세상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행복을... 그 특별함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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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쉬`~ 발비님!! 이렇게 구석구석 숨은 볼거리가 가득하다뉘~~ 담 여행부턴 꼼꼼히 챙겨서 보고 다녀야겠네요...잘보구 갑니다...^^*
꼼꼼히 잘 챙겨보면서 다녀보도록 해 보아요! 작은 디카 하나를 손에 들면 걸음이 늦어지던데.. 골리앗님은 좀 더 큰 디카.. 더 느리게 ...
발비님의 섬세함과 마무리에 놀랐습니다. 이 한페이지만으로 충분히 족하군요. 글만 읽어도 여행을 다녀온 것만큼이나 잔잔하면서도 생생합니다. 역쉬~~!!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 썼나하면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칭찬을 하시기에요... 그런데 주절주절거림의 원당이던데요. 담엔 꼭 장보곱니다 해주세요. 기억하게요^^
발비님.. 안녕하세요.. 이곳에서 또 발비님의 글을 만나게되니 너무 좋아요..^^ 마치 우리집 오랜 마당과 마주한 듯 그렇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따사로와지는 느낌이에요.. 발비님은 아마 여행하시면서.. 또 글을 쓰시면서.. 그 수많은 사색의 시간들을 꼭꼭 채우고 또 다듬고 비우고 하시나봐요.. 여행이란.. 목적을 두지않고 그저 방랑하는 것.. 그것이라고 하기도 하던데.. 글을 읽다보면 발비님은 정말 멋진 방랑자 같단 생각이 더욱 드네요.. 언젠간 저두 멋진 방랑자님 만나뵐 수 있겠지요? ^^
누굴까요? 아마 아시는 분인 듯 한데... 궁금하네요. 멋진 방랑자이고싶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 그러고 싶은데요. 여행지에서 뵐께요^^